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은 화학으로 합니다

87화: 계면 저항의 소멸과 엘프 장로의 항복
스으으으으—
검푸른 하이드로겔 패치가 세계수의 생명 마나 도관 표면에 밀착되는 순간, 회의장에 흐르던 공기는 조용히 굳어졌다. 엘프들은 혹여나 세계수가 인공 전극을 거부하며 마력 역류 폭주를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우현이 장치에 마력 연결 스위치를 올리자, 모니터 프리즘 스크린 위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수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계면 저항 측정 개시…… 0.001오옴(Ω)! 마력 차단 장벽(Impedance Barrier)이 사실상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생체 거부 반응 지수, 제로(0)입니다!"
하나의 흥분 섞인 감격 어린 목소리가 제단 주위를 울렸다.
말랑말랑한 하이드로겔 내부의 세계수 유기 고분자 사슬들이 세계수의 생체 외피를 완벽하게 감싸 안으며, 마치 원래 세계수의 일부분이었던 것처럼 유연하게 융합되었다. 동시에 겔 내부에 가교된 전도성 고분자 체인들이 세포 속의 자유 전자와 마나 이온들을 유도하여, 은색의 실리카 필름 회로망으로 어떠한 전기적 저항도 없이 흘려보냈다.
고오오오오오—!
세계수의 맑은 비취색 생명력 마나와 아카데미 정류 기계의 청색 유도 마나가 하이드로겔 접합부에서 아름다운 나선형 그라데이션을 그리며 서로를 집어삼키듯 섞여 들었다. 인공 기계가 가동을 시작했음에도 접합부에는 열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고, 도관 세포의 손상도 완벽히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인 0%에 고정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제단 상부에 매달려 있던 세계수의 수만 개의 나뭇잎들이 일제히 기분 좋은 비취색 빛을 발산하며 사각사각 바람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에너지가 유실 없이 완벽하게 정류되어 주입되자, 세계수 스스로가 영양과 마력을 공급받는 새로운 루트를 환영하는 듯한 기적적인 생명 반응이었다.
"이…… 이건 정령과의 조율이 아니오. 세계수 스스로가 이 차가운 기계를 자신의 새로운 뿌리 중 하나로 완벽하게 받아들인 것이오!"
길도르 장로가 충격에 휩싸여 지팡이를 떨어뜨렸다.
엘프들의 전통적인 정령 마법은 세계수와 대화하고 부탁하여 마나의 흐름을 조율하는 간접적이고 영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우현은 아예 세포 수준에서 세계수와 인공 전자기망을 완벽하게 '물리화학적'으로 하이브리드 결속해 버린 것이다. 이는 엘프의 고대 신화에서도 감히 상상하지 못한, 기계와 생명이 완전한 일체(Integration)를 이룬 경지였다.
"장로님, 아직도 제 연성물이 세계수의 생체 마력을 흐트러뜨리는 잡석으로 보이십니까?"
우현이 검은 하이드로겔 패치와 기계를 가리키며 덤덤하게 물었다.
길도르 장로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바닥에 떨어진 지팡이를 짚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하지만 무겁게 무릎을 굽혀 우현의 발앞에 고개를 숙였다.
"……아니오. 내 생각이 좁았소. 그대의 학문은 단순히 쇠와 돌을 만지는 기술이 아니라, 생명의 경계마저 허물어트리는 신계의 연금술이오. 정령 장로회의 이름으로, 그대를 요정림의 수석 연금 고문관으로 인정하고 깊은 경의를 표하겠소."
길도르의 진심 어린 항복에, 회의장의 엘프 장로들과 의원들은 일제히 기립해 인간 현자 우현을 향해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루미니아 여왕 역시 왕좌에서 일어나 우현의 손을 정중히 감싸 쥐었다.
"고맙소, 자문관 우현. 이 생체 전극 덕분에 이제 우리 요정림은 세계수의 건강을 실시간으로 관리하고, 대륙의 모든 지역과 거부반응 없이 전력을 공유할 수 있는 기틀을 닦았소. 요정림의 역사에 그대의 이름이 영원히 새겨질 것이오."
이로써 우현은 제국 황실의 수석 자문관에 이어, 엘프 왕국 최초의 수석 연금 고문관 지위까지 동시에 쟁취하게 되었다. 절대합성의 학문은 인간과 이종족의 경계를 허물고, 대륙 전체를 지배하는 최고의 권위로 확고히 우뚝 서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