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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로 귀환한 절대마법사5화

지구로 귀환한 절대마법사

지구로 귀환한 절대마법사

5화: 조용한 해결사

검은 룬 조각은 아침빛을 받지 않았다.

강진우는 단기 숙소의 좁은 책상 위에 조각을 올려두고 손끝을 가까이 댔다. 손톱만 한 금속은 차갑고 무거웠다. 겉면의 기호는 지구의 문자도 아르카디아의 룬도 아니었다.

창문 밖에서는 출근길 차량이 낮게 흘렀다. 밤새 멀리서만 들리던 도시의 소음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어졌다.

진우는 마력을 실 한 올만큼 풀었다.

조각 안쪽에서 희미한 파문이 일었다. 공터의 균열 가장자리에서 느꼈던 공간 마력과 닮은 결이었다. 닮았다는 것뿐이었다. 어느 곳으로 이어지는지, 누가 새긴 것인지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마력을 더 밀어 넣으려는 순간 코어 깊은 곳이 뜨겁게 조여 왔다.

진우는 즉시 손을 거뒀다. 손끝에 맺힌 옅은 빛도 곧 사라졌다.

지금의 몸으로 답을 억지로 끌어내면 조각보다 자신이 먼저 부서진다. 전쟁터에서는 모르는 것을 베어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기록과 흔적은 달랐다. 남은 것을 잃지 않으려면 기다릴 줄도 알아야 했다.

탁자 위 단말이 떨렸다.

최민아의 이름이 화면에 떠 있었다.

"받는 건 이것을 누르면 되나."

진우가 화면을 누르자 곧바로 민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맞아요. 벌써 일어났네요? 협회 앞이에요. 지금 내려올 수 있어요?"

"간다."

"오늘은 조회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에요. 임시 등록자 활동 확인 교육도 받아야 해요. 어제 현장 기록이 붙어서 접수는 가능한데 교육이 비면 조합 쪽 협조 요청이 늦어질 수 있대요."

"문서를 보기 위해 교육도 받아야 하나."

"여긴 사람을 찾는 일도 절차 안에 넣어야 하니까요."

진우는 검은 조각을 가죽 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그 절차를 배우겠다."

숙소 복도에는 막 문을 나선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드키를 목에 건 젊은 헌터도 있었고 서류 봉투를 꼭 쥔 중년 남자도 있었다.

진우는 그들 사이에 섰다. 모두가 각자의 목적지로 가기 위해 작은 카드와 종이를 챙기고 있었다. 힘보다 먼저 갖춰야 하는 물건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부정하지 않았다.

협회 임시 접수처는 전날보다 더 붐볐다. 붕대를 감은 헌터와 보호자 손을 잡은 각성자들이 복도 의자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는 접수 번호를 쥔 채 계속 출입문을 바라봤다.

민아는 창구 앞에서 진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는 얇은 서류 두 장과 따뜻한 캔 음료가 들려 있었다.

"아침은 먹었어요?"

"아직이다."

민아는 캔 하나를 내밀었다.

"그럼 이거라도 마셔요. 그리고 이게 실종자 조회 요청서예요. 이쪽은 재개발 조합 문서 열람 요청서고요. 아는 범위만 쓰면 돼요."

진우는 종이를 받아 들었다.

대상자 성명. 관계. 최종 확인 장소.

빈칸은 많지 않았지만 손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부모님의 이름을 적는 순간 그들은 기억 속 사람이 아니라 이 도시가 찾거나 찾지 못한 대상이 된다.

어머니는 서류에 이름을 적을 때마다 끝 글자를 조금 길게 눌렀다. 아버지는 볼펜이 잘 나오지 않으면 종이 귀퉁이에 선부터 그었다. 사소한 버릇이 손등 위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래도 적어야 했다.

진우는 천천히 두 이름을 써 내려갔다. 관계 칸에는 아들이라고 적었다. 마지막 확인 장소에는 가람동 214-7을 적었다.

민아는 그가 펜을 내려놓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챙겨 온 서류의 추천인 확인란을 먼저 펼쳤다.

