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시한부 명예교수가 되었다

3화: 결손을 따라가는 검
검술 훈련장의 등불은 밤이 깊어도 꺼지지 않았다.
카이엔은 혼자 서 있었다. 손에는 낡은 목검이 들려 있었고 품 안에는 구겨진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마력 회로의 흐름은 압력이 아니라 결손을 따라간다.
그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종이는 별것 아닌 낙서처럼 보였다. 하지만 카이엔에게는 달랐다.
데인 루드윅은 세 사람을 차례로 꿰뚫었다. 엘리나는 폭주를 멈췄고 루나는 작은 불씨를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이 문장이 남았다.
'일부러 버린 거다.'
카이엔은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대륙 최고의 연구자가 정말 실수로 이런 문장을 흘렸을 리 없다. 직접 건네면 부담을 줄까 봐. 혹은 스스로 깨닫게 하려고. 아니면 평민 장학생인 자신이 남들 앞에서 특별 대우를 받지 않게 하려고.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미친 사람이네."
말은 그렇게 나왔지만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그는 목검을 들었다.
검에 마력을 붙이지 마라. 검이 지나간 자리를 비워라.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마법 수업에서 배운 모든 것은 마력을 끌어올리고 붙잡고 원하는 대상에 밀어 넣는 일이었다. 검술부에서도 마검사가 되고 싶다면 칼날에 마력을 둘러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데인은 반대로 말했다.
비우라고.
카이엔은 천천히 목검을 내리그었다.
후욱.
공기만 갈라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후욱.
이번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
카이엔은 이를 악물었다. 목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검끝에 마력을 억지로 밀어 넣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다. 평생 배운 방식은 몸에 박혀 있었다.
"붙이지 말라잖아."
그는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다시 휘둘렀다.
다시 실패했다.
밤공기가 식었다. 손바닥이 까지고 어깨가 뻐근해졌다. 훈련장 바닥에는 같은 선이 수십 번씩 그어졌다. 하지만 목검 끝에는 푸른 잔상 같은 것이 남지 않았다.
종이에 적힌 한 줄은 조용했다.
마치 이해하지 못하는 쪽이 잘못이라는 듯.
"빌어먹을."
카이엔은 목검을 세워 바닥에 찍었다.
그때 훈련장 입구에서 낮고 지친 목소리가 들렸다.
"시끄러워."
카이엔의 몸이 굳었다.
데인 루드윅이 서 있었다. 낡은 로브를 대충 걸친 채였다. 얼굴은 달빛 아래에서 더 창백해 보였다. 잠에서 억지로 끌려 나온 사람처럼 눈매가 날카로웠다.
"교수님."
"밤에 나무 두드리는 소리가 강의동까지 들린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하면 잡힐 것 같습니다."
"뭐가."
카이엔은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이 과제 말입니다."
데인은 종이를 보았다. 그리고 아주 잠깐 표정이 멈췄다.
그건 자신이 베개로 접으려다 버린 종이였다.
'왜 저걸 갖고 있지.'
데인은 묻고 싶지 않았다. 물으면 설명해야 하고 설명하면 일이 커진다. 이미 눈앞의 학생은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버려."
"아직 못 버립니다."
"버리라고."
"완성하면 버리겠습니다."
데인은 이마를 짚었다.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완성할 게 없어. 그냥 문장이다."
"예. 첫 문장은 항상 짧다고 들었습니다."
"누구한테."
"방금 확신했습니다."
데인은 잠시 하늘을 보았다. 별이 많았다. 조용히 죽기에는 좋은 밤이었다. 그런데 그는 낙제생 하나가 자신의 쓰레기를 들고 수련하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
"다시 해 봐."
결국 데인이 말했다.
카이엔의 얼굴이 굳었다.
"예."
그는 자세를 잡았다. 목검을 들고 호흡을 가라앉혔다. 이번에는 더 집중했다. 눈동자에 독기가 맺혔다. 검끝이 천천히 움직였다.
데인은 한숨을 쉬었다.
"느리게 하라는 뜻 아니야."
카이엔의 검이 멈췄다.
"검을 늦추지 마. 욕심을 늦춰."
"욕심을..."
