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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로 귀환한 절대마법사4화

지구로 귀환한 절대마법사

지구로 귀환한 절대마법사

4화: 마법사의 편의점

협회 차량의 경광등이 젖은 공터를 파랗게 훑었다.

강진우는 통제선 바깥에 선 채 임시 조합 사무실을 바라봤다. 컨테이너 창문은 어두웠다. 문 앞에는 아레스 길드원이 두 명이나 서 있었다.

조금 전 젖은 바닥에 쓰러졌던 문서 상자는 보이지 않았다. 가람동 214-7이 적힌 이관 대장도 저 철문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최민아가 무전기를 끄며 다가왔다.

"협회 조사반이 인수했어요. 여기서 더 버티면 현장 방해로 적힐 수 있어요."

"문서는 저 안에 있다."

"알아요. 하지만 조합 직원이 와야 열람 요청을 받아요. 아레스도 밤새 여기 지킬 거고요."

진우는 컨테이너 앞에 선 길드원을 살폈다. 그들은 무기를 손에 쥐지 않았지만 자세가 느슨하지 않았다. 서도현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조사반과 대화하고 있었다.

지금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바람 한 줄기면 감시 카메라의 시선을 비틀 수 있다. 얇은 구속식으로 두 사람의 발을 묶고 문을 열 수도 있다. 그 정도라면 손상된 코어도 견딜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 뒤가 문제였다.

부모님의 기록을 찾으러 온 사람이 문서를 훔친 자로 남는다. 이 도시에서 이름을 찾으려면 먼저 자신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늘려야 했다.

민아가 그의 침묵을 읽은 듯 말했다.

"내일 아침에 협회 실종자 조회 창구부터 갈게요. 조합 쪽에도 내가 열람 요청을 넣어 둘 테니까요."

"아레스가 막으면."

"그때는 협회 입회 아래에서 막는 이유를 적게 하면 돼요. 적어도 오늘처럼 저쪽 말만 남지는 않아요."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은 전장에서 장부보다 느렸다. 하지만 장부가 없으면 전쟁이 끝난 뒤 누가 죽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 도시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는 않아도 부모님의 이름을 찾는 데 쓸 수 있다면 배울 가치가 있었다.

민아가 차 문을 열었다.

"그 전에 숙소부터요. 연락처도 없고 주소도 없으면 내일 결과가 나와도 진우 씨를 찾을 수 없어요."

"나는 여기서 떠나지 않는다."

"가람신도시 안에 잡을 거예요. 그리고 임시 E급은 무단으로 통제선 근처에 머물면 더 의심받아요."

그 말에는 반박할 틈이 없었다.

진우는 마지막으로 컨테이너를 보았다. 철문 하나를 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넘을 차례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숙소는 얼마지?"

민아가 안전벨트를 매려다 멈췄다.

"현금 있어요?"

진우는 낡은 코트 안주머니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손바닥 위에 올린 금화가 가로등 아래서 묵직하게 빛났다.

민아의 눈이 커졌다.

"그건 동전이 아니라 금화죠?"

"금은 어디서나 쓸모가 있다."

"여긴 계산대에 그걸 내면 안 돼요. 출처를 설명할 수 없으면 바로 문제가 돼요."

진우는 금화를 한 번 굴렸다. 아르카디아 북부 왕국의 문장이 새겨진 금화였다. 왕국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금의 무게만은 남아 있었다.

"작게 바꾸면 되나."

"작게 바꿔도 보석상이나 금 매입점에 가야 해요. 그리고 거기도 거래 내역은 남습니다."

그 말에 진우의 손가락이 멈췄다.

오늘만 해도 너무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들었다. 현장팀장과 검사관 그리고 협회 조사반까지. 기록을 싫어한다고 해서 모두 지워 버릴 수는 없었다.

그는 금화 가장자리에 손끝을 댔다.

마력이 실처럼 늘어났다. 얇은 선이 금화의 문양을 피해 천천히 돌았다. 코어 안쪽이 바늘로 찌르는 듯 아려 왔지만 진우는 호흡을 고르게 유지했다.

툭.

손톱만 한 금 조각이 손바닥으로 떨어졌다.

민아는 그 작은 소리에도 몸을 굳혔다.

"진우 씨. 지금도 아픈 거죠?"

"이 정도는 아니다."

"얼굴색이 말해 주는데요."

그녀는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금화와 조각을 모두 다시 주머니에 넣으라고 손짓했다.

"내가 아는 매입점이 있어요. 밤에도 장비 금속을 받는 곳이에요. 단순한 귀금속 거래로 남길 수는 있을 거예요. 대신 다음부터는 그런 걸 사람 앞에서 자르지 마요."

"왜."

"이 도시에서도 금을 손가락으로 자르는 사람은 흔하지 않으니까요."

