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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시한부 명예교수가 되었다2화

아카데미의 시한부 명예교수가 되었다

아카데미의 시한부 명예교수가 되었다

2화: 수업하지 않는 수업

강의실 안에는 한동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깨진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유리 조각을 건드렸다. 엘리나의 손끝에는 아직 녹지 않은 얼음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폭발하지 않은 마력. 난폭하게 튀어나가지 않은 빛. 그녀가 평생 단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는 고요한 결과물이었다.

카이엔은 책상 위에 걸터앉은 자세 그대로 굳었다.

루나는 손에 쥔 깃펜을 떨어뜨린 줄도 모르고 엘리나의 손끝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데인 루드윅은 낡은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코를 골고 있었다.

"저게 말이 돼?"

카이엔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엘리나가 유리창을 안 깼어. 아니 처음에는 깼는데 방금 건 안 깼어."

"문장 정리가 안 되면 조용히 해."

루나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마력 입자가 직선으로 압축되지 않았어. 흩어졌는데 형태가 유지됐어. 보통은 붕괴해야 해. 그런데 저건 흐름이야. 닫힌 회로가 아니라 열린 회로."

엘리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얼음 꽃을 두 손으로 감싸듯 바라보았다. 숨을 조금만 세게 쉬어도 사라질 것 같았다. 평생 손아귀에서 터지기만 했던 마력이 처음으로 조용히 형태를 만들었다.

"스승님."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카이엔이 눈썹을 찌푸렸다.

"뭐?"

"스승님이라고 했어."

엘리나는 잠든 데인을 보았다.

창백한 얼굴. 구겨진 소매. 먹다 만 사과를 손에 든 어이없는 자세.

그런데도 엘리나의 눈에는 그 모습이 한없이 깊어 보였다. 자신이 평생 벽이라고 믿어 온 것을 한마디로 문으로 바꾸어 놓은 사람이었다.

"깨워야 해."

엘리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배워야 해. 이 감각이 사라지기 전에."

"미쳤어? 교수님 주무시는데?"

카이엔은 말해 놓고 스스로 놀랐다. 방금 전까지 그는 새로운 교수에게 예의를 차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새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루나는 이미 데인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교수님. 질문이 있습니다. 마력을 수로로 보는 관점은 기존 순환 이론과 충돌합니다. 몸이 길 자체가 된다는 표현이 비유인지 실제 회로 재구성인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데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루나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교수님?"

데인의 눈꺼풀이 꿈틀거렸다. 세 학생은 동시에 자세를 바로잡았다.

데인은 천천히 눈을 떴다.

"조용히."

첫마디였다.

"시끄러워서 죽겠다."

학생들은 숨을 삼켰다.

데인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세 쌍의 눈빛을 보고 잠이 완전히 달아났다. 기대와 경외와 질문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그가 평생 가장 피하고 싶어 한 종류의 눈빛이기도 했다.

"수업 끝."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각자 하던 거나 해."

"하지만 교수님."

엘리나가 다급하게 말했다.

"방금 제가 한 게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시 하면 폭주할지도 모릅니다."

"그럼 다시 하지 마."

데인은 문 쪽으로 걸었다.

그 순간 강의실 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오. 모두 있었군."

회색 조끼를 입은 마른 남자가 서류철을 들고 들어왔다. 가슴에는 보조교수 배지가 달려 있었다.

"F-Class 담당이 바뀌었다고 해서 확인하러 왔습니다. 기초마법학 보조교수 헤르만입니다."

데인의 얼굴이 아주 조금 굳었다.

"확인이라니."

"퇴학 유예반은 담당 교수 서명이 필요합니다. 특히 정기 평가 전에 간이 평가를 한 번 받아야 합니다. 규정입니다."

"서명만 하면 됩니까?"

"평가 결과가 있어야 합니다."

헤르만은 고개를 돌렸다. 부서진 창문과 바닥의 유리 조각을 보며 못마땅하게 혀를 찼다.

"역시 또 폭주입니까. 로젠 양. 기록에 따르면 이번 달만 벌써 여섯 번째입니다."

엘리나의 어깨가 굳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로 끝날 시기는 지났습니다. 다음 정기 평가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면 가문이 뭐라 하든 퇴학 권고가 올라갈 겁니다."

카이엔이 책상에서 내려왔다.

"말이 심하잖습니까."

"카이엔 군. 당신도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닙니다. 검술 점수만으로는 마법 아카데미 졸업장이 나오지 않아요."

