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은 화학으로 합니다

7화: 쓰레기에서 피어난 정수
우현은 지체 없이 청소 도구 대신 실험실 구석에 남아 있던 유리 기구들을 그러모았다.
율리안과 그의 무리들이 짓밟아 놓은 바닥의 검붉은 진흙탕은 비록 외견상으로는 조잡한 쓰레기였으나, 화학적인 관점으로 보면 고농도의 에테르 성분을 품고 있는 유기 혼합물 현탁액(Suspension)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유기 용매 추출법(Liquid-Liquid Extraction)을 사용하지.”
우현은 바닥에 흩어진 깨진 약초와 흙더미를 흙받이로 긁어모아 둥근 플라스크에 전부 쓸어 담았다.
여기에 보존실에서 가져왔던 청정 마나 증류액과 식용 에탄올 성분의 소독용 알코올을 섞어 부었다. 마나 성분은 물보다 유기 용매인 알코올에 훨씬 더 잘 녹아드는 친유성(Lipophilic) 성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치이이익—
플라스크를 가볍게 흔들자, 흙탕물 속에서 약초의 녹색 마나 에센스가 분자 단위로 분리되어 알코올 층으로 급격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밀도 차이를 이용한 여과 공정이었다. 우현은 황토벽돌 가루를 깔아 임시로 만든 실리카 필터 위에 혼합액을 통과시켰다.
- 또르르, 또르르.
필터 아래로 떨어지는 액체는 흙과 모래가 완전히 걸러진 옅은 녹색의 액체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수분이 너무 많아 농도가 지나치게 낮았다. 이대로 끓여서 수분을 날려 보낸다면 열에 약한 마나의 배위 결합이 파괴되어 포션의 효능이 소실될 터였다.
우현은 온열 룬 장치 위에 둥근 유리 구체를 하나 더 얹고, 그 사이에 빈 튜브를 연결해 간이 ‘감압 증류 장치(Vacuum Distillation System)’를 조립했다.
“압력을 낮추면 액체의 끓는점이 내려가지. 열을 가하지 않고도 저온에서 순식간에 알코올과 수분만 증발시킬 수 있어.”
우현이 실린더 주사기를 이용해 기기 내부의 공기를 빨아내어 강제로 진공 상태를 만들자, 플라스크 내부의 액체가 상온에 가까운 미지근한 온도에서도 격렬하게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 부글부글부글!
기화된 알코올과 수증기가 튜브를 타고 건너편 냉각관으로 넘어가 응축되었다. 그리고 본래의 플라스크 바닥에는 수분과 불순물이 완전히 날아간, 투명하고 진득한 황금빛 도는 녹색의 원액만이 남았다.
그것은 불순물 0%, 순도 100%에 수렴하는 ‘초고농축 마나 엑기스’였다.
윙—
플라스크 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광채가 너무나 강렬하여, 실험실의 매캐한 공기마저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우현은 완성된 원액을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시험관에 조심스럽게 옮겨 담았다.
정확히 45분 만에, 버려진 쓰레기 진흙탕이 제국 마탑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기적의 농축액으로 재탄생한 순간이었다.
같은 시각, 아카데미 본관 1층의 대형 연성 시험장.
시험장은 실기 평가를 치르는 수십 명의 학생들과 그들이 피워 올린 가마솥의 열기로 후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17번, 율리안 폰 브라운. 순도 72%의 하급 상처 치료 포션 연성 성공! 우수!”
시험관들의 채점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학생들 사이에서 환호와 탄성이 교차했다. 특히 율리안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물약병을 들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율리안은 시험장 출입구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평민 낙제생 우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밤새 실험실의 모든 재료를 가루로 만들어 버렸으니, 시험장에 들고 올 재료가 존재할 리 만무했다.
엘리안 조교는 초조한 표정으로 주머니 시계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는 우현의 실험실이 테러를 당했다는 사실을 아침에 전해 들었지만, 율리안의 소행이라는 증거를 찾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참이었다.
“……다음, 마지막 순서. 42번 우현.”
수석 시험관의 목소리가 엄숙하게 시험장 전체에 울렸다.
“42번 우현, 자리에 없나? 3회 호명 후에도 부재 시에는 자동 불합격 및 퇴학 처…….”
“여기 있습니다.”
시험장의 두꺼운 목조 문이 스르륵 열리며, 한 소년이 차분한 걸음걸이로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입구 쪽으로 쏠렸다.
우현은 가벼운 흰색 실험복 차림으로, 오른손에 작은 유리 시험관 하나만을 들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이 거대한 자루에 가득 담아온 약초나 가마솥 같은 도구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단 하나의 시험관.
하지만 그 작은 유리관 내부에서 명멸하는 액체의 광채는, 시험장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던 수십 개의 연성 솥 열기를 단숨에 압도할 정도로 영롱하고 찬란한 황금빛 녹색 오오라를 사방으로 뿌려대고 있었다.
“저, 저게 대체 뭐지?”
“포션에서 어떻게 저런 광채가…….”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율리안의 여유롭던 미소는 순간 얼어붙었다. 그는 경악에 찬 눈으로 우현의 손에 든 시험관을 쳐다보았다.
사보타주는 완벽했을 터였다. 하지만 낙제생 놈은 쓰러지기는커녕, 자신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차원의 비약을 들고 유유히 시험장 한가운데로 등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