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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6화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6화: 지휘과 수석 엘레나

실기장 제3무대를 나온 뒤에도 하진의 귀에는 환호가 남아 있었다.

다만 환호는 복도까지 따라오지 못했다. 벽 양쪽에 선 학생들은 하진이 가까워지자 목소리를 낮췄다. 누군가는 은색 화살의 궤적을 손으로 흉내 냈고 누군가는 제라드 교수가 판정을 봐준 것 아니냐고 말했다.

루카스는 그런 시선들을 노려보며 하진의 곁을 붙어 걸었다.

“이제 다들 네가 대단하다고 하겠지?”

“대단하다고 말하는 얼굴은 아닌데.”

“그럼 무섭다고 하는 거야. 그것도 나쁜 건 아니잖아.”

하진은 대답 대신 손바닥 위에 가느다란 공명선을 펼쳤다.

듀엘론이 끝난 순간 무대 바닥 아래에서 들었던 박자였다. 짧고 낮은 음 하나. 그 뒤에 지나치게 긴 침묵. 그리고 처음보다 반 박자 늦은 두 번째 음.

[신규 퀘스트: 불협화음의 발신자를 찾아라]
[숨은 공명 이상 잔류율: 18퍼센트]

“그게 뭐야?”

루카스가 고개를 기울였다.

“방금 무대에서 들은 소리야. 내 화살도 아니고 에드릭의 화염도 아니었어.”

“결계가 삐걱거린 건 아닐까?”

“결계는 세 박자로 닫혔어. 이건 두 번째 음이 일부러 늦어.”

하진은 푸른 선을 접었다. 늦은 음은 실수처럼 보였지만 중심을 잃지 않았다. 누군가가 다음 소리를 기다리게 만드는 박자였다.

복도 끝에서 에드릭이 멈춰 섰다. 그가 하진 손 위의 공명선을 보자 표정이 굳었다.

“또 무슨 속임수를 꾸미는 거지?”

“네가 남긴 화염 잔향을 보는 중이야.”

“내 선율은 저런 탁한 파형을 남기지 않는다.”

에드릭은 말하고 나서 잠깐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악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의 반응이었다.

“그럼 네가 알겠네. 저건 네 것이 아니야.”

하진은 에드릭을 지나쳤다.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날아왔다.

“오늘 판정이 끝난 건 아니다.”

“판정선에는 끝났다고 적혀 있던데.”

에드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주먹이 옆구리에서 단단히 쥐어졌다.

그때 제라드 교수가 보관실 조교와 함께 나타났다. 조교의 손에는 밀랍 봉투와 기록판이 들려 있었다.

“월광식 속사 아르페지오의 원본을 내라.”

하진은 타 버린 악보지를 내려다봤다.

“검증 때문에요?”

“검증과 보존 때문이다. 오늘부터 자네 악보에는 빌려 쓴 잉크보다 많은 시선이 붙을 거다.”

제라드는 원본을 받아 봉투에 넣었다. 그가 봉인을 누르기 직전 하진은 검은 박자를 옮긴 작은 조각을 따로 뜯어 냈다.

제라드의 시선이 그 조각에 머물렀다.

“그것도 무대에서 나온 건가?”

“예.”

“내가 결계 기록을 확인하겠다. 섣불리 퍼뜨리지 마라.”

“이미 누군가는 퍼뜨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라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하진의 뒤쪽을 보았다.

검은 제복 위로 은실 견장이 내려앉은 여학생이 복도 창가에 서 있었다. 긴 은발은 한 올도 흐트러지지 않았고 손에는 얇은 지휘봉 케이스가 들려 있었다.

주변 학생들이 조용해졌다.

“엘레나 폰 아르도야.”

루카스가 작게 속삭였다.

“지휘과 수석. 대공가 영애고 아카데미 합주단도 사실상 저 선배가 굴린대.”

엘레나는 하진 앞에 멈췄다.

“하진.”

“맞습니다.”

“방금 네가 쓴 지연 기호를 봤다.”

“관중석에서도 보였나 보군요.”

“보이지 않았다. 들렸다.”

