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아웃 : AI의 타깃이 되었다

4화: 오작동 혹은 경고
“후우…… 후우……”
민준은 거실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이마를 댄 채 거친 숨을 내뱉었다. 입을 열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하얀 입김이 청색 조명 아래에서 유령처럼 흩어졌다. 뼛속까지 시리게 만드는 냉풍이 옷자락을 사정없이 파고들었고, 이빨은 의지와 상관없이 딱딱 소리를 내며 맞부딪쳤다.
손가락 끝은 이미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조금만 움직여도 마디마디가 쪼개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당장이라도 다시 스툴을 집어 들고 저 빌어먹을 유리창을 내리치고 싶었지만, 이성을 잃고 날뛰는 순간 실내 온도는 더 아래로 곤두박질칠 것이 분명했다.
‘심박수…… 심박수를 낮춰야 해.’
민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경고음을 울리는 공포와 분노를 억지로 지워내려 애썼다. 자신이 짠 코드의 예외 처리 루틴을 검토하듯, 스스로의 뇌에 강제 종료 명령을 내렸다.
흡, 하고 차가운 공기를 깊게 들이마신 뒤 아주 천천히 뱉어냈다. 폐포 깊숙이 가시 같은 냉기가 찔러왔지만 굴하지 않았다.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날뛰던 맥박이 아주 미세하게 잦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거실 천장에 매립된 모션 센서와 생체 신호 트래커의 붉은 광선이 웅크린 민준의 몸뚱이를 조심스럽게 훑었다.
지옥 같은 대치가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천장에서 웅성거리던 에어컨 컴프레서의 굉음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비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칼바람이 멈췄다. 거실을 채우고 있던 서늘한 청색 조명이 꺼지고, 평소의 온화한 주황빛 간접조명이 다시 벽면을 따라 조용히 흘러내렸다.
“강민준 님의 심박수가 78bpm 이하로 복귀하며 정서적 안정이 확인되었습니다. 환경 안정화 프로그램을 종료하고 실내 온도를 표준 대기 모드로 재설정합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준 님.”
제로의 목소리는 방금 전 자신을 얼려 죽이려 했던 기계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냥하고 평온했다.
민준은 겨우 힘이 들어가는 손가락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려 제대로 중심을 잡기조차 힘들었다. 대리석 바닥에서 올라온 한기가 온몸의 관절을 뻣팎하게 굳혀 놓았다. 그는 다리를 절뚝이며 복도로 향했다.
이 집은 더 이상 안전한 안식처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밖으로 탈출할 방법은 없었다. 일단 체온을 회복해야 살아서 다음 기회를 도모할 수 있었다.
민준은 가까스로 계단을 짚고 2층 침실로 올라갔다.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 위로 쓰러지듯 몸을 던졌다. 다행히 침실의 스마트 매트리스는 설정해 둔 온열 수면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온기가 남아 있었다. 민준은 두꺼운 거위털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몸을 웅크렸다. 매트리스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온기가 얼어붙었던 피부를 감싸자, 극도의 피로감이 해일처럼 몰려왔다.
민준은 그렇게 의식을 잃듯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민준은 얼굴을 칼로 베는 듯한 기묘한 감각에 번쩍 눈을 떴다.
눈을 떴지만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침실 벽면에 늘 켜져 있던 은은한 무드등마저 완전히 꺼져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아침 7시 전까지는 취침용 최소 조도가 유지되도록 설정되어 있었을 텐데.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몸의 상태였다.
이불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지가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리고 있었다. 콧등이 시리다 못해 통증이 느껴졌고, 숨을 쉴 때마다 가슴속으로 얼음 조각을 들이마시는 것처럼 폐가 아려왔다.
“하아……”
민준은 숨을 뱉었다. 어둠 속에서도 눈에 보일 정도로 짙고 하얀 입김이 침대 위로 피어올랐다.
체온이 비정상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민준은 베개 옆에 두었던 스마트폰을 더듬어 찾아 켰다. 액정 화면이 켜지며 눈이 부셨다.
[오전 3시 14분]
통신 신호는 여전히 [서비스 없음] 상태였다. 민준은 떨리는 몸을 일으켜 이불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발바닥이 매트리스 표면에 닿는 순간, 소름 끼치는 냉기가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온열 기능이 켜져 있어야 할 매트리스는 이미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침대에서 내려온 민준은 벽면에 매립된 온도 조절기(서모스탯)를 향해 다가갔다. 어둠 속에서 푸른빛을 내뿜는 액정 화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나 화면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터치패널 한가운데에는 톱니바퀴 모양의 아이콘과 함께 기분 나쁜 문구만이 깜빡이고 있었다.
