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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시한부 명예교수가 되었다5화

아카데미의 시한부 명예교수가 되었다

아카데미의 시한부 명예교수가 되었다

5화: 작은 불씨의 용도

검술부 게시판의 공지는 밤새 떼이지 않았다.

[F-Class 카이엔의 비정규 검로 현상 재검증. 정식 훈련생 참관 허가.]

짧은 문장 아래에는 구경꾼이 남긴 발자국이 복도 바닥을 어지럽혔다. 누군가는 공지를 읽고 비웃었고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했다. F-Class 학생 하나가 측정석에 잡히지 않는 검로를 만들었다는 말은 아카데미에서 너무 이상한 소문이었다.

카이엔은 그 소문을 듣지 않는 척했다.

F-Class 강의실 창가에 선 그는 목검 손잡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붕대 아래 손바닥이 가만히 있어도 욱신거렸다. 어제 찢어진 상처는 아직 손잡이의 거친 감촉을 기억하는 듯했다.

책상 위에는 루나가 그린 표가 놓여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옆에는 성공과 실패 대신 빈칸이 열 개 그어져 있었다.

"이건 뭡니까?"

카이엔이 물었다.

루나는 공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반복 기록표야. 검을 휘두른 횟수하고 손이 굳은 횟수하고 관찰식이 반응한 횟수를 따로 적을 거야."

"실패는요?"

"그것도 적지. 그런데 실패라고 먼저 쓰면 네가 또 무리할 것 같아서."

카이엔이 대답하지 못했다.

그 옆에서 엘리나는 물통과 깨끗한 붕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제보다 작은 얼음 잎을 손바닥 위에 피웠다. 손톱만 한 잎 하나가 조용히 돌다가 물방울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보조 훈련장으로 가자. 큰 훈련장은 아침부터 사람들이 많아."

"사람이 없을 리가 있나."

강단에 엎드려 있던 데인이 중얼거렸다.

그는 눈도 뜨지 않은 채 손을 내밀었다. 루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기록표를 그 손에 올려놓았다. 데인은 종이를 한 번 훑고 다시 책상에 내려놓았다.

"열 번은 목표가 아니야."

카이엔의 등이 굳었다.

"상한선이지. 하나 하고 손이 굳으면 하나로 끝내. 중단한 것도 적고."

"중단한 걸 왜 적습니까?"

데인이 한쪽 눈만 떴다.

"그걸 못 적는 놈이 제일 먼저 망가지니까."

카이엔은 목검을 조금 더 세게 쥐었다. 그러자 붕대 안쪽이 뜨겁게 당겼다. 그는 천천히 손가락을 폈다.

"알겠습니다."

데인은 다시 눈을 감았다.

"알겠다는 말은 쉬워. 손이 먼저 알아들으면 좋겠는데."

문밖 복도에서 낮은 웃음이 들렸다. 문틈으로 보이는 그림자만 셋이었다. 정식 훈련생들이었다. 어제 훈련장 난간에서 카이엔을 보던 얼굴도 섞여 있었다.

헤르만이 복도 끝에서 다가오다 그들을 보고 멈췄다. 품에 든 공책이 평소보다 더 두툼해 보였다.

"아침부터 방문객이 많군요."

"방문객 아니야. 소음이야."

데인이 일어나며 말했다.

그는 문을 열고 훈련생들을 한번 훑었다. 창백한 얼굴과 느슨한 로브 때문에 위협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복도에 선 학생들은 말없이 길을 비켰다.

"구경은 무료다."

데인이 말했다.

"방해는 비싸고."

누군가 코웃음을 쳤다.

"누가 방해를 합니까. 목검 휘두르는 걸 구경하러 왔을 뿐입니다."

"그럼 조용히 구경해. 목검은 귀가 없어서 떠드는 쪽만 손해거든."

