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은 화학으로 합니다

77화: 패시베이션 코팅과 사령관의 사과
자신들의 주 무기인 산성 타액 브레스가 전혀 통하지 않는 것에 비룡들은 공중에서 혼란에 빠져 날개를 파닥였다. 분사된 백회색 피막 위에서 흘러내린 산성 액들은 성벽 아래의 마른 흙 바닥을 지글지글 끓게 만들 뿐, 요새의 물리적인 방어선에는 긁힘 하나 내지 못했다.
"크에에에엑!"
분노와 당황에 찬 비룡들의 우두머리가 날개를 크게 꺾으며 날카로운 발톱을 앞세우고 성벽 위로 돌진해 왔다. 공중 전을 포기하고 강력한 물리적 육탄전으로 아군의 발리스타 진지를 짓밟으려는 심산이었다.
"어림없는 소리! 성벽의 지지력이 돌아왔다! 기갑기사단, 돌격하라!"
반스 장군이 대검을 뽑아 들고 성벽 난간을 딛고 공중으로 솟구쳤다.
이전의 성벽이었다면 힘껏 딛는 순간 녹아내리던 강철 바닥이 깨어지며 디딤발이 무너졌겠지만, 우현의 세라믹 패시베이션 코팅이 입혀진 바닥은 기사들의 묵직한 군화 아래에서도 단단하게 무게를 지탱해 주었다.
쉬이이익! 스각!
반스 장군의 거대한 검날이 하강하던 우두머리 비룡의 목덜미를 깊숙이 갈랐다.
보통의 전투라면 튀어나온 마수의 산성 혈액이 검에 닿자마자 강철 대검을 시커멓게 썩혀 날을 무디게 만들었겠지만, 우현이 장군의 칼날 표면에 미리 발라둔 특수 불소-폴리머 방어 유제가 산성 피를 고스란히 튕겨냈다. 반스의 검은 녹색 피 속에서도 서릿발 같은 푸른 섬광을 유지하며 비룡의 뼈와 살을 깨끗이 양단했다.
"장군님의 칼이 녹지 않는다! 마수들의 피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전원 적을 격퇴하라!"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친 군인들이 고함을 지르며 돌격했다. 방어막과 날붙이에 코팅 유제를 덧바른 기사들은 망설임 없이 비룡들의 군세 안으로 뛰어들었고, 성벽 위는 순식간에 마수들의 녹색 시체로 가득 찼다.
우두머리를 잃고 자신들의 산성 독이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하는 것을 본 비룡들은, 결국 꼬리를 내리고 요새 너머 붉은 '녹슨 계곡'의 안개 속으로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전투가 끝나고 붉은 저녁 노을이 성벽을 비출 때, 요새 위에는 승리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반스 장군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피 묻은 대검을 칼집에 꽂아 넣었다. 그는 검 자루를 만져본 뒤, 칼날에 단 한 군데의 부식 흔적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성벽 한편에서 조용히 노을을 바라보며 다음 공정의 화학 촉매량을 계산하고 있던 우현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갔. 주변의 군인들이 긴장한 눈빛으로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반스 장군은 우현의 바로 앞에 서더니, 우락부락한 오른손을 굳게 쥐고 가슴에 대며 군례를 올린 뒤,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우현 원장. 내가 큰 실례를 범했소. 그대의 학문을 고작 입놀림이라 치부한 내 무지와 오만함을 진심으로 사과하겠소."
백전노장의 사령관이 무릎을 굽혀 사과하는 광경에 주변 기사들이 술렁였다. 하지만 반스는 진심이었다. 우현의 연금술이 없었다면, 오늘 4호 성벽은 무너져 요새 내부가 학살의 도가니가 되었을 터였다.
우현은 덤덤하게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상황이 급박했으니 사과를 수락하죠, 장군. 내게 중요한 건 오만함의 교정이 아니라, 이 요새의 물리 격자를 완성하는 연구의 완결입니다."
우현의 냉정하면서도 뒤끝 없는 태도에 반스 장군은 껄껄 웃으며 어깨를 쳤다.
"하하하! 정말 든든한 학도군. 앞으로 이 동부 요새의 모든 보수 작업과 군부의 지원은 전적으로 그대에게 일임하겠소. 필요한 자원이든 인력이든 무엇이든 말만 하시오!"
"그럼 당장 지하 기단부로 이동해, 아까 논의했던 격자 내부의 수소 가스 제거 공정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겠습니다. 랜드 상회에서 수송해 온 마이크로파 인가 기어들과 특수 탈수소 시약들을 전부 기단 지하의 1호 지지 기둥으로 배치해 주십시오."
"즉시 시행하겠소!"
반스 장군의 적극적인 협조하에, 요새의 공병들과 아카데미의 기술진은 신속하게 최하부 지하로 장비들을 운반하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지하 기단부, 부풀어 올라 부스러져 가던 백 년 된 철마도 대들보 주위로 우현이 설계한 '격자 진동 인버터(Lattice Vibration Inverter)'와 고밀도 화학 분사 호스들이 설치되었다. 마침내 철벽 요새의 진정한 재생 공정이 가동될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