진우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웃음과 한숨의 중간쯤 되는 소리였다.

매입점은 큰길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 간판 불빛은 반쯤 꺼져 있었고 유리문에는 헌터 장비용 귀금속 매입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주인은 금 조각을 저울 위에 올리고 성분 분석기를 움직였다. 기계가 낮은 소리를 냈다.

"순도가 높네. 재활용 장비에서 나온 겁니까?"

민아가 먼저 대답했다.

"현장 정리 중에 확인된 개인 소지품이에요. 협회 임시 등록자고요."

주인은 진우의 등록증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금액이 크진 않으니 간단 매입으로 처리하죠. 등록번호와 연락 가능한 보증인만 남기면 됩니다."

민아는 잠시 망설이다 자신의 번호를 적었다.

"내가 보증할게요. 단기 생활비로만 쓸 겁니다."

진우가 그녀를 바라봤다.

민아는 시선을 맞춘 채 말했다.

"도망갈 사람 같았으면 애초에 추천 안 했어요. 대신 내일은 꼭 연락받아요."

지폐 몇 장이 진우의 손에 들어왔다. 금 조각보다 가볍고 마나스톤보다 얇은 종이였다. 그 종이로 방을 빌리고 음식을 사고 사람의 시간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은 기묘했다.

"이 정도면 며칠은 돼요."

"종이가 생각보다 강하군."

"사람들이 그걸 믿으니까요."

민아의 대답은 단순했다. 진우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협회 제휴 단기 숙소는 공터에서 버스로 두 정거장 떨어진 원룸 건물이었다. 관리인은 임시 등록증과 민아의 보증 번호를 확인한 뒤 전자 계약서를 내밀었다.

진우는 화면을 한참 내려다봤다.

거주자 성명. 강진우.

그 이름을 마지막으로 문서에 쓴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아르카디아에서는 대마법사라 불렸고 전쟁이 길어지면서 이름보다 직책이 먼저 불렸다.

그런데 이 작은 방을 빌리는 종이에는 다른 어떤 말도 필요 없었다.

강진우라는 세 글자면 충분했다.

그는 화면에 손가락으로 이름을 적었다. 낯선 방식의 서명이 완성되자 관리인이 카드키를 건넸다.

"삼 층 305호입니다. 외출할 때는 카드 꼭 챙기세요."

문을 연 방에는 침대와 책상 그리고 손바닥만 한 냉장고가 있었다. 창밖으로는 같은 모양의 창문들이 끝없이 마주 보고 있었다. 각 창문 안에는 저마다 다른 불빛이 켜져 있었다.

진우는 문턱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성 하나를 지키려면 수백 명의 병사가 필요했다. 이 건물의 사람들은 문 하나를 잠그고도 각자의 밤을 지키고 있었다.

"불편해요?"

민아가 뒤에서 물었다.

"아니다."

진우는 카드키를 쥐었다.

"너무 조용해서 낯설 뿐이다."

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용한 데서 밥부터 먹어요."

"방에 음식이 있나."

"없어요. 편의점에 가요. 선불 단말도 사야 하고요."

편의점 자동문이 열리자 차가운 공기와 빵 냄새가 밀려왔다.

진우는 입구에서 걸음을 멈췄다. 좁은 공간 안에 먹을 것과 생활용품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병에 든 음료와 작은 도시락 그리고 색색의 봉지가 벽처럼 늘어서 있었다.

아르카디아의 보급 마차를 열 번 뒤집어 놓은 듯한 풍경이었다.

"여기 있는 건 전부 살 수 있나?"

"돈만 있으면요."

"필요한 것만 고르면 된다."

"맞아요. 그게 제일 어려워요."

민아는 컵라면 하나와 삼각김밥 두 개를 집어 들었다. 진우는 그것을 받아 들고 포장을 살폈다.

"이게 식사인가."

"오늘 밤은요. 내일은 제대로 먹어요."

그는 컵라면 진열대 앞에서 잠시 더 서 있었다. 국물 맛이 적힌 작은 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매운 맛과 사골 맛 그리고 해물 맛.

어머니는 늦은 밤이면 냉장고에 남은 반찬을 꺼내고 국을 데웠다. 아버지는 식탁 한쪽에서 신문을 접었다. 그때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풍경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그 식탁을 찾으려면 문서와 기록과 낯선 사람들의 허가를 거쳐야 한다.

진우는 매운 맛 컵라면을 골랐다.

"이걸 먹겠다."

계산대의 야간 근무자는 진우를 힐끗 보다가 단말 포장을 들어 올렸다.

"선불형은 본인 등록이나 보증 등록이 필요합니다."

민아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냈다.

"제가 보증할게요. 이분은 협회 임시 등록자예요."

