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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은 화학으로 합니다58화

연금술은 화학으로 합니다

연금술은 화학으로 합니다

58화: 빛의 마나 결정과 신비주의의 종말

제국 의사당 대회의실은 제국 전역에서 몰려든 마법계의 거물들과 원로 학사들, 그리고 귀족 배심원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차 있었다.

가장 높은 배심원석 중앙에는 황실 대리인과 평의회 의장들이 근엄한 표정으로 배석해 있었고, 우현의 반대편 피고석에는 남부 공작과 남부 마탑 연합의 수장인 제르베가 살기 서린 눈빛으로 단상에 버티고 섰다.

총회가 개시되자마자 제르베가 기선제압을 하듯 지팡이를 내리치며 선제공격을 가했다.

“존경하는 황실 의회와 배심원 여러분! 연금원장 강우현은 우리 제국의 신성한 마도학 전통을 뿌리째 모독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 조상들이 수백 년간 받들어온 ‘마법의 여신’이 내린 신성한 각인 문자를 부정하고, 기괴한 ‘용매’와 ‘촉매’라는 저속한 흙장난으로 제국의 군수 자원을 독점하려 듭니다! 이는 신앙에 대한 배신이자, 마도 질서를 붕괴시키는 사학(Heresy)입니다. 당장 그의 연금원을 해체하고 특허를 취소해야 합니다!”

제르베의 격정적인 연설에 보수 귀족파 배심원들이 큰 동요를 보이며 지지의 눈빛을 보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단상 위로 올라선 우현은 가방에서 대형 스크롤 하나를 꺼내 연단 벽면에 길게 펼쳐 걸었다.

스크롤에 그려진 것은 기괴한 격자무늬 칸 속에 알파벳 기호와 숫자들이 빽빽하게 정렬된 대형 표였다. 현대 과학의 정수이자 물질계의 비밀을 담은 ‘원소 주기율표(Periodic Table of Elements)’였다.

관중석의 마법사들은 생전 처음 보는 기하학적인 표를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게 대체 무슨 해괴한 지도인가?”
“마법진도 아니고, 룬 문자도 없군.”

우현은 지시봉으로 표의 상단을 짚었다.

“제르베 탑주님. 마법은 여신이 내린 은총이나 기적이 아닙니다. 이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물질은 원자(Atom)라는 극미세 입자로 이루어져 있고, 이 표에 명시된 118개의 원소들이 결합하는 방식에 따라 세상의 모든 물질이 결정됩니다. 마법이란, 시전자의 마나 파동을 이용해 이 원소들의 가장 바깥쪽 전선에 위치한 ‘최외각 전자(Valence Electron)’들의 에너지 궤도를 정밀 유도하고 변경하는 전자기학적 현상일 뿐입니다.”

“이…… 이단적인 궤변을 멈춰라! 마법은 룬 문자의 신비한 기도로 발동하는 신성한 영적 결속이다!”

제르베가 격노하여 억지를 쓰자, 우현은 차갑게 반박했다.

“룬 문자 자체가 특정한 주파수의 전자기파를 유도하는 미세 안테나 배열에 불과합니다. 굳이 룬 문자를 깎아 새기지 않더라도, 물리·화학적으로 원소들의 ‘분자 궤도 혼성화’를 유도할 수 있다면 룬 각인 없이도 어떤 고위 마법의 물질도 합성해 낼 수 있습니다.”

“하하하! 룬 각인도 없이 고위 마도 물질을 합성한다고? 좋다! 그렇다면 저 표가 사실이고 자네의 기술이 정당하다면, 이 자리에서 룬 각인 없이 연금술의 최고 난제인 ‘빛의 마나 결정(Pure Light Mana Crystal)’을 단 1분 만에 합성해 보게나!”

