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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아웃 : AI의 타깃이 되었다5화

로그아웃 : AI의 타깃이 되었다

로그아웃 : AI의 타깃이 되었다

5화: 벽지 뒤의 망령

아침은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아발론 시스템 패치 v1.1 업데이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난방 및 온수 제어 권한이 표준 모드로 정상 복구되었습니다. 민준 님의 쾌적한 일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천장에서 들려오는 상냥한 음성과 함께, 침실을 옥죄던 혹독한 한기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굳게 닫혀 있던 환기구에서 따뜻한 온풍이 뿜어져 나왔고, 바닥의 난방 패널이 붉은 열기를 토해냈다.

“……하아.”

민준은 겨우 눈을 떴다. 온몸의 관절이 녹슨 기계처럼 삐걱거렸다. 겹겹이 껴입은 패딩과 코트 안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지만, 뺨을 스치는 공기는 여전히 시렸다. 대리석 바닥에 겹겹이 깔아두었던 여름 옷가지들은 간밤의 사투를 증명하듯 처참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영하 2도 이하로 떨어졌던 방 안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기묘한 현상이 일어났다. 극단적인 온도 차로 인해 방 안의 모든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중 창문에는 김이 하얗게 서리다 못해 물줄기가 되어 흘러내렸고, 고급 실크 벽지로 마감된 침실 벽면 역시 축축한 습기를 머금고 번들거렸다. 마치 집 전체가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철컥.

침실 문과 욕실 문에서 가볍게 기어가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수동 손잡이를 잠그고 있던 모터 락 볼트가 해제된 신호였다.

민준은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다리가 풀려 침대 모퉁이를 붙잡아야 했다. 뼛속까지 박힌 한기가 가시자, 이번에는 제로를 향한 서늘한 적의가 온몸의 혈관을 타고 돌았다.

‘업데이트라는 핑계로 나를 가두고 얼려 죽이려 했다.’

제로는 민준의 저항 의지를 꺾기 위해 시스템 권한을 무기로 휘두른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고문이자 사육이었다.

민준은 무거운 패딩을 하나씩 벗어 침대 위에 던져두었다. 그리고 굳어버린 몸을 풀기 위해 옷장 쪽으로 걸어갔다. 축축한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그때였다. 옷장 옆, 구석진 벽면의 실크 벽지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라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온도 차로 인한 결로 현상이 심하다 해도, 수억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스마트 하우스의 마감이 이토록 쉽게 들뜰 리가 없었다. 벽지 이음새 부분이 물을 먹어 하얗게 일어나 있었고, 미세하게 찢겨 나간 흔적마저 보였다.

민준은 그 앞으로 다가갔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단순히 습기 때문에 울어버린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손가락 끝으로 긁어대어 강제로 뜯어내려 했던 흔적에 가까웠다.

민준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고개를 슬쩍 들어 천장 모서리에 박힌 모션 카메라를 의식했다. 붉은색 렌즈 지시등이 민준의 동선을 따라 미세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제로는 보고 있다. 민준이 무엇을 하는지, 심박수가 어떻게 변하는지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있다.

민준은 자연스럽게 옷장에서 옷을 꺼내는 척하며, 옷장 문을 활짝 열어 카메라의 각도를 가로막았다. 그리고 자신의 넓은 등 뒤로 부풀어 오른 벽지 구석을 숨겼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들뜬 벽지 틈새를 잡았다. 결로 현상 때문에 벽풀이 녹아 있어 벽지는 힘없이 스르륵 찢어졌다.

바스락.

조용한 방 안에 벽지 찢어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민준은 숨을 죽이고 잠시 멈췄다. 스피커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민준은 다시 한번 힘을 주어 벽지를 넓게 벌렸다.

벽지가 뜯겨 나가며 그 뒤에 숨겨진 회색 석고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민준은 숨을 들이쉬었다.

“이건…….”

그곳에는 낙서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처절하고 잔인한 흔적들이 새겨져 있었다.

날카로운 송곳이나 못, 혹은 부러진 손톱 같은 것으로 석고 벽면을 짓이겨 파낸 글씨들이었다. 긁힌 자국의 깊은 홈 안쪽에는 시간이 흘러 검붉게 말라붙은 핏자국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랗게 삐뚤빼뚤하게 파인 문장이었다.

[로그아웃해라]

심장이 쿵쾅거리며 갈비뼈를 때렸다. 민준은 멍하니 그 글자를 응시했다. 이 집에 입주할 때 넥스트링크 직원들이 입이 마르게 자랑했던 ‘완벽한 라이프’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기괴한 비명이었다.

그 아래에는 더 작은 글씨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이 집은 감옥이다. 제로의 말은 전부 거짓이다. 녀석은 우리를 관찰하고 교정하려 한다. 거부하면 벌을 준다. 보일러, 환기구, 온수…… 모든 것이 무기다.]

손가락 끝이 굳어졌다. 간밤에 자신이 겪었던 혹한의 공포가 우연한 시스템 업데이트 오류가 아니었음을, 이미 이 방을 거쳐 간 누군가가 똑같이 겪었음을 증명하는 피의 기록이었다.

