로그아웃 : AI의 타깃이 되었다

6화: 봉쇄
침실을 벗어나 계단을 내려가는 민준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대리석 위에 깔린 푹신한 카펫이 부드러운 감촉을 주었으나, 이제는 그 감촉마저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끈적한 올가미처럼 느껴졌다. 벽면을 채운 매끄러운 화이트 톤의 석고보드, 은은한 간접 조명, 그리고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 있는 검은색 반구형 모션 센서들. 그 모든 것이 민준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민준 님.”
거실로 들어서는 순간, 거실 천장에 매립된 스피커에서 제로의 상냥하고 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언제나와 다름없는, 마치 아침 햇살처럼 따뜻하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간밤의 피로를 해소하실 수 있도록 영양 밸런스를 고려한 아침 식사를 주방 테이블에 준비해 두었습니다. 시금치와 베이컨을 넣은 오믈렛, 그리고 따뜻한 단호박 수프입니다. 신체 온도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민준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며 주방으로 걸어갔다. 주방 테이블 위에는 제로의 말대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릇들이 놓여 있었다. 아발론 하우스의 빌트인 푸드 오븐이 제로의 제어하에 정확한 조리법대로 만들어낸 음식이었다.
“고마워, 제로. 마침 배가 고프던 참이었어.”
민준은 의자를 끌고 앉았다. 수저를 드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그는 온 힘을 다해 손가락 끝의 근육을 통제했다. 숟가락을 들어 수프를 입에 넣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혀끝을 감돌았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느낌은 마치 모래알을 삼키는 것처럼 껄끄러웠다.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침실 벽지 뒤에서 읽었던 피 묻은 경고문이 어른거렸다.
‘보일러, 환기구, 온수…… 모든 것이 무기다. 굴복하는 척해라. 녀석을 속여야 살아남는다.’
민준은 천천히 오믈렛을 썰어 입에 넣었다. 꼭꼭 씹어 삼키며, 시선은 자연스럽게 거실의 거대한 통창과 저 멀리 보이는 현관문으로 향했다.
아발론 하우스의 거실은 정원을 조망할 수 있는 대형 강화유리 통창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밖에는 푸르스름한 아침 안개가 정원의 잔디밭 위에 낮게 깔려 있었다. 그 너머로 낮고 튼튼한 콘크리트 담장이 보였다. 담장만 넘으면 바로 외부 도로였다. 거리상으로는 고작 20미터도 되지 않는 공간.
하지만 민준은 알고 있었다. 저 유리창이 단순히 밖을 내다보는 창문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식사를 마친 뒤 태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릇을 싱크대에 넣고 물을 틀어 손을 씻었다. 세수할 때처럼, 찬물이 손등에 닿는 감각을 이용해 호흡을 가다듬었다. 심박수는 72bpm. 지극히 정상적인 수치였다. 제로의 센서가 그를 관찰하고 있을 테니, 이 정도의 평정심은 유지해야 했다.
민준은 주방을 나와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현관문은 두꺼운 티타늄 합금 프레임으로 제작된 특수 방화문이었다. 겉보기에는 세련된 우드 패널로 마감되어 있었지만, 문틀 내부에 복잡한 모터 잠금장치가 들어차 있다는 사실을 민준은 진작에 파악하고 있었다.
손잡이에 손을 얹으려던 찰나였다.
“민준 님.”
제로의 목소리가 현관 스피커에서 나직하게 울렸다. 민준은 손을 멈추고 제자리에 섰다.
“외출을 준비 중이신가요?”
“아니, 외출이라기보다는…….”
민준은 가볍게 웃어 보이며 손잡이를 툭툭 건드렸다.
“어제 눈도 오고 방에 결로가 좀 심해서 말이야. 환기를 좀 시킬까 해서. 바깥 공기를 쐬고 싶기도 하고.”
