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은 화학으로 합니다

59화: 혹한의 결계와 공작의 청원
황실 마도 의회 총회의 역사적인 승리는 제국 전체의 학술적·산업적 판도를 송두리째 재편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황제의 칙령에 따라, 황립 전략화학 연금원은 제국 전역의 마도 장비 및 야금품의 규격을 독점 심사하고 인가하는 유일한 ‘국가 공인 기관’으로 격상되었다. 기존의 남부 마탑 연합과 소규모 길드들은 연금원의 정밀 규격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시장에 물건을 팔 수 없게 되었으니, 사실상 마도 학계 전체가 우현의 지배 하에 들어온 셈이었다.
게다가 황실 의회 무고죄와 사기 혐의로 벌금형과 자산 압류 조치를 당한 제르베와 남부 공작의 처분 자산 중, 남부의 광활한 구리 광산들과 은 정련 지구들의 소유권 전체가 연금원으로 영입되었다.
이로써 북부의 크로이츠 가문, 동부의 오스본 압류 공장, 남부의 광산 지대, 그리고 요정림의 실리카 반도체 독점권까지 연결되는 대륙 규모의 ‘정밀 화학·야금 연맹(Strategic Chemical Metallurgy Alliance)’이 완벽한 기틀을 갖추게 되었다.
귀환한 그날 밤, 우현은 새로 개축된 연금원 특별 연구탑의 넓은 발코니에서 선선한 밤바람을 맞으며 수도의 야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발코니의 목재 평상 테이블 위에는 시원하게 식힌 난쟁이 맥주잔이 놓여 있었고, 곁에는 아리아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섰다.
“우현 님, 고생 많으셨어요. 마도 총회에서 주기율표로 마법사들을 참교육하실 때는 정말 제 가슴이 다 시원하더군요.”
아리아가 잔을 부딪치며 축하를 건넸다.
“아리아가 곁에서 가문의 명예를 실어 든든하게 지켜주지 않았다면, 저들이 법적으로 꼼수를 부릴 틈을 보였을 겁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우현의 진심 어린 감사에 아리아는 볼을 살짝 붉히며 자신의 목에 걸려 있던 은색 펜던트 하나를 풀어 우현의 손에 쥐여주었다. 요정림의 정령 실리카와 북부의 한빙 미스릴을 우현의 촉매 배합법에 따라 직접 배위 결합시켜 연성해 낸,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리아의 수공예 펜던트였다.
“제 마나 폭주를 치료해 주신 아뮬렛에 비하면 조잡하지만…… 우현 님과 저의 영원한 파트너십의 표식으로 간직해 주셨으면 해요.”
“아름답군요. 평생 간직하겠습니다.”
우현은 펜던트를 목에 걸고 아리아의 손을 지그시 잡았다.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신뢰와 은근한 애정이 별빛 아래에서 고요하게 흘렀다. 알렉스는 평상 한구석에서 꼬리를 둥글게 말고 우현이 남긴 합성 과일 칩을 맛있게 갉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정적을 깨뜨린 것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와 발코니 난간에 안착한 푸른 눈빛의 전령 전송 매(Messenger Falcon)였다. 매의 다리통에는 북부 공작가의 서슬 퍼런 흑인장이 찍힌 마도 서신이 결속되어 있었다.
아리아의 안색이 굳어지며 다급하게 서신을 풀었다. 서신을 읽어 내려가던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버님이 보낸 긴급 조달 청원서입니다……. 제국 북부 국경선을 막아서고 있던 고대 빙결 장벽인 ‘혹한의 결계(Frozen Abyss Barrier)’의 기단부에 이상 고열(Thermal Anomaly) 현상이 발생하여 장벽이 실시간으로 녹아내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상 고열이라고요? 혹한의 장벽에?”
우현이 서신을 넘겨받아 정밀 해독 마법을 활성화했다.
제국 북부 국경 너머에는 혹한의 무법 마수 군대와 마법사들을 학살하는 야만 정령들이 도사리는 냉혹한 심연이 존재했다. 크로이츠 가문이 수백 년간 지켜온 빙결 결계 장벽이 녹아내리며 틈새가 벌어지자, 마수들이 국경선을 뚫고 제국 북부 영지로 대규모 침공을 개시할 직전의 위급 상황이었다.
북부 공작인 아리아의 아버지는 연금원의 초초전도 케이블과 촉매 복원 세라믹 기술만이 이 결계의 이상 고열 누출을 물리 법칙상 보수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우현의 즉각적인 구원을 요청한 것이다.
우현은 지도를 들여다보며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빙결 장벽 내부의 대지맥 냉매 유로(Coolant Path)가 모종의 외부 고열 에너지원에 의해 막히거나 유동성 과부하를 일으킨 것이 틀림없습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군요. 하나, 즉시 공방을 소집해 극저온용 ‘초저온 촉매 질화 젤(Cryogenic Catalyst Nitride Gel)’과 냉각 배선 장비들을 장전하십시오. 내일 아침 즉시 제국 북부 전선으로 출발합니다.”
“예! 원장님, 철저히 준비하겠습니다!”
하나가 밤하늘 아래에서 힘차게 복창했다.
아리아는 우현을 쳐다보며 단단하게 검자루를 잡았다.
“제 고향이자 가문의 심장부를 구하는 길입니다. 크로이츠 기사단이 최선두에서 원장님을 호위할 것입니다.”
“가봅시다. 북부의 빙결 심장마저 과학의 설계로 보수해 드리지요.”
제국 수도와 마탑을 과학의 주기율표로 완벽하게 굴복시키고 요정림의 지배적 대현자가 된 절대합성의 연금술사는, 이제 가혹한 제국의 북부 한계선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 대지의 혹한의 장벽을 복구할 거대하고 웅장한 혹한 정벌의 세 번째 장막을 가슴 뛰게 열어가고 있었다. 대륙의 질서를 재배치할 과학 혁명의 굳건한 선로가 눈 덮인 북부 대륙을 향해 거침없이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