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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7화

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

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

7화: 덫을 부수는 방법

“유나린 씨! 진짜 괴물이네, 괴물이야!”

이민우 감독의 호쾌한 외침이 야외 세트장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울려 퍼졌다.

모니터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연출팀과 스태프들의 얼굴에도 긴장이 풀린 미소가 감돌았다. 신인의 연기가 현장을 장악하자, 지루하던 촬영장의 템포가 단번에 활기를 찾은 덕분이었다.

“선배님이 앞에서 판을 너무 잘 깔아주셔서 그렇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나린이 뺨이 붉어진 채 연신 고개를 숙였다.

배진만은 가죽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아까의 살벌하게 불타던 아귀 같던 아비의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대견한 후배를 바라보는 선배의 따뜻한 눈빛만이 남아 있었다.

“아니야. 내 호흡을 끊고 치고 들어온 건 온전히 유나린 씨의 직감이었어. 조명 라인 정확하게 타서 눈물 고인 걸 카메라에 담는 테크닉도 그렇고. 대체 그 나이에 어디서 그런 걸 배웠어?”

“그건…….”

나린이 본능적으로 세트장 뒤편, 발전차 그림자 밑에 팔짱을 끼고 서 있는 강시우를 바라보았다.

시우는 말없이 부드러운 미소로 나린의 시선에 답했다. 그 부드러운 미소 속에는 대견함과 함께, 팽팽하게 날이 선 경계심이 동시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시우는 나린이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촬영용 지미집 카메라 뒤편의 장비 텐트였다. 그곳에서 조용히 빠져나오는 두 개의 그림자가 있었다.

연출팀 막내 조감독 김태호.
그리고 카메라 서브 스태프 박민혁.

두 사람은 주위를 극도로 의식하며, 장비 텐트 뒤쪽의 으슥한 목조 창고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시우의 눈꼬리가 가늘어졌다.

‘쥐새끼들이 드디어 움직이는군.’

시우는 걸음을 옮기며 마음속으로 시스템을 호출했다.

‘대상 김태호, 박민혁 스캔.’

시우의 망막 위에 두 장의 반투명한 상태창이 어지럽게 명멸하더니 붉은색 경고등과 함께 정보를 띄웠다.

[이름: 김태호 (25세)]
[현재 상태: 신성 박철우 실장의 사주를 받은 사보타주 진행 중 (심박수 110, 극심한 긴장 및 죄책감)]
[진행 예정 행동: 2층 목조 계단 추격 씬의 발판 나사를 느슨하게 풀어 낙상 사고 유도]

[이름: 박민혁 (26세)]
[현재 상태: 신성 박철우 실장의 사주를 받은 사보타주 진행 중 (심박수 125, 발각에 대한 공포)]
[진행 예정 행동: 방금 촬영된 1씬의 원본 CFexpress 카드를 훼손 및 유실 처리 시도]

시우의 입 안에서 싸늘한 실소가 뱉어졌다.

그저 촬영을 방해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한쪽은 배우의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는 물리적 사고를 기획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나린의 천재성이 담긴 첫 명장면의 데이터를 통째로 날리려 하고 있었다.

박철우의 악랄함은 시우의 예상마저 뛰어넘고 있었다. 감사팀의 칼날이 목에 들어오니 이판사판으로 날뛰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허술하게 판을 짜서는 나를 잡을 수 없지.’

시우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두 사람이 사라진 창고를 향해 소리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창고 내부는 먼지 냄새가 퀴퀴하게 풍기고 있었다.

“야, 박민혁. 진짜 괜찮겠어? 데이터 날아간 걸 우리 실수로 덮을 수 있냐고.”

김태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카메라 서브 박민혁은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정밀 드라이버와 이미 손상된 CFexpress 메모리 카드를 꺼내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바보냐? 데이터 백업 과정에서 오류가 나서 카드가 깨졌다고 보고하면 끝이야. 락(Lock) 걸린 모듈을 강제로 쇼트 시켜서 인식 불가로 만들면 장비실에서도 하드웨어 불량으로 알 거라고. 그보다 너는 계단 세팅 확실하게 했어?”

“어. 2층 계단 세 번째 판자 고정 지지대를 느슨하게 풀어놨어. 유나린이 도망치는 씬 찍을 때 체중이 실리면 그대로 부러질 거야. 높이가 낮아서 뼈가 부러지는 선에서 끝나겠지만…… 씨발, 진짜 우리 이러다 경찰서 가는 거 아니냐?”

“정신 차려! 박 실장님이 약속한 신성 정직원 자리랑 1천만 원이야. 평생 이 바닥 흙바닥에서 구를래, 대기업 밧줄 잡고 올라갈래?”

