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은 화학으로 합니다

74화: 동부 철벽 요새와 수소 취화의 비밀
황실 수석 비서관 베른하르트와의 면담을 마치고 아카데미 연금원으로 복귀한 우현을 맞이한 것은 에센셜 아카데미 연금학과 주임교수이자 우현의 든든한 학문적 수호자가 된 헤르만 교수였다. 그는 우현이 가져온 제국 동부 요새 공사 수임 문서를 확인하고는 흥분과 우려가 교차하는 얼굴로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동부의 '철벽 요새(Ironclad Fortress)'라니…… 대단하지만, 한편으로는 제국에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에 발을 들이는 꼴이군."
헤르만 교수가 연구실 평상 한구석에 서류를 내려놓으며 경고했다.
"교수님, 그곳의 장벽 붕괴 위기가 마탑의 보고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입니까?"
우현이 가죽 장갑을 벗으며 물었다. 그 옆에서 날개 다람쥐 알렉스가 우현의 테이블 위에 놓인 황동 스패너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고 있었다.
"심각하다뿐이겠나. 동부 장벽은 건립된 지 백 년이 넘은 고대 철마도 합금(Iron-Mana Alloy)으로 이루어져 있네. 그런데 최근 동부의 미개척 영역에서 활성화된 '산성 부식종 마수'들의 지독한 강산성 독무와 화학적 부식 피막 공격으로 장벽 하부의 격자 구조가 파괴되고 있지. 황실 공병대가 수십 번 덧방 연성을 시도했지만, 장벽 내부에 스며든 산성 가스가 금속을 취화(Embrittlement)시켜 손만 대도 부스러지는 상태라네."
우현은 직관적으로 문제의 본질을 간파했다.
'금속의 수소 취화(Hydrogen Embrittlement)와 갈바닉 부식(Galvanic Corrosion)이군. 산성 가스에 포함된 수소 이온들이 철 합금 결정 격자 틈새로 침투해 금속의 연성을 완전히 빼앗아가고 내부 압력을 유발해 균열을 일으킨 거야. 게다가 마력 접합부와 이종 금속 간의 갈바닉 반응이 부식을 가속했겠지.'
이것은 현대 야금학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금속 붕괴 현상 중 하나였다. 마법으로 아무리 금속을 덧대어 용접해 봐야, 이미 수소 분자가 가득 찬 격자 내부의 암적 균열을 해결하지 못하면 하중을 받는 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릴 터였다.
"게다가 동부 전선을 지키는 제3기갑군단의 사령관 '반스(Vance)' 장군은 전형적인 무인일세. 연금술사들의 이론을 시간 낭비로 여기며 거칠게 대하기로 유명하지. 마탑에서 보낸 일류 연금술사들도 그의 냉대 속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쫓겨났다네."
헤르만 교수의 우려에도 우현의 표정은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금속의 격자 구조를 파괴하지 않고 내부의 수소 이온을 탈가스(Degassing)시키고 표면에 '부식 차단막(Corrosion-Resistant Layer)'을 형성하면 그만입니다. 반스 장군의 태도 따위는 장벽을 보수하는 과학적 원리보다 간단한 변수일 뿐이죠."
옆에서 묵묵히 들으며 우현의 장비를 정리하던 아리아가 생긋 미소를 지었다.
"동부로 가는 열차 편을 예약해 두었어요. 하나와 알렉스도 데려갈 연구 비품 패킹을 끝냈으니 바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
하루 뒤, 우현과 아리아 일행은 동부 전선 철벽 요새로 향하는 황실 특별 군용 열차에 탑승했다.
동부로 갈수록 차창 밖의 풍경은 푸른 초원에서 붉은 황토와 날카로운 바위산들이 뒤엉킨 거친 대지로 변해갔다. 공기 중에서는 은은하게 비린 황산의 냄새와 철 부식 특유의 쇠내가 섞여 바람을 타고 풍겼다.
열차가 동부 요새의 임시 간이역에 도착했을 때, 열차 앞을 가로막은 것은 수십 명의 철갑 군인들과 그 선두에 선 거구의 중년 사령관, 반스 장군이었다. 반스 장군의 전신은 마수들과의 전투로 긁힌 자국이 가득한 둔탁한 강철 판금 갑옷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의 굳은 얼굴에는 우현의 예상대로 깊은 불신이 가득 서려 있었다.
"황실에서 보낸 대현자가 고작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아카데미 풋내기였다니, 중앙의 늙은이들도 치매가 단단히 걸린 모양이군."
반스 장군이 우현의 앞에 서서 거친 목소리로 내뱉었다. 기가 꺾일 법도 한 압도적인 기세였으나, 우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령관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군사적 조언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니라, 썩어가는 당신들의 장벽을 고쳐주러 온 겁니다, 반스 장군."
우현의 냉랭한 목소리에 군인들의 장검이 칼집에서 덜컹거리며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썩어가는 장벽이라고? 백 년 동안 동부를 지켜온 철벽 요새를 감히 모욕하는군!"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내 눈에는 이 요새가 단 10분만 고위 부식 마수의 산성 파동에 직격당하면 무너져 내릴 녹슨 고철덩어리로밖에 보이지 않는군요.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이 자리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그냥 구경할까요?"
우현의 도발적인 언사에 반스 장군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는 우현이 최근 중앙에서 마탑의 코를 완전히 꺾어놓고 황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온 연금 대가임을 알고 있었기에, 억지로 분노를 누르며 군홧발을 돌렸다.
"좋다. 네놈의 그 건방진 주둥이가 진짜 실력인지, 아니면 가벼운 혀놀림에 불과한지 동부 장벽의 밑바닥에서 증명해 보여라. 나를 따라와라."
반스 장군의 뒤를 따라, 우현 일행은 점차 비릿한 산성 악취가 코를 찌르는 동부 철벽 요새의 최전선 지하 장벽 통로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