"번호는 하나만 등록됩니다. 분실하면 다시 와야 해요."

진우는 작은 기계를 받아 들었다. 화면이 켜지고 숫자가 떠올랐다. 손바닥보다 작은 물건 안에 연락할 길이 생겼다.

민아가 단말을 가리켰다.

"여기 내 번호예요. 내일 아침 여덟 시에 전화할게요. 받기만 하면 돼요."

"누르면 목소리가 들리나."

"네. 다만 내가 자고 있으면 조금 기다려야 하고요."

"마법보다 느리군."

"마법이 아니라 전화니까요."

진우는 컵라면 뚜껑을 열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물이 표시선 위로 차오르자 민아가 손목을 잡았다.

"거기까지예요. 더 넣으면 싱거워져요."

"국물이 많으면 좋은 게 아닌가."

"그건 취향인데 이건 제조법이 있어요."

진우는 멈칫하다 물을 조금 따라 버렸다. 이어 삼각김밥을 포장째 전자레인지에 넣으려 하자 민아가 다시 막았다.

"포장 벗기고요. 이 부분을 먼저 당겨야 해요."

그녀는 삼각김밥 포장을 천천히 뜯는 법을 보여 줬다. 검보다 복잡한 물건은 아니었지만 진우는 마지막 김 조각이 찢어지자 미간을 찌푸렸다.

민아가 웃음을 삼켰다.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에요."

"전투에서 쓰는 물건보다 까다롭다."

"그래도 이기면 먹을 수 있잖아요."

컵라면에서 김이 올랐다. 진우는 플라스틱 젓가락을 쪼개어 면을 들어 올렸다.

매콤한 국물 냄새가 코끝에 닿는 순간 손이 멈췄다.

늦은 밤 부엌에서 나던 파 냄새가 떠올랐다. 어머니는 국을 데우면서도 아버지 몫의 밥을 따로 덮어 두곤 했다.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면 먼저 진우의 방 불부터 확인했다.

그 평범한 확인 하나가 이제는 가장 먼 곳에 있었다.

"맛없어요?"

민아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들렸다.

"아니다."

진우는 면을 한입 먹었다.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매웠다. 하지만 뜨거운 국물은 텅 빈 속을 천천히 채웠다.

"내일은 협회부터 간다. 조합에도 요청을 넣는다."

"네. 내가 아침에 확인해 볼게요."

"기록이 없으면."

민아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 남아 있는 곳을 더 찾죠. 하지만 오늘처럼 무작정 들어가지는 말아요. 같이 방법을 찾으면 돼요."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갈 식탁을 찾으려면 길을 잃지 않아야 했다.

편의점 창밖으로 형광 조끼 하나가 지나갔다.

진우는 시선을 옮기지 않았지만 유리문에 비친 그림자로 알 수 있었다. 공터에서 통제선을 관리하던 순찰 헌터였다.

그가 길 건너에 멈춰 서서 손안의 단말을 들었다. 화면이 편의점 쪽을 향했다가 곧 내려갔다.

민아의 표정이 굳었다.

"저 사람. 아까 공터에 있었어요."

"나를 확인한 건가."

"그럴 가능성이 커요."

순찰 헌터는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잠시 뒤 누군가에게 짧게 보고하고 골목 쪽으로 사라졌다.

진우는 주머니 속 검은 룬 조각을 만졌다. 차가운 조각 안에는 보이지 않을 만큼 얇은 공간 마력이 남아 있었다. 공터의 균열 가장자리에서 느낀 결도 이와 비슷했다.

같은 결이라고 해서 같은 손이 만든 것은 아니다. 다만 우연이라 치부하기에는 너무 선명했다.

"숙소로 돌아가겠다."

민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혼자 괜찮겠어요?"

"문을 잠그는 법은 배웠다."

"그건 카드키로요. 이상한 마법으로 잠그지 말고요."

"생각해 보겠다."

민아는 헛웃음을 지었지만 단말을 한 번 더 가리켰다.

"아침 여덟 시예요. 꼭 받아요."

진우는 작은 기계를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아레스 길드 임시 사무실에서 서도현은 현장 보고서를 다시 펼쳤다. 다크 나이트의 갑주를 멈춘 임시 E급. 현장 수거물을 내놓지 않은 신규 등록자. 푸른하늘 길드 최민아가 보증한 강진우.

순찰 헌터의 메시지가 들어왔다.

가람신도시 제휴 숙소 인근에서 대상 확인. 최민아 헌터와 함께 있었음.

서도현은 메시지를 읽고 천천히 답장을 보냈다.

계속 보되 접근하지 마라. 협회 기록 열람을 시도하면 즉시 보고해.

그는 마지막 문장을 지우고 다시 적었다.

임시 E급 강진우를 놓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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