"마력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부터 버려. 네가 뭘 남기려고 하니까 마력이 겁먹고 붙어 죽는 거야."
데인은 말하고 나서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이엔은 숨을 멈췄다.
"붙어 죽는다."
"비유야."
"검이 먼저 지나가고 마력은 빈자리를 찾는다."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말한 적 없어."
카이엔은 듣지 않았다.
그의 표정이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는 결과를 붙잡으려는 얼굴이었다. 이제는 칼이 지나간 뒤의 허공을 보는 얼굴이었다.
목검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카이엔의 몸이 먼저 달려가지 않았다. 검끝이 지나간 자리만 아주 얇게 비었다. 달빛 속 먼지가 한 박자 늦게 그 선을 따라 흘렀다.
푸른빛은 없었다.
하지만 공기가 흔들렸다.
카이엔은 숨을 삼켰다.
"방금..."
"바닥 긁지 마."
데인은 즉시 말했다.
"수리비 나온다."
그는 돌아서려 했다. 그때 훈련장 반대편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엘리나와 루나였다.
엘리나는 잠옷 위에 급히 망토를 걸친 모습이었다. 손끝에는 불안정한 냉기가 어렸다. 루나는 공책을 품에 안고 숨을 헐떡였다.
"소리가 들렸습니다."
엘리나가 말했다.
"검로 훈련입니까?"
루나는 이미 바닥의 흔적을 보고 있었다.
"검로 뒤쪽 공기가 비었어. 압력차가 잠깐 남았고 먼지가 그 선을 따라 움직였어. 외부 회로로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몰라."
"다들 자."
데인이 말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카이엔은 다시 목검을 들었다.
"한 번만 더 하겠습니다."
"한 번만은 보통 열 번이라는 뜻이지."
"이번엔 보일 것 같습니다."
엘리나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제가 주변 마력 흐름을 낮추겠습니다. 방해가 되지 않게요."
"하지 마."
데인이 말했다.
그러나 엘리나는 이미 눈을 감았다. 그녀의 손끝에 작은 얼음 잎이 피어났다. 잎은 완전하지 않았다. 가장자리가 떨리고 금이 갔다. 하지만 폭발하지 않았다. 차가운 마력이 훈련장 주변을 둥글게 흘렀다.
루나는 종이를 찢어 작게 접었다.
"보조식 하나만. 작동만."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종이 끝에 아주 작은 불씨가 붙었다가 꺼졌다. 루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적었다.
데인은 세 사람을 보았다.
엘리나는 불안정한 마력을 억누르지 않으려 애썼다. 카이엔은 목검 끝이 아니라 지나간 자리를 바라봤다. 루나는 완성하려는 손을 멈추고 작은 식 하나만 남기려 했다.
그들은 서로를 보고 있었다.
그 사실이 데인에게는 더 불길했다.
'팀이 되면 귀찮아진다.'
카이엔이 움직였다.
목검이 밤공기를 갈랐다.
엘리나의 냉기가 흐름을 안정시키는 동안 루나의 작은 불씨가 한순간 빈틈을 비췄다. 검끝이 지나간 자리에서 아주 희미한 푸른 선이 떠올랐다.
한 호흡.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있었다.
카이엔은 목검을 내린 채 얼어붙었다.
"남았어."
엘리나가 속삭였다.
루나의 눈이 커졌다.
"잔류. 아니 아직 잔류라고 부르면 안 돼. 지속 시간이 너무 짧아. 그래도 외부에 마력 반응이 남았어."
카이엔은 웃지 않았다. 대신 손에 힘을 풀었다. 까진 손바닥에서 피가 조금 배어 나왔다.
"한 번 더."
"그만."
데인이 말했다.
그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카이엔은 반사적으로 멈췄다.
데인은 그의 손바닥을 보았다. 손상된 피부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카이엔의 눈이었다. 더 하겠다는 눈. 자신을 갉아먹어서라도 따라가겠다는 눈.
데인은 그 눈을 알고 있었다.
연구소 거울 앞에서 지겹게 봤던 눈이었다. 몸이 망가지는 줄 알면서도 한 줄만 더 쓰면 된다고 믿던 자기 눈이었다.
"피 나면 멈춰."
