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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3화

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

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

3화: 새로운 둥지, 첫 번째 계약

마포구 성산동의 한 노후한 빌딩.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짜리 상가 건물의 4층 구석에 자리 잡은 공유 오피스는 보증금 없이 월 임대료 25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저렴함이 유일한 장점인 공간이었다.

창문조차 없는 가로세로 2미터 남짓한 개인용 유리 부스 내부. 공기는 텁텁했고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웅웅대며 귓가를 어지럽혔다. 좁은 조립식 책상 하나와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 하나가 이곳에 존재하는 집기의 전부였다.

강남 삼성을 주름잡던 대형 기획사, 신성 엔터테인먼트의 화려한 사옥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곳은 사옥 내에 최고급 피트니스 센터와 전용 녹음실, 전문 바리스타가 상주하는 라운지 카페가 갖춰져 있었다. 반면 이곳은 탕비실의 낡은 정수기와 누군가 삼각김밥을 데워 먹어 편의점 냄새가 밴 공용 전자레인지가 고작이었다.

강시우는 좁은 책상 위에 자신의 낡은 노트북을 올려두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후우…….”

노트북 화면에는 국세청 홈택스의 사업자 등록 신청 페이지가 띄워져 있었다. 마우스를 쥔 손가락 끝이 팽팽한 긴장감으로 굳어 있었다.

[상호명: 루미너스 기획]
[대표자: 강시우]
[업종: 매니지먼트 및 대중문화예술기획업]

화면의 마지막 확인 버튼을 누르자 공인인증서 인증 창이 떠올랐다. 망설임 없이 비밀번호를 타이핑하고 엔터를 누르는 손가락에 힘이 실렸다.

삑.

[사업자 등록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

이로써 강시우는 전직 대기업 로드 매니저에서 1인 기획사 ‘루미너스 기획’의 어엿한 대표가 되었다. 비록 직원도, 소속 배우도, 제대로 된 사무실조차 없는 이름뿐인 유령 회사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시우는 스마트폰을 열어 인터넷 뱅킹 앱을 실행했다. 화면에 뜬 계좌 잔액은 그의 눈앞에 닥친 현실을 뼈저리게 상기시켰다.

[잔액: 15,420,000원]

7년 동안 신성 엔터테인먼트에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으며 밤낮없이 굴러 모은 적금과 퇴직금을 몽땅 털어 넣은 전 재산이었다. 교통사고 합의금과 병원비로 나간 지출을 제하고 나니 남은 금액은 고작 1,500만 원 선.

이 바닥에서 배우 한 명을 제대로 활동시키려면 진행비, 차량 유지비, 스타일리스트 비용 등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 1,500만 원은 대형 기획사 톱스타의 한 달 활동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푼돈이었다.

“그래도 시작해야지.”

시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에게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절대적인 무기가 있었다. 사람들의 머리 위에 떠오르는 상태창과 시스템의 지원. 이것만 있다면 아무리 초라한 시작이라도 반드시 정점에 올라설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때, 책상 위에 올려둔 스마트폰이 진동을 울렸다.

징-, 징-.

액정 화면에 뜬 것은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지만, 시우는 단번에 그것이 누구의 연락인지 직감했다. 침을 꿀꺽 삼키며 통화 버튼을 밀어 올렸다.

“여보세요. 강시우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다소 잠겨 있었다. 편의점 밤샘 근무를 마치고 이제 막 눈을 붙였다가 깬 듯한 기색이었다.

“네, 나린 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몸은 좀 어떠신가요? 어제 일로 놀라진 않으셨고요?”

나린의 어조에는 여전히 깊은 의구심과 경계심이 짙게 배어 있었다. 50번이 넘는 오디션 탈락으로 다진 마음의 방어벽은 그리 쉽게 허물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시우는 차분하고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제 제안은 100% 진심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지금 바로 만나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주소를 보내드릴 테니, 이쪽으로 와주실 수 있나요?”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이내 결심한 듯한 나린의 대답이 들려왔다.


