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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3화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3화: 교수의 귀

“거기 누구냐.”

청음 기록실 안쪽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낡은 오르간의 저음보다 낮았다.

하진은 악보를 접지 않은 채 문 앞에 섰다. 푸른 잉크 선이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미세하게 맥박쳤다. 손끝에는 밤새 말라붙은 피와 잉크가 함께 굳어 있었다.

“작곡과 하진입니다.”

잠깐의 침묵.

“학생 출입 금지 구역이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도 왔다면 더 나쁘군. 돌아가라. 여긴 자네가 마지막 소란을 부릴 무대가 아니다.”

문 너머에서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났다. 제라드 벨라시온 교수는 당장 문을 열고 하진을 내쫓을 생각인 듯했다. 평소라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러나 하진에게는 교수의 허락보다 먼저 붙잡아야 할 것이 있었다.

귀.

하진은 악보 첫 줄의 첫 음을 손끝으로 눌렀다.

웅.

소리는 아주 작았다. 하지만 기록실 안쪽의 오르간 파이프 하나가 낮게 대답했다. 하진이 두 번째 보정 기호를 짚자 닫힌 문 아래로 흰빛 한 줄이 흘러나왔다.

안쪽의 발소리가 멈췄다.

“방금 무슨 짓을 했지?”

“듣고 계시잖습니까.”

“마력 인장도 없는 학생이 어떻게 내 오르간을 건드렸나.”

“건드린 적 없습니다. 대기가 먼저 반응한 겁니다.”

문이 열렸다.

제라드 교수는 은빛이 섞인 머리를 단정히 넘긴 채 하진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은 차갑고 지쳐 있었다. 그러나 그 안쪽에는 방금 들은 한 음을 다시 계산하는 학자의 불안이 박혀 있었다.

“들어와라.”

교수는 몸을 비켜 주었다.

“단 한 번이다. 허튼수작이면 내가 직접 학사위원회로 끌고 간다.”

청음 기록실은 강의실이 아니라 해부실에 가까웠다. 벽에는 오래된 악보와 공명 기록판이 빼곡했고 중앙에는 검은 목재로 만든 오르간이 서 있었다. 파이프마다 작은 기록석이 박혀 있어 소리가 지나간 흔적을 빛으로 남겼다.

하진은 오르간 의자에 앉지 않았다.

그는 악보만 책상 위에 펼쳤다.

제라드 교수는 그 점을 먼저 보았다. 그의 시선이 하진의 손과 건반 사이의 거리를 재듯 움직였다.

“연주하지 않을 생각인가?”

“제가 건반을 누르면 교수님은 제 손가락부터 의심하실 테니까요.”

“자네 정도 학생에게 그런 의심은 사치다.”

“그럼 더 편하겠군요.”

하진은 책상 위에 놓인 회색 기록석 하나를 악보 옆으로 밀었다.

“제 몸에 마력이 없다는 건 교수님이 제일 잘 아실 겁니다. 이걸 켜 두시면 속임수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쉽겠죠.”

제라드의 눈썹이 꿈틀했다. 기록석은 사용자의 체내 마력 흐름을 감지하면 붉게 변하고 대기 에테르만 움직이면 흰빛을 남기는 물건이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기록석의 봉인을 풀었다.

“제목.”

교수가 악보 상단을 읽었다.

“평균율 마법 공명 공식 제1식이라. 자네가 이런 이름을 붙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자격은 결과가 정합니다.”

“오만하군.”

“퇴학당할 학생한테 예절을 기대하셨습니까?”

제라드의 손가락이 악보 위를 빠르게 훑었다. 그는 곧 비웃으려 했다. 하지만 첫 줄을 지나 두 번째 줄에 도달한 순간 웃음은 완전히 사라졌다.

“3도와 6도를 동시에 배치했군. 이건 붕괴한다.”

“기존 방식이면 그렇습니다.”

“기존 방식?”

“체내 마력을 억지로 붓는 방식 말입니다.”

하진은 첫 마디를 짚었다.

낮은 음이 방 안에 깔렸다. 오르간 건반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가장 굵은 파이프 안쪽에서 먼지가 떠오르며 소리를 만들었다.

기록석은 붉게 변하지 않았다.

