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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5화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5화: 월광의 첫 화살

정오의 실기장 제3무대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계단식 관중석의 빈자리는 거의 없었다. 작곡과 학생들뿐 아니라 다른 학과의 상급생들까지 난간에 기대 서 있었다. 퇴학 통보를 뒤집은 낙제생과 작곡과 수석이 맞붙는다는 소문은 한나절이면 충분했다.

하진이 무대 아래에 멈추자 수군거림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정말 나오는군.”

“교수님 앞에서만 울린 악보 아니었어?”

“에드릭 선배 화염 선율은 저위전에서도 못 버티는데.”

루카스는 듣지 못한 척했지만 손에 든 악보지를 너무 세게 쥐고 있었다. 은색 마법 잉크가 마른 종이 네 장. 밤새 하진이 버린 것보다 적은 수였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루카스가 낮게 말했다.

“진짜 할 거야?”

하진은 그가 내민 악보지 중 맨 위의 것을 받았다. 손끝에 닿은 종이는 차가웠다. 그 안쪽에서 빠른 음들이 아직 잠들지 못한 채 미세하게 떨렸다.

“여기까지 와서 안 하면 네가 구해 온 잉크 값이 아깝지.”

“그게 걱정이라서 묻는 게 아니거든.”

“알아.”

하진은 짧게 대답하고 무대로 올랐다.

관중석의 시선이 등에 꽂혔다. 며칠 전까지 저 시선은 하진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마력 적성 제로인 낙제생. 이제는 보호받는 예외로 취급될 뿐이었다.

그런 자리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악보가 살아남으려면 누군가의 선언이 아니라 자신의 소리로 증명해야 했다.

맞은편에 선 에드릭 로웰은 붉은 악보지를 한 장만 들고 있었다. 금실로 가장자리를 두른 종이에는 검은 음표가 깔끔하게 정렬돼 있었다. 장식처럼 보이던 화음 하나하나에서 열기가 새어 나왔다.

그는 하진을 보며 얕게 웃었다.

“도망치지 않은 건 칭찬해 주지.”

“칭찬은 이기고 나서 해.”

에드릭의 미소가 가늘어졌다.

무대 중앙으로 제라드 교수가 걸어 나왔다. 지팡이 끝이 바닥에 닿자 실기장 전체가 조용해졌다. 결계 관리 조교 셋이 무대 가장자리에 공명석을 박았다.

첫 번째 결계가 옅은 푸른빛으로 올라왔다.

두 번째 결계가 그 빛을 감쌌다.

마지막 결계가 반투명한 돔처럼 무대를 덮었다.

“저위 공명전이다.”

제라드의 목소리가 결계 안에서 또렷하게 울렸다.

“신체에 직접 손상이 닿는 순간 패배로 판정한다. 상대의 공명장을 먼저 붕괴시키면 승리다. 결계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음형은 즉시 중단시킨다.”

그는 두 사람의 악보를 차례로 살폈다.

“승패는 출신과 명예가 아니라 이 무대에서 울린 악보만으로 정한다.”

에드릭이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교수님.”

말은 공손했다. 그러나 그가 하진에게 돌린 눈빛에는 이미 결과를 적어 둔 사람의 여유가 있었다.

하진은 악보를 펼쳤다.

[등록 악보: 월광식 속사 아르페지오]
[변환 현상: 에테르 화살]
[안정 시간: 3.2초]

푸른 글자가 오선 위에 떠올랐다.

3.2초.

짧아 보이는 숫자였다. 하지만 누군가가 악보로 사람을 쓰러뜨리려 드는 무대에서는 한 음절보다 길었다. 에드릭의 첫 선율을 피하고 공명장을 지키며 그 시간만큼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

제라드가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시작.”

에드릭이 먼저 음을 눌렀다.

쿵.

낮고 무거운 음이 무대 바닥을 울렸다. 붉은 선이 그의 악보에서 기어 나와 바닥을 타고 퍼졌다. 뒤이어 높은 음이 겹치자 붉은 선은 불꽃의 벽이 됐다.

하진은 즉시 푸른 공명막을 펼쳤다.

콰앙!

열기와 압력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공명막 표면이 물결처럼 뒤틀렸다.

에드릭의 화염 선율은 불을 던지는 방식이 아니었다. 강한 저음으로 바닥의 에테르를 밀어 올리고 고음으로 그 압력을 쏘아 보냈다. 피할 자리를 줄여 상대 공명장을 통째로 무너뜨리는 악보.

