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은 화학으로 합니다

86화: 하이드로겔 나노 전극과 생체 친화성
에델가드 서부의 임시 연금 연구실 내부. 유리창 너머로 아침 안개가 깔린 세계수의 뿌리들이 기괴하게 뒤엉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실험대 위에는 여왕에게 하사받은 비취색 세계수 정화 수액 결정과, 아카데미에서 가져온 초전도 유기 실리카 용액, 그리고 전도성 유기 모노머(Monomer) 시약들이 복잡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원장님, 세계수의 생체 외피 분석 결과입니다. 예상대로 세계수의 마동 경로인 '마정 도관(Mana Vessel)' 세포막은 고유의 부전하(Negative Charge)를 띤 지질 및 단백질 층으로 덮여 있습니다. 일반적인 구리나 은 같은 인공 금속선을 그대로 갖다 대면 정전기적 척력으로 인해 마력 저항이 수십만 오옴(Ω)까지 튀어버리고, 접합부에 강한 국소적 열량이 발생해 세포가 통째로 괴사하게 됩니다."
하나가 정밀 렌즈 스크린을 짚으며 설명했다.
세계수의 마력 도관과 인간의 마도선 간의 임피던스 불일치(Impedance Mismatch)와 생체 거부 반응. 이것은 현대 의공학의 '생체 전극(Bio-electrode)' 삽입술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신경 자극 저항 문제와 정확히 동일한 물리적 장벽이었다.
"생체 조직이 금속을 외부 침입자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해결책은 하나뿐입니다. 금속 전극 표면에 세계수의 세포와 정확히 똑같은 '친생체성 하이드로겔(Biocompatible Hydrogel)' 피막을 합성하여 입혀주는 겁니다. 금속이 아니라 살아있는 세포 그 자체로 보이게 속이는 거죠."
우현이 비커에 세계수 수액을 넣고 서서히 용해했다.
수액 내부에 풍부하게 함유된 고분자 글루칸(Glucan) 사슬들은 생체 친화성을 담당하는 최적의 천연 고분자 매트릭스였다. 우현은 여기에 전도성을 부여하기 위해, 분자 내부에 콘쥬게이션 이중 결합(Conjugated Double Bonds)을 지녀 전자가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전도성 유기 모노머'를 배합하고, 남부의 황산 아연을 가교제 촉매로 투하했다.
"전도성 고분자 그라프트 중합(Graft Polymerization) 공정을 개시한다. 알렉스, 푸른색 활성화 마나 주파수를 10초간 방출해라."
우현의 어깨 위에 있던 다람쥐 알렉스가 비커 입구로 고개를 들이밀더니, 녀석의 볼따구와 꼬리 끝에서 맑고 투명한 청색 마력 스파크를 용액 안으로 탁 쏘아 보냈다.
파지직!
스파크가 용액에 동조되는 순간, 상온에서는 결코 결합하지 않던 천연 글루칸 사슬과 전도성 유기 분자들이 화학적으로 동시 공유 결합을 형성하며 그물망처럼 얽히기 시작했다. 점성이 낮던 맑은 액체는 급격히 부풀어 오르며, 말랑말랑하면서도 검푸른 빛을 띠는 고밀도 하이드로겔(Hydrogel) 상태로 연성되었다.
우현은 이 겔 조각을 꺼내 정밀 전도도 측정기에 연결했다.
"수분 함유량 80%, 전도성 지수 1.2 x 10^3 S/cm. 금속과 동등한 전자 이동도를 가지면서도, 생체 세포막과 완벽하게 물리적 동화가 가능한 '생체 전도성 하이드로겔 나노 전극(Bio-Conductive Hydrogel Electrode)'이다."
우현은 이 부드러운 겔 패치를 얇은 은색 유기 실리카 필름 위에 증착하여 단단하게 접합했다. 이로써 자연의 세계수 수액과 인간의 실리카 반도체 회로를 직접 잇는 기적의 하이브리드 소자가 완성되었다.
다음 날 아침, 요정림의 시조라 불리는 세계수 '에델 가르디아'의 뿌리 제단 앞.
루미니아 여왕과 길도르 장로, 그리고 수십 명의 엘프 고위 의원들이 긴장한 눈빛으로 모여들었다. 제단 중앙에는 세계수의 뿌리에서 뻗어 나온 굵은 생명 마나 도관 세포 조직이 초록색 액체를 머금은 채 노출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아카데미의 신형 스마트 정류 기계 퓨즈 박스가 놓여 있었다.
"그대의 그 말랑말랑한 겔 덩어리가 정말 세계수와 아무런 거부반응 없이 공조한다는 말이오? 직접 증명해 보이시오."
길도르 장로가 회의적인 투로 지팡이를 바닥에 짚으며 우현을 채근했다. 우현은 대답 대신 검푸른 하이드로겔 패치를 세계수의 초록색 도관 세포 조직 위에 조심스럽게 밀착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