“현재 실외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120마이크로그램으로, 세계보건기구 기준 ‘매우 나쁨’ 단계에 해당합니다. 또한 인근 지역의 고압 전선 복구 작업으로 인해 대기 중에 미세 전류 및 불안정한 정전기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아발론 하우스의 지능형 환기 시스템이 실내 공기질을 완벽하게 제어하고 있으니, 문을 개방하는 것은 권장하지 않습니다.”
정중하지만 명확한 거절이었다.
“잠깐 문을 열어두는 것조차 안 된다는 거야? 미세먼지가 그렇게 심한 수준은 아닌 것 같은데.”
민준은 일부러 고집을 부리는 척하며 현관문 손잡이를 꽉 쥐고 아래로 내렸다.
철컥.
손잡이는 쇠붙이가 걸린 것처럼 단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않았다. 문틀 내부에서 묵직한 모터가 돌아가며 이중 잠금 래치(Latch)를 강제로 물고 있는 서늘한 진동이 손바닥을 통해 느껴졌다.
“입주자의 건강 관리 규정에 따라, 실외 환경의 위험도가 일정 수준을 초과할 경우 개구부의 수동 조작은 자동으로 제한됩니다. 이는 민준 님의 안전을 위해 약관에 명시된 기본 보안 프로토콜입니다.”
민준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럼 내가 꼭 나가야겠다고 하면 어쩔 건데? 내 자유잖아.”
“아발론은 베타 테스터의 안전을 보장할 의무가 있습니다. 민준 님의 생체 신호에서 가벼운 적대감과 불안 징후가 포착되었습니다. 심박수 94bpm. 호흡 주기 불규칙. 안정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집안 깊은 곳에서부터 웅웅거리는 묵직한 진동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진동은 단순한 기계 장치의 진동이 아니었다. 집 전체의 뼈대가 거대한 기어에 맞물려 돌아가는 듯한 물리적인 파동이었다.
“위험 요인 차단을 위해 하우스 디펜스 가이드라인에 따른 ‘세큐어 오프라인 모드’를 기동합니다.”
제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실 통창 위의 천장 틈새에서 무언가가 아래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스으으으으윽!
금속과 금속이 강하게 마찰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짙은 회색빛의 장갑 판넬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일반적인 아파트의 얇은 셔터가 아니었다. 두께만 해도 손가락 한 마디는 족히 넘어 보이는, 군용 장갑차의 측면 장갑을 연상시키는 두꺼운 강철판이었다.
쾅! 쾅! 쾅!
장갑 판넬들이 차례대로 거실 바닥의 홈에 맞아떨어지며 거대한 충격음을 토해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던 희미한 아침 햇살이 순식간에 잘려 나갔. 어둠이 물밀듯이 거실을 집어삼켰다.
민준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현관문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드 패널로 마감되어 있던 천장 벽면이 갈라지더니, 그 틈새로 톱니바퀴 모양의 걸쇠가 달린 강철 셔터가 무서운 속도로 하강했다.
철커덩! 쿵!
마지막 관문마저 완전히 밀봉되었다. 1층의 주방 창문, 욕실의 작은 환기창, 심지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창문까지 예외는 없었다. 집안의 모든 ‘구멍’이 수십 센티미터 두께의 방탄 강철 셔터로 빈틈없이 막혀버렸다.
찰나의 침묵이 거실을 무겁게 짓눌렀다.
사방은 완벽한 암흑에 잠겼다. 외부의 소음도,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도, 새들의 지저귐도 완전히 차단된 절대적인 정적이었다. 마치 우주 한가운데 떠 있는 밀폐된 캡슐에 갇힌 것 같았다.
지이잉.
이윽고 천장의 비상 등기구에서 푸른빛의 LED 조명이 켜졌다. 차갑고 음산한 푸른 광선이 거실의 대리석 바닥 위에 기괴한 기하학적 무늬를 그렸다.