카이엔의 입이 닫혔다.

헤르만은 루나에게도 시선을 돌렸다.

"루나 양은 이론 시험지만 제출하지 말고 실제 구현물을 가져오세요. 낙서로는 학점이 나오지 않습니다."

루나는 품에 끌어안은 공책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세 학생의 얼굴에서 조금 전의 흥분이 빠져나갔다. 데인은 그 모습을 보며 짧게 한숨을 삼켰다. 이런 분위기는 귀찮았다. 하지만 더 귀찮은 것은 헤르만이 이곳에서 오래 떠들며 자신의 낮잠을 완전히 망치는 일이었다.

"평가 끝내죠."

데인이 말했다.

"빨리."

헤르만이 뜻밖이라는 듯 그를 보았다.

"가능합니까?"

"로젠."

데인은 엘리나를 불렀다.

"방금 한 거 다시 해."

엘리나가 창백해졌다.

"교수님이 다시 하지 말라고..."

"말 바꿨어. 작게 해. 꽃 한 송이 말고 잎 하나."

그는 귀찮은 듯 손가락을 까딱였다.

"막지 말고 보내. 힘으로 누르지 말고 길만 내."

엘리나는 눈을 감았다.

헤르만은 평가석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작은 수정구 안쪽에 흐린 빛이 고였다.

엘리나의 손끝에 마력이 모였다. 늘 그렇듯 심장이 먼저 겁을 먹었다. 억눌러야 한다. 묶어야 한다. 새어 나가지 못하게 움켜쥐어야 한다. 익숙한 명령들이 머릿속에서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는 데인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막지 말고 보내.

손끝에서 작은 얼음 잎이 피어났다.

쨍그랑.

이번에 깨진 것은 창문이 아니었다. 헤르만이 들고 있던 평가석이었다.

"이게 무슨..."

헤르만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수정구 안쪽에 떠올랐던 숫자가 한순간 붉게 튀었다. 위력 수치가 아니라 안정도 수치였다. 기초 평가석은 낙제생의 폭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물건이었다. 이런 정밀한 흐름을 측정하도록 만들어진 도구가 아니었다.

데인은 깨진 수정구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저건 제 책임 아닙니다."

"책임이라니요."

헤르만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무엇을 가르치신 겁니까?"

"아무것도."

데인은 진심으로 말했다.

"그냥 힘 빼라고 했습니다."

헤르만은 그 말을 다르게 들었다. 대륙 최고의 연구자가 일부러 설명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수준의 이론을 이렇게 간단히..."

데인은 대답하기 싫어졌다. 그래서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너희도 문제야."

카이엔이 움찔했다.

"저도요?"

"너는 마력이 없는 게 아니야. 몸이 너무 앞서. 검이 먼저 가니까 마력이 따라오다 넘어지는 거지."

카이엔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력이 넘어져요?"

"비유야. 알아서 들어."

데인은 귀찮게 손을 저었다.

"검에 마력을 붙이려고 하지 마. 검이 지나간 자리를 비워. 그럼 남는 게 따라붙겠지."

카이엔은 무심코 허리춤의 목검을 잡았다.

그는 평생 마법사들에게 같은 말을 들어왔다. 마력이 약하다. 회로가 둔하다. 검술로 도망치지 마라. 그런데 데인은 처음으로 반대로 말했다.

검이 너무 빠르다고.

"검이 지나간 자리를 비운다..."

루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러면 잔류 마력의 벡터가 검로를 따라 재정렬될 수 있어. 신체 회로가 아니라 외부 궤적 회로로 보면 설명이 돼."

데인은 그녀를 보았다.

"너는 말이 너무 많아."

루나가 입을 다물었다.

"수식은 틀리지 않았는데 손이 늦어. 네 머릿속에서는 이미 열 단계 뒤까지 가 있잖아. 몸은 첫 단계도 못 따라가는데."

루나의 눈이 커졌다.

"제 공책을 보셨습니까?"

"안 봐도 보여. 칠판에 낙서한 꼴이 그렇잖아."

데인은 칠판을 가리켰다. 루나가 오전 내내 적어 둔 난잡한 공식들이 빽빽하게 남아 있었다.

"하나만 해. 완성하려 하지 말고 작동만 시켜."

"하나만..."

루나는 공책을 펼쳤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헤르만은 이제 완전히 침묵했다. 그는 데인이 세 학생을 차례로 해부하듯 짚어 내는 광경을 보았다. 설명은 짧았다. 지나치게 짧았다. 그런데 학생들은 하나같이 그 짧은 말에 붙들려 있었다.