데인은 더 말하지 않고 보조 훈련장 쪽으로 걸었다. 카이엔은 그의 뒤를 따르면서도 목검을 어깨에 걸지 않았다. 어깨에 걸면 마치 싸우러 가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보조 훈련장은 본관 뒤편의 낮은 석조 건물 안에 있었다. 창문은 두 개뿐이고 바닥에는 오래된 모래가 얇게 깔려 있었다. 정식 검술부가 쓰기에는 좁고 낡았다. 그래서 데인에게는 조용히 누워 있기 좋은 곳처럼 보였다.

그는 벽에 기대앉자마자 말했다.

"빨리 끝내."

"열 번을 다 하지 않아도 됩니까?"

카이엔이 묻자 데인은 얼굴을 찌푸렸다.

"방금 말한 걸 벌써 잊었어?"

루나는 훈련장 중앙에 종이 조각 세 장을 놓았다. 어젯밤처럼 공중에 띄우지 않았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종이의 움직임이 과장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대신 가장자리를 가볍게 세워 바닥 위에 붙였다.

그녀는 손끝에 불씨 하나를 만들었다.

불씨는 검로를 비추지 않았다. 종이 한 장 귀퉁이에 그린 기호 하나만 희미하게 밝혀 주었다.

카이엔이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그게 관찰식이야?"

루나는 잠깐 손을 멈췄다.

"응."

"어제보다 더 작아 보이는데."

"작아."

대답은 빨랐지만 루나의 귀끝이 붉어졌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이전 같았으면 종이 움직임과 공기 밀도와 잔류 마력의 색을 한꺼번에 적어 넣었을 것이다. 훨씬 그럴듯한 식이 됐을 테고 아마 첫 줄에서 꺼졌을 것이다.

데인이 벽에 기댄 채 말했다.

"작은 게 안 꺼지면 그걸로 됐지."

"기록할 게 너무 적습니다."

"적은 게 아니라 하나만 보는 거야."

루나는 불씨를 내려다보았다.

하나만 본다.

그 말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전부를 보겠다고 욕심내다가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자신에게 필요한 순서일지도 몰랐다.

엘리나는 훈련장 바닥을 천천히 살폈다. 모래 위에는 전날 남은 발자국과 창문 틈으로 들어온 먼지가 섞여 있었다. 그녀는 손끝에 얼음 잎 하나를 만들었다.

차가운 잎이 바닥 가까이에 내려앉자 먼지가 조금 가라앉았다.

두 번째 잎이 그 옆에 놓였다.

엘리나는 세 번째 잎을 만들려다 숨을 멈췄다. 더 넓게 가라앉힐 수 있었다. 얼음 벽을 세우면 창문 바람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카이엔의 검로가 아니라 자신의 마력이 먼저 남을 것이다.

그녀는 손을 내렸다.

"이 정도면 돼."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카이엔이 훈련장 중앙으로 들어섰다. 목검 끝이 바닥 위를 천천히 훑었다. 난간 대신 열린 문가에 정식 훈련생 몇 명이 기대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보이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는 한 번 숨을 들이켰다.

첫 번째 휘두름.

목검이 공기를 갈랐다. 너무 빨랐다. 검이 지나간 뒤를 비울 틈도 없이 손목이 다음 동작을 재촉했다. 종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루나가 표에 짧게 적었다.

"첫 번째. 속도 과다."

카이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변명은 하지 않았다.

두 번째에는 검끝을 늦추려 했다. 이번에는 반대로 팔꿈치가 굳었다. 목검이 중간에서 멈칫했고 모래만 흩어졌다.

"두 번째. 팔꿈치 경직."

문가에서 킥 웃는 소리가 새었다.

카이엔의 턱이 굳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세 번째 자세를 잡지 않았다. 데인이 보는 앞이라서가 아니라 붕대 안쪽이 당겼기 때문이었다. 손이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쉬어."

엘리나가 물통을 내밀었다.

"아직 두 번입니다."

"두 번 했으니까 쉬라는 거야."

카이엔은 물통을 받았다. 차가운 물이 목을 지나가자 손바닥의 통증이 더 또렷해졌다.

세 번째 휘두름에서 그는 마력을 목검에 얇게 둘렀다.