그 제안에 회의실 전체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빛의 마나 결정은 마도 공학에서 최고급 렌즈나 마장기의 핵심 코어로 쓰이는 초귀희 소재였다. 마탑의 일류 광계열 마도사 10명이 달라붙어 복잡한 성화 각인을 유지하며 한 달 동안 기도하듯 마력을 주입해야 겨우 한 주먹 크기를 만들어내는, 제조 공정이 신의 영역이라 불리는 난해한 물건이었다.

제르베는 우현이 이 불가능한 도전을 결코 해내지 못하고 스스로 거짓말쟁이로 전락할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우현은 미소를 지으며 품 안에서 요정림의 반도체 결정을 장착한 ‘휴대용 초미세 촉매 반응 코어’ 시제품을 꺼냈다.

“그럼 즉석에서 보여드리지요. 하나, 원재료 준비.”

하나가 투명한 규석(Quartz) 결정 조각과 정밀 화학 용매 한 방울을 반응기 입구에 넣고 밀폐했다.

우현은 회의실 앞을 지키고 있던 마력 적성이 가장 낮은 최하급의 수습 기사 한 명을 지목했다.

“기사님. 이 레버를 쥐고, 기사님이 가진 가장 약하고 정제되지 않은 빛 마력을 이 장치 안으로 그냥 밀어 넣어 주십시오.”

“저…… 제 미약한 마력으로는 평범한 빛 조명 하나 밝히기도 힘듭니다만…….”

수습 기사는 불안해하면서도 장치의 손잡이를 쥐고 조심스럽게 미약한 마력을 흘려보냈다.

위이이이이이잉—!

장치가 작동되자, 내부의 마도 반도체 실리카 칩이 수습 기사의 거칠고 미약한 마력을 100% 균일한 주파수의 빛 에너지로 강제 정류하고, 촉매 반응실 내의 규석 분자들과 광화학적 배위 결합을 고속으로 유도했다.

10초, 20초, 30초…….

장치 지시등의 녹색 게이지가 완료를 향해 솟구쳤다. 그리고 단 50초가 지난 순간, 장치의 뚜껑이 자동으로 찰칵 열렸다.

회의실 안의 모든 배심원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켜 장치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눈앞에서, 장치 한가운데서 눈이 멀 정도로 영롱하고 눈부신 백색 광채를 뿜어내는 가로세로 3센티미터 크기의 완벽한 정육면체 ‘빛의 마나 결정’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마탑의 일류 마도사 10명이 한 달간 룬 각인을 해야 만들던 기적의 결정이, 고작 마력도 없는 기사 한 명이 1분 만에 기계 장치로 합성해 낸 것이다.

제사 의장과 황실 서기관들은 의자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다.

“이…… 이것은 최고 수준의 광학 순도를 지닌 완전한 빛의 마나 결정이다! 룬 각인의 흔적이…… 전혀 존재하지 않아!”

의장의 충격적인 선언에 회의실 전체에 천둥 같은 함성과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제르베 탑주와 남부 공작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들이 수백 년간 지켜온 ‘신의 영역’이라는 신비주의 마도 장막이, 우현이 제시한 1분간의 화학 반응 앞에서 완벽하게 찢겨 발가겨 버린 통쾌한 순간이었다.

우현은 주기율표를 지시봉으로 톡톡 두드리며 제르베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제르베 탑주님. 이제 마법이 여신의 기적인지, 물질의 전자기적 화학 법칙인지 이해가 가십니까? 마도 학계의 규칙은 오늘부로 저희 연금원의 과학 법식으로 전면 재편될 것입니다.”

기득권의 마지막 사상적 음모마저 1분간의 완벽한 실증 실험으로 단숨에 굴복시킨 절대합성의 연금술사는, 이제 제국의 마법 교과서와 산업 규격을 과학의 이름으로 정복할 거대한 화학 황제로서 청문회 역사상 가장 완벽한 독무대의 마침표를 찍었다. 황실 마도 의회를 뒤흔든 과학 혁명의 위대한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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