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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시한부 명예교수가 되었다6화

아카데미에서 추방당한 명예교수가 되었다

아카데미에서 추방당한 명예교수가 되었다

006화 [보이는 것을 시험하지 마라]

강의실 문 아래로 얇은 종이 한 장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붉은 밀랍에는 보조교수 아르만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에신은 봉인을 뜯어 첫 문장을 읽고 종이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문장이 길군.”

하리가 불안한 눈으로 종이를 바라보았다.

“무슨 내용인데요?”

“내가 너희 결함을 가능성으로 바꾼다는군.”

카이드의 눈썹이 움직였다.

“그게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결함이 사라졌다고 썼으니 틀렸어.”

루나는 말없이 보고서를 받아 들었다. 감사 보고서라는 제목 아래에는 F-Class 수업이 정규 교과를 벗어났으며, 검증되지 않은 마력 운용을 반복시킨다는 문장이 이어졌다. 마지막 줄에는 수업 중지 권고라는 단어가 또렷했다.

“여기요.”

루나가 손끝으로 여백을 짚었다.

“보고서가 작성된 시각은 어제 정오예요. 그런데 관찰 기록은 그 전날부터 시작됐어요.”

그녀는 책상에 놓인 기록지를 펼쳤다. 바람의 방향, 종이 조각의 흔들림, 불씨가 꺼진 순서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중간중간 다른 색의 잉크로 길게 이어진 선이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온 마력이 아니에요. 바람이 가는 길에 먼저 얇은 막을 만들고 그 위로 반응을 읽었어요.”

카이드가 창문을 돌아보았다.

“누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는 겁니까?”

“보고만 했으면 낫지.”

에신이 대답했다.

“측정한 거야.”

하리의 손이 무릎 위에서 움찔했다. 그녀가 만드는 실드는 조금만 흐트러져도 겉으로 티가 났다. 귀족가의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볼 때마다 같은 말을 했다. 방어 마법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아이.

이제 그 말을 아카데미 전체가 하게 될지도 몰랐다.

복도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행정실 견습생이 봉인된 호출장을 내밀었다.

총장실이었다.

에신은 보고서를 접었다.

“기록은 계속해.”

“지금요?”

카이드가 물었다.

“지금 멈추면 저 종이가 수업이 되니까.”

그는 그대로 강의실을 나섰다.


바르모트 총장은 창가에 서 있었다.

책상 위에는 아르만의 보고서와 세 학생의 평가 기록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하리의 실드 유지 시간은 전보다 길어졌다. 카이드의 검로는 짧아졌지만 첫 동작 뒤의 흔들림이 줄었다. 루나의 스크롤은 기존 제품보다 적은 마력으로 불씨를 유지했다.

숫자만 보면 괜찮은 성과였다.

그런데 숫자 곁에는 모든 항목에 같은 단어가 적혀 있었다.

불안정.

“아르만 교수는 수업 중지 권고까지 올렸네.”

“읽었습니다.”

“자네는 반박서를 쓰지 않나?”

“쓸 게 없습니다.”

바르모트가 천천히 돌아섰다.

“없다?”

“수업이 효과가 있었다는 말은 학생들이 하면 됩니다. 제가 쓰면 변명이죠.”

총장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에신의 대답이 겸손해서가 아니었다. 책임을 피하려는 사람의 말도 아니었다. 오히려 학생들을 평가의 맨 앞에 세우겠다는 뜻이라 더 위험했다.

“그 태도가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군.”

총장은 탁자 위의 문서를 밀었다.

공개 관찰 승인서였다.

다음 수업에 상급생 관찰단과 측정관이 들어온다. 수업 중 비정상 마력 반응이 확인되면 즉시 중지한다. 문장은 규정처럼 단정했지만, 에신에게는 빈 그물처럼 보였다.

비정상 반응이 무엇인지 적혀 있지 않았다.

“명예교수 권한으로 한 번은 막을 수 있네.”

“막지 마십시오.”

“자네 수업을 지키겠다는 뜻인가?”

“제 수업은 아닙니다.”

에신은 문서의 마지막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학생들이 뭘 했는지 확인하는 자리겠죠.”

“그 확인이 학생들을 상처 입힐 수도 있네.”

“그래서 자료는 제출하지 않겠습니다.”

총장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이유는?”

“기록만 베끼면 수업이 되는 줄 아는 사람이 있어서요.”

바르모트는 에신의 말을 곱씹었다. 아르만은 규정과 절차를 믿는 교수였다. 그 믿음이 학생을 해치려는 악의에서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규정이 빈칸을 남기면, 가장 약한 쪽부터 그 빈칸에 끼어 들어간다.

“좋네.”

총장이 승인서에 서명했다.

“공개 관찰을 허가하지. 대신 학생들이 원하지 않으면 언제든 물러날 수 있게 해 두게.”

“그건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에신이 문서를 접어 들었다.

“물어보겠습니다.”


복도 끝에는 세 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리는 에신이 들고 나온 문서만 보고도 표정이 굳었다. 카이드는 벽에 기대어 있던 등을 떼었다. 루나는 보고서의 봉인이 조금 구겨진 것까지 확인하고 있었다.

“공개 관찰이래.”

에신이 말했다.

하리는 한 박자 늦게 물었다.