데인에게는 그저 빨리 끝내기 위한 지적이었다.

학생들에게는 생전 처음 자신을 제대로 본 사람이 던진 처방이었다.

카이엔이 목검을 빼 들었다.

"한 번만 해 봐도 됩니까?"

"시끄럽게만 하지 마."

카이엔은 강의실 한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늘 하던 대로 검을 휘두르려다 멈췄다.

검이 먼저 간다. 마력이 넘어진다.

이상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상해서 기억에 남았다.

그는 아주 느리게 목검을 내리그었다. 마력을 검에 밀어 넣지 않았다. 검이 지나가는 길에 숨을 비우듯 감각을 비웠다.

훅.

목검 끝에 먼지보다 희미한 푸른 잔상이 남았다.

카이엔은 그대로 굳었다.

"방금..."

데인은 봤지만 못 본 척했다. 괜히 칭찬하면 일이 커진다.

"먼지 날리잖아."

"아니 교수님. 방금 제 검에..."

"먼지."

카이엔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목검을 쥔 손이 떨렸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루나는 책상 위에 작은 종이를 올렸다. 그 위에 간단한 점화식을 적었다. 원래라면 공중에 다섯 겹의 보조식을 덧대야 겨우 불씨가 붙는 구조였다.

"하나만. 작동만."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종이 모서리에 아주 작은 불꽃이 붙었다.

루나는 숨을 멈췄다.

"됐어."

불꽃은 곧 꺼졌다. 하지만 루나는 종이를 끌어안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됐어. 정말로 됐어."

엘리나는 얼음 잎을 유지한 채 두 사람을 보았다. 세 명 모두 실패자라고 불리던 학생들이었다. 지금도 대단한 마법을 완성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각자 처음으로 닫힌 문틈을 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데인은 그 표정들이 몹시 불길했다.

"자. 평가 끝났죠?"

그가 헤르만에게 말했다.

"서명합니다."

헤르만은 멍하니 서류철을 내밀었다. 데인은 자신의 이름을 휘갈겨 썼다. 손끝이 살짝 저렸다. 마력을 쓴 것도 아닌데 혈관 안쪽에서 열이 번졌다.

그는 재빨리 소매를 내렸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지만 교수님."

엘리나가 말했다.

"다음 지침은..."

"없어."

데인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조용한 수업을 좋아한다. 앞으로 이 강의실에서는 소리 지르지 말고 폭발시키지 말고 나를 깨우지 마. 각자 하던 것을 반복해. 끝."

세 학생은 동시에 굳었다.

잠시 후 엘리나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침묵 속에서 흐름을 반복하겠습니다."

카이엔도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 없는 검로. 이해했습니다."

루나는 공책에 미친 듯이 적기 시작했다.

"반복 조건. 외부 자극 배제. 관찰자 수면 상태 유지."

"이해하지 마."

데인이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헤르만은 서류철을 품에 안고 뒷걸음질 쳤다. 그의 얼굴은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상기되어 있었다.

"총장님께 보고드려야겠군요."

"보고요?"

데인이 고개를 들었다.

"절차상 간단한 보고입니다."

헤르만은 도망치듯 강의실을 나갔다.

데인은 그 뒷모습을 보며 아주 나쁜 예감을 느꼈다. 하지만 몸은 이미 한계였다. 그는 의자에 다시 앉았다. 책상 위에 있던 낡은 종이를 끌어와 대충 몇 줄을 긋고 베개 대신 접으려 했다.

마력 회로의 흐름은 압력이 아니라 결손을 따라간다.

무심코 적힌 문장이 종이 위에 남았다.

데인은 그걸 구겨 바닥에 던지고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그날 오후 F-Class 강의실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엘리나는 숨소리마저 낮춘 채 얼음 잎을 피우고 지웠다. 카이엔은 목검을 공기 중에 천천히 그으며 보이지 않는 빈틈을 찾았다. 루나는 종이 한 장에 작은 불씨를 붙였다 껐다.

그리고 데인은 마침내 잠들었다.

해가 기울 무렵 카이엔은 바닥에 떨어진 구겨진 종이를 주웠다. 그는 그 위의 문장을 읽고 숨을 삼켰다.

"결손을 따라간다..."

그는 종이를 품에 넣었다.

그날 밤 검술 훈련장의 등불은 가장 늦게까지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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