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은 화학으로 합니다

17화: 소장 부임과 1차 공급망 장악
에센셜 아카데미 본관 바로 뒤편, 울창한 단풍나무 숲을 등진 자리에 백색 대리석으로 웅장하게 지어진 신축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입구에 세워진 황실의 직인과 크로이츠 공작가의 문장이 새겨진 명판에는 ‘제국 중앙 학계 기적의 촉매 연구소’라는 이름이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카데미 내의 수많은 보수 귀족 교수들과 마탑의 중견 학사들이 이 화려한 건물을 바라보며 질투와 시기심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입찰식에서 순도 99.9%의 다층 복합 합판으로 5서클 파괴 마법을 삼켜버린 우현의 명성은 이미 반박 불가능한 신화가 되어 있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우현 소장님?”
아리아가 연구실 안쪽의 커다란 마호가니 책상에 기댄 채 장난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우현은 새로 지급된 연구소장용 흰색 실크 가운의 소매를 가볍게 걷어올리며 피식 웃었다.
“나쁘지 않군요. 예산과 장비 통제권이 생기니 연구 효율이 열 배는 늘어날 것 같습니다.”
소장으로 부임한 우현이 가장 먼저 착수한 작업은 아카데미 내부의 연금술 원자재 공급망을 뜯어고치는 것이었다.
제국 아카데미에 납품되는 모든 약초와 광석들은 기존에 브라운 가문을 비롯한 독점 귀족 상단들이 유통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급 평민 채집꾼들에게 헐값에 약초를 뜯어내어, 아카데미에는 순도와 품질이 조잡한 재료를 수십 배의 폭리를 취하며 납품해 왔다.
우현은 즉시 연구소장 권한으로 새로운 검수 프로토콜을 발표했다.
“오늘부로 모든 원자재는 연구소에서 개발한 ‘비색 시험 촉매액’을 통한 순도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수매합니다. 불순물이 10% 이상 섞인 귀족 상단의 물건은 전량 반품하겠습니다. 대신, 평민 채집꾼들이 직접 들고 오는 물건은 불순물 함량에 따라 정당한 시장 가격보다 30% 더 높게 직접 수매하겠습니다.”
그 발표는 아카데미의 납품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핵폭탄과 같았다. 중간에서 폭리를 취하던 귀족 상단들은 하루아침에 납품길이 막힐 위기에 처했다.
쾅!
소장실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율리안의 사촌이자, 아카데미 유통망의 큰손인 브라운 상단의 단주, 마르쿠스 브라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들이닥쳤다.
“우현 소장!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평민 채집꾼들에게 직접 약초를 사들이겠다니? 우리 브라운 상단을 통하지 않으면 요정림의 희귀 마나 허브를 한 포기도 구하지 못할 텐데, 감당할 수 있겠나!”
마르쿠스는 돈과 인맥을 맹신하는 오만한 상인이었다. 그의 눈에는 우현의 조치가 그저 하룻강아지의 객기로 보였다.
하지만 우현은 책상 서랍에서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가볍게 올려놓았다.
“마르쿠스 단주님.”
우현의 목소리는 지극히 차분했다.
“귀 상단이 납품하는 요정림의 ‘은빛 로즈마리’는 제 정밀 분석 결과 순도가 40% 이하에 불과했습니다. 보존 마법을 대충 걸어 썩어가는 불순물을 억지로 뭉쳐놓았더군요. 그런 쓰레기는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뭐, 뭐라고? 은빛 로즈마리는 우리 상단이 독점 수입하는 귀한 약초다! 우리가 공급을 끊으면 아카데미 마나 포션 생산은 전면 중단된다!”
마르쿠스가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우현은 대답 대신 테이블 위에 널려 있던, 시장 바닥에서 흔히 구하는 하급 잡초인 ‘개구리풀’ 찌꺼기를 플라스크에 넣었다. 그리고 조금 전 꺼낸 푸른색 촉매 용액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쉬이이이익—!
플라스크 내부에서 미세한 화학 반응이 일어나더니, 1분도 되지 않아 탁한 녹색 물이 순도 90% 이상인 맑은 마나 농축 엑기스로 치환되었다. 은빛 로즈마리를 일주일 동안 정제해야 얻을 수 있는 양의 에센스였다.
“하급 잡석과 잡초에서도 고순도 에테르 성분을 10분 만에 합성(Synthesis)해 내는 촉매제입니다. 단주님이 독점 수입하신다는 은빛 로즈마리는 경제성 측면에서 이미 가치를 상실했습니다. 잡초보다 비싼 돈을 주고 수입할 이유가 없지요.”
우현이 생긋 미소 지었다.
마르쿠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우현의 이 간단한 시연은 브라운 가문이 유통망을 볼모로 잡고 부리던 모든 갑질과 독점 권력을 원천적으로 분쇄해 버리는 절대적인 기술적 사망 선고였다.
마르쿠스는 주먹을 부르르 떨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뒷걸음질 쳐 소장실을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아리아는 그 뒷모습을 보며 우현에게 깊은 찬사의 눈빛을 보냈다.
“완벽한 승리에요, 우현 소장님. 이제 아카데미의 1차 원자재 공급망은 완전히 우리 크로이츠의 수중…… 아니, 우현군의 손에 들어왔어요.”
“이건 시작일 뿐입니다, 아리아.”
우현은 창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황실 마탑의 첨탑을 올려다보았다.
기존의 낡고 부패한 이세계 연금술 공급망을 짓밟고, 현대 화학공학의 절대 촉매로 제국 수도의 유통 생태계 전체를 완벽하게 장악해 나갈 천재 연구소장 강우현의 신소재 혁명이 거대한 날갯짓을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