"여긴 제가 써요. 현장에서 봤던 일하고 지금 연락 가능한 곳을 적으면 돼요."

"보증과 추천을 계속 맡을 필요는 없다."

민아가 펜을 멈췄다.

"필요가 있어서 하는 거예요. 진우 씨가 혼자면 이 서류는 신원 불명 신청으로 밀릴 수 있어요. 그럼 누가 검토하는 데만 한참 걸리고요."

그녀는 잠시 진우를 보다가 담담하게 덧붙였다.

"대신 거짓말인 건 못 적어요. 현장에서 사람들을 먼저 뺀 거랑 협회에 왔다는 것. 내가 본 건 그것뿐이에요."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의 신뢰라면 빚이 아니라 약속에 가까웠다.

창구 직원은 서류와 임시 등록증을 번갈아 확인했다.

"대격변 초기 자료는 전산에 바로 안 뜰 수 있습니다. 가람동 재개발 전 기록은 조합 보관분이라 협회에서 협조 요청을 보내야 하고요."

"언제 답이 나오나."

"빠르면 이틀입니다. 다만 조합 측에 보호 구역이 걸려 있으면 더 걸릴 수 있어요."

아레스가 지키는 컨테이너가 진우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보호 구역이라면 거절할 수도 있나."

직원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자료 자체가 없다는 답을 할 수는 있죠. 그래도 협회 요청이면 처리 경로와 사유는 남습니다. 신청자 확인과 추천인 확인이 있으면 저희도 근거를 붙이기 쉬워요."

민아가 곧장 서명란에 이름을 적었다.

"추천인 확인은 제가 할게요."

진우도 마지막 칸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작은 전자 서명판 위에 적힌 세 글자가 잠시 빛났다.

강진우.

누군가 허락해 준 이름이 아니었다. 잃어버린 집을 찾기 위해 자신이 남기는 흔적이었다.

직원이 접수 버튼을 누르자 화면에 두 건의 신청 번호가 떠올랐다.

"조회 결과나 조합 회신은 등록된 단말로 보내 드릴게요. 그리고 활동 확인 교육 이수 기록이 들어오면 협조 요청도 바로 넘기겠습니다."

답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철문 앞에 멈춰 있던 길에 처음으로 번호가 붙었다.

교육장은 접수처 뒤편의 빈 회의실을 개조한 곳이었다. 열 명 남짓한 임시 등록자가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었다. 벽면 화면에는 E급 현장 안전 교육이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교육 담당자는 둥근 마력 표적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투명한 구체 안에서 손바닥만 한 푸른 빛이 느리게 회전했다.

"E급은 혼자 강한 게 중요한 등급이 아닙니다. 위험을 먼저 보고 신고하고 대피선을 지키는 게 우선이에요. 지금부터 표적의 누출을 안전 구역 밖으로 흩어 보세요."

누군가 손을 들었다.

"이걸 맞히면 되는 겁니까?"

"맞히는 게 아니라 멈추는 겁니다. 마력이 새면 사람부터 빼고 장비는 그다음이에요."

담당자의 말은 짧았지만 진우는 그 원칙을 이해했다. 성벽이 무너졌을 때도 먼저 해야 할 일은 적을 베는 것이 아니라 성 안의 사람을 빼내는 일이었다.

순서가 돌아오자 한 청년이 손바닥에서 불꽃을 만들었다. 불꽃은 표적에 닿기도 전에 옆으로 튀어 책상 모서리를 그을렸다.

담당자는 한숨을 삼켰다.

"세게 하지 말고요. 흐름만 건드리세요."

청년이 자리에 앉자 옆의 여자가 긴장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그녀가 내보낸 물줄기는 표적을 감싸려다 바닥을 적셨다. 구체 속 푸른 빛은 오히려 더 빠르게 흔들렸다.

진우의 차례가 됐다.

표적 안에는 얕은 마력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본래는 연습용 장치일 뿐이었다. 그러나 마력의 매듭 한 곳이 억지로 조여져 있었다. 누군가 조립할 때 잘못 맞춘 흔적처럼 보였다.