공유 오피스 건물 1층에 위치한 작은 프랜차이즈 카페.

에스프레소 머신의 거친 소음과 주변 손님들의 웅얼거림이 섞여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던 시우는 문에 달린 종소리와 함께 들어오는 한 여성을 발견했다.

푹 눌러쓴 검은색 야구모자 아래로 삐져나온 갈색 머리칼과 화장기 없는 수척한 얼굴. 눈 밑에 짙게 깔린 다크서클이 고단한 삶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시우의 눈에는 그녀의 초라한 행색보다 그 머리 위에 떠오르는 찬란한 황금빛 창이 먼저 보였다.

[이름: 유나린]
[나이: 22세]
[재능: 연기(S), 비주얼(A), 스타성(A+)]
[잠재력: 98/100]
[미래 흥행도: ★★★★★]

다시 봐도 심장이 거세게 요동치는 압도적인 스탯이었다. 신성 엔터의 간판급 스타들을 전부 모아놓아도 이토록 완벽한 밸런스를 지닌 인재는 없었다.

나린은 카페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시우를 발견하고 걸어왔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닙니다. 저도 방금 왔습니다. 일단 따뜻한 음료부터 시키죠. 피곤해 보이시는데 단 게 좋겠네요.”

시우는 나린에게 따뜻한 초콜릿 라떼를 주문해 준 뒤,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나린은 모자 챙을 살짝 올리며 시우를 똑바로 응시했다. 밤새 고민으로 가득 찬 눈동자였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라떼 잔을 쥔 나린의 얇은 손가락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제 집으로 돌아가서 ‘루미너스 기획’이라는 회사를 인터넷에 검색해 봤어요. 그런데 아무런 정보도 안 나오더라고요. 포털 사이트 등록은커녕 주소지조차 나오지 않던데…… 제가 사기를 당하고 있는 건가요?”

시우는 나린의 날카로운 질문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안 나오는 게 당연합니다. 오늘 아침에 사업자 등록을 마쳤거든요.”

“네? 오늘 아침이요?”

나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주소지는 이 건물 4층에 있는 공유 오피스입니다. 보증금 없이 월 25만 원짜리 1인 데스크죠. 현재 직원은 대표인 저 한 명뿐이고, 차량도 아직 리스하지 못했습니다. 사무실에 번듯한 소파 하나 없는 게 루미너스 기획의 현 주소입니다.”

“저기요, 강시우 씨.”

나린이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지금 저랑 장난하시는 거예요? 1인 기획사 수준도 아니고, 오늘 아침에 등록한 유령 회사에 제 인생을 맡기라고요? 그것도 전 재산 털어서 만든 것 같은 공유 오피스 책상 하나 보고?”

그녀의 목소리에는 실망감과 거부감이 가득했다. 기대했던 ‘구원자’가 아닌, 그저 허황된 꿈을 좇는 대책 없는 백수로 보였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시우는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유나린 씨. 대형 기획사인 신성 엔터나 초코 엔터가 왜 당신을 떨어뜨렸는지 아십니까?”

나린은 대답하지 않고 시우를 노려보았다.

“그들은 완성된 기성품을 원합니다. 혹은 자신들의 입맛대로 휘두를 수 있는 꼭두각시를 원하죠. 나린 씨의 연기는 너무 깊고, 독자적입니다. 단역 오디션에서조차 나린 씨가 메소드 연기로 신을 장악해 버리니, 주연 배우를 돋보이게 해야 하는 연출자들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웠던 겁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나린 씨라는 거대한 그릇을 담을 능력이 없었던 겁니다.”

나린의 숨결이 순간 멎었다. 50번의 오디션 동안 그 어떤 심사위원도 해 주지 않았던 말이었다. 그들은 항상 ‘눈빛이 너무 세다’, ‘역할에 비해 튄다’며 감점을 주었을 뿐이었다. 자신의 단점이라 여겼던 부분이 사실은 넘치는 재능 때문이었다는 분석은 나린의 가슴을 강하게 내리쳤다.