“가문에서 사람을 보낼 수도 있겠네요?”

그녀는 웃으려 했지만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마력 줄기를 놓치던 순간보다, 누군가가 그 순간을 보고 이름 붙이는 일이 더 두려워 보였다.

카이드가 턱을 굳혔다.

“실패한 기록까지 공개하겠다는 거군요.”

“그럴 거다.”

에신은 꾸미지 않았다.

“안 해도 된다.”

복도가 조용해졌다.

바람이 불어온 쪽에서 발소리가 지나갔다. 학생들 몇 명이 F-Class 쪽을 힐끗 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했다. 하리는 그 소리를 듣지 않은 척했지만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렸다.

“안 하면 저 사람들은 제가 원래대로 돌아갔다고 말할 거예요.”

하리가 낮게 말했다.

“제가 겁나서 못 한 거라고도요.”

카이드가 짧게 숨을 뱉었다.

“전 검이 빛나는지 안 빛나는지보다, 멈출 줄 아는지부터 보여 주고 싶습니다.”

그는 예전 같으면 말끝을 더 세게 밀어붙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기 손을 내려다본 뒤 덧붙였다.

“구경하는 놈들 앞에서라도요.”

루나는 기록지를 펼쳤다. 맨 아래에는 그녀가 쓰지 않은 기호가 있었다. 관찰 마력의 결을 따라 읽어 낸 표시였다.

‘관찰 대상: 불안정 반응.’

“누군가 수업 전에 항목을 정해 뒀어요.”

루나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측정관이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가 뭘 실패할지 정한 거예요.”

“그래서?”

에신이 물었다.

루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수식과 기록으로 말하는 쪽이 편했다. 누군가 자기 기록을 빼앗아 가려 한다는 사실은 공식으로 처리할 수 없었다.

“그 항목보다 먼저 기록할게요.”

그녀가 말했다.

“무엇이 불안정한지. 그리고 누가 그걸 정했는지요.”

에신은 세 사람을 차례로 보았다.

“좋아.”

그의 대답은 짧았다.

“한 가지씩만 해.”

카이드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그게 끝입니까?”

“끝까지 하는 게 제일 어렵지.”

세 사람은 강의실로 돌아왔다.

하리는 바닥에 작은 보호막 세 개를 만들었다. 보호막은 손바닥만 했고, 화려한 문양도 없었다. 그녀는 세 막 사이의 거리만 조절했다. 첫 번째 막이 흔들리면 두 번째 막이 버티고, 두 번째 막이 흔들리면 세 번째 막이 힘을 나눠 받게 했다.

카이드는 검집을 잡은 채 첫 동작에서 멈췄다. 검을 뽑는 대신, 손목이 앞으로 쏠리는 순간을 세 번 적었다. 네 번째에는 검로를 만들지 않고 발끝만 옮겼다.

루나는 불씨 하나를 띄운 뒤 빛이 아니라 그림자의 길이를 기록했다. 불씨가 흔들릴 때마다 종이 위 기호가 작게 흔들렸다. 그녀는 그 흔들림을 지우지 않았다.

누구도 화려한 마법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강의실은 전보다 더 조용하고 단단했다.

에신은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세 사람의 마력은 여전히 거칠었다. 하리의 흐름은 자주 갈라졌고, 카이드의 검로는 완성되기 전에 끊겼으며, 루나의 불씨는 두 번이나 꺼졌다.

하지만 모두 자기 손으로 멈췄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해가 기울 무렵 아르만이 찾아왔다.

그는 공개 관찰 통지서를 강의실 문에 붙였다. 붉은 인장이 안쪽을 향하고 있었다. 수업을 듣는 이들이 먼저 보게 하려는 배치였다.

“내일 정오입니다.”

아르만은 에신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학생들에게 무리한 시도는 시키지 마십시오.”

“무리한 건 측정관이 정합니까?”

“규정이 정합니다.”

“규정은 빈칸이 많군요.”

아르만의 입술이 잠깐 굳었다.

“빈칸이 아니라 재량입니다. 재량이 없다면 사고가 났을 때 누구도 학생을 보호하지 못합니다.”

그 말에는 진심이 섞여 있었다. 에신은 그래서 더 대답하지 않았다. 아르만은 위험을 막고 싶어 한다. 다만 그가 위험으로 보는 것은 언제나 실패한 학생의 손끝이었다.

“내일 확인하지.”

에신이 말했다.

아르만이 돌아간 뒤, 에신은 통지서 아래에 분필로 세 개의 빈칸을 그렸다.

하리가 첫 칸 앞에 섰다. 한참 고민하던 그녀는 또박또박 적었다.

‘세 번째 보호막까지 줄기 유지.’

카이드는 두 번째 칸에 적었다.

‘검을 먼저 멈추기.’

루나는 마지막 칸에 적었다.

‘관찰된 것만 기록.’

세 문장이 나란히 놓이자 통지서의 딱딱한 조항이 조금 작아 보였다.

카이드는 종이를 한참 바라보다가 에신에게 물었다.

“보이는 것만 하라는 말, 그게 이기기 위한 겁니까?”

에신은 열려 있던 창문을 닫았다. 바람은 멎었지만, 창틀 바깥 어딘가에 남은 마력의 결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그가 조용히 말했다.

“남이 정한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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