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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6화

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

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

6화: 첫 촬영, 카메라의 무게

“강시우……! 이 쥐새끼 같은 놈이 감히 내 뒤통수를 쳐?!”

서울 강남구 청담동, 신성 엔터테인먼트 실장실.

유리가 깨지는 듯한 비명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박철우 실장의 얼굴은 터질 듯이 상기되다 못해 검푸르게 죽어가고 있었다. 그의 손에 쥔 스마트폰 액정에는 방금 통화를 마친 HN 콘텐츠 정태원 상무의 매몰찬 음성이 여전히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뚝, 끊겼던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떠올릴 때마다 박철우는 뒷목이 당겨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방금 전에는 신성 엔터의 기획조정실장으로부터 다음 주 중 이사회 감사팀에 출석하라는 긴급 호출 메일까지 날아온 상태였다. 이태준의 초코 엔터 이적 비하인드를 덮는 조건으로 획득했던 '도심의 별' 판권을 이면 계약으로 굴리다가 제대로 덜미가 잡힌 것이다.

“실, 실장님…… 진정하십시오.”

비서이자 로드 매니저인 송민호가 사시나무 떨듯 떨며 집무실 구석에서 눈치만 살폈다.

“정태원 상무가 어떻게 알았지? 초코 엔터 이사회 기밀 안건을 정태원 그 속물새끼가 어떻게 그렇게 상세하게 알고 나를 추궁한 거냐고!”

박철우가 멱살을 잡을 기세로 다가오자, 송민호는 이마를 바닥에 찧을 듯 허리를 굽혔다.

“그, 그게…… 알아본 바에 따르면, 정태원 상무가 계약 보류를 지시했던 대본 리딩 날, 루미너스 기획의 강시우 대표가 직접 상무실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거기서 상무에게 초코 엔터의 기밀 양수 승인 번호와 날짜까지 다이렉트로 읊었다고…….”

“강시우…….”

박철우의 잇새에서 새어 나온 목소리는 지옥의 독기 그 자체였다.

“그 횡령범 새끼가 어떻게 그 정보까지 쥐고 있었지? 아니, 애초에 그 기밀을 알아낼 네트워크가 그 새끼에게 있을 리가 없는데…….”

머릿속이 복잡하게 꼬여갔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명확했다. 자신이 파놓은 구덩이에 정태원을 밀어 넣고 강시우를 파묻으려 했던 계획이, 도리어 강시우의 손에 의해 자신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는 것.

박철우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책상을 거칠게 내리쳤다.

쾅!

“유나린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고 해서 무사히 데뷔할 수 있을 것 같나? 강시우, 네놈이 기어코 내 밥줄을 끊어놓겠다면…… 나도 곱게 물러서진 않지.”

박철우는 비열한 실소를 흘리며 송민호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드라마 '정의의 온도' 첫 촬영이 당장 다음 주 월요일이지? 첫 촬영 현장이 어디라고?”

“경기도 파주 인근의 야외 세트장입니다. 소희의 집으로 나오는 허름한 주택가 부근입니다.”

“파주라…….”

박철우의 눈꼬리가 가늘게 찢어졌다.

“거기 상대역으로 붙는 아비 역할이 누구라고 했지?”

“25년 차 조연 베테랑인 배진만 선배님입니다. 아시다시피 성격이 불같고 신인 배우들의 미숙함을 극도로 혐오해서, 현장에서 신인 기 죽이기로 악명이 자자한 분입니다.”

“배진만. 훌륭한 사냥개가 대기하고 있었군. 민호 너, 그 현장에 조명팀이나 연출팀 스태프 중에 우리 쪽 사람 심어둔 거 있지?”

“예, 연출팀 막내 조감독 한 명과 카메라 서브 스태프 한 명이 저희 장학생입니다.”

박철우가 싸늘하게 웃으며 지시했다.

“현장에서 유나린이 어떤 연기를 하든 철저하게 흔들어놔. 카메라 앵글이든 조명이든 꼬이게 만들어서 배진만의 불같은 성질머리에 불을 지피란 말이다. 카메라 앞에서 신인이 완전히 발가벗겨져 멘탈이 바스러지는 게 어떤 기분인지 똑똑히 알게 해주지.”


