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아카데미의 천재 식물학자1화

아카데미의 천재 식물학자

아카데미의 천재 식물학자

시놉시스

국립수목원 희귀식물 복원 연구원 정태의, 아카데미의 천대받는 말단 약초 조수 로완으로 환생한다. 주술적 마나 주입에만 의존해 썩어가던 대륙의 마법 영초들을 현대의 육종학과 토양 질소 순환 이론으로 치료 및 복원하며 대마법사들마저 줄을 서게 만드는 대식물학자의 아카데미 성공기.

1화: 썩어가는 썬 플라워와 질소(Nitrogen) 결핍

비릿하고도 눅눅한 썩은 부엽토 냄새였다.

“하, 헉……!”

정태의는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으키며 흙 묻은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흙먼지가 뽀얗게 묻은 굳은살이 박인 작은 손. 현대식 스마트 온실 통제 장치도 백두산 정상 부근의 매서운 칼바람도 보이지 않았다.

사방은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푸른 안개가 감도는 신비로운 정원이 펼쳐진 고풍스러운 목조 온실 내부였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 왔다. 흩어져 있던 생소한 기억의 파편들이 정태의의 뇌리에 빠르게 스며들었다.

국립수목원 희귀 고산 식물 복원 책임 연구원이자 유전 육종학 박사였던 정태의. 백두산 천지 인근의 멸종 위기종 식물 생태를 조사하던 중 돌풍과 함께 내리친 날카로운 낙뢰에 직격당했던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분명 즉사했을 터였다.

그런데 다시 눈을 뜬 곳은 마법 문명이 대륙을 지배하는 판타지 세계의 명문, 로웰 마법 아카데미.

그는 아카데미 후원의 황폐해진 약초식물원에서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며 채찍질을 견디던 말단 약초 조수 ‘로완’의 몸속에 들어와 있었다.

“야! 거기 뒹굴고 있는 천민 녀석! 일어나지 못해!”

벌컥!

온실의 두꺼운 참나무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화려한 은색 자수가 놓인 푸른 제복의 청년이 거칠게 걸어 들어왔다. 로웰 아카데미의 귀족 학생이자 내일 있을 약초 심사를 앞둔 생도 펠릭스였다.

그의 등 뒤로는 험악한 인상의 온실 감독관이 채찍을 쥔 채 씩씩대며 따라 들어왔다.

“펠릭스 도련님, 진정하십시오! 어서 이 녀석들에게 매질을 하여 다그치겠습니다!”

감독관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로완을 향해 채찍을 치켜들었다.

로완은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지만 시선만은 펠릭스의 품에 안겨 있는 둥근 화분으로 향했다.

화분 안에는 황금빛 마나를 내뿜는다는 전설의 마법 영초, 썬 플라워(Sun Flower)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상태는 참담했다.

영롱한 황금빛이어야 할 잎사귀들은 끝부분부터 누렇게 변색되어 일그러져 있었고 새로 돋아난 줄기는 자라지 못해 비틀린 채 아래로 꺾여 있었다.

영초 내부에서 뿜어 나오던 마나의 오라(Aura)는 희미하다 못해 썩어가는 시궁창의 가스처럼 탁한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내일이 졸업 약초 심사란 말이다! 그런데 내 썬 플라워가 갑자기 이 지경이 되다니! 너희 하급 조수 놈들이 비약 관리를 엉망으로 한 탓이 아니더냐!”

펠릭스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도련님, 진정하십시오. 제가 지금 당장 정화의 마나를 주입해 생기를 불어넣겠습니다!”

곁에 서 있던 중급 마법사 등급의 감독관이 손끝에 푸른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는 썬 플라워의 줄기를 향해 강제로 고부하의 마나 에너지를 때려 박으려 했다.

로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미쳤나! 저기서 마나를 더 때려 박으면 삼투압 때문에 내일 아침이 되기도 전에 뿌리 세포막이 찢어져 완전히 타 죽어!’

로완의 전문가적 감각은 잎의 누런 변색 부위와 꺾인 줄기의 형태만으로 단번에 병명을 진단해 냈다.

질소 결핍(Nitrogen Deficiency).

식물의 단백질 합성 및 엽록소 형성에 필수적인 질소 성분이 흙 속에 단 1mg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마법사들은 마법 영초를 재배할 때 지력이나 화학적 유기 배합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마나만을 강제로 주입해 성장을 촉진해 왔다.

그 결과 흙의 미생물 생태계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식물은 에너지를 담을 뼈대, 즉 질소 단백질 구조가 없어 썩어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멈추십시오!”

로완이 거칠게 외치며 감독관의 마나 주입 경로를 몸으로 막아섰다.

“어허, 저 천민 녀석이 정녕 매를 벌고 싶은 게냐!”

감독관이 눈을 부릅떴다.

“지금 마력을 더 쏟아부으시면 저 썬 플라워는 오늘 밤 안으로 완전히 말라 비틀어져 죽습니다. 잎끝이 누렇게 변한 것은 땅속의 질소 기운이 완전히 말랐기 때문입니다. 식물이 단백질을 만들 재료가 없는데 마력이라는 거대한 불을 붙이려 하니 잎이 타 들어가는 것입니다!”

로완의 거침없고 논리적인 일갈에 펠릭스가 멈칫했다.