두 사람의 대화가 창고의 얇은 널빤지 틈새로 고스란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등 뒤에서,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창고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신성 정직원 자리가 그렇게 탐이 나던가?”

“헉!”

두 사람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창고 문가에는 어느새 강시우가 등을 기댄 채 서 있었다. 시우의 손에는 화면이 켜진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고, 녹음기 애플리케이션의 붉은 그래프가 요동치고 있었다.

“강, 강 대표……!”

박민혁의 안색이 순식간에 시퍼렇게 질렸다. 김태호는 쥐고 있던 드라이버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재물손괴, 업무방해. 거기에 연기자를 다치게 하려 했으니 상해죄의 공동정범 혹은 예비음모. 형량이 꽤 쏠쏠할 텐데. 알고 있나, 두 사람?”

시우가 천천히 다가오며 스마트폰을 흔들었다.

“이 녹음 파일 하나면 너희는 이 바닥에서 매장당하는 건 물론이고, 바로 빨간 줄 긋고 감방으로 직행이야. 신성 엔터 박철우 실장이 너희 인생을 감옥 안에서 꺼내줄 수 있을 것 같아?”

“그, 그게 무슨…… 저희는 그냥 대화한 것뿐입니다!”

박민혁이 이를 악물고 발뺌하려 했다. 하지만 시우의 눈동자는 얼음보다 더 차가웠다.

“발뺌하기엔 네 손에 쥐어진 쇼트용 장비랑 그 깨진 메모리 카드가 너무 확실한 증거인데. 그리고 김태호 조감독.”

시우가 김태호를 쏘아보았다.

“내가 지금 감독님한테 가서 계단 3번 발판 검사해 보라고 하면, 거기에 묻은 네 지문과 헐거워진 나사는 어떻게 설명할 거지? 현장 스태프용 카메라나 장비 텐트 입구 블랙박스에도 네 동선이 고스란히 찍혔을 텐데.”

김태호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이미 시우의 논리적이고 빈틈없는 압박에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죄, 죄송합니다! 강 대표님! 저는 박 실장이 시켜서…… 저는 그냥 끈이 없어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태호야! 너 미쳤어?!”

박민혁이 비명을 질렀지만, 시우는 박민혁의 멱살을 한 손으로 부드럽고도 강력하게 움켜쥐었다.

8년간 바닥에서 굴러먹은 매니저의 악력은 가냘픈 기술 스태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박민혁은 목이 막힌 채 읍읍 소리를 냈다.

“민혁아.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박철우는 지금 기조실 감사팀에 걸려서 당장 다음 주면 목이 날아갈 껍데기야. 그런 놈의 약속을 믿고 네 인생을 배팅해? 박철우가 너희를 지켜줄 힘이 있을 것 같냐고.”

시우의 차가운 음성이 박민혁의 귓가에 꽂혔다.

“너희가 살 수 있는 기회는 딱 한 번이야.”

“어,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김태호가 눈물을 흘리며 시우의 바짓가랑이를 잡을 듯 애원했다.

시우는 박민혁의 멱살을 거칠게 놓아주며, 바지 주머니에서 자신의 폰을 꺼내 박민혁의 손에 쥐여주었다.

“박철우한테 전화해.”

“예?”

“전화해서 계획이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보고해. 유나린은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응급실로 실려 갔고, 첫 테이크의 메모리 카드는 완벽하게 날아가서 현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아주 기쁜 목소리로 전해드려라.”

시우의 눈동자 속에서 기이한 안광이 번뜩였다.

“만약 조금이라도 목소리가 떨리거나 헛수작을 부리면, 이 녹음 파일은 즉시 경찰서와 신성 기획조정실 감사팀장 이메일로 다이렉트로 날아갈 거다. 알겠어?”


신성 엔터테인먼트 실장실.

박철우는 손톱을 깨물며 집무실을 서성보고 있었다. 이사회 감사팀에서 날아온 감사 자료 요구서는 그의 숨통을 시시각각 조여오고 있었다.

자신이 살아날 유일한 방법은 강시우와 유나린을 촬영 현장에서 처참하게 매장해, 정태원 상무와의 계약을 파탄 내고 강시우의 신뢰도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것뿐이었다.

진동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박철우는 번개처럼 책상 위의 스마트폰을 낚아챘다. 액정에는 연출팀 막내 김태호의 이름이 떠 있었다.

“어! 어떻게 됐어!”

박철우가 다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김태호의 약간 상기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아! 아주 좋아!”

박철우의 얼굴에 잔인한 희열이 피어올랐다.

“메모리 카드는? 첫 촬영 데이터는 어떻게 됐어!”

“하하하! 잘했다! 아주 잘했어!”

