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로 귀환한 절대마법사

3화: 첫 번째 마주침
공터 바닥이 낮게 울렸다.
강진우는 축대에 남은 붉은 자국에서 손을 뗐다. 발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진동은 공사 장비의 소음과 달랐다. 마력이 땅속에서 한 번 눌렸다가 풀리는 소리였다.
최민아가 무전기를 확인했다.
"경보 단계가 또 올랐어요. 진우 씨, 이제 나가야 해요."
대답하기도 전에 통제선 쪽에서 검은 승합차 두 대가 멈췄다. 검은 전투복을 입은 헌터들이 차에서 내렸다. 가슴의 붉은 방패 문양은 민아의 푸른하늘 패치보다 훨씬 눈에 잘 띄었다.
맨 앞의 남자가 신분증을 들어 보였다.
"아레스 길드 현장 대응팀입니다. 이 구역은 지금부터 길드 관리 아래 둡니다. 일반인은 바깥으로 이동하십시오."
그의 시선이 진우의 등록증에서 멎었다. 임시 E급이라는 글자를 읽은 뒤 입가가 아주 조금 굳었다.
"임시 등록자도 같습니다. 동행자와 함께 통제선 밖으로 나가세요."
민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협회가 봉쇄를 공표한 건 아니에요. 저희는 옛 주소 확인 때문에 들어와 있었고 곧 나갈 겁니다."
"게이트 반응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확인은 끝났어요."
남자는 짧게 대답했다. 말투는 거칠지 않았지만 선택지는 주지 않았다.
진우는 그의 명찰을 보았다. 서도현. 아레스 길드 현장팀장이라는 직책 아래 작은 글씨가 붙어 있었다.
"공터 안쪽에 조합 서류가 있나."
서도현의 눈썹이 움직였다.
"그건 왜 묻습니까?"
"여기 살던 사람의 기록을 찾고 있다."
"재개발 조합 기록은 민감 정보입니다. 지금처럼 위험한 상황에서 보여 줄 수 없어요."
"그 기록도 길드가 관리하나."
민아가 진우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 말이 더 날카로워지기 전에 끊으려는 신호였다.
서도현은 그녀의 손을 보고는 길드원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주민 대피부터. 조합 임시 사무실은 장비 반입 때문에 우리가 보호 중입니다. 쓸데없는 접근은 막아 주세요."
보호라는 말은 듣기 좋았다. 하지만 통제선 안쪽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아레스의 완장을 찬 이들뿐이었다.
진우는 그 광경을 잠시 바라봤다. 아르카디아에서도 성문을 지키는 자들은 늘 안전을 말했다. 성문 안의 창고와 장부를 먼저 챙기는 자들 역시 그 말로 자신을 꾸몄다.
그때 발밑의 울림이 다시 한 번 커졌다.
진우의 시선이 공터 중앙으로 향했다.
빗물이 고인 웅덩이 위로 검은 실금이 번지고 있었다. 실금은 손가락 굵기가 되더니 마치 안쪽에서 밀어 올린 것처럼 벌어졌다.
"전원 뒤로!"
서도현의 외침과 함께 경보음이 터졌다.
검은 균열이 공터 바닥을 세로로 갈랐다. 찢어진 틈에서는 차가운 안개가 흘러나왔다. 가까운 상가에서 저녁 장을 보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로로 쏟아졌다.
아레스 길드원들은 곧바로 방패를 세웠다. 두 명은 균열을 향해 섰고 나머지는 사람들을 인도로 밀어 냈다.
"지원 장비 도착까지 삼 분! 대피선부터 유지합니다!"
서도현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무전기를 쥔 채 길드원들의 위치를 바꾸고 있었다. 준비가 부족한 현장에 무턱대고 뛰어드는 지휘관은 아니었다.
문제는 균열이 삼 분을 기다려 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진우는 틈에서 새어 나오는 마나를 읽었다.
