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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2화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2화: 평균율의 균열

“제1중앙 실기실은 본관 동쪽 끝이야. 근데 하진, 진짜 갈 거야?”

루카스는 거의 울상이 된 얼굴로 하진의 뒤를 쫓아왔다. 한 손에는 먹다 남긴 빵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낡은 가방끈을 붙잡은 꼴이 딱 도망치는 사고뭉치의 공범 같았다.

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품 안의 오선지 세 장이 아직 마르지 않은 잉크 냄새를 풍겼다. 지구의 대위법을 이세계 악보 위에 거칠게 얹은 첫 시도였다. 완벽하다고 말하기에는 조악했다. 그래도 이 세계의 단선율 마법 악보보다는 훨씬 나았다.

‘일단 소리가 필요해.’

머릿속으로 아무리 완벽한 화성을 굴려도 실제 에테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듣지 못하면 악보는 종이에 불과했다. 제대로 된 건반. 제대로 된 공간. 그리고 이 몸을 퇴학시키겠다고 결재한 교수의 귀.

그 세 가지가 필요했다.

본관 복도에 들어선 순간 하진은 첫 번째 벽을 만났다.

문마다 마법 인장이 박혀 있었다. 푸른 금속판 위에는 담당 교수와 사용 권한이 새겨져 있고 그 아래에는 악보처럼 얽힌 음각선이 흐르고 있었다. 학생들이 손을 대면 문은 짧은 화음을 울리며 열렸다.

하진이 손을 대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차갑게 식은 금속판이 손바닥을 밀어냈다.

“마력 인장 등록이 끊긴 건가.”

“끊긴 게 아니라 네 인장은 처음부터 거의 안 먹혔잖아.” 루카스가 목소리를 낮췄다. “하진, 제발 돌아가자. 조교한테 걸리면 내일 퇴학이 오늘 퇴학으로 앞당겨질 수도 있어.”

“그럼 확인할 수 있겠네.”

“뭘?”

“루프가 진짜인지.”

루카스의 얼굴이 굳었다.

하진은 제1중앙 실기실 앞에 멈춰 섰다. 문 위에는 제라드 벨라시온 교수의 이름이 각인되어 있었다. 작곡학 정교수. 학사위원회 상임위원. 원래 하진을 오래전에 포기한 인간.

하진은 품에서 악보를 꺼내 문틈에 끼웠다.

첫 음표가 금속 인장의 가장자리와 닿는 순간 붉은 경고음이 복도를 찢었다.

우웅!

“하진 학생!”

복도 끝에서 조교 둘이 뛰어왔다. 그중 하나가 이마를 짚으며 탄식했다.

“또 무단 출입입니까? 교수님께서 분명 접근 금지를 명하셨을 텐데요.”

또.

하진은 그 한 글자에 짧게 웃었다. 원래 몸의 주인이 얼마나 절박하게 이 문을 두드렸는지 알 것 같았다.

조교의 손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루카스가 변명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하진은 말리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건 변명이 아니라 결과였다.

다음 날 아침.

학사위원회 서기관은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퇴학 통지서를 펼쳤다. 좁은 대기실에는 잉크 냄새와 오래된 권위의 냄새가 났다.

“작곡과 하진. 에테르 공명 수치 0. 반복된 지도 불응과 무단 출입 시도로 인해 본 위원회는 금일부로 귀하의 재적을 말소합니다.”

종이가 손끝에 닿았다.

순간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감각이 왔다. 숨이 끊기고 시야가 검게 접혔다. 몸이 죽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루 전체가 얇은 악보처럼 찢겨 나가며 머릿속에 비명이 남았다.

하진은 낡은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현재 루프 횟수: 2회차]
[남은 시간: 23시간 59분]

그는 천장을 보다가 천천히 웃었다.

“좋아.”

죽음보다 끔찍한 감옥이라고 생각했던 하루가 실험실로 바뀌었다. 실패해도 기억은 남았다. 다치고 붙잡히고 잘려도 데이터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쾅!

방문이 열리기도 전에 하진이 먼저 말했다.