그는 손을 들어 바람을 불렀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약한 기류가 표적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진우는 누출을 밖으로 흩뜨리는 대신 매듭을 아주 조금 풀었다.

그 순간 표적이 덜컥 흔들렸다.

구체 표면에 검은 실금이 번졌다. 파편이 될 빛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가까이 앉은 교육생 하나가 놀라 의자를 밀쳤다. 뒤로 물러나려던 발이 젖은 바닥에 미끄러졌다.

진우는 손목을 꺾었다.

파편 앞의 공기가 가늘게 접혔다. 빛 조각들은 사람에게 닿기 직전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을 두드린 것은 빗방울보다 작은 마력의 부스러기뿐이었다.

민아가 넘어진 교육생의 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그녀는 진우의 손끝을 바라봤다. 그가 큰 바람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파편 하나하나의 방향을 바꿨다는 사실을 알아챈 듯했다.

진우는 손을 내리지 않은 채 표적을 다시 보았다.

풀린 매듭이 아직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흐름의 가장자리만 살짝 눌렀다. 구체 안의 푸른 빛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교육 담당자는 표적을 들어 살폈다.

"누출이 멈췄네요. 장치가 불안정했던 모양입니다. 강진우 씨, 능력은 바람 계열이라고 했죠?"

"그렇다."

"좋습니다. 다만 측정 파형이 또 흔들렸어요. 재측정 권고를 하나 남기겠습니다. 오늘 교육 이수는 처리할게요."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E급이라는 글자는 여전히 얇고 낮았다. 하지만 그 글자 덕분에 자신의 요청서는 협회의 전산을 타고 조합으로 갈 것이다. 낮은 문이라도 열려 있다면 지나갈 수 있다.

교육장을 나서자 민아가 낮게 말했다.

"아까 그거 일부러 작게 한 거죠."

"작게 하지 않았다면 표적이 아니라 벽이 먼저 망가졌을 거다."

민아는 피곤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럴 것 같았어요. 다음에는 장치가 이상하면 먼저 말해요. 혼자 고치려다 다치면 곤란하니까."

"사람이 다치기 전에 끝났다."

"그건 맞는데요."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접수처 옆 화면을 가리켰다.

임시 E급 현장 동행 모집. 다음 날 오전. 가람신도시 외곽 E급 게이트.

"교육 이수했으니 이제 이런 공고에 신청할 수 있어요. 정산도 받고 경력도 쌓이고요."

진우는 공고의 세부 내용을 읽었다. 입장 제한 인원, 동행 길드, 기본 보상. 기록 회신을 기다리는 동안 손을 놓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숙소와 식사에 쓸 돈도 계속 필요했다.

"혼자 들어가는 건 안 돼요. 푸른하늘 쪽에서 인원이 모이면 내가 같이 갈 수는 있어요."

"신청해라."

민아가 단말을 꺼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협회 건물 맞은편 승합차 안에서 서도현은 태블릿 화면을 내려다봤다.

다크 나이트 현장 보고. 임시 E급 강진우의 교육 기록. 바람 계열. 불안정 파형. 표적 누출 정지.

세 줄은 서로 맞지 않았다.

서도현은 화면을 넘기다 멈췄다. 교육장 복도 카메라에 찍힌 진우는 다른 교육생들처럼 조용히 걸어 나왔다. 과시도 없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다크 나이트의 명령식을 한 번에 끊었다.

"팀장님. 계속 볼까요?"

운전석의 길드원이 물었다.

"본인이 움직이는 곳만. 협회 안에서 건드리지는 마."

서도현은 진우의 신청 공고를 확인했다.

"그리고 면담 자리를 하나 만들어. 스카우트 제안으로 시작한다."

그날 저녁 진우의 단말에 협회 알림이 도착했다.

E급 게이트 동행 신청이 접수되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읽지 않은 번호 하나가 떠 있었다.

아레스 길드. 강진우 헌터님께 면담을 요청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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