하진이 다음 음을 짚었다. 두 번째 선율이 첫 번째 선율을 따라붙었다. 부딪치지 않았다. 서로의 어깨를 스치듯 지나간 뒤 정확한 지점에서 맞물렸다.

흰빛이 기록석 안쪽을 채웠다.

제라드 교수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불가능하다.”

“가능합니다.”

“마력이 없으면 악보는 빈 껍데기다.”

“그건 이 세계가 악보를 못 믿어서 그렇죠.”

교수의 눈이 번뜩였다. 모욕을 들은 사람의 눈이었다. 하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악보의 보정 기호를 하나 더 짚었다.

이번에는 세 음이 동시에 일어났다.

1도와 5도 사이에 숨어 있던 3도가 틈을 벌렸다. 그 위로 6도가 얇은 다리를 놓았다. 낡은 오르간이 스스로 숨을 들이쉬었다.

빛이 방 안에 번졌다.

그 빛은 화염처럼 뜨겁지 않았다. 얼음처럼 차갑지도 않았다. 먼지가 내려앉은 기록실의 공기를 맑게 씻어 내는 신성 계열의 광휘였다.

벽에 걸린 오래된 실패 악보들이 파르르 떨었다. 공명 기록판에는 하얀 선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스스로 푸가를 그렸다. 한 줄이 앞서 달리면 다른 줄이 뒤따랐다. 잠시 엇갈린 선들은 서로를 해치지 않고 같은 중심으로 돌아왔다.

제라드 교수는 지팡이 끝으로 기록판을 건드렸다.

“붉은 반응이 없다.”

그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체내 마력 유입 없음. 외부 저장 마력도 없음. 그런데 대기 에테르 유도율이...”

교수는 숫자를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하진은 마지막 마디 앞에서 손을 멈췄다.

“측정 방식이 틀렸습니다.”

“무슨 뜻이지?”

“교수님들은 학생의 마력만 봅니다. 악보가 대기를 어떻게 설득하는지는 안 보죠. 그래서 마력 많은 놈이 시끄럽게 밀어붙이면 좋은 음악이라고 착각합니다.”

“말을 조심해라.”

“틀린 말입니까?”

청음 기록실의 공기가 무겁게 눌렸다.

하진은 마지막 마디를 눌렀다.

오르간 파이프들이 한꺼번에 울렸다. 낮은 음과 높은 음이 서로를 삼키지 않았다. 각자의 길을 지나 하나의 중심으로 모였다. 기록실 천장에 박힌 에테르 등이 동시에 켜졌고 책상 위의 기록석은 깨끗한 흰빛으로 타올랐다.

그 순간 제라드 교수의 얼굴에서 분노가 사라졌다.

대신 더 위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학자의 침묵.

평생 믿은 공식이 눈앞에서 무너질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부정하거나 인정하거나. 아니면 다시 계산하거나.

제라드는 세 번째를 택했다.

그는 악보를 빼앗듯 들어 올렸다. 종이가 찢어질 듯 휘었지만 하진은 말리지 않았다. 교수의 눈동자가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미친 듯이 움직였다.

“이 악보를 어디서 얻었나.”

“썼습니다.”

“누가 도왔지?”

“루카스가 싼 잉크를 구해 줬습니다.”

교수의 눈가가 흔들렸다. 그 대답이 농담인지 사실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그는 다시 악보를 내려다보았다. 낯선 기호들. 그러나 틀림없는 질서. 기존 마법 음악이 금기처럼 피해 온 음정들이 오히려 서로를 떠받치고 있었다.

“자네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나.”

“제가 퇴학당하면 아카데미가 손해라는 의미죠.”

제라드 교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멀리서 종소리가 울렸다.

학사위원회 시작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하진은 그 소리에 맞춰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여기서 설득하지 못하면 다시 침대로 돌아간다. 기억은 남겠지만 이 공식도 또 펼쳐야 한다.

그는 지긋지긋했다.

“교수님.”

“말해라.”

“완벽하지 않은 음악을 싫어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제라드의 시선이 하진에게 꽂혔다.

“그래서 제 퇴학 서류를 올리셨겠죠. 공명 수치 0. 마력 반응 없음. 악보는 언제나 비어 있고 실기실 문도 못 여는 학생.”

하진은 악보를 교수 쪽으로 밀었다.