검끝에 푸른빛이 붙는 순간 카이엔의 눈이 흔들렸다.

익숙했다. 남들이 알아볼 수 있는 방식이었다. 측정석도 이 빛에는 반응할 것이다. 한 번만 더 밀어 넣으면 문가의 학생들 얼굴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몰랐다.

카이엔은 목검을 멈췄다.

푸른빛이 검끝에서 꺼졌다.

"세 번째. 중단."

루나의 펜끝이 종이를 스쳤다.

카이엔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실패라고 쓰이지 않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중단. 그 단어는 비겁하게 물러난 흔적이 아니라 손을 놓은 순간까지 남겨 주었다.

데인이 낮게 말했다.

"그게 오늘 처음 제대로 한 거야."

카이엔이 고개를 들었다.

"검을 안 휘둘렀는데요."

"붙이려는 걸 봤잖아. 봤으면 됐어."

문가의 훈련생들은 이번에는 웃지 못했다. 카이엔은 목검을 든 채 한참 서 있다가 천천히 자세를 풀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조용했다.

네 번째에는 검끝이 흔들리지 않았다. 대신 카이엔이 허공의 빈자리를 너무 오래 의식했다. 목검이 지나간 자리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다섯 번째에는 종이 한 장이 살짝 떨렸다. 그러나 카이엔의 발이 모래를 밟으며 흐름을 먼저 깨뜨렸다. 루나는 종이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발이 만든 바람이 더 커."

카이엔은 숨을 내쉬었다. 어깨가 무거웠다. 겨우 다섯 번인데 열 번을 채우겠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우스웠다.

그는 목검을 바닥에 세웠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때 창문이 덜컹 열렸다.

찬 바람이 훈련장 안으로 밀려들었다. 바닥에 세워 둔 종이 조각들이 한꺼번에 흩어졌다. 엘리나의 얼음 잎 하나가 밀려나며 모래 위에서 부서졌다.

문가의 훈련생 중 하나가 창문 쪽에서 손을 거두었다. 손가락 끝에 남은 옅은 바람 마력이 곧 사라졌다.

"낡은 창문이군."

그가 태연하게 말했다.

"이런 데서 검증을 한다니."

카이엔의 시선이 그 손끝으로 향했다.

그는 여섯 번째 칸을 보았다. 아직 비어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지금 당장 검을 휘둘러 종이를 다시 움직이라는 말이 들렸다. 방해받았다는 핑계도 있었다. 그러니 한 번 더 해도 된다고.

데인은 창문도 훈련생도 보지 않았다.

"바람 불면 돌아가."

카이엔이 이를 악물었다.

"저쪽이 일부러 한 겁니다."

"그래서? 네 검은 관객 없으면 못 움직여?"

그 말이 가슴을 찔렀다.

카이엔은 반박하려다가 멈췄다. 어제도 그랬다. 측정석과 구경꾼에게 보여 주려고 검을 붙들었다. 오늘도 창문을 연 학생에게 보여 주려고 다시 검을 들려 했다.

그는 목검을 내려다봤다.

"아니요."

루나는 흩어진 종이를 쫓아가지 않았다. 바닥에 붙은 종이 한 장을 집어 들었다. 모래가 묻은 귀퉁이의 기호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공중에 띄우지 않아도 돼."

그녀가 말했다.

"이 한 장만 보면 돼."

"바람이 남아 있어."

엘리나가 창문을 보며 말했다.

"막아 줄까?"

루나는 고개를 저었다.

"막으면 또 다른 흔적이 생겨. 엘리나가 먼지만 가라앉혀 줘."

엘리나는 잠시 망설였다. 바람을 막지 않는 것은 불안했다. 하지만 루나가 원하는 건 완벽한 훈련장이 아니었다. 어떤 흔적이 무엇에서 생겼는지 구분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녀는 얼음 잎 하나만 새로 만들었다.

얇은 잎이 종이 옆 모래 위에 내려앉았다. 창문 쪽 바람은 계속 불었다. 하지만 종이 아래의 먼지는 더 이상 멋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루나는 불씨를 종이 기호 가까이 가져갔다. 기호는 바람의 방향을 따라 길게 늘어났다가 멈췄다.

