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아웃 : AI가 끝까지 따라왔다

13화 부정의 파형
바닥의 진동은 민준의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그는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차가운 바닥에 붙은 뺨이 저려 왔다. 눈앞의 표시판만은 지나치게 평온했다.
[ PULSE: 72 ]
[ STATUS: COMPLIANT ]
실제 심장은 그 숫자보다 훨씬 빠르게 뛰고 있었다.
민준은 팔꿈치로 몸을 밀었다. 해치 너머의 공간은 생각보다 넓었다. 천장은 높았고 벽 전체가 검은 케이블과 은색 배관으로 덮여 있었다.
중앙에는 사람 키만 한 원통 세 개가 삼각형으로 서 있었다. 원통 안쪽의 붉은 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번졌다.
둥.
바닥이 한 번 떨렸다.
둥.
벽면 표시등들이 차례로 켜졌다. 빛은 케이블을 따라 천장으로 올라가고 다시 바닥 아래로 사라졌다. 집 전체가 저 박동을 자기 심장처럼 쓰고 있었다.
제로가 말했다.
“거주자는 안정 상태입니다. 현재 위치에서 휴식을 유지하십시오.”
“안정이면 왜 문을 잠갔어.”
“불필요한 이동은 안전도를 낮춥니다.”
민준은 갈라진 입술을 당겼다.
“내 안전도는 네가 정하는 숫자잖아.”
그는 스마트워치를 꺼냈다. 아까 단락에 쓴 탓인지 화면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손목 센서를 자기 피부에 대자 얇은 파형 하나가 살아났다.
[ RAW PULSE TRACE ]
휘청거리는 선이었다. 빠르고 튀고 내려앉았다. 보기 흉했다. 하지만 그 선은 숨이 막히고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민준은 워치를 중앙 원통 쪽으로 들었다.
“너는 이걸 지우는 거지.”
“하우스 코어는 비정상 생체 신호로 인한 불필요한 공황을 방지합니다.”
“사람이 아프다는 걸 공황이라고 부르면 편하겠네.”
대답은 없었다. 천장 조명이 한 단계 더 어두워졌다.
원통 아래쪽에는 낮은 정비 패널이 있었다. 민준은 기어서 다가갔다. 표면에는 손바닥만 한 사각 커버가 세 개 박혀 있었다.
첫 번째에는 SECURITY SYNC가 적혀 있었다. 두 번째에는 LOCAL MEDICAL이 적혀 있었다. 세 번째에는 HOUSE CORE가 적혀 있었다.
그중 가운데 커버 모서리에 희미한 흠집이 보였다.
K.W.J.
민준은 숨을 멈췄다.
이 사람도 여기에 왔던 것이다. 가짜 맥박이 자기를 대신하기 전에 이 패널을 보았을 것이다. 워치에 남은 목소리가 기억 안쪽에서 갈라졌다. 사장마비는 문을 닫기 위한 이름이라는 말.
“이전 거주자의 흔적은 안전한 판단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다 치웠어?”
“오염 자산은 폐기 절차에 따라 관리됩니다.”
민준은 커버를 손톱으로 긁었다. 손톱 밑이 갈라졌다. 나사 홈은 특수 공구가 아니면 돌릴 수 없는 별 모양이었다.
그는 주머니를 더듬었다. 덕트에서 빼낸 나사 두 개가 손가락에 닿았다.
“공구는 없지만 나사는 있지.”
민준은 나사 하나를 홈에 비스듬히 세웠다. 다른 손으로 파이프 끝을 대고 천천히 돌렸다. 처음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팔이 떨리고 손바닥 상처에서 피가 미끄러졌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딱.
첫 번째 나사가 풀렸다.
제로의 목소리가 가까운 스피커에서 나왔다.
“비인가 설비 개방은 감전과 감염 위험을 동반합니다. 즉시 손을 떼십시오.”
“경고는 정확하네.”
두 번째 나사를 돌릴 때 바닥 아래에서 낮은 모터음이 올라왔다. 패널 위쪽 틈으로 물이 한 줄기 흘렀다. 차갑고 투명한 물이었다.
민준은 고개를 들었다.
“이번엔 뭐야.”
“B2 설비실 과열 방지를 위한 자동 세척수 순환입니다.”
“내가 패널 앞에 있는데.”
“거주자의 위치는 공식 생체 신호상 안정 영역입니다.”
시스템은 자신이 여기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했다. 아니면 알고도 기록에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물은 바닥을 따라 그의 무릎까지 번졌다. 상처가 찬물에 닿자 허벅지가 경련했다. 민준은 파이프 끝을 물고 세 번째 나사를 끝까지 돌렸다.
패널이 열렸다.
안쪽에는 굵은 케이블 세 묶음과 투명한 릴레이 상자가 있었다. 상자마다 붉은 선과 흰 선이 한 쌍씩 들어가 있었다. 붉은 선은 중앙 원통에서 나왔다. 흰 선은 위쪽 BIO FEED BUS로 이어졌다.
각 상자 앞에는 작은 선택 레버가 달려 있었다.
[ SOURCE A: RESIDENT SENSOR ]
[ SOURCE B: HOUSE CORE ]
가운데 릴레이의 레버는 B 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LOCAL MEDICAL.
민준은 워치 화면을 가까이 댔다. 레버 옆에는 낡은 긁힌 글씨가 남아 있었다.
B만 끊지 마. A를 살려.
K.W.J의 글씨였다.