관중석에서 탄성이 터졌다.

“저게 로웰식 압박 선율이야.”

“첫 마디부터 저 정도라고?”

두 번째 음이 떨어졌다.

하진은 공명막을 한 겹 더 겹쳤다. 막은 버텼지만 악보지 모서리가 검게 말려 올라갔다. 체내 마력이 있는 학생이라면 자기 안의 힘으로 공명장을 밀어 붙잡을 수 있다.

하진은 그럴 수 없었다.

대기 에테르가 따라붙기 전에 구조가 무너지면 끝이다.

“왜 안 쏘지?”

에드릭이 세 번째 화음을 쌓으며 말했다.

“그 기적 같은 화살 말이다.”

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에드릭의 손끝을 봤다.

낮은 음. 높은 음. 낮은 음.

화염은 매번 같은 박자에 앞으로 밀려왔다. 커다란 힘은 정확했지만 그만큼 다음 강박을 위해 아주 짧게 숨을 고른다. 화염이 지나간 뒤에는 에테르가 얇게 비는 선이 생겼다.

하진은 왼발을 반 박자 옮겼다.

붉은 벽이 바로 옆을 스치며 지나갔다. 뜨거운 바람이 교복 소매를 흔들었다.

“피하기만 하겠다는 건가?”

에드릭의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관중석에도 실망이 번졌다. 루카스는 난간을 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하진은 첫 마디의 하행음을 눌렀다.

낮고 차가운 음 하나가 화염의 가장자리로 스며들었다. 공격이 아니었다. 흐름을 늦추는 아주 작은 지연 기호.

붉은 불꽃 끝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어긋났다.

에드릭의 눈썹이 움직였다.

“방금 뭐 했지?”

“네 악보에 쉼표를 하나 넣었어.”

“건방진!”

에드릭이 손을 내리쳤다.

이번에는 세 갈래의 화염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좌우를 막는 불길과 정면에서 밀려오는 압력이 결계 안의 공기를 짓눌렀다.

하진의 공명막이 금이 갔다.

그는 막을 고집하지 않고 한 겹을 끊었다. 푸른 빛이 부서지며 열기를 흩트렸다. 몸을 낮춰 오른쪽으로 미끄러지자 왼쪽 어깨 위로 불꽃이 스쳤다.

타는 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에드릭의 화음 하나가 앞선 지연을 밟았다.

처음의 어긋남보다 조금 더 큰 빈틈.

하진은 상행 아르페지오의 첫 음을 꺼냈다.

은색 선이 악보에서 솟았다. 선은 화살촉의 모양을 만들려다가 금세 풀렸다.

[안정화 진행: 0.8초]

에드릭은 비웃었다.

“그걸 기다려 줄 거라 생각했나?”

붉은 화염이 다시 모였다. 이번에는 넓게 퍼지지 않았다. 한 점으로 압축된 열기가 창끝처럼 하진을 겨눴다.

하진은 두 번째 음을 이어 붙였다.

[안정화 진행: 1.6초]

공명장 바깥이 흔들렸다. 대기 에테르가 악보의 보정 기호를 따라 오르려 했지만 화염의 압력이 그 흐름을 밀어냈다.

2초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하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에드릭의 악보는 강한 음으로 시작해서 강한 음으로 끝난다. 그 사이에 놓인 짧은 호흡은 힘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한 연결선이었다. 그 연결선만 끊으면 거대한 화염도 하나의 박자에 갇힌다.

하진은 하행음을 한 번 더 눌렀다. 지연은 에드릭의 발밑으로 파고들었다.

붉은 선율이 반 박자 늦게 바닥을 박았다.

“뭐?”

에드릭이 중심을 잃었다.

하진의 시야를 채우던 숫자가 빠르게 올랐다.

[안정화 진행: 2.4초]

에드릭은 이를 악물고 악보지 위로 손을 내리쳤다. 붉은 음표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무리한 증폭이었다. 저위 공명전의 한계를 넘지는 않았지만 결계 표면까지 붉게 물들 만큼 거칠었다.

“그만!”

루카스의 목소리가 결계 밖에서 터졌다.

제라드는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화염은 아직 규정 안에 있었다.

화염 파도가 하진을 향해 덮쳐 왔다.

그 순간 마지막 숫자가 사라졌다.

[안정화 완료]

하진은 웃었다.