"아직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검도 못 쥔다."
카이엔의 입술이 굳었다.
데인은 짧게 덧붙였다.
"빈자리는 손이 부서져야 생기는 게 아니야. 힘이 빠져야 생겨."
카이엔은 고개를 숙였다.
"예."
그때 박수 소리가 들렸다.
짝. 짝. 짝.
훈련장 입구에 헤르만 보조교수가 서 있었다. 그 옆에는 검술 담당 보조교관 하나가 얼빠진 얼굴로 서 있었다.
"놀랍군요."
헤르만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첫날 밤부터 세 학생의 기술을 하나의 훈련 환경으로 묶으시다니."
데인은 눈을 감았다.
"아닙니다."
"침묵 수업의 야간 응용 과정이군요. 특히 카이엔 군의 빈 궤적은 기존 마검술 이론을 우회합니다."
"아니라고요."
검술 담당 보조교관은 카이엔을 노려보았다.
"방금 건 착시입니다. 목검에 마력을 남긴다고요? 평민 장학생이? 말이 안 됩니다."
카이엔의 어깨가 굳었다.
데인은 그 말이 더 귀찮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을 직감했다.
"착시 맞습니다."
그가 먼저 말했다.
"먼지예요."
헤르만이 급히 공책을 펼쳤다.
"먼지. 즉 가장 미세한 입자의 흐름으로 검로를 가시화하셨다는 뜻입니까?"
"아니."
"기록하겠습니다."
"하지 마."
보조교관이 비웃었다.
"그럼 다시 해 보면 되겠군. 먼지인지 마력인지."
카이엔이 목검을 들려 했다.
데인이 손을 들어 막았다.
"안 해."
"왜입니까. 두려운 겁니까?"
보조교관의 말에 카이엔의 얼굴이 굳었다. 엘리나의 손끝에 냉기가 튀었다. 루나가 공책을 덮었다.
데인은 세 학생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새벽입니다."
"예?"
"학생 자는 시간입니다. 검증은 낮에 하세요."
그는 카이엔을 보았다.
"그리고 너. 종이 내놔."
카이엔은 품을 움켜쥐었다.
"교수님."
"내놔."
카이엔은 잠시 망설이다가 구겨진 종이를 건넸다. 데인은 그것을 펼쳐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별것 아닌 낙서였다.
그런데 그 별것 아닌 문장을 쥔 학생의 손은 피가 날 때까지 흔들렸다.
데인은 종이를 다시 접어 카이엔에게 던졌다.
"읽기만 하지 말고 쉬어."
카이엔이 종이를 받아 들었다.
"그것도 과제입니까?"
"명령이야."
"예."
카이엔은 이번에는 반박하지 않았다.
헤르만은 그 광경을 황홀한 얼굴로 지켜보았다.
"수련과 휴식까지 한 문장 안에..."
"그만 좀."
데인은 정말로 지쳤다.
그는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등 뒤에서는 헤르만이 보조교관에게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결손. 빈 궤적. 압력이 아니라 빈틈을 따르는 마력.
데인은 귀를 막고 싶었다.
새벽빛이 동쪽 담장 위로 번졌다. 그는 강의동으로 돌아가며 소매 안쪽의 손목을 눌렀다. 혈관 안쪽이 뜨겁게 맥동했다. 마력을 쓰지 않았는데도 피곤이 뼛속으로 스며들었다.
'조용히 지내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강의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훈련장에는 아직 세 학생이 서 있었다. 카이엔은 목검을 내려놓고 손바닥을 감싸고 있었다. 엘리나는 그의 옆에서 얼음 잎을 작게 피워 붓기를 식혔다. 루나는 종이 귀퉁이에 계속 무언가를 적었다.
세 사람 모두 조용했다.
데인은 그 침묵이 더 불안했다.
그리고 그날 아침 총장실 책상 위에는 헤르만의 두 번째 보고서가 올라갔다.
제목은 이랬다.
[F-Class 야간 특별 훈련 관찰 보고: 루드윅식 결손 회로 교육의 초기 성과]
같은 시각 검술부 보조교관실에서도 짧은 보고가 작성되고 있었다.
[카이엔의 목검 잔상에 대한 공식 검증 요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