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은 화학으로 합니다

32화: 소재의 민주화와 은빛갈기 상회
오스본 가문의 수석 행정관 바르토가 보복의 칼을 갈고 있을 무렵, 우현은 이미 그들의 방해 공작을 예측하고 다음 단계의 연금 공정을 설계하고 있었다.
우현이 주목한 것은 ‘소재의 민주화’였다.
기존 마탑의 강철 방패나 대방패는 고순도의 마나철(Mana Iron)이나 미스릴 같은 희귀 광물을 필수적으로 요구했다. 고위 연성진의 강한 마력 압력을 견디려면 광물 분자의 원자 배열 자체가 마력을 머금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자연히 광산의 소유권을 쥔 대귀족들과 유통을 지배하는 대상단들이 이 핵심 소재들을 독점하고 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현의 촉매 합성 연금술은 달랐다.
“고순도 광물이 없으면, 저순도 광물을 가져다가 나노 격자를 재정렬하면 그만이지.”
우현은 실험대 위에 굴러다니는 흔한 잡철 광석 조각을 집어 들었다.
불순물이 가득 섞여 푸석푸석하고, 연성로에 넣으면 금방 으스러져 쓰레기가 되는 저급 광석이었다. 마탑의 연성사들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고 폐기할 물건이었다.
우현은 자신이 고안한 촉매 반응 가마(Catalytic Reactor)에 이 저급 광석과 촉매제를 투하했다. 황산 구리 용액과 슬라임 점액을 특수한 비율로 섞어 만든 유기 촉매였다. 반응기에 마력을 주입하자, 보글보글 거품이 일며 녹색 용액이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현대 유기 화학의 ‘리간드 배위 결합(Ligand Coordination)’을 응용한 연성 공정이었다. 촉매 분자가 저급 철광석 내의 산소와 불순물을 강제로 집어삼켜 밖으로 배출하고, 철 원자들 사이에 미세한 유기 결합 팔을 뻗어 결정을 촘촘하게 묶어주는 방식이었다.
단 1시간 만에 반응기 바닥에 가라앉은 것은 눈부시게 매끄러운 진주빛의 강철 잉곳이었다. 마탑의 장인들이 며칠 동안 열과 망치질을 해가며 정련한 마나철보다 분자 구조가 훨씬 더 균일하고 단단한 초안정성 강철이었다.
“완벽하군. 이제 저급 광물을 대량으로 공급해 줄 파트너만 구하면 오스본의 봉쇄는 아무런 소용이 없어.”
우현은 곧바로 아카데미 외곽의 상업 구역으로 향했다. 아리아도 호위를 자처하며 동행했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상업 구역 귀퉁이에 자리 잡은 ‘은빛갈기 상회(Silver Mane Merchant Guild)’였다. 한때 제국 서부의 광물 유통을 담당하던 이름난 상회였으나, 대귀족들과 연계된 거대 마상단인 ‘골든 크로스 상단’의 횡포와 단가 압박으로 현재는 부도 직전의 위기에 몰린 곳이었다.
상회 내부로 들어서자 늙은 상회주, 랜드가 수심 가득한 얼굴로 낡은 장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랜드 상회주님 맞으십니까?”
우현의 물음에 랜드는 무거운 고개를 들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한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최근 아카데미의 최고 화제 인물이자 군부의 총아로 떠오른 우현이었기 때문이다.
“오…… 우현 소장님 아니십니까! 이런 누추한 곳에는 어쩐 일로…….”
“랜드 님. 단도직입적으로 제안을 하러 왔습니다. 은빛갈기 상회가 보유한 서부 광산의 저급 철광석과 불순물이 섞인 잡철 원석을 저희 촉매 연구소에서 전량 매입하고 싶습니다.”
랜드는 기뻐하기는커녕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소장님, 제안은 감사하지만…… 저희 서부 광산의 잡철들은 너무 불순물이 많아 연금술용으로는 전혀 쓸 수 없습니다. 마탑에서도 거들떠보지 않아 창고에 쌓여 먼지만 타고 있는 쓰레기 광석들입니다. 그런 걸 사 가셨다간 연구 비용만 날리실 겁니다.”
“그건 제가 해결할 문제입니다. 저는 그 저급 광석들을 시장 가격보다 10% 더 쳐서 매주 10톤씩 정기적으로 매입하겠습니다. 단, 은빛갈기 상회는 다른 상단에 광석을 넘기지 않고 저희 연구소와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해 주셔야 합니다.”