박철우는 미친 사람처럼 폭소를 터뜨렸다. 가슴을 짓누르던 체증이 단번에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강시우 그 버러지 새끼 얼굴이 어떻게 됐는지 봤어? 아주 사색이 됐겠지? 꼴좋구나, 쥐새끼 같은 놈!”

“걱정 마라! 내가 다음 주 감사만 끝나면 즉시 처리해 줄 테니까! 일단 현장에서 의심받지 않게 자연스럽게 행동…….”

갑작스럽게 들려온, 전화기 너머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

박철우의 웃음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그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갔다.

“너…… 강시우……? 네놈이 왜……?”

수화기 너머로 시우의 나직한 실소가 흘러나왔다. 박철우는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감각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강시우…… 네놈이 감히 나를 낚아……!”

“강시우! 이 개새끼야!!!”

박철우가 비명을 지르며 수화기에 대고 고함을 질렀으나, 시우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흔들림이 없었다.

뚝.

전화가 무자비하게 끊겼다.

박철우는 땀으로 범벅이 된 스마트폰을 쥔 채, 덜덜 떨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분노와 두려움이 뒤섞인 비명이 그의 집무실을 가득 채웠다.


세트장은 평화로웠다.

김태호가 헐겁게 풀었던 목조 계단의 지지대는 시우의 감시하에 이미 원래보다 더 튼튼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박민혁 역시 얌전히 카메라 메모리 카드를 백업 장비에 안전하게 이식해 놓은 상태였다.

“자! 정의의 온도 1씬 2테이크, 소희 탈출 씬 갑니다! 레디…… 액션!”

감독의 사인과 함께 나린이 2층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녀는 허름한 난간을 잡고, 계단을 타고 쏜살같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뒤편에서는 가죽 재킷을 입은 배진만이 고함을 지르며 그녀의 뒤를 쫓았다.

나린의 눈빛은 공포와 살아남겠다는 생존 본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우는 모니터 옆에 서서 그녀를 주시했다. 황금빛 상태창이 빛났다.

[알림: 유나린이 '실전 카메라 적응력(D)' 효과를 백분 발휘하고 있습니다.]
[카메라 앵글 및 조명 동선 인지율 100%]
[캐릭터 몰입도: 97/100]

나린은 카메라 지미집의 렌즈 각도를 완벽하게 시선으로 받아쳐 내며, 넘어질 듯 위태로우면서도 극적인 앵글로 계단을 딛고 내려왔다.

헐거웠을 뻔한 세 번째 계단을 나린이 딛는 순간, 지지대는 튼튼하게 그녀의 체중을 받쳐주었다. 나린은 무사히 마당을 가로질러 카메라의 프레임 아웃 지점까지 질주했다.

“컷! 오케이! 야, 정말 대단하다!”

이민우 감독이 헤드폰을 벗으며 찬탄했다.

“유나린 씨, 오늘 첫 촬영인데 액션 동선까지 이렇게 완벽하게 소화하면 어떡해? 카메라 서브 스태프들도 아주 앵글 잘 받았어! 박민혁 씨, 오늘 아주 포커스 예술이었어!”

감독의 칭찬에 카메라 서브 박민혁은 이마의 식은땀을 닦으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저 멀리서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바라보는 강시우의 시선을 느끼고 몸을 작게 떨었다.

촬영이 완전히 종료되자, 현장 스태프들이 철수 준비를 시작했다.

나린은 담요를 어깨에 두른 채 시우에게 달려왔다. 그녀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대표님! 저 방금 계단 내려올 때 동선 완전히 맞춘 것 같아요! 카메라 렌즈가 제 얼굴을 따라오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잘했어요, 나린 씨. 첫날 촬영치고는 200점짜리 결과물이에요. 앞으로 더 큰 배우가 될 테니까, 이 기분을 잘 기억해 둬요.”

시우가 나린에게 따뜻한 온캔커피를 건넸다. 나린은 커피를 꼭 쥔 채,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시우의 코트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액정에 뜬 이름은 ‘정태원 상무(HN 콘텐츠)’였다.

시우는 나린에게 눈인사를 건넨 뒤, 조금 떨어진 조용한 숲길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

“예, 상무님. 강시우입니다.”

“예, 첫 촬영 아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유나린 배우의 씬은 감독님도 극찬하셨습니다.”

정태원의 목소리가 낮고 은밀해졌다.

시우는 주머니 속 스마트폰에 녹음된 박철우의 범죄 사주 음성 파일을 떠올렸다.

시우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예, 상무님. 안 그래도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터트리려고 준비해 둔 결정적인 카드가 있습니다. 지금 바로 이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시우는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이메일 앱을 열었다.

박철우가 스스로 파놓은 덫은, 이제 그 자신의 목을 끊어버릴 단두대가 되어 돌아가고 있었다.

시우는 망설임 없이 전송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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