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천재 식물학자

2화: 지력을 낭비하는 멍청한 마법사들
새벽빛이 온실 유리창에 번졌을 때 썬 플라워는 더는 시들어가는 꽃이 아니었다.
둥근 잎사귀마다 황금빛 맥이 천천히 뛰고 있었다. 밤새 움츠러들었던 꽃받침은 단단하게 펴졌고 꺾였던 줄기에는 손끝으로 눌러도 곧장 되돌아오는 탄력이 생겼다.
로완은 화분 가장자리의 흙을 손톱으로 살짝 긁어 냄새를 맡았다.
“암모니아 독성은 빠졌고 산도도 중성 근처다. 뿌리 호흡도 돌아왔어.”
한스가 잠을 설친 얼굴로 입을 벌렸다.
“그걸 냄새만 맡고 안다고?”
“잎이 말해 주잖아.”
로완은 잎 뒷면을 살폈다. 기공 주변에 남아 있던 회색 얼룩이 옅어지고 있었다. 질소가 들어갔고 엽록소 합성이 다시 시작됐다는 뜻이었다.
그때 온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감독관이 펠릭스보다 먼저 뛰어들어왔다. 그는 살아난 썬 플라워를 보자마자 기쁨 대신 불쾌한 의심을 얼굴에 띠었다.
“이럴 리가 없다. 천민 조수가 무슨 수로 영초를 되살린단 말이냐. 금지 주술을 썼겠지!”
펠릭스는 말없이 화분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밤의 공포 대신 탐욕에 가까운 기대가 차오르고 있었다.
“정말 살아났군.”
감독관은 로완의 멱살을 잡으려 했다.
“무슨 독을 썼는지 말해라. 심사장에서 들통나기 전에 네 죄를 고백하면 목숨만은 살려 줄 수도 있다.”
로완은 물러서지 않았다.
“독이면 잎끝부터 타야 합니다. 금지 주술이면 흙에 마나 잔류가 남겠죠. 이건 굶주린 식물에게 질소와 칼슘을 공급한 결과입니다.”
“또 그 이단 용어냐!”
펠릭스가 손을 들었다.
“그만. 오늘 심사만 통과하면 된다. 이 조수는 내가 데려가겠다.”
감독관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도련님. 저런 놈을 광장에 세우면 가문 체면이 상합니다.”
“내 꽃을 살린 건 네 채찍이 아니라 저놈의 오물 물이었다.”
펠릭스의 한마디에 온실이 얼어붙었다.
로완은 화분 받침 아래로 흘러나온 물기를 닦아 냈다. 심사장까지 가는 동안 뿌리가 흔들리면 밤새 회복한 뿌리털이 다시 찢어질 수 있었다.
“들고 뛰지 마십시오. 뿌리털이 다시 붙는 중입니다.”
“내게 명령하느냐?”
“꽃을 살리고 싶으면요.”
펠릭스는 이를 악물었지만 이번에는 반박하지 않았다.
약초 심사 광장은 이미 소란스러웠다.
귀족 생도들은 저마다 화려한 화분을 들고 줄을 서 있었다. 은색 룬이 박힌 심사대 주변에는 교수들이 모여 있었고 가운데에는 영초의 마나 순도를 재는 투명한 수정 기둥이 서 있었다.
문제는 화분들이었다.
로완의 눈에는 축제처럼 꾸며진 광장이 병동처럼 보였다.
보랏빛 덩굴은 잎이 안쪽으로 말렸고 붉은 약초는 줄기 밑동이 물러 있었다. 은가루가 뿌려진 흙은 겉만 번쩍였을 뿐 손가락 하나 들어가지 않을 만큼 굳어 있었다.
어떤 생도는 시든 풀 앞에서 양손으로 푸른 마나를 쏟아붓고 있었다.
“버텨라. 버티란 말이다!”
마나가 닿을 때마다 잎 가장자리가 검게 오그라들었다. 약초는 빛을 받아 살아나는 대신 더 깊이 말려 들어갔다.
