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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19화

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

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

19화: 썩은 동아줄

금요일 오전, 서울 역삼동 루미너스 기획 대표실. 창밖으로 가득 비쳐 드는 아침 햇살은 눈부시도록 아늑했지만, 대표실 내부의 기류는 폭발하기 직전의 화약고처럼 팽팽하게 죄어들어 있었다.

“정말…… 정말로 프라임 타임 상영관이 복구된 겁니까?”

독립영화 ‘낙화’의 연출자 민지훈 감독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태블릿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물었다. 그의 두 손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미세하게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태블릿 화면 속에는 태양 시네마 통합 전산망의 정식 배정표가 선명하게 띄워져 있었다. 기존에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던 새벽 7시와 심야 11시 40분의 ‘퐁당퐁당’ 교차 상영 시간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전국 주요 100개 지점의 오후 6시부터 10시 사이, 즉 관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골든타임에 ‘낙화’의 이름이 당당하게 박혀 있었다.

“예. 보시다시피 정식 공문으로 배정 승인이 떨어졌습니다. 그것도 태양 시네마 배급망 전국 지점의 프라임 타임관 200개 이상 고정 배정입니다.”

강시우 대표가 차분한 어조로 머그잔을 내려놓으며 답했다.

그 옆에 나란히 앉아 있던 최지환과 신우진 역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벼랑 끝에 몰려 대기업의 횡포 속에 빛도 보지 못하고 고사하기 직전이었던 영화가, 단 하루 만에 기적처럼 부활한 것이었다.

시우는 긴장과 안도가 격렬하게 교차하는 두 배우의 머리 위로 시스템 상태창을 조용히 호출했다.

[최지환: 상태 - 전율과 기대감 (과거 신성 시절의 무대공포증 트라우마를 완전히 떨쳐내고, 대중의 실시간 평가를 앞두고 배우로서의 열망이 용솟음침)]
[신우진: 상태 - 극도로 고조된 몰입 (의인 배우라는 대중적 찬사와 신뢰를 기반으로, 스크린 위에 펼쳐질 자신의 연기를 증명하겠다는 전의를 다짐)]

두 배우의 상태창 하단에 자리 잡은 잠재력과 스타성 수치가 이전보다 한층 더 붉고 선명한 빛을 띠며 심장박동처럼 빠르게 고동치고 있었다. 시우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민 감독의 굳어 있던 어깨를 가볍게 짚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끝났습니다. 관객들이 스크린 위에 흐르는 지환 씨와 우진 씨의 땀방울을 온전히 감상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뿐입니다. 대기업의 얄팍한 유통 방해 공작 따위가 우리를 막아 세우지 못한다는 걸 세상에 보여줄 차례죠.”

그때, 대표실 문이 조용히 열리며 오기태 정보실장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 들어왔다. 기태의 매서운 안광에는 깊은 신뢰와 함께 숨길 수 없는 묘한 흥분감이 서려 있었다.

“대표님, 신성 엔터의 차형준 상무 측 최신 동향을 확인했습니다.”

기태가 다가와 목소리를 낮추며 신속하게 보고했다.

“차 상무는 아직 태양 시네마가 루미너스-픽스온 동맹에 포섭되어 상영관을 전면 복구해준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태양 시네마의 송민우 대표가 대외적으로는 극장 배정 전산 알고리즘의 일시적인 로직 오류라며 적당히 연기하며 차 상무를 속이고 있으니까요. 현재 신성 1본부는 자신들이 루미너스의 목줄을 완전히 죄었다고 확신하며, 하반기 200억 텐트폴 대작 ‘용의 제국’의 가짜 예매율을 앞세워 언론 플레이에만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가짜 예매율이라. 차 상무답게 요란하군요.”

시우가 나지막하게 실소를 터뜨렸다.

“네. 주연 배우 백현우의 팬덤을 대거 동원한 조직적인 선구매와, 신성 계열사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살포한 강제 단체 관람권 물량으로 겉 포장지만 요란하게 치장해 둔 상태입니다. 현재 예매율 1위라는 타이틀로 온갖 언론 매체를 도배하고 있더군요.”

“썩은 고기를 황금 상자에 담아 기만하는 꼴이군. 차 상무가 그 상자를 열어젖히는 순간, 어떤 악취가 사방으로 풍기게 될지 아주 기대가 됩니다. 오 실장님. 오늘 오후부터 시작될 극장가 실시간 평점 모니터링과 온라인 커뮤니티 반응 분석을 밀착해서 준비해 주십시오. 폭탄이 터지는 건 한순간일 테니까요.”