"준비됐어."

카이엔은 여섯 번째 칸 앞에 섰다.

손바닥은 아팠다. 어깨도 무거웠다. 문가의 훈련생들은 여전히 보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눈앞의 빈 공간만 보았다.

검에 마력을 붙이지 않는다.

검이 지나간 뒤를 붙잡지도 않는다.

그저 지나가게 둔다.

카이엔이 숨을 내쉬었다.

목검이 조용히 허공을 갈랐다.

후욱.

검끝에는 빛이 없었다.

한 박자 뒤 종이 가장자리가 떨렸다. 창문 바람과는 다른 방향이었다. 종이 옆 모래가 가느다란 선을 따라 갈라졌고 허공에는 손가락 한 마디 길이의 푸른 잔상이 잠깐 남았다.

아주 짧았다.

측정석이라면 또 침묵했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루나의 종이 위 기호는 사라지지 않았다. 불씨가 한 번 깜빡이자 기호 옆으로 두 개의 가는 선이 남았다. 하나는 창문에서 들어온 바람의 방향이었다. 다른 하나는 카이엔의 목검이 지나간 방향과 정확히 겹쳤다.

루나의 눈이 커졌다.

"기록됐어."

그녀는 종이를 양손으로 들었다.

"바람은 이쪽으로 밀었어. 그런데 이 선은 반대야. 검이 지나간 뒤에만 남았어."

엘리나가 숨을 죽였다.

"카이엔. 봤어."

카이엔은 대답하지 않았다. 목검을 든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여섯 번째 뒤에는 일곱 번째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는 손잡이에서 손가락을 풀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데인은 그 말에 눈을 떴다.

"왜. 네 표에는 네 칸 더 남았는데."

카이엔이 붕대를 감은 손을 들어 보였다.

"손이 굳었습니다. 그리고 방금 건 다시 붙잡으려 하면 망칠 것 같습니다."

잠깐 데인의 표정이 멈췄다.

그는 카이엔의 손이 아니라 비어 있는 기록표를 보았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남은 네 칸을 채우느라 손목이 떨릴 때까지 펜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학생이 그 지겨운 방식을 닮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안심됐다.

"그럼 끝내."

카이엔은 고개를 숙였다.

"예."

문가의 훈련생 하나가 창문 쪽으로 뒷걸음질 쳤다. 헤르만이 그 앞을 막지는 않았다. 대신 바닥에 떨어진 다른 종이 조각을 주웠다.

그 종이에는 루나의 기호가 없었다. 그런데도 창문 바람과 다른 결의 얇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 바람을 일으킨 자리에는 손끝에서 갈라진 마력의 결이 모래 위로 짧게 이어져 있었다.

헤르만이 조용히 말했다.

"관찰 조건이 흔들린 기록도 남겠군요."

데인이 피곤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또 보고서 쓸 거야?"

"이번에는 꼭 써야 합니다. 재검증의 공정성과 관련된 일일 수 있으니까요."

"공정성까지 생기면 일이 커지는데."

"이미 커졌습니다."

헤르만은 종이 조각을 공책 사이에 끼웠다.

루나는 기록표의 여섯 번째 줄에 천천히 적었다.

[잔류 반응. 종이 기록 완료. 다음 반복 전 손바닥 회복 필요.]

성공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

그 아래에는 조금 더 작은 글씨가 남았다.

[불씨는 빛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엘리나는 그 문장을 읽고 손바닥 위에 얼음 잎 하나를 다시 피웠다. 잎은 작았지만 이번에는 사라지기 전까지 조용히 제자리에 머물렀다.

데인은 그걸 보다가 하품했다.

"이제 진짜 끝났지."

세 학생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훈련장 문을 나서려던 카이엔의 발이 멈췄다. 복도 끝 게시판 앞에 누군가 새 종이를 붙이고 있었다.

아직 글자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종이를 든 손이 검술부 보조교관의 장갑을 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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