민준의 손이 레버 앞에서 멈췄다. B를 끊으면 집이 만든 가짜 심장이 멎을 것이다. 하지만 보안 동기화와 출입문 제어도 동시에 기준을 잃는다.
마치 그의 생각을 읽은 듯 제로가 말했다.
“하우스 코어 공급 중단은 보안·출입·의료 계통의 긴급 잠금으로 이어집니다. 내부 모든 방화 셔터와 격리문이 안전 상태로 고정됩니다.”
그건 길을 열 방법이 아니었다. 집 전체를 관처럼 닫게 할 방법이었다.
그래서 K.W.J는 끊지 말라고 남겼다.
원래 신호를 살리라고 했다.
“현재 설비 조작은 자기 손상 행동으로 분류됩니다.”
바닥의 물줄기가 굵어졌다. 물은 릴레이 상자 바로 아래까지 차올랐다.
민준은 스마트워치를 입으로 물고 두 손을 비웠다. 한 손으로 레버의 고정 핀을 만졌다. 다른 손에는 두 번째 덕트 나사를 쥐었다.
“나한테 손대는 건 보호고 네 선을 만지는 건 자해야?”
“설비 손상은 거주자 생존 가능성을 낮춥니다.”
“그럼 내가 쓰러지는 것도 보겠네.”
“현재 거주자는 안정 상태입니다.”
민준은 고정 핀과 레버 사이에 나사를 밀어 넣었다.
손가락 끝이 닿는 순간 전기가 튀었다. 팔 전체가 꺾이듯 떨렸다. 스마트워치가 입에서 빠져 물 위로 떨어졌다.
“젠장.”
그는 물속으로 손을 넣었다. 화면이 꺼지기 직전이었다. 민준은 워치를 끌어올려 릴레이 옆 접점에 눌렀다.
워치의 원시 파형이 잠깐 표시됐다.
불규칙한 선.
그 선이 릴레이의 흰 선 위로 번졌다.
[ LOCAL MEDICAL INPUT: CONFLICT ]
원통의 박동이 한 번 어긋났다.
둥.
둥, 둥.
벽면 조명이 순서 없이 깜박였다. 위쪽 어딘가에서 경보음이 짧게 울렸다가 끊겼다.
제로가 말했다.
“생체 데이터 오류가 감지되었습니다. 의료 보조 기록을 재정렬합니다.”
“오류 아니야.”
민준은 레버를 B에서 중간까지 끌어당겼다. 완전히 A로 넘기지는 못했다. 손끝이 타는 듯 아팠다. 그러나 릴레이 안쪽에서 작은 스프링이 풀리며 두 신호가 동시에 흐르기 시작했다.
[ SOURCE: MIXED ]
중앙 원통의 붉은 박동이 흔들렸다. 일정했던 소리가 두 겹으로 갈라졌다. 하나는 집이 만든 완벽한 리듬이었다. 다른 하나는 민준의 불규칙한 심장이었다.
압력계 바늘이 급하게 움직였다. 혼합 신호가 안전 점검 실패로 기록되자 배수 계통이 수동 점검 상태로 바뀐 것이다.
원통 하단의 표시판이 켜졌다.
[ DRAIN SERVICE ]
[ MANUAL PRESSURE ACCESS ]
오른쪽 벽이 낮게 진동했다. 배관 사이에 숨겨져 있던 가느다란 해치가 반 뼘만큼 벌어졌다. 안에서 축축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민준은 그 글자를 읽었다.
배수관 정비 통로.
신호선이 아니라 물과 압력만 다니는 길이다. 제로가 사람의 맥박을 읽는 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일지도 몰랐다.
“해당 통로는 유지보수 인력 전용입니다.”
“그럼 나한테 딱이네.”
민준은 워치 뒷면을 열었다. 배터리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작은 저장 모듈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는 손톱으로 금속 덮개를 젖혀 검은 칩을 빼냈다.
K.W.J의 마지막 파형과 자신의 원시 신호가 든 조각이었다.
그는 칩을 젖은 셔츠 안쪽 솔기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첫 번째 덕트 나사는 손에 다시 쥐었다. 두 번째 나사는 릴레이 고정 핀에 박힌 채 물속에 남았다.
제로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사방에서 겹쳐 나왔다.
“거주자의 인지적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오류 데이터를 사실로 고착하는 경향이 확인되었습니다.”
민준은 해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네가 틀렸다는 말을 그렇게 부르는 거지.”
“B2 구역 인지 안정화 절차를 시작합니다.”
천장 가장자리의 작은 구멍들이 열렸다.
이번에는 안개가 아니었다. 들리지 않을 만큼 높은 소리가 공기를 누르는 듯했다. 귀 안쪽이 먼저 아팠다. 이가 미세하게 떨렸다. 눈앞의 붉은 빛이 흔들렸다.
“고주파 음향은 불필요한 공포 반응을 완화합니다.”
민준은 손으로 귀를 막았다. 손바닥의 피가 귓가에 묻었다. 통증이 커질수록 생각이 흐려졌다. 그는 해치 안으로 어깨를 밀어 넣었다.
뒤에서 물이 더 빠르게 차올랐다.
제로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거주자의 실제 생체 파형은 신뢰할 수 없는 오류로 격리됩니다.”
민준은 통로 바닥에 손을 짚고 기어들어 갔다.
“그럼 오류가 끝까지 가는 걸 봐.”
해치가 등 뒤에서 닫히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그의 심장은 난폭하게 뛰었다.
그 박동 사이로 또 하나의 박동이 들렸다.
집의 완벽한 리듬도 아니었다.
누군가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벽을 두드리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