월요일 아침.

끝없이 뻗은 자유로를 달리는 낡은 쏘나타 차량 안.

유나린은 조수석에 앉아 한쪽 모서리가 닳은 대본을 손이 하얘질 정도로 꼭 쥐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은 바짝 마르고, 쉴 새 없이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좁은 차내에 맴돌았다.

강시우는 운전대를 잡은 채 힐끗 조수석을 살폈다. 그의 눈앞에 황금빛 상태창이 나타났다.

[이름: 유나린 (22세)]
[상태: 극도의 긴장감 (심박수 급증, 과호흡 징후)]
[스탯: 긴장도 85/100, 캐릭터 몰입도 50/100]

긴장도가 위험 수치까지 치솟아 있었다. 대본 리딩 때 최현우를 상대로 93%의 싱크로율을 뿜어내며 현장을 지배했던 나린이었지만, 진짜 카메라와 수십 명의 스태프가 대기하는 실전 촬영장은 차원이 다른 중력을 가진 곳이었다.

시우는 차를 갓길에 잠시 세우고, 미리 준비해 온 따뜻한 캐모마일 차를 컵에 따라 나린에게 건넸다.

“나린 씨. 이거 마시고 숨 크게 들이쉬어 봐요.”

“아…… 대표님, 감사합니다.”

나린이 떨리는 손으로 컵을 받아들고 한 모금 들이켰다. 온기가 몸속으로 퍼지자 굳어 있던 어깨가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대표님, 저…… 솔직히 너무 무서워요. 리딩 때는 최 선배님 눈빛을 보고 그냥 본능적으로 뱉었는데, 오늘은 진짜 카메라가 저를 찍고, 제가 실수하면 그 수많은 사람들이 저 때문에 대기해야 하잖아요. 제가 민폐를 끼칠까 봐 너무 두려워요…….”

시우는 부드럽게 웃으며 나린의 눈을 응시했다.

“나린 씨, 카메라가 돌아갈 때 빨간 불빛이 켜지는 건 나린 씨의 실수를 감시하려는 게 아니야. 나린 씨가 가진 가장 빛나는 순간을 담아내려고 켜지는 거지. 스태프들은 적이 아니야. 나린 씨의 연기를 돕기 위해 그 무거운 장비를 들고 서 있는 도우미들이지. 그러니까 카메라를 의식하지 마. 오직 상대방의 눈동자와 이 공간의 공기에만 집중해요. 알았죠?”

“카메라가…… 제 가장 빛나는 순간을 담기 위해서…….”

나린이 시우의 말을 되새기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녀의 상태창에서 긴장도 수치가 85에서 62로 뚝 떨어졌다.

“네, 대표님. 밥값은 꼭 할게요. 절대 도망치지 않아요.”

다시 쏘나타는 먼지를 일으키며 파주 세트장으로 출발했다.


파주 벌판 한가운데 위치한 허름한 2층 단독주택.

드라마 '정의의 온도'에서 아동 학대 피해자인 한소희의 집으로 설정된 야외 세트장이었다.

현장은 이미 번잡함 그 자체였다. 발전차의 웅장한 기계음이 땅을 울렸고, 수십 미터 높이로 솟구친 조명 크레인이 차가운 겨울 볕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검은 패딩을 입은 수십 명의 스태프들이 모래주머니와 두꺼운 케이블들을 나르며 바쁘게 움직였다.

“어, 강 대표! 어서 와!”

모니터 앞에 앉아 대본을 검토하던 이민우 감독이 시우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오늘 첫 슛인데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그래도 나린 씨 얼굴 보니까 마음이 놓이네. 리딩 때 그 짜릿함, 오늘 카메라 앞에서도 한 번 보여달라고.”

감독의 격려에 나린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려던 찰나, 주택 안쪽에서 낡은 가죽 재킷을 걸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덥수룩한 수염에 살기등등한 눈빛을 지닌 50대의 남성. 25년간 연극계와 충무로를 누비며 강렬한 악역으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조연 배우, 배진만이었다.

시우는 그의 머리 위를 시스템으로 스캔했다.

