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은 화학으로 합니다

12화: 첫 번째 초합금 합판
반응기 바닥에 조밀하게 가라앉은 은백색의 침전물은 점도가 높은 미세한 나노 입자의 진흙 형태였다.
우현은 특수 실리카 여과지로 용액을 걸러낸 뒤, 건조로의 온도를 적정 수준으로 낮춰 수분을 완전히 날려 보냈다. 건조가 완료되자, 용기 안에는 은백색으로 부드럽게 반짝이는 극미세 금속 나노 분말이 남았다.
일반적인 대장장이나 연금가들이라면 이 가루를 다시 용광로에 넣어 녹였을 터다. 하지만 녹는 순간 타이탄 분말과 철 분말이 열역학적 상분리(Phase Separation) 현상을 일으켜 불균일한 합금이 되어버린다.
“녹이지 않고 하나로 뭉친다.”
우현은 보존실에서 가져왔던 마법 압착 세공기를 테이블 중앙에 거치했다.
그가 구상한 것은 현대 분말야금 공학의 핵심인 ‘감압 온간 소결(Sintering) 공정’이었다. 금속 분말에 고압을 가하면, 녹는점보다 훨씬 낮은 온도에서도 원자들이 경계면을 넘어 서로 확산(Diffusion)되며 하나의 완벽한 판재로 결합한다.
우현은 은백색 분말을 정밀하게 설계된 주형틀에 평평하게 펴 담았다.
여기에 분말 입자 사이의 마력 공극을 채우고 원자 확산을 돕는 마력 바인더(Binder) 촉매액을 고르게 살포했다. 그리고 압착 기어에 부착된 중력 및 압력 룬을 가동했다.
지이이이잉—!
수십 톤의 마법 압력이 주형틀을 짓눌렀다. 동시에 가벼운 온열 룬이 주형의 온도를 약 200도로 유지했다. 금속이 녹지 않고, 오직 원자 간의 물리적 접촉과 촉매 반응만으로 소결이 일어나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정확히 한 시간 뒤.
척—
압착기가 들려 올려지고 주형틀이 분리되었다.
그 안에는 기존의 시꺼멓고 무거운 타이탄 강철 장갑판과는 차원이 다른 물건이 놓여 있었다. 두께는 고작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얇고 가벼웠으나, 거울처럼 매끄럽게 마감된 은백색 표면은 은은하게 푸른 마력 잔여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격자 결함이 존재하지 않는, 결정학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초합금 티타늄 연금 합판’의 첫 번째 시제품이었다.
바로 그때, 연구실의 청동문이 열리며 아리아가 들어왔다. 그녀의 뒤에는 붉은색 군부 망토를 두른 다부진 체격의 중년 남성이 동행하고 있었다.
“우현군, 이쪽은 우리 크로이츠 가문과 긴밀한 관계인 군부의 수석 장비 검수관, 레온 경이에요.”
레온은 주위를 둘러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용광로도, 거대한 모루와 망치도 없는 깨끗한 실험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얇고 가벼운 은백색 합판. 그의 상식선에서 제국의 철벽을 담당할 마장기 장갑판이 이런 촌구석 같은 방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이었다.
“영애의 말씀만 듣고 찾아왔네만…… 저 조잡하고 얇은 은판이 타이탄 합판이란 말인가? 저래서야 마수의 발톱은커녕 일반 강철 검도 막아내지 못할 것 같군.”
레온이 의구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직접 테스트해 보시겠습니까?”
우현은 은백색 합판을 단단한 목조 거치대 위에 비스듬히 세워놓으며 말했다.
레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허리에 차고 있던, 마나가 가득 깃든 검푸른 강철 검을 단숨에 뽑아 들었다.
“좋네. 크로이츠 영애의 체면이 있으니 적당히 치진 않겠네. 장갑판이 부서지더라도 원망치 말게나.”
레온의 전신에서 붉은색 검기가 타올랐다. 그는 망설임 없이 우현의 은백색 합판을 향해 검을 강하게 내리쳤다.
깡————!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금속음이 연구실 내부를 울렸다.
하지만 그 소리가 가시기도 전, 레온의 눈동자가 충격으로 크게 흔들렸다.
“……윽!”
레온은 검을 잡은 오른손에 전해지는 무시무시한 반발력을 이기지 못하고 두어 걸음 뒤로 밀려났다. 그의 검푸른 명검 날끝은 보기 좋게 이가 빠져 뭉개져 있었으나, 거치대 위의 은백색 합판에는 미세한 흠집 하나조차 나 있지 않았다.
합판은 타격의 충격을 마력 진동으로 고스란히 흡수해, 오히려 표면의 푸른 광채를 한층 더 선명하게 빛내며 잔잔하게 울리고 있었다.
충격 흡수율 99%, 마력 전도율 100%.
“어, 어떻게…… 망치질 한 번 없이 소결한 금속이 이런 강도와 마력 전도성을 지닌단 말인가!”
레온 경은 뭉개진 자신의 검날과 은백색 합판을 번갈아 쳐다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리아는 우현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제국의 무기 체계를 송두리째 마개조할 초합금 연금 합판이, 전통 제련술의 한계를 비웃듯 차가운 은백색의 자태로 그 압도적인 강도를 증명해 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