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은 화학으로 합니다

76화: 산성 비룡의 습격과 중화 포말 촉매
"비궁(Ballista) 부대, 조준 사격 개시! 성벽 접근을 막아라!"
반스 장군의 포효와 함께 요새 위에 매설되어 있던 대형 강철 발리스타들이 일제히 굉음을 내며 시위를 놓았다. 팔뚝만 한 두께의 거대한 강철 화살들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 비룡들의 가슴과 날개를 꿰뚫었다.
하지만 고통에 질린 비룡들이 버둥거리며 내뿜는 피와 타액 역시 사방으로 튀었다. 그들의 체액은 그 자체로 요새의 가장 큰 재앙이었다.
화아아아악!
"끄아아악! 내 갑옷이 녹아내린다!"
마수의 산성 피를 맞은 병사들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군인들의 판금 갑옷은 물론이고 방패 표면이 흰 연기를 뿜어내며 허무하게 구멍이 뚫려 나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4호 성벽 전면부의 마도 방벽 기단부는 비룡들의 집중 포격으로 인해 내부의 접지선이 다 드러날 정도로 문드러지고 있었다.
"젠장, 마법 장벽을 가동해라! 기사단, 방어막 전개!"
기사들이 전개한 반투명한 마력 실드는 비룡들이 내뿜는 백색 타액에 닿는 순간 기포를 내뿜으며 산화(Oxidation)되어 버렸다. 이 마법산은 일반적인 마나 파동까지 부식시키는 특이 마력산이었다.
우현은 날아오는 산성 타액의 물성을 정밀 렌즈로 시각화했다.
"단순한 무기산이 아니군. 고밀도 마나가 하이드로늄 이온($H_3O^+$)을 감싸 쥐고 있는 마법 복합산이다. 일반적인 수성 마법막이나 물리적 강철 장갑으로는 정전기적 척력이 작용하지 않아 일방적으로 탈양성자화(Deprotonation) 반응을 당할 수밖에 없어."
우현이 중얼거리며 품에서 원통형 연성 실린더들을 여러 개 꺼냈다.
"원장님, 저 비룡들의 브레스를 막을 차단막을 즉석에서 합성하셔야 합니다! 성벽 기둥 내부의 주 교각이 용융 한계점에 도달했습니다!"
공병 부대원이 울부짖었다.
"아리아, 성벽 전면에 극저온 한기 장벽을 얇고 넓게 전개해라. 대기 중의 기화된 산성 독무를 응축시켜 확산을 늦춰야 한다. 냉각되면 부식 반응 속도도 기하급수적으로 저하된다."
"알겠어요! 아르크티카 필드(Arctica Field)!"
아리아가 지팡이를 내리찍자, 4호 성벽 전면부에 영하 50도의 가혹한 동결 기류가 폭풍처럼 휘몰아쳤. 날아오르던 산성 타액과 안개들이 한기에 직격당해 부식 반응을 일으키기도 전에 공중에서 얼음 결정이 되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졌다. 반응 속도론(Reaction Kinetics)에 따라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자, 활성화 에너지를 잃은 산성 이온들의 활동성이 꽁꽁 묶인 것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우현은 요새의 군용 알칼리 시약 창고에서 징발해 온 석회석 탄산칼슘 가루와 요소(Urea) 추출물, 그리고 요정림의 고농축 실리카 유제를 혼합하여 특수 분사형 중화 완충재를 절대합성해 냈다.
"중화 완충용 포말 촉매(Foaming Neutralizing Buffer Catalyst) 조제 완료. 분사 밸브 개방하십시오."
우현의 수신호에 따라, 대형 수압 분사기들에 연결된 황동 호스에서 거품 형태의 유백색 포말들이 4호 성벽 표면 전체로 세차게 뿜어졌다.
퍼어어어억!
유백색 거품이 녹아내리던 강철 성벽과 비룡들의 산성 타액과 접촉하는 순간, 격렬한 열 방출 반응 대신 잔잔한 중화 반응이 시작되었다.
치이이이이—!
거품 속의 탄산 이온과 실리카 고분자들이 수소 이온을 급격히 빨아들이며 탄산 가스($CO_2$)로 치환시켰고, 남아 있는 마법 산의 잔여물들은 강철의 표면과 만나 안정한 규산칼슘(Calcium Silicate) 및 불용성 황산염 피막으로 전환되었다.
이것은 화학적 중화(Neutralization)와 표면 부동태화(Passivation)가 동시에 일어나는 복합 연성 공정이었다. 성벽의 녹아내리던 철판 표면은 거품이 휩쓸고 지나가자마자, 더 이상 부식되지 않는 단단한 백회색의 무기 코팅막으로 뒤덮였다.
"뭐…… 라고? 부식이 멈췄다?!"
반스 장군이 넋을 잃고 성벽을 바라보았다.
비룡들이 연달아 백색 타액을 다시 내뿜어 댔지만, 이미 백회색의 불용성 피막이 형성된 성벽은 산성 액체를 미끄러뜨리며 아무런 반응도 일으키지 않았다. 타액은 그저 성벽 표면을 따라 허무하게 흘러내려 바닥의 모래로 사라질 뿐이었다.
요새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었던 산성 용융 공포가, 우현이 분사한 거품 스프레이 단 몇 톤에 의해 완벽하게 무력화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