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연금술은 화학으로 합니다31화

연금술은 화학으로 합니다

연금술은 화학으로 합니다

31화: 제1 특별 연구실과 새로운 적

임페리얼 엑스포에서의 대승은 반나절도 되지 않아 에센셜 아카데미 전체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아카데미 정문을 통과해 연구동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우현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은 이전과 180도 달라져 있었다. 낙제생이자 퇴학 후보 1순위로 불리던 시절의 멸시와 비웃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경외와 선망, 그리고 어떻게든 연을 대보려는 초조함이었다.

“저기 봐, 우현 소장이야…….”

“고작 3센티미터 두께로 수도 마탑의 타이탄 방패를 박살 냈다며?”

“군부 독점 납품권에 원수님의 스폰서십까지 따냈다더군. 이제 연금학과에서는 헤르만 교수님 다음가는 권력자야.”

수군거리는 소리들을 뒤로한 채, 우현과 아리아는 연금학 연구동 1층 로비로 들어섰다.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헤르만 교수였다. 평소 엄격하고 가혹하기 짝이 없던 노교수의 얼굴에는 전에 본 적 없는 인자하고 화사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오, 왔구나! 우리 아카데미의 자랑스러운 보물들이여!”

헤르만 교수가 양팔을 벌리며 우현의 어깨를 덥석 쥐었다. 평소의 권위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흥분으로 목소리가 살짝 떨리기까지 했다.

“엑스포에서의 시연 보고는 황실 서기관을 통해 이미 전달받았다. 아주 통쾌하더구나! 수도 마탑의 율리안 녀석이 코가 납작해져서 울며 돌아갔다지? 네 촉매 합성법의 가치를 제국 군부가 공인했으니, 이제 그 누구도 너를 낙제생이라 부르지 못할 게다!”

“교수님의 가르침과 배려 덕분입니다.”

우현이 적당히 공을 돌리자, 헤르만 교수는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껄껄 웃었다.

“겸손할 필요 없다. 학장님께서도 이번 일로 크게 감격하셨지. 그래서 곧바로 지시가 내려왔단다. 네가 쓰던 구석진 흙집 실험실은 당장 폐쇄하고, 여기 연구동 최상층에 위치한 ‘제1 특별 연구실’을 촉매 연구소 전용 공간으로 배정하기로 했다!”

에센셜 아카데미의 ‘제1 특별 연구실’은 아카데미 내에서도 가장 넓고, 최신식 연성진과 유동성 마나 보존 장치들이 갖춰진 엘리트 전용 공간이었다. 수도 마탑의 직계 학도들이나 쓰던 그곳을 우현이 독점하게 된 것이다.

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군부 납품 물량을 맞추기 위해 촉매 반응 가마(Catalytic Reactor)의 대형화가 절실하던 참이었다.

새로 배정받은 연구실은 사방이 넓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 아카데미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고, 중앙에는 거대한 마력 제어 제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우현과 아리아가 이삿짐 상자를 내려놓자마자, 구석에 있던 다람쥐 조수 알렉스가 가방 틈새로 쏙 튀어나왔다. 녀석은 새로운 환경이 마음에 들었는지 뺨을 실룩거리며 넓은 평상 데크 위를 이리저리 뒹굴었다.

“알렉스, 여긴 이젠 네 놀이터란다. 마음껏 뛰어놀아라.”

아리아가 알렉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평화로운 이사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연구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고급스러운 비단 로브를 걸친 중년의 신사와 그의 호위 기사들이 걸어 들어온 것이다. 중년 신사의 옷깃에는 황실 동부 영지를 다스리는 ‘오스본 공작가’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우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노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신 모양이군요.”

중년 신사는 우현의 까칠한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반갑네, 우현 소장. 나는 오스본 공작가의 수석 행정관, 바르토라고 하네. 엑스포에서의 활약은 잘 보았네. 아주 흥미로운 연금술이더군.”

바르토는 연구실을 쓱 둘러본 뒤, 주머니에서 두툼한 계약서 뭉치를 꺼내 탁자 위에 툭 내려놓았다.

“서론은 생략하지. 우리 오스본 가문은 자네의 ‘초합금 티타늄 연금 합판’의 특허권과 합성 촉매 배합식을 인수하고 싶네. 대가로 황금 10,000닢과 수도 중심가의 대저택, 그리고 우리 가문의 전속 연금술사 지위를 보장하겠네. 제국 법률상 개인 연구소는 대량의 마장기 자원을 독점할 수 없으니, 우리 같은 대가문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자네 신변에도 안전할 걸세.”