“예, 대표님. 만반의 준비를 갖추겠습니다.”


오후 2시, 마침내 ‘낙화’와 신성의 200억 대작 ‘용의 제국’이 전국 극장에서 동시에 첫 스크린을 올렸다.

그리고 뚜껑이 열린 지 불과 두 시간 만에, 대한민국 영화계와 온라인 커뮤니티는 그야말로 대격변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시우는 대표실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영화 평점란과 영화 커뮤니티를 주시했다. 그의 예상은 단 한 치도 틀리지 않았다. 아니, 시스템이 예고했던 실패 확률 94%의 재앙은 실제 대중들의 반응 속에서 훨씬 더 참혹하게 구현되고 있었다.

개봉 첫 회차가 끝나자마자 ‘용의 제국’의 평점란은 관객들의 거센 분노와 혹평으로 피바다를 이루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9점대 후반으로 출발했던 평점은 대중들의 진짜 평가가 누적되자마자 4점대, 급기야 3점대까지 곤두박질쳤다. 실시간 예매 취소 사태가 속출하며 예매율 그래프가 수직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반면, 같은 시각 상영관을 나선 ‘낙화’ 관객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뜨거운 찬사 일색이었다.

자발적으로 생성된 입소문은 메마른 풀밭에 옮겨붙은 산불처럼 무서운 기세로 타올랐다. 픽스온의 800만 가입자 네트워크와 연계된 메인 배너 프로모션이 시너지를 발휘하며, 젊은 관객층이 태양 시네마로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낙화’의 실시간 예매율은 독립영화로서는 전무후무하게 전체 박스오피스 2위까지 치솟았고, 황금 시간대로 배정된 200개의 상영관은 주말을 앞두고 전석 매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시우의 망막 너머로 찬란한 황금빛 시스템 알림창이 연이어 화려하게 피어올랐다.

[실시간 프로젝트 분석: 독립영화 ‘낙화’]

[실시간 프로젝트 분석: 신성 엔터 ‘용의 제국’]

시우는 가죽 소파 깊숙이 몸을 묻으며 찻잔을 들어 올렸다.

차형준이 루미너스를 올가매기 위해 쳐두었던 그물망은 이미 완전히 찢겨 나갔다. 찢겨 나간 그물망의 파편은 고스란히 차형준 자신의 목을 옥죄는 썩은 동아줄로 변해가고 있었다.


월요일 오전, 서울 청담동 신성 엔터테인먼트 본사 1본부장실.

콰당!

정갈하게 닦인 월목 책상 위로 최신형 태블릿 PC가 팽개쳐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유리의 미세한 균열 사이로 영화진흥위원회 통합 전산망의 주말 박스오피스 최종 결과 수치들이 붉은 피처럼 선명하게 번득였다.

[주말 박스오피스 최종 결산]

개봉 첫날 대대적인 물량 공세와 스크린 독점으로 반짝 1위를 차지했던 ‘용의 제국’은, 토요일 오전부터 실시간 관객 평점이 폭락하면서 텅 빈 상영관만 쓸쓸히 돌려야 했다. 반면 태양 시네마의 골든타임을 독점 장악한 ‘낙화’는 좌석이 없어서 발길을 돌려야 할 정도로 대성황을 이루었다.

결국 적자를 견디다 못한 태양 시네마를 비롯한 주요 멀티플렉스 극장사들은 월요일 아침을 기해 ‘용의 제국’의 상영관을 80% 이상 칼질하고, 그 자리에 대기 수요가 폭발하는 ‘낙화’를 대체 편성하겠다는 공식 공문을 보내왔다.

차형준 상무는 무테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던져두고 관자놀이를 강하게 문질렀다. 그의 핏기 가신 이마 위에 사나운 핏대가 가시처럼 돋아나 있었다.

“……송민우 대표가 감히 나를 속이고 강시우와 손을 잡았단 말이지.”

낮게 낮추어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에는 서늘하고 끈질긴 살기가 서려 있었다. 곁에 서서 눈치를 살피던 1본부 팀장들은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고 고개를 처박았다.