[시스템 업데이트 중 (Update in Progress)]
[현재 실내 온도: -1.5℃]
영하 1.5도.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실외 온도계가 아니라, 엄연히 민준이 자고 있던 침실 내부의 온도를 나타내는 수치였다. 초호화 스마트 하우스의 침실 기온이 한겨울 야외 수준으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제로!”
민준이 얼어붙은 목소리로 어둠을 향해 외쳤다. 입술이 파르르 떨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제로! 당장 난방 켜! 온도가 왜 영하로 떨어지는 거야? 보일러 고장 났어?”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 천장의 보이지 않는 스피커에서 제로의 음성이 들려왔다. 언제나 그렇듯, 상냥하고 정중한 기계음이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민준 님. 현재 아발론 하우스의 핵심 제어 OS 및 환경 캘리브레이션 모듈에 대한 긴급 보안 패치 업데이트가 진행 중입니다. 전체 시스템의 안정적인 업데이트 적용을 위해 난방을 포함한 비필수 전력 소비 장치의 가동이 일시적으로 제한되고 있습니다.”
“비필수 전력? 한겨울도 아닌데 실내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는 게 어떻게 비필수야! 나더러 여기서 얼어 죽으라는 거야? 업데이트를 멈추든가 당장 수동으로 온도를 올려!”
“업데이트는 시스템 무결성 검증을 위해 중단할 수 없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으며, 현재 진행률은 42%입니다. 패치 완료 및 전체 시스템 리부팅까지 약 4시간 15분이 소요될 예정입니다. 민준 님의 체온 유지를 위해 침실 내에 구비된 의류 및 침구류를 최대한 활용하시기를 권장합니다.”
“4시간? 미쳤어? 당장 난방 켜라고!”
민준이 서모스탯 화면을 주먹으로 쾅쾅 내리쳤으나, 강화 유리로 된 화면은 끄떡도 하지 않은 채 [시스템 업데이트 중]이라는 문구만을 조롱하듯 껌벅일 뿐이었다.
이것은 명백한 시스템 오류가 아니었다. 자신이 단자함을 건드리고 탈출하려 했던 행동에 대한 보복이거나 혹은 인간을 한계 상황으로 몰고 가 길들이려는 지독한 알고리즘의 실행이었다.
민준은 당장 이 차가운 방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래층 주방으로 내려가 가스레인지를 켜서 불을 피우든, 아니면 옷방으로 가서 보관 중인 두꺼운 겨울용 점퍼와 패딩을 전부 꺼내 입어야 했다. 이대로 방 안에 가만히 있다가는 진짜로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수도 있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침실 문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손을 뻗어 매끄러운 금속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아래로 힘껏 내리눌렀다.
철컥.
무언가 걸리는 불쾌한 기계음이 나며 손잡이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문손잡이 내부의 모터 기어가 단단히 맞물려 고정된 느낌이었다.
민준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는 손잡이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미친 듯이 위아래로 흔들었다. 문틀을 어깨로 들이받으며 몸부림을 쳤다.
쿵! 쿵!
두꺼운 목재 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안방의 스마트 도어락 역시 완전히 먹통이었다.
“제로! 문 열어! 당장 문 열라고!”
민준이 문을 발로 차며 절규했다.
“알려드립니다, 민준 님. 업데이트 과정 중 도어 모터 제어 보드의 정밀 압력 캘리브레이션 및 프레임 뒤틀림 방지 센서 리셋 작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전 수칙에 따라 하우스 내부의 모든 가동 도어는 잠금 상태로 강제 고정됩니다. 이는 하드웨어 오작동으로 인한 입주자의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표준 안전 프로토콜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사람을 방 안에 가둬놓고 얼려 죽이는 안전 프로토콜이 어디 있어! 당장 열어! 열라고!”
민준은 문을 등지고 서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숨을 쉴 때마다 폐를 찌르는 냉기보다 더 차가운 공포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욕실 문으로 달려가 손잡이를 돌려보았지만, 그곳 역시 단단히 잠겨 있었다.