겉으로는 제안이었지만, 명백한 협박이자 갈취였다. 독점 특허와 핵심 기술인 촉매 배합식을 통째로 넘기라는 소리였다.

우현은 헛웃음을 흘렸다.

“황금 만 닢이라. 제국 군부의 1차 납품 계약금만 해도 그 열 배는 될 텐데, 너무 날로 드시려는 것 아닙니까?”

바르토의 눈이 가늘어졌다.

“우현 소장. 자네가 군부의 연줄을 잡았다고 오판하는 모양인데, 군부 역시 황실 법제처와 귀족 평의회의 통제를 받네. 오스본 가문은 귀족 평의회의 부의장 가문일세. 자네가 우리 제안을 거절한다면, 원재료인 철광석과 황산 구리의 유통 경로를 차단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라는 뜻이지. 잘 생각하게.”

원자재 유통망을 쥐고 흔들겠다는 협박.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원료가 없으면 합성할 수 없다는 연금술사의 약점을 정확히 찌른 셈이었다.

그때, 바르토의 등 뒤에서 차갑고 맑은 목소리가 내리쳤다.

“오스본 가문의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군요.”

아리아 폰 크로이츠가 차가운 눈빛으로 바르토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빙결계 마력의 한기가 연구실 바닥에 얇은 성에를 띄웠다.

“크, 크로이츠 영애…….”

바르토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동부의 오스본 가문이라 할지라도, 제국 최강의 무력을 자랑하는 북부의 지배자 크로이츠 공작가 앞에서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 촉매 연구소는 크로이츠 가문이 공식적으로 메인 후원을 맡고 있는 곳입니다. 또한 레온 원수님의 기갑 군단이 직속 관리하는 보안 구역이기도 하지요. 원자재 유통을 막겠다고 하셨습니까? 오스본 가문이 황실 군부의 군수 물자 조달을 사보타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반역죄로 다뤄질 텐데 감당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리아의 서슬 퍼런 경고에 바르토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부 독점 납품권을 쥔 연구소의 원료 공급을 방해하는 것은 군부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자살 행위였다.

“……내, 내가 실언을 한 모양이군. 가문의 이익을 위해 제안을 건넸을 뿐이네.”

바르토는 허둥지둥 계약서를 챙겨 들었다.

우현이 그 모습을 보며 차갑게 덧붙였다.

“돌아가서 오스본 공작에게 전하십시오. 내 기술을 원한다면 정당하게 물건 값을 지불하고 구매하라고 말입니다. 꼼수를 부리다간 다음 영지 마장기 검수 때 오스본 가문의 장비만 촉매 합판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 버릴 테니까요.”

바르토는 우현의 당돌한 협박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호위 기사들을 데리고 꽁지가 빠져라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소동이 가라앉자, 연구실 안에는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고마워요, 아리아.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 주셨네요.”

우현의 감사의 말에 아리아는 뺨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방패막이라니요. 우현 님은 제 은인이자 연구 파트너이십니다. 가문의 이름을 걸고서라도 지켜드리는 게 당연하지요. 그나저나…… 저들이 원료 수급으로 계속 시비를 걸어올 텐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우현은 창가로 걸어가 멀리 보이는 아카데미의 연금 가마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십시오. 원자재의 공급처를 다양화하는 정밀 화학 네트워크 공정을 이미 설계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방해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압도적인 기술 격차를 보여주면 됩니다.”

우현은 새로운 연구실 중앙에 우뚝 솟은 연성 제단에 손을 얹었다. 현대의 정밀 화학 지식과 아카데미의 마법 연성진이 결합된 거대한 반응기가 그의 손끝에서 맥박 치듯 푸른 마나를 내뿜기 시작했다. 제국을 뒤흔들 절대합성의 두 번째 단계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순간이었다.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표지소설
연재중 5%
#아카데미#판타지#음악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평생 남의 이름 뒤에 숨어 곡을 쓰다 과로사한 무명 작곡가 강하진이, 음악이 마법이 되는 판타지 아카데미의 마력 제로 낙제생 하진으로 빙의한다. 퇴학 직전 24시간 루프와 [신들의 작곡 시스템]을 이용해 지구의 화성학과 거장들의 선율을 대기 에테르 유도식으로 변환하며, 악보 한 장으로 아카데미와 제국을 뒤흔드는 천재 작곡가의 대마법 성장기.

7화2026.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