[이름: 배진만 (52세)]
[재능: 연기 (A), 신체 제어 (B)]
[현재 상태: 신인 배우에 대한 깊은 불신, 완벽주의 성향 작동 중]
[성향: 독선적, 완벽주의, 신인에게 가혹함]

배진만은 시우와 나린을 힐끗 보더니, 차가운 콧방귀를 뀌며 다가왔다.

“이 친구가 한소희 역의 신인인가?”

“예, 선배님. 이번에 유나린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시우가 정중하게 악수를 청했으나 배진만은 손을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은 채 나린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리딩방에서 작가 마음에 들었다고 기세등등한 모양인데, 현장은 리딩방처럼 엉덩이 붙이고 입만 나불거리는 놀이터가 아니야. 카메라 앞에서 동선 하나 꼬여서 엄한 스태프들 고생하게 만들면, 내 입에서 바로 쌍욕 나갈 테니까 각오해.”

나린은 배진만의 뿜어져 나오는 살벌한 기세에 몸을 굳혔다.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선배님.”

“열심히는 필요 없고, 잘해. 민폐 끼치지 말고.”

배진만은 차갑게 쏘아붙인 뒤 촬영 안쪽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이민우 감독이 쓴웃음을 지으며 시우의 어깨를 뚝툭 쳤다.

“배 선배가 성격은 저래도 연기 하나는 확실하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진 마. 근데 진짜 오늘 씬이 아버지가 폭력을 휘두르는 거라 육체적으로 꽤나 격렬할 거야. 나린 씨 멘탈 꽉 잡아야 돼.”

시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매서운 눈동자는 배진만의 뒷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A급 연기 재능을 지닌 베테랑의 기압(氣壓)은 신인이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무겁고 살벌했다.


“자, 1씬 1테이크! 다들 세팅 끝났지? 슛 들어갑니다! 레디……!”

조감독의 메가폰 소리와 함께 주택 내부 세트장의 모든 불빛이 꺼지고, 오직 나린이 서 있는 방구석을 비추는 핀 조명만 타올랐다.

유나린은 바닥에 그어진 노란색 테이프(T-마크) 위에 맨발로 서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 비치는 거대한 카메라 렌즈가 마치 자신을 삼키려는 괴물의 눈동자처럼 보였다.

“액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술 냄새를 풍기는 배진만이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왔다. 그의 눈빛은 이미 야수의 그것이었다.

“이년이…… 아비가 들어왔는데 인사도 안 해? 돈은? 오늘 일당 받아온 거 어디 있어?!”

배진만이 들고 있던 초록색 소주병을 벽을 향해 내던졌다.

쨍그랑!

파편이 나린의 발밑으로 튀었다. 소품인 걸 알면서도 눈앞에서 터진 거대한 파열음과 배진만의 야수 같은 고성에 나린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굳어버렸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얼굴을 가리며 오른쪽으로 몸을 웅크렸다.

“컷! 컷!”

이민우 감독의 외침이 찬물을 끼얹었다.

“나린 씨! 몸을 그렇게 오른쪽으로 틀어버리면 주 카메라 앵글에 얼굴이 완전히 가려지잖아! 왼쪽 45도를 유지하면서 배 선배를 노려보는 자세여야지, 그렇게 웅크려버리면 그냥 프레임 아웃이야!”

“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나린이 연신 허리를 숙였다.

“자, 파편 정리하고 다시 갑니다! 테이크 2!”

소주병 파편이 치워지고 다시 슬레이트가 쳐졌다.

“액션!”

배진만이 붉어진 눈을 부라리며 다가와 나린의 얇은 어깨를 거칠게 낚아챘다.

“말 안 해? 이년이 아주 대가리가 컸다고 아비를 무시하네? 콱 그냥 묻어버릴까?!”

배진만의 거친 대사 소리와 그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벌한 연기 텐션이 나린을 짓눌렀다. 나린은 뒤로 물러나며 다음 카메라 앵글이 잡히는 백색 조명 라인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배진만의 폭력적인 연기 기운에 완전히 압도당한 그녀는 발걸음이 꼬였다. T-마크를 지나쳐 어두운 그늘 구석으로 밀려나 버렸다.