200억 대작의 역사적인 흥행 폭망. 그리고 그 텐트폴을 미끼로 가동했던 루미너스 유통 차단 포위망의 완벽한 붕괴. 이번 참패로 신성 엔터의 주가는 개장하자마자 8% 이상 급락했고, 회장실로부터 당장 경위서와 대책안을 들고 올라오라는 서슬 퍼런 호출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때, 차형준의 개인 스마트폰이 책상 위에서 윙윙대며 무겁게 진동했다. 화면에 뜬 것은 며칠 전 루미너스의 정보를 캐내는 과정에서 확보해 두었던 강시우 대표의 번호였다.

차형준은 거칠게 요동치던 호흡을 억누르며 안경을 고쳐 썼다. 그리고 지극히 서늘하고 정돈된 억양으로 전화를 받아 귀에 가져다 대었다.

“강시우 대표인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강시우의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잔잔했고 여유가 넘쳤다. 그 어조에 담긴 은근한 조소가 차형준의 뼈저린 자존심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차형준은 입꼬리를 차갑게 뒤틀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꽤 기발한 짓을 벌였더군. 송민우 대표를 구워삶고 픽스온의 자금력까지 동원해 내 그물망을 찢다니. 만년 꼴찌 로드 매니저라는 껍데기 아래에 꽤 쓸 만한 장사꾼의 대가리가 들어 있었던 모양이야.”

“후후…… 고작 영화 한 편 역주행시켰다고 이 판의 승자가 되었다고 착각하지 마라. 이번 일은 태양 시네마 놈들의 탐욕을 과소평가한 내 사소한 실수에 불과하다. 다음 라운드에서는 이런 가벼운 극장 배급 장난질이 아닐 거다. 대기업 자본이 무엇인지, 루미너스의 지분 구조와 재무 제표를 통째로 뒤흔들어 네 얄팍한 발판을 무너뜨려 주지.”

차형준의 어조에는 비즈니스 논리로 포장된 지독하고 끈질긴 보복 의사가 서려 있었다. 그러나 강시우는 오히려 얕은 비웃음을 나직하게 흘려보낼 뿐이었다.

탁.

경고를 끝까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전화는 일방적으로 가차 없이 끊어졌다.

“강시우……!”

차형준은 스마트폰을 쥔 뼈마디가 하얗게 드러날 정도로 움켜쥐며, 빈 허공을 붉게 충혈된 눈으로 매섭게 쏘아보았다. 일개 해고당했던 로드 매니저 출신에게 당한 첫 번째 패배의 굴욕이 그의 폐부를 깊숙이 찔러왔다.


같은 시각, 역삼동 루미너스 기획 대표실.

전화를 끊고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시우의 눈앞으로 눈부신 황금빛 시스템 알림창이 대대적으로 떠올랐다.

[신성 엔터테인먼트의 1차 유통 봉쇄망 격파 완료!]
[독립영화 '낙화' 공식 100만 관객 돌파 (누적 104만 명 기록)]

[소속 배우 스탯 대폭 성장!]
[최지환: 연기 등급 S 달성!]

[신우진: 스타성 등급 B+ 상승!]

[스타메이커 시스템 레벨 업!]

시우는 눈앞의 찬란한 상태창과 머릿속을 울리는 시스템의 정산 수치들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깊은 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S급 연기력을 완성하며 완전한 주연 배우로 우뚝 선 최지환, 그리고 거친 마스크를 장점으로 승화시키며 충무로의 라이징 스타로 발돋움한 신우진. 그리고 루미너스의 곳간을 든든하게 채워줄 12억 원이 넘는 막대한 정산 현금까지.

이 모든 것은 차형준 상무가 쳐두었던 덫을 역이용하여 탈취한 가장 달콤하고 값진 전리품들이었다.

“강 대표님! 지금 투자배급사 협회랑 픽스온 본사 부사장 라인에서 축하 화환이랑 후속 미팅 요청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지환 씨랑 우진 씨도 소식 듣고 대기실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실무 매니저가 문을 벌컥 열며 터질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고, 닫힌 문틈 너머 복도에서부터 민지훈 감독과 스태프들의 환호성과 울음 섞인 웃음소리가 시끌벅적하게 메아리치고 있었다.

시우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정장 옷깃을 단정하게 정돈하며 밝게 미소를 지었다.

“다들 고생 많았으니 오늘은 마음껏 축제를 즐깁시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더 큰 판을 짜보죠.”

루미너스의 본격적인 세력 확장은 이제 막 서막을 열었을 뿐이었다. 강시우의 서늘한 눈동자 속에서, 더 거대한 연예계의 지배자로 거듭나기 위한 찬란한 안광이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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