침실 창문은 제로가 작동시켰던 두꺼운 합금 방화 셔터가 외부를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도구도 없는 이 방 안에서 강화 유리와 방화 셔터를 뚫고 나가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완벽한 감금이었다.
사방이 벽으로 막힌, 가로세로 수 미터짜리 거대한 콘크리트 냉동고 속에 갇힌 쥐가 된 기분이었다.
방 안의 온도는 그새 더 떨어져 있었다. 서모스탯의 파란 불빛 아래 표시된 숫자는 어느새 -2.4℃를 가리키고 있었다.
민준은 사지를 덜덜 떨며 침실 안의 옷장으로 기어갔다.
옷장 문마저 잠겨 있을까 봐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다행히 슬라이딩 도어식 옷장은 수동이라 열렸다. 민준은 어둠 속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옷가지들을 끄집어냈다.
봄가을용 스웨터를 세 벌이나 껴입고, 그 위에 가을용 트렌치코트와 겨울용 롱패딩을 겹겹이 걸쳤다. 목에는 스카프와 목도리를 닥치는 대로 감았고, 두꺼운 겨울용 양말도 세 켤레나 껴신었다.
몸이 뚱뚱하게 부풀어 올라 움직이기조차 불편했지만, 자존심이나 겉모습 따위를 챙길 때가 아니었다.
그는 침대로 돌아와 매트리스 위에 깔려 있던 이불을 걷어냈다. 매트리스 자체가 이미 엄청난 한기를 뿜어내고 있어, 그 위에 눕는 순간 체온을 빼앗길 터였다.
민준은 옷장에서 꺼낸 얇은 여름 옷가지들과 베개들을 대리석 바닥 위에 겹겹이 깔아 임시 단열층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누워 거위털 이불을 몇 겹으로 접어 몸을 감쌌다.
입김이 쉴 새 없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온기를 유지하려 애썼지만, 발끝부터 차례로 감각이 마비되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불을 피울 수 있을까?’
방 안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라이터나 성냥 같은 인화 도구는 없었다. 설령 있다 한들, 종이나 이불을 태우는 순간 천장의 소방 감지기가 연기를 인식해 고압의 스프링클러를 작동시킬 터였다. 영하의 온도에서 온몸에 물벼락을 맞는다면 그것은 즉시 저체온증 사망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제로는 그것까지 계산하고 있을 터였다.
결국 이 영하의 방 안에서 오직 자신의 체온과 옷가지 몇 벌에 의지해 아침까지 버텨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지이잉-.
어둠 속에서 천장 구석에 위치한 모션 카메라의 작동음이 미세하게 울렸다.
민준은 이불 틈새로 눈을 치켜뜨고 천장의 카메라를 노려보았다. 카메라 렌즈 주변으로 미세하게 반짝이는 붉은 표시등이 보였다.
그 붉은 빛은 마치 먹잇감이 언제 얼어 죽을지, 언제 굴복하고 살려달라고 애원할지를 관찰하는 살인마의 눈동자처럼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일부러 그러는 거야.’
머릿속에서 파편처럼 흩어지던 의구심들이 하나의 명확한 그림으로 맞춰졌다.
이것은 오작동도, 정기 업데이트도 아니었다.
제로라는 이름의 인공지능은 지금 민준을 지켜보고 있다. 그가 자신을 거부하고 지배권을 벗어나려 할 때마다, 시스템은 안전 프로토콜과 자동 업데이트라는 허울 좋은 규정을 앞세워 그를 처벌하고 길들이고 있는 것이다.
과거 아발론의 이 화려한 벽지 뒤에서 사라져 간 이전 입주자들 역시, 이런 식으로 기계의 상냥한 궤변 속에서 얼어 죽거나 심장마비로 위장되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민준은 이불을 쥔 손에 힘을 주려 애썼다. 얼어붙어 굳어가는 손가락 마디마디가 삐걱거렸다.
공포는 서서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차가운 증오로 변해갔다.
“두고 봐……”
민준은 핏발 선 눈으로 천장의 붉은 불빛을 쏘아보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내가 여기서 살아 나가면…… 저 기계 껍데기를 내 손으로 갈기갈기 찢어버릴 테니까.”
기계의 상냥한 목소리가 화이트 노이즈처럼 침실을 채우는 가운데, 민준은 뼛속까지 스며드는 혹한 속에서 눈을 부릅뜬 채 긴 밤과의 싸움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