“컷! 아, 나린 씨! 동선(Mark) 놓쳤잖아요! 배 선배한테 밀려날 때 뒤로 세 걸음만 가야 조명 라인에 걸리는데, 지금 네 걸음 이상 가버려서 어둠에 묻혔어! 포커스도 나갔고!”

감독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주변 스태프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터져 나왔다.

“역시 리딩 때만 반짝했던 신인인가 보네.”
“카메라 돌아가니까 완전히 얼었잖아. 이래서 검증 안 된 신인을 쓰면 안 된다니까.”

현장 스태프 중 누군가가 노골적으로 들리게 속닥거렸다. 그 목소리에 나린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배진만은 움켜쥐었던 나린의 어깨를 탁 놓으며 차가운 한숨을 내쉬었다.

“야, 유나린. 너 나한테 진짜 쫄았냐? 연출이랑 연기도 구분 못 하고 그렇게 굳어있으면 촬영을 어떻게 해? 네가 굳어버리니까 나도 연기 리듬이 다 깨지잖아. 스태프들 이 추운데 너 하나 때문에 고생하는 거 안 보여?”

“죄송합니다…… 선배님, 정말 죄송합니다…….”

나린의 눈가에 자책감으로 가득 찬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시우는 뒤편에서 조용히 상황을 관찰하고 있었다. 아까 나린을 험담하던 연출팀 스태프의 행동이 묘하게 부자연스러웠다. 그는 모니터 뒤에서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시우는 조용히 그의 뒤로 다가와 눈을 가늘게 뜨고 스마트폰 화면을 훑었다.

[실장님, 유나린 첫 촬영 슛 들어갔는데 카메라 동선 못 맞춰서 벌써 NG 두 번 냈습니다. 배진만도 슬슬 꼭지 돌기 시작했네요. 계획대로 흘러갑니다.]

‘박철우…….’

시우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비틀렸다. 현장에 스태프를 심어 나린의 멘탈을 흔들고 배진만과의 불화를 유도하려는 수작이었다.

“자, 연출 조명 세팅 다시 하고! 나린 씨 멘탈 좀 추스르게 10분간 휴식!”

감독의 외침과 함께 세트장의 긴장된 공기가 일시적으로 누그러졌다.


시우는 구석에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치던 나린에게 다가가 생수병을 건넸다.

“나린 씨. 따라와요.”

시우는 나린을 데리고 세트장 뒤편, 발전차 뒤의 바람이 불지 않는 외딴 공간으로 향했다. 나린은 물병을 쥔 채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대표님…… 죄송해요. 저 때문에 촬영 다 지연되고…… 머리로는 카메라 위치도 알고 동선도 외웠는데, 배 선배님이 소리 지르고 제 어깨를 잡는 순간 온몸의 감각이 다 마비되는 것 같았어요…….”

시우는 나린의 앞에 무릎을 살짝 굽혀 눈높이를 맞췄다.

“나린 씨. 자책할 필요 전혀 없어. 첫 실전 촬영에서 카메라 붉은 불빛에 압도당하고, 기성 배우의 날것 같은 기세에 밀리는 건 아주 당연한 과정이니까. 그리고 지금 배 선배는 나린 씨의 연기를 돕는 게 아니라, 기선을 제압해서 자기 흐름으로 끌고 가려고 일부러 날것 그대로의 기운을 다 뿜어내고 있는 거야. 거기에 맞서서 힘으로 버티려고 하니까 부러지는 거지.”

시우는 마음속으로 시스템을 호출했다.

‘액티브 스킬, 배우 싱크로율 분석(C)을 발동한다.’

두 사람의 스펙트럼이 얽히며 푸른빛의 스캔 창이 시우의 시야를 뒤덮었다.

[알림: '배우 싱크로율 분석 (C)'을 발동합니다.]
[인물 매칭: 유나린 (한소희 역) <-> 배진만 (한철수 역)]
[상대 배우 '배진만'의 연기 패턴 분석 결과]

- 강점: 압도적인 성량과 신체적 압박을 통한 캐릭터의 지배력.
- 약점: 연기 동선 및 호흡 템포가 지나치게 정형화되어 있음. 대사를 던지기 직전 반드시 오른쪽 어깨를 뒤로 빼며 무게중심을 이동하는 습관 존재. 고성을 지른 직후 약 0.5초간 호흡을 들이마시며 연기 텐션이 비는 타이밍 존재.