“대형 기획사에 들어가면 당신은 수많은 연습생 중 한 명으로 몇 년을 썩어야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루미너스는 다릅니다. 저는 오직 당신만을 위해 모든 포커스를 맞출 겁니다. 당신이 가장 빛날 수 있는 배역을 찾고, 그 배역을 따내기 위해 제 모든 네트워크와 역량을 동원할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잖아요.”

나린이 모자챙을 더 깊숙이 눌러쓰며 씁쓸하게 말했다.

“당장 제가 편의점 알바를 그만두면 방세는 어떻게 내고 밥은 어떻게 먹나요? 시골에 계신 부모님은 이제 그만 내려와서 공무원 시험이나 준비하라고 성화이신데…… 배우 준비를 하려면 프로필 촬영비에, 헤어, 메이크업 비용까지 돈 쓸 일 천지잖아요. 대표님 혼자서 그 비용을 다 감당하실 수 있나요? 1,500만 원 남짓한 자금으로요?”

나린은 어제 시우의 지갑에서 흘끗 보았던 잔액이나 그의 초라한 행색을 통해 대략적인 자금 규모를 눈치채고 있었다. 현실적이고 뼈아픈 지적이었다.

시우는 자켓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 온 서류 봉투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서류 봉투 안에서 나온 것은 아직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계약서였다.

“루미너스의 첫 번째 전속 계약서입니다. 조건을 확인해 보십시오.”

나린은 반신반의하며 계약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첫 페이지부터 눈을 떼지 못했다.

“수익 분배 비율이…… 7대 3?”

“예. 나린 씨가 7, 제가 3입니다. 업계에서는 신인 배우에게 절대 제시하지 않는 파격적인 비율입니다.”

“그리고…… 이건 뭐죠?”

나린의 손가락이 계약서 중간의 한 조항을 가리켰다.

[특약 사항: 갑(루미너스 기획)은 을(유나린)의 안정적인 예술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계약 체결일로부터 3개월 동안 매월 150만 원의 ‘활동 지원비’를 지급한다. 본 지원비는 추후 발생할 수익에서 차감하지 않는 순수 지원금으로 한다.]

나린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시우를 바라보았다.

“활동 지원비요? 그것도 차감 없는 돈을 매달 150만 원씩 주시겠다고요? 대표님 전 재산이 1,500만 원 수준이라면서요. 세 달이면 450만 원인데…… 미치셨어요?”

“미치지 않았습니다. 아주 이성적인 투자입니다.”

시우가 나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나린 씨가 3개월 이내에 반드시 업계의 주목을 받는 배역을 따낼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때가 되면 이 150만 원은 한낱 푼돈에 불과할 정도로 거대한 매출이 발생할 겁니다. 저는 제 전 재산을 걸고 나린 씨의 재능에 배팅하는 겁니다.”

“……배팅이라뇨.”

“예. 나린 씨는 오십 번을 떨어지면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었을지 모르지만, 저는 어제 나린 씨의 연기를 보고 확신했습니다. 당신은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진짜 천재 배우입니다. 그런 배우를 영입하기 위해서라면 내 전 재산을 걸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시우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나린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50번의 실패 속에서 자신마저 포기했던 꿈이었다. 부모님도, 친구들도 이제 그만 포기하고 평범하게 살라며 핀잔을 주던 그 길이었다.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나타나 자신의 전 재산을 걸고 당신은 천재라며 소리치고 있었다.

그것은 사기꾼의 감언이설이라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묵직하고, 눈물겨울 정도로 뜨거운 진심이었다.

나린은 테이블 위에 놓인 펜을 바라보았다.

