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은 화학으로 합니다

37화: 황실 청문회와 룬의 한계
수도 마탑과 오스본 공작가는 제국 군부의 칼날 앞에 납작 엎드리는 듯했으나, 그들은 이내 비열한 법적·학술적 역공을 준비했다.
그들이 제기한 것은 ‘황실 안전법 위반 및 위험 연금 공정 조사’ 청구였다.
수도 마탑의 탑주, 엘드레드가 직접 서명한 청원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낙제생 우현이 고안한 ‘촉매 반응탑’은 마도 안정화 룬이나 고위 봉인진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대량의 마력을 급속 순환시키는 기괴한 공정이다. 이는 열역학적 붕괴를 일으켜 아카데미와 제국 수도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는 시한폭탄과 다름없다. 당장 가동을 중단시키고 안전 검증을 위해 기술 배합식을 마탑에 인계해야 한다.]
마법계의 권위적인 기득권이 흔히 쓰는 기술 찬탈의 수법이었다. ‘공공의 안전’을 명분으로 내세워 법적으로 가동을 중단시킨 뒤, 기술을 조사한다는 핑계로 핵심 제조법을 빼앗아가려는 의도였다.
결국 황실 의회와 아카데미 평의회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황실 연금술 청문회’가 소집되었다.
웅장한 황실 의회 대청문회장에는 수백 명의 원로 마법사들과 대귀족들, 그리고 제국 군부의 장성들이 배심원석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피고석에 선 우현의 곁에는 후원자인 아리아 폰 크로이츠와 헤르만 교수가 엄숙한 표정으로 섰다.
원고석에 선 마탑주 엘드레드는 백발을 휘날리며 단상 앞으로 걸어 나왔다.
“존경하는 배심원 여러분. 연금술은 신비의 영역이자, 철저히 통제된 마법 룬의 조율 하에 이루어져야 하는 신성한 학문입니다. 하지만 피고 우현은 고작 ‘용매’와 ‘촉매’라는 저속한 시약들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원자 구조를 비틀고 있습니다. 마력의 억제 룬이 없는 그의 연성 방식은 에너지가 임계점에 도달하면 가차 없이 폭주합니다. 이는 제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재앙입니다!”
엘드레드의 위엄 넘치는 연설에 배심원석의 늙은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군거렸다.
분위기가 원고 측으로 기우는 듯한 순간, 우현이 나지막이 실소를 터뜨렸다. 그 소리는 고요한 청문회장 전체에 뚜렷하게 울려 퍼졌다.
“피고 우현 소장! 청문회 자리에서 실소하는 것은 무례한 처사요!”
의장이 나무망치를 두드리며 경고했다.
우현은 손을 흔들며 단상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손에는 작은 철제 가방 하나가 들려 있었다.
“무례하게 굴 생각은 없었습니다, 의장님. 다만, 제국의 마법계를 이끈다는 마탑주님의 학술적 수준이 너무나도 천박하여 참지 못했을 뿐입니다.”
“뭐라더냐! 네놈이 감히 마탑의 학문을 모욕하는구나!”
엘드레드가 격노해 외쳤지만, 우현은 태연하게 가방을 열어 두 개의 시험관을 꺼냈다.
“말싸움은 시간 낭비이니, 즉석에서 간단한 실험으로 증명해 보이지요. 여기 마탑주님이 주장하시는 ‘마도 안정화 룬’을 각인한 기존의 마나철 블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쪽은 저희 연구소의 촉매 공정으로 합성한 복합 합판 조각입니다.”
우현은 두 시편을 청문회 테이블 중앙의 마력 공명대에 고정했다.
“엘드레드 탑주님은 마법 룬의 강제적인 억제가 소재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믿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마력의 흐름이 급격히 엉키는 ‘초고주파 파괴 진동(Disintegration Wave)’을 가했을 때 어떤 것이 먼저 부서지는지 똑똑히 확인해 보십시오.”
