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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의 요괴 계약자20화

백야의 요괴 계약자

백야의 요괴 계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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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봉인된 맥의 문

새벽의 도심은 1급 수배령이 내린 도시답지 않게 지나치게 조용했다.

민우와 은하린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지하상가 출입구 아래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셔터 틈으로 스며든 비 냄새와 오래된 먼지가 축축한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지상 도로를 지나는 차량은 드물었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부적 경보음은 일정한 간격으로 어둠을 긁었다.

목패는 민우의 손안에서 세 번 짧게 떨린 뒤 긴 침묵을 반복했다. 푸른 빛은 지하상가의 낡은 안내판을 지나 상가 뒤편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 근처야."

민우가 낮게 말했다.

은하린은 계단 아래의 어둠을 훑으며 고개를 저었다.

"구영맥 지하 구역의 옛 도면은 여러 번 덧씌워졌어. 상가 아래로만 일곱 갈래 통로가 있어. 목패 방향만 믿고 들어가면 막힌 길에서 수색조와 마주칠 수도 있어."

[주인님, 위쪽 도로에서 쇠 냄새가 납니다. 령탐견의 사슬 소리도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흑영의 경고가 의식 깊은 곳에서 번졌다. 백랑은 거칠게 숨을 뱉었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라. 사냥개들이 코를 들이밀기 전에 말이다.]

"부수면 경보가 울려."

민우는 목패를 쥔 손을 아래로 내렸다. 푸른 빛은 계단 너머의 폐쇄된 화물 통로를 향해 길게 늘어났다. 그는 물이 고인 바닥 위로 희미하게 퍼지는 빛을 따라 걸었다.

통로 끝에는 녹슨 환기 덮개 하나가 벽에 기대어 있었다. 누군가 나사를 풀었다가 다시 억지로 끼운 듯 가장자리의 시멘트가 새것처럼 희게 드러나 있었다.

하린이 덮개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건 옛 지하철 공사 때 폐쇄한 환기축이야. 도면에는 막혀 있다고 적혀 있었는데."

민우는 덮개 밑 시멘트에 박힌 검은 못 세 개를 가리켰다. 못의 머리에는 정령청의 표식과 닮은 고리가 새겨져 있었지만 가운데에는 작은 원 두 개가 나란히 겹쳐 있었다.

"막은 게 아니라 숨긴 거야."

목패가 손바닥에서 뜨겁게 뛰었다.

그 순간 검은 못 하나가 붉은 불꽃을 토했다. 벽 전체에 붙어 있던 먼지가 일제히 들썩이며 부적 글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침입 감지. 봉쇄 구역.

하린의 얼굴이 굳었다.

"정령청식 자동 경고 부적이야. 건드리면 지상 수색망에도 반응이 올라가."

계단 위에서 젖은 발소리가 울렸다. 령탐견의 낮은 콧김과 사슬이 돌계단을 긁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민우는 대답 대신 두 손을 벽에 댔다.

"열 수 있나?"

"파괴하지 않는다면 방법은 하나야. 이 부적이 보는 것을 속이는 거지."

민우의 하단전에서 푸른 조율선이 가늘게 밝아졌다. 흑영의 그림자가 벽을 타고 올라가 경고 부적의 붉은 글자를 천천히 먹어 치웠다. 동시에 백랑의 한기가 검은 못과 금속 덮개에 달라붙었다.

쨍.

녹슨 금속이 급격히 수축하며 낮은 비명을 냈다. 그러나 가운데 못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목패의 빛이 그 못을 비추자 표식 속의 원 두 개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주인님, 저것은 단순한 봉쇄가 아닙니다. 두 힘이 맞서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흑영의 목소리에 백랑이 코웃음을 쳤다.

[그럼 맞서 주면 되겠군.]

"아니. 맞서게 만들려고 한 장치야."

민우는 두 요괴의 기운이 서로 닿기 직전 멈춰 세웠다. 백랑의 한기는 못의 바깥 고리를 조이고 흑영의 그림자는 안쪽 원의 그림자만 덮었다. 두 힘은 섞이지 않은 채 목패가 뛰는 세 번의 박자를 따라 번갈아 움직였다.

첫 번째 박자에 바깥 고리가 돌아갔다.

두 번째 박자에 안쪽 원이 가라앉았다.

세 번째 박자에 민우의 손바닥을 타고 흐른 조율선이 못 한가운데를 꿰뚫었다.

콰직.

검은 못이 부러지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대신 벽 안쪽에서 오래 잠겨 있던 빗장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붉은 경고 글자는 검게 식어 사라졌고 환기 덮개가 안쪽으로 천천히 밀려났다.

민우는 숨을 들이켰다. 가슴 중앙이 날카롭게 조여 왔다. 령핵의 표면을 누군가 얇은 칼로 긁어낸 듯한 통증이었다. 손끝이 잠깐 말을 듣지 않아 덮개 가장자리를 놓칠 뻔했다.