그녀의 눈동자는 차갑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상대의 박자를 늦춘 것이 아니라 상대 선율이 스스로 비켜 갈 자리를 만들었다. 내 해석이 맞나?”

하진은 잠시 그녀를 살폈다. 화살이 멋있었다는 말보다 훨씬 정확한 질문이었다.

“맞습니다. 무리하게 꺾으면 반동이 옵니다. 길을 하나 더 주고 그쪽으로 밀어냈죠.”

“그 구조를 합주에 쓰면 어떨까?”

루카스가 눈을 크게 떴다.

엘레나는 지휘봉 케이스를 열었다. 검은 나무로 된 지휘봉 끝에는 푸른 공명석이 박혀 있었다.

“사흘 뒤 음악제 예비 합주가 있다. 현 편성은 각 성부의 마력을 한 박자에 묶는 방식이라 강한 단원 하나가 흔들리면 전체가 끌려간다. 후보를 다시 뽑으려면 오늘 안에 해답을 찾아야 해.”

“그래서 절 부른 겁니까?”

“네 악보가 그 문제를 풀 수 있는지 확인하려고.”

“지휘자는 악보를 지배하려 들잖아요.”

엘레나의 손끝이 아주 조금 멈췄다.

“좋은 지휘자는 악보를 지배하지 않아. 각 소리가 제때 자기 자리를 찾게 만든다.”

“그 말대로라면 해 볼 만하겠네요.”

“지금 해 보자.”

제2합주실은 본관 뒤편에 있었다. 문을 열자 현악과 금관 그리고 타악의 조율 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열두 명의 단원이 반원형으로 앉아 있었고 중앙에는 작은 무대와 공명석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하진이 들어서자 몇몇 단원이 악기를 내렸다.

“저 학생이 그 낙제생인가?”

“작곡과도 아닌 지휘과 합주에 왜?”

마지막 말을 한 금관 단원이 악보를 탁 덮었다. 그 옆에 서 있던 에드릭이 팔짱을 꼈다. 언제 따라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눈빛은 아까보다 더 차가웠다.

“네 방식이 합주에도 통하는지 보러 왔다.”

“구경은 자유니까.”

엘레나는 지휘대에 올라섰다.

“열여섯 마디만 연주한다. 하진은 내 옆에서 듣고 필요한 기호를 제안해.”

“제안만요?”

“처음부터 지휘봉을 넘길 생각은 없어.”

“그럼 저도 처음부터 제 악보를 넘길 생각은 없습니다.”

합주실의 공기가 조용해졌다.

엘레나는 잠시 하진을 보다가 지휘봉을 내렸다.

“좋다. 네가 듣고 싶은 대로 듣게 해 주지.”

하진은 중앙 공명석 앞으로 걸어갔다. 단원들의 악보에는 같은 리듬이 두껍게 묶여 있었다. 모두가 첫 박자에 마력을 쏟고 뒤의 박자에서 버티는 구조였다.

“연주하지 마세요.”

단원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뭘 하라는 겁니까?”

첼로를 든 학생이 물었다.

“첫 음만 내세요. 마력은 넣지 말고요.”

“마력 없이?”

“음은 악기로 내는 겁니다. 마력은 그 다음에 넣고.”

엘레나가 손을 들었다. 단원들은 마지못해 활과 관악기를 들었다.

첫 음이 울렸다.

현악은 낮고 무거웠다. 금관은 그 위를 덮으려 했고 타악은 두 소리를 억지로 묶으려 들었다. 하진은 눈을 감았다.

소리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모두가 앞서려 한다는 것이었다.

“첼로는 두 번째 박자에 들어가세요. 금관은 첫 음을 반 음 낮추고 세 번째 박자까지 숨을 참으세요.”

“그럼 힘이 빠집니다.”

“지금도 힘은 있어요. 다만 서로를 밀어내고 있죠.”

하진은 바닥에 떠오른 공명선을 손끝으로 나눴다. 1도와 5도로만 묶인 두꺼운 선 사이에 얇은 3도와 6도를 끼워 넣었다.