“루카스. 저급 공명석이랑 제일 싼 마법 잉크를 구해 와. 가능하면 폐기 직전 악보지도.”

문을 열던 루카스가 그대로 굳었다.

“너 방금 내가 들어올 줄 알고 있었어?”

“묻지 말고 움직여. 빵도 내려놔. 그거 팔면 잉크 한 병은 사겠지.”

“내 점심을 왜 네가 팔아!”

“내가 퇴학당하면 네 룸메이트 자리가 비어. 그럼 네가 혼자 방 청소해야 해.”

루카스는 치명적인 약점을 찔린 사람처럼 입을 다물었다. 잠시 뒤 그는 빵을 품에 숨기고 뛰쳐나갔다.

그날 하진은 기숙사 방을 실험실로 만들었다.

루카스가 구해 온 공명석은 탁구공만 한 회색 결정이었다. 마력 입문생들이 음정 고정 연습에 쓰고 버리는 물건이라고 했다. 폐기 악보지는 모서리가 타거나 잉크가 번진 것뿐이었지만 하진에게는 충분했다.

첫 번째 실험.

기존 마법 악보의 선율을 그대로 옮기자 공명석은 희미하게 떨었다. 1도. 5도. 다시 1도. 힘은 있었지만 선이 없었다. 소리가 대기를 움켜쥐는 대신 벽에 머리를 박고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이러니까 마력을 때려 붓지.”

하진은 깃펜을 세웠다.

두 번째 악보에는 3도를 넣었다. 공명석이 파르르 떨더니 검은 연기를 토했다.

“어? 어어? 터지는 거 아니야?”

“안 터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명석이 깨졌다.

파편 하나가 하진의 손등을 스쳤다. 핏방울이 올라왔지만 그는 손을 털지도 않았다. 공명석이 깨지기 직전 낸 비명 같은 고주파가 아직 귓속에 남아 있었다.

“3도 간섭을 제어 못 하는군.”

“그걸 지금 피 흘리면서 분석할 일이야?”

“당연하지. 방금 이 세계가 왜 재미없는지 이유가 나왔잖아.”

이세계 음악은 음을 겹치는 순간 마법 효율이 떨어졌다. 그래서 작곡가들은 겹치지 않는 길만 골랐다. 단선율이 안전했고 안전한 음악은 단조로웠다. 힘을 내기 위해서는 작곡이 아니라 체내 마력의 양에 기대야 했다.

하진에게는 그 반대가 길이었다.

세 번째 루프에서는 3도와 6도를 시험했다.

네 번째 루프에서는 7도를 얹었다가 악보지가 검게 타들어 갔다.

다섯 번째 루프에서는 두 선율을 교차시켰다. 공명석 네 개가 동시에 울다 하나씩 깨졌다. 루카스는 매번 처음 듣는 비명으로 방구석에 엎드렸고 하진은 매번 처음 보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다음 실험을 지시했다.

여섯 번째 루프의 늦은 밤.

하진은 책상 위에 깨진 공명석 가루를 줄지어 놓았다. 실패한 악보가 방바닥을 덮고 있었다. 손가락은 잉크와 피로 얼룩졌고 눈꺼풀은 모래를 매단 것처럼 무거웠다.

그때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바흐 평균율 데이터 변환을 진행합니다.]
[주의: 현지 에테르 주파수와 지구 평균율 사이에 0.38퍼센트의 누적 오차가 존재합니다.]
[대기 에테르 유도식 보정 기호를 추가할 경우 체내 마력 의존도를 낮출 수 있습니다.]

하진은 손을 멈췄다.

“그래. 그대로 베끼면 안 되는 거였어.”

바흐의 평균율은 인간의 귀와 악기를 위해 만들어진 정교한 타협이었다. 그러나 이 세계의 에테르는 인간의 귀보다 예민했다. 반음 하나가 미세하게 틀어지면 에테르는 화음을 조화가 아니라 충돌로 받아들였다.

하진은 악보의 음표 아래에 아주 작은 보정 기호를 추가했다.

