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아카데미의 시한부 명예교수가 되었다1화

아카데미의 시한부 명예교수가 되었다

아카데미의 시한부 명예교수가 되었다

시놉시스

대륙 최고의 마법 연구원이었으나 지독한 마력 역류증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데인 루드윅'. 조용한 은퇴 생활을 위해 제국 아카데미의 '명예 교수'로 부임한다.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으려 했으나, 무심코 던진 그의 조언이 낙제생들을 세기의 천재로 각성시키며 벌어지는 유쾌한 착각계 아카데미 판타지.

1화: 명예교수의 부임

"시한부입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노의사가 담담하게 선고했다. 마치 내일 날씨가 비가 올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는 것처럼 무심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문장이 담고 있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대륙 최고의 마법 연구소, '아르카나 헤븐'의 수석 연구원 데인 루드윅은 그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손등 위로 툭 불거진 혈관들이 기괴한 보랏빛으로 맥동하고 있었다.

"마력 역류증. 그것도 4단계군요. 마법사로서 이보다 영예로우면서도 치명적인 병은 없죠."

노의사가 차트를 넘기며 덧붙였다.

"당신이 평생 연구해온 그 고결한 마법 공식들이, 이제는 당신의 혈관을 땔감 삼아 타오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축하드려야 할까요, 아니면 위로해 드려야 할까요?"

데인은 대답 대신 헛웃음을 흘렸다. 축하와 위로라. 둘 다 사치였다. 그는 평생을 마법의 본질을 파헤치는 데 바쳤다. 남들이 8서클, 9서클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명상을 할 때, 그는 마나가 흐르는 길을 수식화하고 우주의 법칙을 종이 위에 옮겨 적었다.

그 결과, 그는 누구보다 강력한 마법을 부릴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빨리 죽음에 가까워졌다.

"얼마나 남았습니까?"

"조용히 요양만 한다면 1년. 마력을 한 번이라도 더 휘두른다면... 내일 당장 심장이 타버려도 이상하지 않죠."

1년.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못 할 만큼 짧은 시간도 아니었다. 데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이라는 직함, 국왕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권위, 그리고 산더미처럼 쌓인 연구비. 그 모든 것들이 갑자기 덧없게 느껴졌다.

"선생님, 조언 하나만 하죠."

노의사가 떠나려는 데인의 뒷모습에 대고 말했다.

"죽기 전까지 마법 근처에는 가지도 마십시오. 마법은 당신에게 독입니다."

데인은 그 말을 들으며 연구실을 나섰다. 그리고 그날 오후, 그는 평생 몸담았던 아르카나 헤븐에 사표를 던졌다.


제국 최고의 교육 기관, '테오필루스 아카데미'.

이곳은 대륙의 수재들이 모여드는 곳이자, 동시에 가장 치열한 권력의 각축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데인에게 이곳은 그저 '가장 안전하고 조용하게 쉴 수 있는 은신처'에 불과했다.

"정말로... 정말로 우리 아카데미에 부임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것도 명예교수로?"

테오필루스 아카데미의 총장, 바르톨로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안경을 고쳐 썼다. 그의 앞에는 대륙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데인 루드윅이 나른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예. 복잡한 직무는 싫습니다. 강의도 최소한으로 하고 싶군요. 그냥 이름만 걸어놓고 조용한 연구실 하나만 내어주시면 됩니다."

"하지만 루드윅 경! 당신의 지식이라면 우리 아카데미의 수준을 단숨에 두 단계는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마력 구조학' 강의를 열어주신다면 황실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총장님."

데인이 말을 잘랐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서늘한 기운에 총장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저는 쉬러 온 겁니다. 제자들이니, 학문적 성취니 하는 것들에는 관심 없습니다. 만약 저를 가만두지 않으시겠다면 지금 당장 이 계약서를 찢고 나가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물론이죠!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고말고요!"

총장은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 최고의 마법사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가 아카데미에 적을 두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테오필루스의 위상은 하늘을 찌를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럼... 어떤 학생들을 맡으시겠습니까? 상위 1%의 엘리트 반인 '플래티넘 클래스'가 비어 있습니다만."

데인은 총장이 건네준 학생 명단들을 훑어보았다. 하나같이 야망이 넘치고, 눈이 번뜩이는 학생들뿐이었다. 그런 놈들을 가르치다가는 피곤해서 시한부 1년이 아니라 1개월 만에 죽을 것 같았다.

그때, 명단 가장 아래쪽에 구석에 처박힌 파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F-Class : 보충 교육 대상자 명단]

"이건 뭡니까?"

총장의 표정이 곤혹스럽게 변했다.

"아... 그건 그저 머릿수만 채우는 낙제생들입니다. 마력 제어도 못 하거나 아예 재능이 없는 친구들이죠. 사실상 퇴학 처리만 기다리는... 아카데미의 수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데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좋군요. 이 친구들을 맡겠습니다."

"예?! 루드윅 경, 다시 생각하십시오! 저들은 마법의 'ㅁ'자도 모르는 돌대가리들입니다! 당신 같은 고결한 분이 시간을 낭비할 대상이..."

"돌대가리들이라 더 좋군요. 아무것도 안 가르쳐도 티가 안 날 테니까."

데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총장의 경악 어린 시선을 뒤로한 채, 그는 자신의 새로운 '안식처'로 향했다.