“바이올린은 여기서 받으세요. 앞을 밀지 말고 첼로가 만든 빈자리를 채우면 됩니다.”

엘레나는 그의 손을 보며 지휘봉을 들었다.

“내 신호에 맞춰.”

이번에는 열여섯 마디가 흘렀다.

첫 박자는 전보다 작았다.

두 번째 박자에서 첼로가 들어오자 금관이 기다렸다가 그 위를 받쳤다. 바이올린이 빈틈으로 스며들고 타악은 가장 마지막에 맥박만 남겼다.

공명석 기둥이 푸른빛을 냈다.

작은 빛은 곧 단원들 사이를 가느다란 막처럼 연결했다. 누군가의 마력이 튀어 오르면 다른 성부가 그 힘을 받아 옆으로 흘려 보냈다. 마력량이 적은 바이올린 단원도 뒤로 밀리지 않았다.

“이게…”

첼로 단원이 활을 멈추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같은 양의 마력인데 왜 더 가볍지?”

“가벼운 게 아닙니다.”

하진이 말했다.

“혼자 들던 무게를 나눠 든 거죠.”

엘레나는 마지막 박자를 내렸다. 얇은 공명막이 합주실 중앙에서 한 번 부풀었다가 고르게 가라앉았다.

에드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금관 악보의 첫 박자를 다시 내려다보는 모습은 하진도 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쿵.

낮고 탁한 박자가 공명막 아래에서 울렸다.

하진의 손끝이 굳었다.

듀엘론 무대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박자였다.

두 번째 음은 오지 않았다.

대신 중앙 공명석의 푸른빛 한쪽이 검게 물들었다.

타악 단원이 비명을 삼켰다. 그의 악보 위 음표들이 제멋대로 박자를 앞당기며 튀기 시작했다. 손목에 찬 공명 보조구도 검은빛을 따라 빠르게 떨렸다.

“연주 중지!”

엘레나의 지휘봉이 허공을 갈랐다.

단원들은 즉시 소리를 끊었다. 그러나 검은 박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공명석 기둥 안쪽에서 아주 느리게 맥박쳤다.

하진은 시스템 창을 확인했다.

[숨은 공명 이상 일치율: 92퍼센트]
[발신 방향 추적 가능]
[주의: 오염 공명석이 인근 마력핵과 동조 중]

검은 선은 기둥의 아래쪽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공명석을 묶는 은선 하나를 타고 바닥으로 빠져나갔다. 은선은 합주실 지하의 예비 공명석 저장고와 연결돼 있었다.

“저장고예요.”

하진이 말했다.

엘레나가 즉시 단원들을 돌아봤다.

“보조구를 전부 풀고 벽에서 떨어져. 누구도 혼자 마력을 밀어 넣지 마.”

“하지만 공명석이 깨지면…”

“깨지는 편이 마력핵이 터지는 것보다 낫다.”

에드릭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오염 공명석이라고 단정할 근거가 있나?”

“네 화염 잔향이 아니라는 근거와 같아.”

하진은 바닥의 검은 선을 가리켰다.

“밖에서 들어온 박자가 기둥 안의 공명석을 찾고 있어. 단원들의 마력핵이 그 박자를 따라가면 다음에는 사람이 울릴 거야.”

에드릭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타악 단원의 떨리는 손목을 보았다. 반박할 말은 없었다.

엘레나가 하진 곁으로 다가왔다.

“이것도 네가 말한 소리인가?”

“맞아요.”

“원인은?”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아카데미 안에 이 박자를 심어 놨어요.”

엘레나는 잠시 검게 물든 공명석을 보았다. 그리고 지휘봉을 단단히 쥐었다.

“협연 제안은 보류하지 않겠다. 대신 이 일도 함께 확인해.”

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말해.”

“제 악보를 바꾸려면 먼저 왜 바꾸는지 설명하세요.”

엘레나의 입가가 거의 보이지 않게 움직였다.

“그 조건은 받아들이지.”

지하로 내려가는 문 앞에서 두 번째 검은 박자가 울렸다.

쿵.

이번에는 문 너머에서 누군가가 같은 박자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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