“이제 네 차례야.”

월광식 속사 아르페지오가 울렸다.

첫 화살은 정면으로 날아가지 않았다. 하진이 만들어 둔 지연의 틈을 타고 화염 파도 옆으로 미끄러졌다. 은색 궤적이 한 번 휘자 두 번째 화살이 같은 길을 물었다.

세 번째 화살부터는 속도가 달라졌다.

상행음이 비스듬히 솟아 화염의 빈 박자를 찔렀다. 하행음이 그 아래를 접으며 다음 궤도를 만들었다. 화살 하나가 길을 열면 다음 화살이 그 길을 더 깊게 팠다.

쐐애액!

은색 선들이 밤의 계단처럼 무대 위를 오르내렸다.

에드릭이 화염을 거두려 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의 선율은 넓게 밀어붙이도록 짜여 있었다. 이미 지연된 강박은 급하게 방향을 바꿀 수 없었다.

첫 화살이 붉은 공명장 표면에 닿았다.

쨍.

얇은 금이 갔다.

두 번째 화살이 같은 자리를 찔렀다.

쨍!

에드릭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손을 휘둘러 화염막을 세웠다. 화염막은 은색 선 몇 개를 태워 버렸다. 하지만 그 사이 하진의 아르페지오는 멈추지 않았다.

빠른 음은 힘이 약하다.

그래서 한 번으로는 뚫지 못한다.

대신 같은 자리에 도착하는 다음 음이 있다.

하진은 마지막 두 음을 겹쳤다.

은색 화살들이 서로의 꼬리를 물며 하나의 가느다란 선이 됐다. 그것은 화염막의 약해진 틈을 통과해 에드릭의 공명장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콰직!

붉은 빛이 산산이 부서졌다.

에드릭의 손에서 악보지가 떨어졌다. 화염은 허공에서 방향을 잃고 흩어졌다. 삼중 결계의 표면에 튄 불티가 잠깐 반짝이다가 사라졌다.

실기장에는 숨 막히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결계 관리 조교가 공명석을 확인했다. 푸른 빛이 세 번 깜빡인 뒤 판정선이 무대 위로 떠올랐다.

[에드릭 로웰의 공명장 붕괴]

제라드 교수가 지팡이를 내렸다.

“승자는 하진이다.”

한 박자 늦게 관중석이 터졌다.

환호와 탄성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웅성거림이 뒤섞였다. 가장 크게 소리친 사람은 루카스였다. 그는 난간에서 거의 몸을 반쯤 내밀고 두 팔을 흔들고 있었다.

“봤지! 봤냐고!”

하진은 숨을 고르며 악보를 내려다봤다. 가장자리는 타 버렸고 몇 개의 보정 기호는 흐릿했다. 그래도 제목 아래의 은색 잉크는 남아 있었다.

<월광식 속사 아르페지오 제1초안>

이번에는 누구의 이름 뒤에 숨긴 곡도 아니었다.

에드릭은 바닥의 악보지를 주워 들었다. 손등에는 붉은 자국이 남았지만 신체 손상 판정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하진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다음에는 이런 장난으로 끝나지 않을 거다.”

“다음에는 박자부터 다시 세.”

에드릭의 턱이 굳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무대를 내려갔다.

제라드가 하진에게 다가왔다.

“상대의 선율에 개입해 박자를 늦춘 건가?”

“정확히는 흐름을 조금 비틀었습니다. 화염 자체를 꺾은 건 아닙니다.”

“저위 공명에서 그 정도의 오차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지.”

제라드는 무대에 남은 은색 잔광을 오래 바라봤다. 놀라움은 숨겼지만 눈빛 속 계산은 숨기지 못했다.

“악보를 보관실로 넘겨 검증하겠다.”

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첫 공개 공명전 승리]
[관측자 증가: 137]
[숨은 공명 이상 감지]
[신규 퀘스트: 불협화음의 발신자를 찾아라]

마지막 문장 아래로 검은 파형 하나가 번졌다.

그 파형은 하진의 화살도 에드릭의 화염도 아니었다. 공명장이 깨진 순간 무대 바닥 아래에서 단 한 번 울린 낯선 박자.

하진은 관중석을 올려다봤다.

사람들은 아직도 방금 본 은색 화살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섞인 누군가가 그 박자를 남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였다.

오늘 무대에서 처음 울린 건 화살만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하진의 악보를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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