우현이 공명대의 전원을 켰다.
두 시편에 강력한 파괴적 마력 진동 주파수가 투사되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이이잉—!
귀를 찢는 듯한 주파수 소리와 함께 두 물체에 가해지는 에너지가 임계점을 향해 솟구쳤다.
10초도 지나지 않아, 엘드레드가 자랑하던 안정화 룬 각인 마나철 블록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표면에 새겨진 마법 룬들이 쏟아지는 파동 에너지를 억누르려 붉게 타올랐으나, 이내 에너지가 임계점을 초과하자 룬이 찢어지며 내부 응력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콰아앙—!
마나철 블록은 날카로운 쇳조각 파편들을 비산시키며 요란하게 폭발해 버렸다. 배심원들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몸을 숙였다.
하지만 우현의 촉매 합성 강철은 달랐다.
위이이이이잉…….
그것은 폭발하지 않았다. 표면이 은백색에서 옅은 청색으로 명멸하더니, 가해지는 엄청난 주파수 에너지를 내부의 공액 이중결합 격자망을 통해 부드럽게 분산시켜 방출하고 있었다. 열도 발생하지 않았고, 단 하나의 미세 균열조차 일어나지 않은 완벽한 평형 상태를 유지했다.
수백 명의 관중들이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차이점입니다.”
우현이 폭발 잔해와 멀쩡한 촉매 강철을 가리키며 담담하게 설명했다.
“마탑의 룬 연금술은 에너지를 강제로 ‘억누르는(Suppress)’ 방식입니다. 겉보기엔 단단해 보이지만, 임계점 이상의 충격이 가해지면 내부의 마력 응력이 한 번에 폭발하여 끔찍한 파국을 초래합니다. 엘드레드 탑주님의 말대로 진짜 ‘시한폭탄’은 저 마나철인 셈이지요.”
우현은 이어서 자신의 복합 강철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반면 저의 촉매 합성 합판은 ‘열역학적 가역 평형(Thermodynamic Reversible Equilibrium)’을 이룹니다. 에너지가 유입되면 나노 리간드 격자가 결합 각도를 유연하게 변형시켜 충격을 고속 분산하고 방출합니다. 애초에 에너지가 쌓이지 않는데 어떻게 붕괴하고 폭발한다는 말입니까? 마탑주님께서는 연금학의 기초인 에너지 보존 법칙과 분학적 평형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 결여되신 것 같군요.”
“……으, 으윽!”
엘드레드는 마치 몽둥이로 머리를 맞은 듯한 표정으로 뒤걸음질을 쳤다. 배심원석에 앉아 있던 원로 학사들과 대현자들도 우현의 정교하고 현대적인 물리·화학적 설명에 반박할 구실을 찾지 못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청문회장의 배심원들과 황실 판사들 사이에서 일제히 끄덕임이 나왔다. 군부 장성들은 우현의 절대적인 안전성 증명에 신뢰 가득한 미소를 보냈다.
결국 황실 재판장 겸 청문회 의장이 힘차게 나무망치를 내리쳤다.
탕! 탕! 탕!
“판결하겠다! 수도 마탑이 제기한 촉매 연구소 가동 중지 및 기술 인계 청원은 과학적 근거가 없으므로 기각한다! 촉매 연구소의 안전성은 청문회에서 완벽히 증명되었으며, 황실 군부는 해당 기술의 대량 생산 및 배치를 계속해서 전폭 지지할 것을 선언한다!”
관람석에서 크로이츠 가문과 군부 세력들의 거대한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엘드레드와 오스본 공작은 패배감과 수치심에 얼굴을 구기며 서둘러 청문회장을 빠져나갔다.
우현은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아리아와 가볍게 눈빛을 교환했다. 그들의 사악한 정치적 덫마저 우현의 정교한 과학 논리 앞에 완전히 무력화된 통쾌한 승리였다. 촉매 연금술의 위엄이 황실 한복판에 깊이 각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