첫 음을 미세하게 낮추고 다음 음을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밀었다. 서로 다른 파동이 좁은 문에서 부딪치지 않도록 한 줄은 먼저 지나가고 다른 줄은 뒤따르게 했다. 대위법의 두 선율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았다. 비켜 갔다가 다시 맞물렸다.

공명석이 빛났다.

이번에는 깨지지 않았다.

회색 결정 안에서 새하얀 선 하나가 생겨났다. 선은 둘로 갈라지고 다시 넷으로 나뉘었다. 작은 빛의 푸가가 결정 안쪽을 돌며 스스로 다음 음을 찾았다.

루카스가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진. 방금 네가 한 거…… 마법 맞지?”

하진은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마력 고갈 특유의 통증은 없었다. 몸속에서 빠져나간 힘도 없었다. 그런데 공명석은 분명히 빛나고 있었다.

[무마력 공명 반응 감지]
[대기 에테르 자율 유도율: 11.8퍼센트]
[신규 공식 후보: 평균율 마법 공명 공식]

하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직은 마법 흉내지.”

“그게 흉내면 진짜는 뭔데?”

“아카데미가 뒤집히는 것.”

하진은 마지막 장을 새로 꺼냈다. 이번에는 베끼지 않았다. 바흐의 뼈대 위에 이세계 에테르의 오차를 보정하고 낡은 마법 기호 사이에 대기 유도선을 심었다. 음표가 하나 늘어날 때마다 방 안의 먼지가 천천히 떠올랐다.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 잉크가 푸른빛으로 말랐다.

하진은 첫 장 상단에 제목을 적었다.

<평균율 마법 공명 공식 제1식>

낙제생의 필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날카로운 선이었다.

루카스는 침대 위에 걸터앉아 멍한 얼굴로 악보를 바라보았다.

“너 진짜 하진 맞아?”

순간 방 안이 조용해졌다.

하진은 깃펜을 내려놓았다. 원래 이 몸의 기억이 머릿속 한구석에서 작게 흔들렸다. 절망. 모멸. 닫힌 문 앞에서 수없이 돌아섰던 발걸음.

“맞아.”

그는 짧게 대답했다.

“다만 이제 더는 얻어맞고만 있지는 않을 거다.”

루카스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구겨진 주머니를 뒤져 낡은 열쇠 모양 장식을 하나 꺼냈다.

“제라드 교수님은 새벽마다 본관 북쪽 청음 기록실에 가. 낡은 오르간을 직접 관리하거든. 학생 출입 금지 구역이라 문은 못 열겠지만 이건 하급 조교들이 쓰는 복도 통행패야. 훔친 건 아니고 빌린 거야. 아주 오래 빌린 거.”

“그 정보를 왜 이제 말해?”

“네가 교수님한테 달려들 때마다 말리느라 바빴으니까!”

하진은 통행패를 받아 들었다.

제라드 교수는 완벽하지 않은 음악을 증오한다고 했다. 그래서 하진은 그에게 가야 했다. 이 세계의 권위가 진짜 음악을 못 알아본다면 짓밟고 넘어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완벽에 집착하는 인간이라면 다르다. 완벽한 공명을 들은 순간 외면할 수 없을 테니까.

“루카스.”

“왜.”

“살아남으면 네 빵값은 갚아주지.”

“당연히 갚아야지! 이자도 붙여서!”

새벽의 본관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복도 통행패는 세 번 낮게 울린 뒤 북쪽 복도의 작은 문을 열어 주었다. 하진은 완성된 악보를 접지 않고 품에 받쳐 들었다. 접히는 선 하나에도 보정 기호가 틀어질 수 있었다.

청음 기록실 앞에 도착했을 때 문 너머에서 낮은 오르간 음이 울리고 있었다.

낡고 엄격한 음.

단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노인의 호흡이 그 안에 있었다.

하진은 악보 첫 장을 펼쳤다. 푸른 잉크 선 사이로 아주 작은 흰빛이 맥박처럼 뛰었다.

그가 첫 음을 손끝으로 짚는 순간 문 너머의 오르간 소리가 뚝 끊겼다.

안쪽에서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냐.”

하진은 웃지 않았다.

이번에는 문을 두드릴 필요가 없었다.

듣게 만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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