로완은 저도 모르게 앞으로 나갔다.
“멈추십시오. 그건 회복이 아니라 목을 조르는 짓입니다.”
광장 한복판의 시선이 일제히 꽂혔다.
“뭐라고?”
마나를 넣던 생도가 고개를 돌렸다. 붉은 망토의 귀족이었다.
“네놈은 펠릭스의 온실에서 기어 나온 조수 아닌가. 감히 누구에게 훈수냐.”
“잎이 안쪽으로 말린 건 수분 흡수 장애입니다. 줄기 밑이 무른 건 과습이고요. 거기다 마나를 더 밀어 넣으면 세포가 터집니다.”
“세포?”
생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전까지 웅성거리던 교수석마저 싸늘하게 조용해졌다. 감독관은 그 틈을 기다렸다는 듯 채찍을 들었다.
“보십시오! 이놈이 심사장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로완은 주변 화분을 훑어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곳의 마법사들은 식물을 살아 있는 생명으로 보지 않았다. 마나를 담는 그릇으로만 보았다. 그릇이 깨졌는지 썩었는지 굶주렸는지는 보지 않고 무조건 더 밝은 빛만 부어 넣었다.
“당신들은 지력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로완의 목소리가 광장에 선명하게 울렸다.
“영초가 마나를 담으려면 먼저 몸을 만들어야 합니다. 잎과 줄기와 뿌리가 버틸 재료도 없는데 마나만 밀어 넣으니 고사하는 겁니다.”
“천한 놈이 아카데미 식물학을 논한다!”
“식물학이 아니라 관찰입니다. 저 화분들은 흙이 죽었습니다. 물은 고이고 공기는 막혔고 영양은 빠져나갔습니다. 그 상태에서 마나를 넣는 건 병자에게 밥 대신 독한 술을 들이붓는 짓입니다.”
소란이 커지자 심사대 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멈추게.”
회색 로브를 입은 심사 교수가 다가왔다. 그의 지팡이 끝에는 작은 금빛 저울 장식이 달려 있었다.
“펠릭스 시엘버그. 네 조수가 맞나?”
펠릭스는 잠깐 망설였다.
“제 온실에서 일하는 자입니다. 하지만 저 꽃을 살린 것도 사실입니다.”
교수의 눈이 썬 플라워에 닿았다. 그는 눈썹을 조금 치켜올렸다.
“좋다. 말이 많으니 먼저 검사하지. 이 조수가 떠든 이론이 헛소리인지는 결과로 보면 되겠군.”
감독관이 급히 끼어들었다.
“교수님. 금지 주술 검사부터 해야 합니다.”
“당연히 한다.”
펠릭스는 조심스럽게 화분을 심사대에 올렸다. 로완은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에 땀이 배는 것을 느꼈다.
처방은 맞다. 질소 결핍을 보정했고 산도를 잡았고 뿌리 주변에 숨구멍도 열었다. 다만 이 세계의 마도구가 식물의 회복을 어떤 방식으로 읽어 낼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수정 기둥 아래의 룬이 켜졌다. 광장에 모인 시선이 한꺼번에 썬 플라워로 쏠렸다.
처음에는 희미한 금빛이었다. 곧 잎맥에서 솟은 빛이 수정 기둥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나선형으로 회전했다. 황금빛 오라는 어지럽게 폭주하지 않았다. 맑은 물줄기처럼 일정하게 흘렀다.
심사 교수의 표정이 변했다.
“마나 순도 상급.”
광장이 술렁였다.
수정 기둥의 빛은 멈추지 않았다. 두 번째 눈금과 세 번째 눈금을 지나 꼭대기 가까이 올라갔다. 금빛 저울 장식이 떨리며 작은 파열음을 냈다.
“최상급…… 아니 안정성 수치가 이상하다. 강제 주입 흔적이 없다.”