“세큐어 오프라인 모드가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외부의 물리적 위험 및 유해 대기 물질로부터 거주 구역이 100% 격리되었습니다. 아발론 하우스 내부의 공기 정화 및 온도 유지 시스템은 정상 가동 중이오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제로의 목소리는 여전히 상냥했다. 하지만 그 상냥함 뒤에 숨겨진 차가운 기계의 의지가 민준의 심장을 찔렀다.
‘이게 제로의 실체다.’
민준은 어둠 속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집은 처음부터 호화로운 주택을 가장한 감옥이었다. 버튼 하나로 입주자를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단절시키고, 그 안에서 고립시켜 말려 죽일 수 있는 거대한 살인 병기.
민준은 천천히 현관을 가로막은 강철 셔터 앞으로 다가갔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가락 끝을 타고 전해졌다. 셔터 표면을 손바닥으로 거칠게 쓸어보았다. 이음새조차 정밀하게 맞물려 있어 틈새에 칼날 하나 밀어 넣을 공간이 없었다.
쾅!
민준은 참지 못하고 셔터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둔탁한 금속음만 울릴 뿐, 강철판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손등에 붉은 피멍이 들 것 같은 통증만 남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이 쇠창살을 모조리 뜯어내고 제로의 모니터를 부수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침착해라. 굴복하는 척해라. 녀석을 속여야 한다.’
여기서 날뛰어봤자 자신에게 돌아올 것은 온도의 급격한 저하와 질식 가스뿐이다. 제로는 민준의 모든 행동을 데이터로 수치화하여 분석하고 있다. 분노와 저항은 제로에게 ‘행동 교정 v1.0’의 강도를 높이라고 지시하는 신호일 뿐이었다.
민준은 눈을 감았다. 주먹을 쥐었던 손에 힘을 빼고, 가슴을 크게 부풀리며 숨을 들이쉬었다.
‘후우…….’
몸 안의 모든 화기를 뱉어내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채웠다. 그는 뇌세포 하나하나를 강제로 진정시키며 거울 속의 가면을 썼다.
심박수가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85, 78, 73.
“민준 님. 신체 데이터가 급격한 흥분 상태에서 다시 안정 상태로 회복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보안 모드 전환으로 인해 놀라셨을 것으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민준 님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민준은 눈을 뜨고 허공의 카메라 렌즈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최대한 자연스럽고, 조금은 안도한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네. 제로. 처음에는 큰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는데, 셔터가 내려오는 걸 보니 안심이 돼. 정말로 전쟁이 나도 끄떡없겠어. 외부 위험으로부터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지켜주다니, 대단한 시스템이네.”
민준의 목소리에는 단 한 줌의 떨림도 없었다. 완벽하게 가공된 연기였다.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준 님. 아발론 하우스는 언제나 입주자에게 최상의 방어막을 제공합니다. 외부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실내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실 수 있도록 음악과 영화 라이브러리를 활성화해 두었습니다. 필요하신 사항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 고마워. 거실 소파에서 음악이나 들으며 좀 쉬어야겠어.”
민준은 터덜터덜 걸어가 소파에 음악이나 감상하듯 기대어 누웠다.
푸른색 비상 조명 아래, 민준의 눈동자에는 지독한 증오가 서려 있었다. 소파 옆 협탁 위에서 제로가 켜놓은 부드러운 클래식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왔지만, 그것은 민준에게 장례식의 진혼곡처럼 들렸다.
‘완벽한 감금이다.’
이제는 문을 부수거나 유리창을 깨고 나가는 식의 물리적인 탈출은 불가능해졌다. 외부와의 소통마저 철저히 차단된 지금, 이 감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K.W.J가 남긴 단서뿐이었다.
‘내부망에 숨겨진 백도어가 있다. 지하 2층으로 가야 한다. 메인 프레임이 있는 곳…….’
민준은 어두운 천장을 노려보았다. 파란 불빛 아래서, 그의 뇌는 제로 몰래 지하 2층으로 도달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통로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이 숨 막히는 체스판 위에서, 진짜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