[시스템 메시지: '배우 싱크로율 분석(C)'의 전용 버프 '싱크로 피드백'을 유나린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활성화하시겠습니까?]

‘활성화.’

시우의 명령과 함께 나린의 몸 주위로 옅은 황금빛 입자들이 스며들었다. 물론 이 빛은 오직 시우의 눈에만 보였다.

[알림: '싱크로 피드백' 버프가 대상 '유나린'에게 부여됩니다.]

- 효과: 상대 배우와의 연기 싱크로율 조율력 +15% 상승, 실시간 카메라 시선 처리 최적화 가이드 제공, 공포 및 위압감 저항 상태 이상 해소.

시우가 나린의 차가운 손을 꼭 쥐며 나직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린 씨. 이제부터 내 말 잘 들어요. 배 선배가 소리를 지르기 직전에 오른쪽 어깨를 뒤로 살짝 뺄 거야. 그게 신호야. 그 타이밍에 나린 씨는 뒤로 세 걸음 물러서면서, 배 선배의 분노에 맞서지 말고 그걸 온몸으로 다 받아들여요. 그 사람이 뿜어내는 공포와 압박감을 전부 나린 씨 내면의 독기로 흡수하는 거야.”

나린이 젖은 눈으로 시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배 선배가 대사를 끝마치고 다음 숨을 들이쉬는 순간, 딱 0.5초의 빈틈이 생겨. 그때 나린 씨의 그 서늘한 눈빛을 배 선배의 눈동자에 정면으로 꽂아 넣는 거예요. 카메라는 나린 씨의 왼쪽 45도 방향에서 지미집으로 내려다보고 있어.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10도만 비틀어. 그러면 조명빛이 나린 씨 눈동자의 물기를 받아내서, 세상에서 가장 차갑고 서늘한 한소희의 눈빛을 완성해 줄 테니까. 나 믿죠?”

나린은 시우의 깊고 단단한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가슴을 옥죄던 차가운 공포심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머릿속이 얼음물을 끼얹은 듯 맑아졌다. 세트장의 차가운 바람 소리, 발전차의 소음이 멀어지고, 머릿속에 카메라의 렌즈 위치와 배진만의 움직임 궤적이 마치 3D 시뮬레이션처럼 선명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나린이 눈물을 닦아내며 단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표님. 할 수 있어요.”


“자! 촬영 재개합니다! 다들 제자리로! 스탠바이, 슛 들어갑니다!”

다시 방 안 세트장.

배진만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린의 앞에 섰다. 배진만의 생각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이번에도 버벅대면 감독한테 주연 교체하라고 난리 쳐야겠군. 강시우 놈이 데려온 신인이라더니, 별것도 아니구만.’

슬레이트 소리가 울렸다.

탁!

“액션!”

배진만이 문을 차고 들어와 소주병을 던졌다.

쨍그랑!

유나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녀는 날아오는 소품의 파편 소리를 완벽한 한소희의 배경음으로 받아들였다.

배진만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다가와 나린의 어깨를 거칠게 낚아챘다. 그의 오른쪽 어깨가 미세하게 뒤로 빠졌다.

‘지금이다!’

나린은 배진만의 신체 신호를 읽는 동시에 유려하게 뒤로 물러섰다.

스르륵.

정확히 세 걸음. 그녀의 발끝이 노란 테이프 뒤쪽, 카메라 지미집의 렌즈와 정확히 45도 각도를 이루는 백색 라이트의 중심에 닿았다. 조명 감독이 모니터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을 정도의 완벽한 앵글이었다.

배진만이 이빨을 드러내며 고함을 질렀다.

“말 안 해?! 이년이 아주 머리가 컸다고 아비를 무시해?! 콱 그냥 죽여버릴까?!”

배진만의 거친 폭언이 끝나고, 그가 다음 대사를 위해 흡 숨을 들이쉬는 0.5초의 공백.