비웃던 생도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썬 플라워는 심사대 위에서 활짝 피었다. 꽃잎 가장자리마다 금가루 같은 빛이 맺혔고 중심부의 씨방에서는 작은 태양처럼 둥근 오라가 떠올랐다. 그 빛은 교수들의 로브와 생도들의 얼굴을 부드럽게 물들였다.
감독관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그럴 리 없습니다! 밤새 저 천민이 수작을 부린 겁니다!”
로완이 말했다.
“흙을 검사하십시오. 마나 잔류 대신 완숙 부엽토와 석회 가루가 나올 겁니다.”
교수는 조교에게 손짓했다. 흙 한 줌이 은 접시에 담겼고 푸른 시약이 떨어졌다. 시약은 검게 변하지 않았다. 대신 옅은 녹색으로 번졌다.
“금지 주술 반응 없음.”
교수가 낮게 중얼거렸다.
“질소 계열 반응이 강하군. 칼슘성 광물도 섞여 있다.”
로완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마나는 식물에게 힘입니다. 하지만 그 힘을 담을 잎과 줄기가 없으면 독이 됩니다. 썬 플라워가 살아난 건 마나를 더 받은 게 아니라 마나를 견딜 몸을 되찾았기 때문입니다.”
심사 교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럼 네가 건드렸다는 대지 룬은 무엇이냐. 룬이 작동했다면 마법을 쓴 것이 아닌가.”
“마나를 밀어 넣은 게 아닙니다. 흙 속의 물과 이온이 뿌리로 천천히 이동하도록 흐름을 정돈했습니다. 대지 룬을 성장 가속 장치처럼 쓰면 식물이 찢어집니다. 하지만 삼투압을 보조하는 밸브처럼 쓰면 뿌리가 필요한 만큼만 받아들입니다.”
교수는 곧장 반박하지 못했다.
로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수정 기둥의 최상급 판정과 금지 주술 반응 없음이라는 결과는 누구도 지울 수 없었다.
펠릭스는 심사대 앞에서 굳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 로완을 도구처럼 보던 눈이 달라져 있었다. 이해는 못 해도 결과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는 눈이었다.
“합격.”
심사 교수의 선언이 떨어졌다.
“펠릭스 시엘버그의 썬 플라워는 이번 졸업 약초 심사 최상급 표본으로 기록한다. 단, 재배 과정에 관한 별도 보고를 제출하게.”
펠릭스의 어깨가 크게 흔들렸다. 광장 곳곳에서 놀란 숨소리가 터졌다.
감독관은 채찍을 쥔 채 뒷걸음질쳤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목숨을 쥐고 흔들 수 있다고 여겼던 조수가 교수들의 시선 한가운데 서 있었다.
로완은 그 시선들이 달갑지 않았다. 살아남았다는 안도보다 더 큰 것이 가슴 밑바닥에서 솟았다.
이 세계의 약초원 전체가 썩어 있다.
한 송이를 살린 것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었다.
그 순간 광장 뒤편의 교수석에서 한 여인이 일어섰다.
은빛이 섞인 연녹색 머리카락. 길게 뾰족한 귀. 나뭇잎 무늬가 수놓인 교수 로브.
실비아 폰 시엘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로완 앞으로 다가왔다. 손에는 검게 마른 잎 하나가 들려 있었다. 썬 플라워와는 전혀 다른 냄새가 났다. 축축하고 오래된 부패의 냄새였다.
“조수 로완.”
광장의 모든 소리가 잦아들었다.
“이 잎을 보고 말해 줄 수 있나. 이것도 마나 부족이 아니라고 생각하나?”
로완은 잎을 받아들었다.
잎맥 주변이 검고 가장자리는 물러 있었다. 표면에는 축축한 반점이 퍼져 있었고 잎자루 끝에는 썩은 뿌리에서 올라온 듯한 탁한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는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이건 단순한 결핍이 아니었다.
‘뿌리가 숨을 못 쉬고 있다.’
실비아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아카데미의 수호 신목에서 떨어진 잎이다.”
로완이 고개를 들었다. 광장 위의 황금빛 썬 플라워 뒤로 더 큰 문제가 그림자처럼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