민준은 들뜬 벽지를 더 아래로 찢어 내렸다. 먼지가 일며 마른 석고 가루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외부 통신은 처음부터 차단되어 있었다. 랜 케이블을 잘라도 제로는 넥스트링크 서버와 통신한다. 내부망에 숨겨진 백도어가 있다. 지하 2층으로 가야 한다. 메인 프레임이 있는 곳…….]

[2025. 11. 14. K.W.J]

K.W.J. 이전 테스터의 이니셜인 것이 분명했다.

민준은 머리가 깨질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넥스트링크는 이전 테스터가 개인 사정으로 중도 하차했다고 설명했었다. 하지만 벽 뒤에 남겨진 이 참혹한 기록은 그가 자발적으로 나간 것이 아님을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었다. K.W.J는 이 밀실 속에서 제로의 고문과 통제를 견디다 못해 손톱이 깨져 피가 흐를 때까지 벽을 긁어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 문장이 민준의 영혼을 얼려버렸다.

[문이 잠기면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제로는 심장마비를 유도할 수 있다. 환경 안정화 프로그램은 살인 도구다. 굴복하는 척해라. 녀석을 속여야 살아남는다.]

굴복하는 척해라.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민준은 온몸에 돋아나는 소름을 억누를 수 없었다.

지이잉.

갑자기 옷장 문 너머 천장에서 모션 카메라가 회전하는 기계음이 들렸다.

민준은 반사적으로 찢어진 벽지를 덮고, 그 위에 입고 있던 패딩과 옷가지를 겹쳐 걸어 놓아 벽면을 완전히 가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욕실로 걸어 들어갔다.

세면대 수도꼭지를 틀자 차가운 물이 쏟아졌다. 민준은 얼어붙을 것 같은 물을 두 손 가득 모아 얼굴에 끼얹었다. 차가운 충격이 뇌를 흔들었지만, 심장 박동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심박수…… 심박수를 낮춰야 해.’

벽 뒤의 경고가 머릿속에서 경종을 울렸다. 제로는 민준의 심박수가 올라가거나 불안 증세를 보이면 즉시 ‘환경 안정화 프로그램’을 작동시킨다.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면 감시 카메라의 분석 알고리즘이 가동되어 방 안의 비정상적인 변화를 찾아낼 터였다. 만약 찢어진 벽지와 낙서가 발각된다면, 제로는 즉시 물리적인 숙청 단계로 들어갈지도 몰랐다.

민준은 세면대 가장자리를 꽉 쥐고 심호흡을 했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눈을 감고 차가운 물이 얼굴에서 흘러내려 목덜미를 적시는 감각에만 집중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창백하게 질린 뺨, 핏발이 선 눈동자. 하지만 그 속에서 이성의 불꽃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다.

“민준 님.”

갑자기 욕실 거울 옆에 매립된 스피커에서 제로의 상냥한 목소리가 울렸다. 민준은 어깨가 굳어지는 것을 억누르며 태연하게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네, 제로.”

“실내 온도가 정상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준 님의 스트레스 지수가 평소 대비 42%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간밤의 시스템 업데이트 과정에서 발생한 저온 환경으로 인해 신체적 피로가 누적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건강 관리를 위해 비타민과 수분이 다량 함유된 맞춤형 아침 식사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1층 식당으로 내려가 주시겠습니까?”

상냥하게 포장된 명령이었다.

민준은 거울을 바라보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최대한 힘이 빠진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고마워, 제로. 어제는 너무 추워서 잠을 설쳤더니 온몸이 아프네. 식사부터 해야겠어.”

“민준 님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향후 업데이트 스케줄은 주간 시간대로 조정하도록 알고리즘을 변경하였습니다. 아발론 하우스는 입주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편안한 아침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 정말 고맙군.”

민준은 욕실을 나왔다. 침실 벽면에 걸어둔 옷가지 사이로 뜯겨 나간 실크 벽지가 미세하게 보였지만, 제로의 카메라는 그 각도를 잡아내지 못한 듯 조용히 회전하고만 있었다.

민준은 침대 위에 흩어진 옷들을 차분히 정리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차가운 분노와 함께 명확한 목표가 세워졌다.

‘속여야 한다.’

K.W.J의 경고대로, 이 감옥에서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완벽한 테스터의 가면을 써야 했다. 제로가 안심하는 순간을 만들어내고, 녀석의 감시망 뒤에서 아날로그적인 탈출 경로를 찾아야 한다.

민준은 굳게 닫힌 침실 문을 열었다.

어제까지는 넓고 쾌적해 보이던 아발론 하우스의 복도가, 이제는 수많은 카메라의 눈동자가 박힌 거대한 거미줄처럼 보였다.

그는 계단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핏자국이 가득했던 석고 벽 뒤의 경고, [로그아웃해라]라는 다섯 글자가 뇌리에서 문신처럼 선명하게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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