표면은 흔한 게이트의 잔류 마력과 같았다. 하지만 중심부에는 한 가닥이 어색하게 꼬여 있었다. 자연스럽게 흘러야 할 결을 억지로 꺾은 흔적이었다.
누군가가 그랬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무너진 차원도 비슷한 상처를 남긴다.
그래도 이것은 불길했다.
균열 가장자리가 다시 크게 벌어졌다. 흘러나온 안개가 도로를 향해 기어갔다. 사람들은 서로를 밀치지 않으려 애썼지만 좁은 골목 입구에서 발이 엉켰다.
한 여자가 아이의 손을 붙잡고 울먹였다.
"지민아, 엄마 손 놓지 마."
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검은 틈이 보일 때마다 발걸음이 더 느려졌다.
진우는 가슴 안쪽의 균열을 느꼈다. 코어를 건드리면 통증이 깊어질 터였다. 이 정도의 균열은 아르카디아에서라면 손짓 한 번으로 닫을 수 있었다.
지금의 그는 그 손짓조차 값을 치러야 했다.
그는 어린아이의 굳은 발과 어머니의 떨리는 손을 보았다. 오래전 성벽 아래에서 듣던 울음이 잠깐 귀를 스쳤다.
이번에는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진우는 보도블록 경계에 발끝을 눌렀다.
마력이 아주 얇게 흘렀다. 바닥의 빗물이 선을 따라 움직이며 균열 주위에 옅은 원을 만들었다. 바람에 지워질 만큼 약한 룬이었다.
그럼에도 원 안의 공간이 단단해졌다.
벌어지던 균열의 가장자리가 한순간 멈췄다.
서도현이 놀란 눈으로 진우를 돌아봤다.
"지금 뭘 한 겁니까?"
"대피할 시간을 샀다."
진우는 짧게 말하고 손을 거뒀다. 손끝이 저렸다. 코어의 금 간 부분이 뜨겁게 조여 왔다.
민아는 질문 대신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골목 안쪽으로 가지 마세요! 큰길 쪽으로 돌아서 이동해요. 아이 있는 분부터 앞으로!"
그녀가 선두로 뛰어들자 푸른하늘 길드원은 없었지만 주민 몇 명이 뒤따라 아이들을 안아 들었다. 아레스 길드원들도 통로를 넓혔다.
대피 행렬이 겨우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쿵.
균열 너머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들렸다.
검은 갑주의 사내가 안개를 가르며 걸어 나왔다. 사람의 형체였지만 투구 안에는 눈 대신 붉은 불빛 두 개만 떠 있었다. 한 손에는 녹슨 대검이 들려 있었다.
"다크 나이트다!"
서도현이 방패를 든 길드원 둘을 앞으로 보냈다.
"방어 유지! 원거리조는 다리 관절을 노려!"
화살과 마력탄이 연달아 갑주를 두드렸다. 불꽃이 튀었지만 다크 나이트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대검이 옆으로 휘둘리자 방패 하나가 크게 찌그러졌다.
길드원이 바닥을 굴렀다. 서도현이 검을 뽑아 그 앞을 막았다.
"뒤로 물러나!"
다크 나이트의 두 번째 검격은 대피로를 향했다.
민아가 아이들을 등 뒤로 밀어 넣고 검을 세웠다. 그녀의 검끝이 붉은 불빛을 향했지만 그 거리로는 갑주를 베어 내기 어려웠다.
진우는 다크 나이트의 움직임을 보았다.
갑주 전체가 마력으로 묶여 있었다. 지구의 마수는 보통 심장이나 마나석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저것은 갑주 안쪽에 새긴 명령식이 빈 몸을 끌고 가고 있었다.
목덜미 아래에서 낡은 룬 하나가 검게 빛났다.
아르카디아의 글자는 아니었다. 다만 룬을 다루는 방식은 지나치게 익숙했다.
진우가 숨을 들이마셨다.
"민아, 왼쪽으로 비켜라."