F-Class 강의동은 아카데미 본관에서도 한참 떨어진 숲 끝자락에 있었다. 건물은 낡았고 정원은 잡초가 무성했다. 데인은 그 황량한 풍경이 마음에 쏙 들었다.

'여기라면 누구도 나를 방해하지 않겠지.'

그는 강의실 문을 열었다. 끼이익, 하는 불쾌한 마찰음과 함께 안의 풍경이 드러났다.

학생은 단 세 명.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고 잠을 자는 덩치 큰 남학생.
먼지 쌓인 책 더미 속에서 미친 듯이 낙서를 하고 있는 소녀.
그리고 강의실 한복판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허공에 손을 휘젓고 있는 금발의 소녀.

"으으... 제발, 조금만 더...!"

금발 소녀, 엘리나 폰 로젠의 손끝에서 불안정한 마력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녀는 마력을 억지로 억누르려 애쓰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마력은 더욱 거칠게 날뛰었다.

쾅-!

결국 제어되지 못한 마력이 폭발하며 강의실의 유리창 하나가 박살 났다. 엘리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역시 안 되는 건가."

그녀의 눈에는 절망이 서려 있었다.

데인은 강의실 구석에 놓인 낡은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는 품에서 꺼낸 사과 하나를 아삭, 베어 물었다. 학생들은 그제야 새로운 교수가 왔다는 사실을 눈치챈 듯 그를 바라보았다.

"누구세요? 여긴 외부인 출입 금지인데."

잠에서 깬 덩치, 카이엔이 귀찮다는 듯 물었다.

"오늘부터 너희를 맡게 된 명예교수 데인 루드윅이다."

데인의 무심한 자기소개에 세 명의 학생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명예교수'라는 직함과 어울리지 않는 초췌한 몰골과 나태한 태도 때문이었다.

"아, 교수님. 방금 보셨겠지만... 저는 마법을 못 해요. 그냥 포기하시는 게 편할 거예요."

엘리나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깊은 자기혐오가 배어 있었다. 데인은 사과를 씹으며 그녀의 마력 흐름을 보았다.

방대한 마력량. 하지만 그 통로가 너무 좁다. 억지로 밀어 넣으려니 터질 수밖에.

'뭐, 어차피 제대로 가르칠 생각도 없으니까.'

데인은 눈을 감았다. 잠이 쏟아졌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로 몸이 부쩍 무거워진 탓이었다. 하지만 엘리나가 다시 마력을 모으기 시작하자, 공기를 찢는 듯한 불협화음이 그의 고막을 괴롭혔다.

"저기, 학생."

데인이 눈을 뜨지 않은 채 나른하게 말했다.

"마법을 주먹질하듯이 부리지 마. 너 지금 마력을 때려눕히려고 하는 거잖아."

엘리나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게 무슨... 마력은 강한 의지로 통제해야 한다고 배웠는데요?"

"누가 그래? 통제하려고 하니까 반항하는 거지. 마력은 살아있는 물줄기야. 둑을 쌓아서 막으려 하지 말고, 네 몸이라는 수로를 더 넓게 열어주기만 해. 그냥... 흘러가게 두라고. 네가 길 자체가 되는 거야."

데인은 말을 마치고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정말로 귀찮았다.

하지만 그 무심한 한마디는 엘리나의 머릿속을 번개처럼 때렸다.

'통제가 아니라... 흐름? 내가 길 자체가 된다고?'

그녀는 눈을 감았다. 평생을 '억눌러야 한다'고 교육받았던 고정관념이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마력에 대항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혈관을 따라 마력이 춤추게 내버려 두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화아아아-!

강의실 안을 가득 채운 빛. 폭발적인 위력이었지만, 그 안에는 단 한 줌의 살기도, 불안정도 없었다. 그것은 마치 고요한 호수처럼 투명하고 아름다운 마력이었다.

"어...?"

카이엔과 루나가 입을 벌린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엘리나의 손끝에서 피어난 정교한 얼음 꽃 한 송이. 그것은 4서클 이상의 마법사만이 구현할 수 있는 극상의 마력 제어였다.

"성공... 했어? 내가?"

엘리나가 자신의 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의자에 기대 잠든 데인에게 향했다.

창문 사이로 들어온 햇살이 그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는, 그저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는 교수.

하지만 엘리나는 직감했다.

'이분은... 진짜다.'

평생을 괴롭혀온 저주 같은 재능을, 단 한마디 말로 축복으로 바꿔놓은 사람.

그녀는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잠든 스승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아주 경건한 태도로.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리고 그날, 아카데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설이 시작되었다.

물론 정작 주인공인 데인은, 꿈속에서 맛있는 사과를 먹는 상상을 하며 평온하게 코를 골고 있었지만 말이다.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표지소설
연재중 5%
#아카데미#판타지#음악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평생 남의 이름 뒤에 숨어 곡을 쓰다 과로사한 무명 작곡가 강하진이, 음악이 마법이 되는 판타지 아카데미의 마력 제로 낙제생 하진으로 빙의한다. 퇴학 직전 24시간 루프와 [신들의 작곡 시스템]을 이용해 지구의 화성학과 거장들의 선율을 대기 에테르 유도식으로 변환하며, 악보 한 장으로 아카데미와 제국을 뒤흔드는 천재 작곡가의 대마법 성장기.

7화2026.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