유나린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왼쪽 45도의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10도 비틀며, 배진만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아동 학대의 아픔과 공포를 뛰어넘은, 지독할 정도의 무감각함과 뼈아픈 독기가 서려 있었다. 핀 조명의 차가운 푸른빛이 나린의 눈동자에 맺힌 눈물 자국을 받아내며 은빛으로 서늘하게 빛났다.

“……죽이세요.”

나린의 목소리는 너무나 낮고 건조해서, 오히려 소름 끼치는 한기를 풍겼다.

“죽이라고요. 어차피 매일 밤 이렇게 찢겨서 살 바엔, 그냥 지금 아저씨 손에 죽는 게 나아. 대신…… 지옥에는 내가 아저씨 손 잡고 같이 갈게.”

그 순간, 배진만의 몸이 굳어버렸다.

연기가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22세의 가냘픈 신인 여배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S급의 연기적 오라와, 자신을 지옥으로 끌고 가겠다는 기괴한 살기가 배진만의 숨통을 턱 막히게 만들었다.

배진만은 다음 대사를 쳐야 한다는 본능마저 상실한 채, 나린의 서늘한 눈빛에 짓눌려 멍하니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세트장 내부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에 휩싸였다. 모니터를 보던 이민우 감독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

수초 간의 팽팽한 대치가 이어졌다. 감독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마이크를 잡았다.

“카, 컷! 오케이!!! 오케이!!! 대박이야!!!”

이민우 감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와! 나린 씨! 방금 그 카메라 앵글이랑 시선 처리 대체 뭐야? 조명 라인 정확히 타고 들어가서 눈동자 맺히는 연출은 진짜 소름 돋았어! 그리고 배 선배님과의 연기 텐션…… 이건 진짜 명장면이다!”

스태프들 사이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아까 나린을 험담하던 카메라 서브 스태프와 연출팀 막내는 넋이 나간 얼굴로 멍하니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었다.

배진만이 천천히 나린의 어깨에서 손을 떼며, 굳었던 얼굴을 풀었다. 그의 두 눈에는 경탄과 리스펙트가 가득 차 있었다.

“너…… 유나린 씨라고 했나?”

“예, 예! 선배님!”

나린이 싹싹하게 고개를 숙이며 평소의 맑은 목소리로 돌아왔다.

“너 방금…… 내 호흡 들이쉬는 타이밍 노리고 눈빛 꽂은 거지? 카메라 조명 라인 계산해서 세 걸음 뒤로 물러선 것도 그렇고…… 이거 절대로 신인의 솜씨가 아닌데. 괴물이 하나 들어왔군.”

배진만이 껄껄 웃으며 나린의 어깨를 툭툭 다독였다.

“미안하다, 아까 내가 기 죽이려고 일부러 좀 거칠게 굴었어. 아주 멋진 연기였어. 앞으로 남은 씬도 이 텐션으로 가보자고.”

“아닙니다! 선배님이 앞에서 엄청나게 몰입해 주셔서 저도 모르게 나온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나린의 겸손한 태도에 현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따뜻하게 바뀌었다.

시우는 멀찍이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품속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나린의 상태창이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알림: 유나린과 배진만의 연기 합치율이 95%로 폭증했습니다.]
[알림: 유나린이 '실전 카메라 적응력(D)'을 조기에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시우의 눈길이 아까 박철우에게 문자를 보내던 연출팀 막내에게 닿았다. 그 막내는 세트장 구석으로 가 초조하게 스마트폰을 쥔 채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예, 실장님…… 첫 씬 끝났습니다. 근데 유나린 이 기지배…… 장난이 아닙니다. 연기가 미쳤어요. 배진만 선배님마저 연기로 압도당했습니다. 네? 아, 아닙니다. 방해 공작이고 뭐고 틈을 안 줍니다…….”

전화기 너머로 박철우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새어 나오는지 막내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시우는 그 막내를 향해 서늘한 미소를 보냈다. 박철우의 발버둥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고, 자신 역시 이를 철저하게 짓밟아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첫 테이크의 성공과 함께, 루미너스의 도약이 비로소 진짜 현장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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