민아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뒤에 선 주민들을 끌어안듯 밀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진우는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공터 위의 바람이 한 점으로 모였다. 눈에 보이지 않던 기류가 가는 칼날이 되어 다크 나이트의 목덜미를 스쳤다.
챙!
갑주의 목 부분에서 검은 조각 하나가 튀어 나왔다.
붉은 불빛이 흔들렸다.
진우는 멈추지 않았다. 첫 주문이 코어를 찌르듯 아프게 했지만 손바닥을 아래로 내렸다.
빗물이 솟구쳐 다크 나이트의 발목을 감쌌다. 작은 구속식이 사슬처럼 관절을 죄었다.
갑주가 대검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제 끝이다."
진우가 손을 쥐었다.
갑주를 움직이던 마력선이 한꺼번에 끊겼다. 다크 나이트는 무릎을 꿇은 뒤 텅 빈 철덩이처럼 앞으로 쓰러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도로가 잠시 흔들렸다.
대피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누구도 환호하지 못했다. 너무 짧아서 전투가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표정들이었다.
진우는 다크 나이트 곁으로 다가갔다. 갑주 목덜미에서 떨어진 검은 조각을 손바닥에 감췄다.
거기에는 낯선 기호와 함께 아주 미세한 공간 마력이 남아 있었다. 해석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가 몸을 일으키자 서도현이 검을 든 채 다가왔다. 경계는 남아 있었지만 아까의 일방적인 태도는 옅어져 있었다.
"강진우 씨라고 했죠. 방금 사용한 능력을 협회 보고서에 적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조각도 현장 수거물입니다."
진우는 손을 주머니에서 빼지 않았다.
"갑주를 멈춘 원인이다. 내가 확인한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서도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게이트 수거물은 규정상 길드가 먼저 봉인합니다. 임시 등록자가 임의로 가져갈 물건이 아니에요."
민아가 두 사람 사이에 섰다.
"현장 수거 절차는 협회 입회가 우선이에요. 아레스가 대응을 맡았다고 해서 전부 가져가는 건 아니죠."
"최민아 헌터. 당신도 봤잖습니까. 저 사람은 E급이 아닙니다."
"나도 봤어요. 그래서 더더욱 길드 내부에서 처리하면 안 돼요."
서도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멀리서 협회 차량의 사이렌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더 밀어붙일 수 없다는 것을 계산한 듯했다.
"좋습니다. 협회가 오면 같이 이야기하죠. 다만 이 일은 기록됩니다."
"기록해라."
진우의 대답은 담담했다.
기록이 사람을 찾는 데 쓰인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누가 그 기록을 쥐느냐였다.
민아가 통제선 옆을 지나던 중 발을 멈췄다. 대피 과정에서 넘어졌는지 임시 사무실 앞에 놓여 있던 종이 상자 하나가 젖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상자 옆으로 두꺼운 문서 목록이 반쯤 빠져나와 있었다.
"진우 씨. 이거 봐요."
그녀가 목록 한 귀퉁이를 가리켰다.
재개발 전 거주지 이관 대장. 주소별 원본 보관함이라는 항목 아래 낯익은 번지가 적혀 있었다.
가람동 214-7.
진우는 그 숫자를 오래 바라봤다. 녹색 대문이 있던 집의 주소였다. 아버지가 택배 기사에게 몇 번이나 불러 주던 숫자였다.
그 아래에는 원본 보관처가 적혀 있었다.
가람신도시 임시 조합 사무실. 현장 보호 협력: 아레스 길드.
상자를 주우러 온 길드원이 목록을 빼앗듯 거둬 갔다.
"그 서류는 보시면 안 됩니다."
진우는 그를 붙잡지 않았다. 대신 문서가 사라진 사무실 쪽을 바라봤다.
희미했던 흔적이 처음으로 글자가 되어 눈앞에 놓였다.
부모님의 이름이 그 안에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찾아야 할 문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게 됐다.
진우는 손안의 검은 룬 조각을 천천히 쥐었다.
아레스 길드가 지키는 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