랜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매주 10톤의 잡광석 정기 구매는 부도 위기에 처한 상회에 그야말로 한 줄기 구원의 동아줄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이었다.
“잡광석을 사 가시는 건 고마운 일입니다만…… 소장님, 골든 크로스 상단과 오스본 가문이 이를 알면 저희 상회를 완전히 짓밟으려 들 겁니다. 그들의 압박을 견디려면 저희 상회에도 확실한 수익원이 필요합니다. 쓰레기 광석을 파는 것만으로는 상회의 유지가 어렵습니다.”
우현은 그 질문을 예상했다는 듯 품 안에서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병 안에는 투명하고 끈적한 유기 촉매 액체가 들어 있었다.
“그 보답으로, 저희 연구소에서 합성한 특허 제품의 독점 유통권을 은빛갈기 상회에 위임하겠습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나노 촉매 방청 코팅제(Rust-Prevention Coating)’입니다.”
우현은 창고 한구석에 굴러다니던, 빨갛게 녹이 슬어 으스러지기 직전인 철 못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유리병의 뚜껑을 열고 철 못을 액체에 가볍게 담갔다가 뺐다.
치이이익—!
기묘한 소리와 함께 철 못의 붉은 녹들이 물처럼 녹아내려 투명한 액체 속으로 분해되었다. 그리고 액체에서 꺼낸 철 못은 마치 방금 대장간에서 뽑아낸 것처럼 찬란한 은빛 광택을 내뿜고 있었다. 단순한 청소가 아니었다. 못의 표면에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촉매 유기 분자막이 강철 원자와 단단히 결합되어 있었다.
“어…… 어떻게 녹이 순식간에 사라진 겁니까? 게다가 이 표면의 질감은…….”
랜드가 경악하며 돋보기를 꺼내 못을 들여다보았다.
“이 코팅제가 도포된 철제 장비는 습기가 가득한 동굴이나 바닷가에 1년을 방치해도 절대 녹이 슬지 않습니다. 농기구, 함선 부품, 건축용 철근 등 제국 전역의 철제 장비에 쓰일 수 있지요. 매번 장비를 새로 연성하거나 기름칠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겁니다.”
농기구와 건축 자재의 수명을 수십 배로 늘려주는 마법 같은 방청제. 마법사들이 귀족들의 고급 무기나 포션 연성에 집중할 때, 현대의 화학 공학자 출신인 우현은 철저히 실용적이고 거대한 일반 대중 시장을 타깃으로 삼은 것이다.
랜드는 장사꾼으로서 이 방청 코팅제가 지닌 천문학적인 가치를 단번에 간파했다. 제국 군부뿐만 아니라 전 대륙의 농민, 상인, 선주들이 줄을 서서 사 가려 할 기적의 발명품이었다.
“이…… 이 물건의 유통권을 저희에게 독점 위임하시겠다고요?”
랜드의 목소리가 격렬하게 떨렸다.
“그렇습니다. 은빛갈기 상회는 잡광석을 조달하고, 이 코팅제의 유통망을 넓혀 상회를 다시 키우십시오. 골든 크로스 상단 따위는 감히 넘보지도 못할 규모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우현이 내민 계약서를 바라보던 랜드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깃펜을 들어 단숨에 자신의 서명을 써 내려갔다.
“은빛갈기 상회의 명예를 걸고, 소장님이 원하시는 잡철 광석을 매주 차질 없이 연구소로 조달하겠습니다!”
계약이 완료되자 아리아가 우현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영리한 행보이십니다. 오스본 가문이 고급 철광석을 통제하기도 전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잡광석으로 완벽한 공급망을 확보하셨군요. 게다가 방청제로 상회에 숨통까지 틔워주다니…….”
“연금술은 단순히 신비한 기적을 부리는 학문이 아닙니다. 자원의 효율적인 분배와 대량 생산을 이끌어내는 정밀 공학이지요.”
우현은 계약서를 챙기며 자신감 넘치게 미소를 지었다.
오스본 가문과 수도 마탑이 자원의 숨통을 죄려 할 때, 우현은 밑바닥에서부터 흔한 돌멩이와 저급 광물들을 황금으로 바꾸는 현대식 산업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절대합성의 연금술사가 이끄는 산업 혁명의 서막이 조용히 번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