이 계약서에 서명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획사를 정하는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인생 전체를 이 남자와 함께 던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 솟구쳤다. 이대로 편의점 알바로 청춘을 낭비하며 평생 후회 속에 살 것인가, 아니면 이 미친 매니저의 손을 잡고 마지막 쉰한 번째 도전을 해 볼 것인가.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린은 침을 삼키며 펜을 쥐었다. 그리고 서명 란에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써 내려갔다.

[유 나 린]

계약서에 도장이 찍히고 서명이 완료되는 순간, 시우의 시야에 폭죽이 터지듯 황금빛 알림창들이 연이어 떠올랐다.

띡!

[알림: 두 번째 연계 퀘스트 ‘유나린과의 전속 계약을 체결하라!’를 성공적으로 완료했습니다.]
[보상: 보유 스킬 ‘인재 감별’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D -> C)]
[보상: 새로운 액티브 스킬 ‘프로젝트 분석 (D)’이 해금되었습니다.]
[보상: 시스템 포인트 200 SP를 획득했습니다. (현재 보유 포인트: 300 SP)]

가슴속에서 쾌감이 몰아쳤다. 계약 성공의 기쁨과 함께 전신을 타고 흐르는 시스템의 힘이 느껴졌다.

나린은 계약서를 시우에게 건네며 모자를 벗었다. 비록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지만, 그녀의 눈빛만큼은 어제 편의점 골목에서 보았던 그 어떤 순간보다 생기 있게 빛나고 있었다.

“대표님.”

“예, 나린 씨.”

“저 정말 열심히 할 거예요. 그러니까…… 저 길거리에 나앉지 않게 꼭 성공시켜 주셔야 해요.”

나린이 씁쓸하면서도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시우는 계약서를 소중하게 서류 봉투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십시오. 내일 당장 활동 지원비 150만 원 입금해 드리고, 이번 주 내로 나린 씨가 서야 할 무대를 찾아오겠습니다.”

“네. 연락 기다릴게요.”

나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를 건넨 뒤 카페를 나섰다. 유리문 너머로 멀어지는 그녀의 실루엣을 바라보며, 시우는 곧장 새로 해금된 시스템의 알림창을 열었다.

[신규 스킬: 프로젝트 분석 (D)]

시우는 침을 삼키며 스킬을 활성화했다.

“프로젝트 분석.”

시우의 머릿속에 수많은 텍스트 데이터가 나열되기 시작했다. 현재 방영 준비 중인 수십 편의 드라마 타이틀과 감독, 작가의 이름이 흐릿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중 시우의 시선이 머문 곳은 한 편의 드라마 정보였다.

[작품명: 정의의 온도]
[장르: 법정 휴먼 드라마]
[극본: 한혜원 / 연출: 이민우]
[미래 흥행도: ★★★★☆ (4.5)]
[특이사항: 아동 학대 피해자 역의 조연 ‘한소희’ 배역 캐스팅 난항 중. 제작진은 대본의 감정선을 살릴 수 있는 미성숙하지만 깊은 눈빛의 신인 배우를 물색하고 있음.]

시우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정의의 온도.’

한혜원 작가라면 전작으로 시청률 20%를 돌파했던 스타 작가였고, 이민우 감독 역시 꼼꼼한 연출로 유명한 실력파였다. 흥행도 별점 4.5개는 대박이 보장된 작품이라는 뜻이었다.

게다가 캐스팅 난항 중인 ‘한소희’라는 배역.

설명란을 읽는 순간, 시우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사람의 얼굴만이 떠올랐다.

어제 편의점에서 눈물을 흘리며 순식간에 상황을 장악하던 유나린. 어조는 가련하고 슬펐지만, 그 밑바탕에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또박또박함과 날 선 맑은 음성이 있었다. 피해자이자 증인으로서 극 전체의 감정선을 견인해야 하는 소희 역에 이보다 더 부합하는 재능은 없었다.

“이거다.”

시우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유나린을 세상에 드러낼 완벽한 무대가 벌써 준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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