“그런데 방금 들으신 건 완벽했습니까.”

청음 기록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제라드 교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지팡이 끝이 바닥을 두드리자 문이 저절로 열렸다.

“따라와라.”

학사위원회 대기실에는 서기관과 조교 둘이 이미 서류를 펼쳐 두고 있었다.

복도 밖에서는 루카스가 안절부절못하며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하진을 보자마자 입을 벌렸다.

“살아 있었어?”

“아직은.”

“아직은이 뭐야! 너 새벽에 어디 끌려간 줄 알고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고!”

“심장은 멈추면 곤란하지.”

“농담할 때야?”

서기관이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통지서를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익숙할 정도로 차가웠다.

“작곡과 하진. 에테르 공명 수치 0. 반복된 지도 불응과 무단 출입 시도로 인해 본 위원회는 금일부로...”

쾅.

제라드 교수의 지팡이가 바닥을 찍었다.

대기실 전체가 조용해졌다.

“그 절차는 중지한다.”

서기관이 눈을 깜빡였다.

“교수님? 이미 상임위원 결재가 완료된 건입니다.”

“상임위원인 내가 재심사를 명령한다.”

“사유를 기록해야 합니다.”

“작곡과 하진의 기존 평가는 무효다. 이 학생은 체내 마력 공명 검사로 분류할 수 없다.”

조교 하나가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마력 공명 검사를 못 받는 학생이면 퇴학 사유가 맞지 않습니까?”

제라드의 시선이 조교에게 꽂혔다.

“못 받는 것이 아니라 필요 없는 방식으로 검증되었다.”

그 한마디에 대기실이 술렁였다.

제라드 교수는 하진의 악보를 서기관 앞에 내려놓았다. 푸른 잉크 선 사이에서 아직도 흰빛이 가늘게 뛰고 있었다.

“대기 에테르 유도식. 현행 교과 과정 바깥의 공명 분류다. 지금부터 이 학생의 퇴학 처분은 보류가 아니라 철회한다.”

서기관의 손에 들린 통지서 가장자리에서 희미한 균열이 생겼다.

하진의 시야 한복판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퇴학을 면하라]
[성공 조건 달성]
[루프 고정 해제]
[보상 정산 중...]

목덜미를 조이던 보이지 않는 올가미가 끊어졌다.

하진은 처음으로 시간이 앞으로 흐르는 감각을 느꼈다. 이 방. 이 냄새. 서기관의 무표정한 얼굴. 모든 것이 더 이상 반복의 시작점으로 끌려가지 않았다.

[신들의 작곡 시스템 기능이 확장됩니다.]
[신규 기능: 악보 실시간 분석]
[신규 기능: 에테르 오차 자동 표시]
[신규 슬롯: 저위 공명 변환 1칸]

푸른 격자가 허공에 펼쳐졌다.

하진이 본 모든 악보의 결함이 눈앞에서 숫자로 떠오를 것 같았다. 음 하나가 어디서 틀어지는지. 어떤 간격이 에테르를 밀어내는지. 어느 선율을 무기로 바꿀 수 있는지.

루카스가 조심스럽게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하진. 너 진짜 무슨 짓을 한 거야?”

하진은 대기실 밖을 보았다.

복도에는 어느새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낙제생의 퇴학이 철회되었다는 소문은 악보보다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호기심. 의심. 불쾌감. 그 시선들이 한꺼번에 하진에게 달라붙었다.

그중 하나는 유난히 날카로웠다.

금장 단추가 박힌 교복을 입은 귀족 학생이 복도 끝에서 하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옆 학생들의 수군거림을 끊듯 차갑게 웃었다.

“낙제생 주제에 교수님을 홀렸다고 들었다.”

루카스의 어깨가 움찔했다.

귀족 학생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실기 무대에서도 같은 짓을 할 수 있나 보지?”

하진의 눈앞에서 새 기능의 푸른 격자가 반짝였다. 격자 위로 날카로운 아르페지오 선율이 무기처럼 접혔다. 빠르게 오르내리는 음들이 화살촉처럼 정렬됐다.

그는 대답 대신 악보를 품 안에 넣었다.

“별거 아니야.”

하진은 웃었다.

“문 하나 연 거지.”

이번에는 시간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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