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은 화학으로 합니다

11화: 새로운 연구실과 타이탄 광석
단 하루 만에 우현의 실험실은 완전히 딴판으로 변해 있었다.
크로이츠 공작가에서 보낸 장인들과 인부들이 들이닥쳐 깨진 유리 파편과 진흙으로 뒤덮였던 촌구석 실험실을 뜯어고쳤다. 벽면은 마력을 차단하는 특수 절연 석고로 마감되었고, 테이블 위에는 제국 최상급 학사들이나 쓸 법한 대형 석영 유리 증류관들과 정밀 진동 압력계가 줄지어 배치되었다.
무엇보다 연구실 입구에 당당하게 걸린 ‘크로이츠 공작 후원 연구실’이라는 현판이 그 어떤 외부인의 방해도 차단하는 무적의 방패가 되어주고 있었다.
“우현님, 주문하신 광석들이 도착했습니다.”
수석 조교 엘리안이 땀을 흘리며 두꺼운 나무 상자 여러 개를 마차에서 내려 연구실 안으로 날랐다.
상자 뚜껑을 열자, 시커멓고 투박하지만 표면에 은백색의 미세한 금속성 결정들이 박혀 있는 묵직한 광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이 타이탄 강철석(Titan Steel Ore)입니다. 제국에서 가장 단단하지만, 동시에 가장 다루기 까다로운 광석이죠.”
엘리안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타이탄 강철석은 제국 군부의 마장기 장갑판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핵심 원료였다. 하지만 녹는점이 너무 높아 연성로의 불꽃 룬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수십 일 동안 끓여내야만 겨우 제련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마나 전도성이 전부 타버려, 결과물은 무겁기만 하고 마법 방어력은 엉망인 쇳덩어리가 되기 일쑤였다.
“대장장이들은 이 광석을 그저 불꽃으로 녹이려 하니 비효율이 발생하는 겁니다. 금속 결합을 강제로 끊으려 하지 말고, 화학적 촉매를 이용해 분자 간 결합 에너지를 낮춰야 합니다.”
우현이 광석을 핀셋으로 집어 들어 들여다보며 말했다.
“불을 쓰지 않고 금속을 제련한단 말입니까?”
엘리안이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금속 제련은 뜨거운 용광로와 망치질이 필수라는 것이 대륙의 상식이었다.
“제련이 아니라 ‘합성’입니다. 두 가지 이상의 금속 이온을 액체 용액 속에 녹여낸 뒤, 촉매를 투하해 나노 입자 단위로 동시에 결합시켜 가라앉히는 ‘다상 공침(Co-precipitation) 화학 합성법’을 사용할 겁니다. 이렇게 하면 강철과 타이탄 원자가 격자 구조 수준에서 완벽하게 균일하게 혼합된 ‘초합금 합판’을 상온에 가까운 온도에서도 연성할 수 있습니다.”
우현은 즉시 강산성 에테르 용매를 큰 유리 반응기에 채웠다. 그리고 타이탄 강철석을 얇게 갈아내어 용액 속에 투하했다.
치이이이익—!
용액이 순식간에 노란색 산성 가스를 내뿜으며 금속 이온들을 분자 단위로 분해하기 시작했다. 우현은 그 모습을 관찰하며 반응기의 밸브를 조절해 최적의 화학 평형 상태를 유도했다.
같은 시각, 수도의 브라운 백작 저택.
화려하게 장식된 집무실 안에서, 브라운 가문의 가주이자 율리안의 부친인 브라운 백작이 서류를 집어던지며 분노를 터뜨리고 있었다.
“황실 마탑 납품권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감히 평민 녀석 하나 때문에 우리 가문의 위상이 땅에 떨어지다니!”
그의 앞에는 고개를 숙인 율리안과 가문의 수석 연금술사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서 있었다.
“송구합니다, 아버님. 하지만 그 녀석의 포션은 마법 연성식을 쓰지 않은 이단이었습니다.”
“이단이든 정단이든 상관없다! 황실 군부의 차기 마장기 장갑판 납품 입찰이 코앞이다. 이번 입찰마저 크로이츠 가문과 그 낙제생 놈에게 빼앗긴다면 브라운 가문은 파산이다!”
백작의 눈동자가 차갑게 번득였다.
“군부의 장갑판 성능 시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혹하다. 파괴 마법의 충격을 견뎌야 하지. 마탑의 인맥을 동원해 장갑판의 마력 전도성과 응력 시험 기준을 극한으로 끌어올려라. 아무리 기이한 물약을 만드는 놈이라 해도, 금속 제련의 벽은 절대 넘지 못할 것이다.”
다시 우현의 연구실.
우현은 반응기 내부에 푸른색 촉매 용액을 스포이드로 조금씩 투하하기 시작했다.
뚝, 뚝.
용액이 떨어질 때마다, 노랗던 강산성 액체가 서서히 은백색의 미세한 겔(Gel) 상태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강철 원자와 타이탄 원자가 촉매의 유도 하에 자석처럼 서로 맞물리며, 대륙 역사상 존재한 적 없는 가장 완벽한 초합금의 격자핵을 형성해 나가는 중이었다.
“놀랍군. 금속이…… 스스로 결정을 이루며 가라앉고 있어.”
엘리안 조교는 반응기 바닥에 가라앉는 눈부신 은백색의 나노 결정 진흙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우현은 반응기의 온도를 미세하게 올리며 중얼거렸다.
“이제 시작입니다. 이 나노 진흙을 압착해 연성 쐐기를 박으면, 제국 군부 전체를 뒤흔들 초합금 합판이 완성될 겁니다.”
타이탄 광석의 딱딱한 껍질 속에 숨겨진 마력의 가능성이, 우현의 정밀한 화학 공학 손끝에서 마침내 찬란한 은백색의 빛을 발하며 새로운 금속 혁명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