“질소……? 단백질? 그게 대체 무슨 이단 신앙의 용어란 말이냐?”

“쉽게 말씀드리면 굶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밥은 주지 않고 강제로 칼을 쥐여주며 싸우라 다그치는 격입니다. 지금 썬 플라워에게 필요한 것은 마나가 아니라 흙의 기운을 돋우고 줄기를 키워낼 영양제입니다.”

“하! 비웃음이 나오는구나. 일개 잡역 조수 주제에 아카데미의 대마법사들이 세운 식물학 규율을 부정하려 들어?”

감독관이 채찍을 털었다.

“만약 제 말대로 해서 내일 아침까지 이 썬 플라워가 황금빛 잎사귀를 되찾지 못한다면 제 다리를 부러뜨려 묘목장의 거름으로 던지셔도 좋습니다. 다만, 실패한다면 펠릭스 도련님은 내일 졸업 심사에서 낙제하시게 되겠지요.”

로완의 단호한 시선이 펠릭스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꿰뚫었다.

어차피 내일이면 낙제할 처지였다. 밑져야 본전이었다.

펠릭스는 마른침을 삼키며 감독관을 제지했다.

“……좋다. 열 시간을 주마. 만약 내일 아침까지 이 꽃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네 놈의 목숨은 내 것이 될 것이다.”

시간이 없었다.

로완은 즉시 묘목장 구석으로 달려갔다.

온실 뒤편에 버려져 있던 삭은 낙엽 진흙, 즉 완숙 부엽토와 짐승의 배설물이 썩어 암모니아 향을 풍기는 유기 폐기물 액체를 통에 담았다.

현대의 질소 성분을 고농도로 함유한 천연 질소 액비(Liquid Fertilizer)였다.

하지만 이것만 주입하면 강한 산성 독성 때문에 식물이 충격을 받는다.

로완은 약초원 구석의 흙더미에서 조개껍질과 달걀 껍데기와 유사한 백색 석회 가루를 긁어모아 섞었다. 토양의 산도(pH)를 중성으로 중화하여 질소 흡수율을 극대화하는 탄산칼슘(CaCO3) 보강 공정이었다.

그는 약초원 조수 한스를 불러 지시했다.

“한스, 이 영양액을 물과 1대 100의 비율로 묽게 섞어서 화분 가장자리에 부어라. 절대 줄기에 직접 닿게 해서는 안 된다.”

“로, 로완아…… 정말 이 썩은 오물 물을 영초에 붓는단 말이냐? 학장님이 아시면 교수대에 매달릴 일이다!”

“살고 싶으면 얼른 해!”

로완은 화분 바닥의 흙을 미세한 가지로 쪼아 공기 구멍(에어레이션)을 뚫어주었다.

뿌리가 숨을 쉴 수 있는 최소한의 기공을 확보한 뒤, 조제한 천연 질소 영양액을 서서히 주입했다.

영양액이 주입되자 로완은 화분 흙 위에 새겨진 희미한 대지 정화의 룬(Rune) 문양을 손끝으로 톡 건드렸다.

미세한 마력의 진동이 삼투압 작용을 촉진하여 흙 속에 스며든 질소 이온과 수분이 썬 플라워의 미세한 잔뿌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수축해 있던 식물의 세포막이 질소 단백질 성분을 빨아들이며 탱탱하게 차오르는 미세한 유기적 움직임이 로완의 눈끝에 잡혔다.

‘됐다. 질소 공급 완료. 이제 엽록소가 살아날 차례다.’

세 시간 뒤.

온실 구석에서 횃불을 밝히고 대기하던 펠릭스와 감독관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완전히 누렇게 말라비틀어져 죽어가던 썬 플라워의 잎사귀 끝부분에서 거짓말처럼 노란빛이 걷히며 파릇파릇한 엽록소의 초록빛 생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뒤틀렸던 줄기는 꼿꼿하게 허리를 폈고 잎사귀의 기공이 열리며 은은하고 영롱한 황금빛 마나의 입자들이 온실 내부를 안개처럼 아름답게 수놓기 시작했다.

“이, 이럴 수가…….”

펠릭스가 무릎을 꿇으며 화분을 받쳐 들었다.

신전의 성수나 대마법사의 축복도 없이 오직 썩은 낙엽 물과 하얀 석회 가루를 섞어 부었을 뿐인데 죽어가던 영초가 완벽하게 만개한 것이다.

로완은 흙 묻은 삽을 어깨에 걸치며 차분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마법과 미신에 의존해 썩어가던 이 이세계의 대지 위에 대한민국 최고의 육종학 박사 정태의가 그리는 위대한 녹색의 기적이 비로소 첫 번째 이파리를 활짝 틔워 올리는 서막이었다.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표지소설
연재중 5%
#아카데미#판타지#음악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평생 남의 이름 뒤에 숨어 곡을 쓰다 과로사한 무명 작곡가 강하진이, 음악이 마법이 되는 판타지 아카데미의 마력 제로 낙제생 하진으로 빙의한다. 퇴학 직전 24시간 루프와 [신들의 작곡 시스템]을 이용해 지구의 화성학과 거장들의 선율을 대기 에테르 유도식으로 변환하며, 악보 한 장으로 아카데미와 제국을 뒤흔드는 천재 작곡가의 대마법 성장기.

7화2026.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