"민우."

하린이 그의 팔을 붙들었다.

"손이 떨리고 있어. 더 쓰면 안 돼."

민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축축한 계단 위에서 령탐견이 한 번 크게 짖었다. 부적을 쥔 요원의 목소리가 바로 뒤이어 들렸다.

"이쪽 아래에도 잔향이 있다. 덮개를 확인해."

하린은 민우의 창백한 얼굴과 어둡게 열린 환기축을 번갈아 보았다. 잠시 뒤 그녀는 그의 팔을 놓고 먼저 안쪽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네가 길을 찾았어. 나는 네 뒤를 지킬게. 대신 쓰러질 것 같으면 숨기지 마."

민우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환기 덮개를 조용히 당겨 제자리로 돌린 뒤 어둠 속으로 내려갔다.


축 아래에는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폭의 돌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계단 벽에는 오래전에 지워진 부적 글자들이 물때 사이로 남아 있었고 공기에는 묵은 흙 냄새와 금속성 향이 섞여 있었다.

하린이 작은 손전등을 켜려 하자 민우가 손목을 막았다.

"빛은 안 돼."

목패가 스스로 푸른 빛을 내며 계단 앞을 비췄다. 빛이 닿은 바닥에는 두 줄의 얕은 홈이 나타났다. 한 줄은 서리처럼 희었고 다른 한 줄은 먹물처럼 검었다.

"천화조율주법의 흔적이야."

하린은 목소리를 죽였다.

"여기가 정말 그 계통의 구역이었다면 정령청도 함부로 손대지 못했겠네. 봉쇄만 유지한 이유가 있었어."

"정령청이 이 흔적을 알고 있었을까?"

"확실하지 않아. 다만 이 정도로 오래된 봉인이라면 일부 관리 기록만 남기고 현장 접근을 막았을 수 있어. 지금 수색망도 이 환기축까지는 모를 가능성이 높아."

민우는 대답 대신 계단 벽을 손끝으로 훑었다. 희미한 부적 자국마다 목패의 빛이 아주 작게 흔들렸다. 지상의 부적과 달리 이곳의 흔적은 누군가를 배제하려는 위협보다 정해진 순서를 기다리는 숨결에 가까웠다.

하린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단말기를 꺼내려던 손을 멈췄다. 신호를 읽을 수 있다 해도 바깥 수배망에 자신의 위치를 흘릴 위험이 더 컸다. 그녀는 단말기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민우의 뒤쪽을 살폈다.

"앞은 네 감각을 믿을게. 뒤는 내가 볼게."


계단 끝의 넓은 돌방에 들어선 순간 두 줄의 홈이 갈라졌다. 희고 검은 안개가 각각 다른 통로를 메우며 민우와 하린 사이로 벽을 세웠다.

[늑대의 길은 왼쪽이다.]

[그림자의 길은 오른쪽이다.]

누구의 목소리도 아닌 낯선 속삭임이 돌방 전체에 울렸다.

백랑의 한기가 민우의 왼쪽 팔을 당겼다. 흑영의 음기는 오른쪽 발목을 잡아끌었다. 두 요괴의 령격을 억지로 벌려 놓으려는 힘이었다.

민우는 이를 악물고 조율선을 붙들었다. 가슴의 통증이 푸른 선을 따라 번져 나갔지만 양쪽 힘이 끌려가는 방향은 선명하게 느껴졌다. 안개는 길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령격이 제자리에서 이탈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패가 세 번 뛰었다.

처음 두 번은 백랑과 흑영의 기운에 맞춰 번갈아 울렸다. 마지막 한 번은 둘 사이의 푸른 조율선을 정확히 겨눴다.

"둘 다 내 말만 들어. 백랑은 왼쪽 안개를 얼려. 흑영은 오른쪽 안개 속에 숨은 결계를 잘라. 하지만 한 발도 통로 안으로 들어가지 마."

[명령이라면 따른다.]

흑영이 먼저 대답했다.

백랑은 짧게 으르렁거렸지만 이내 한기를 뿜어냈다.

희뿌연 왼쪽 안개가 얼음 조각처럼 갈라졌고 오른쪽의 검은 안개에서는 흑영의 그림자가 번개처럼 움직였다. 안개 뒤에 숨은 수십 개의 가짜 통로가 검은 종이처럼 찢겼다.

그러나 중앙의 바닥이 꺼지며 민우의 발밑에서 시커먼 구멍이 열렸다.

하린이 민우의 어깨를 붙잡아 뒤로 끌었다. 민우는 넘어지며 손바닥을 바닥에 짚었다. 푸른 조율선이 두 갈래 홈 위로 퍼져 나갔다.

"갈라지는 길이 아니야. 둘을 갈라놓아야만 열리는 함정이야."

그는 백랑과 흑영의 기운을 다시 끌어당겼다. 이번에는 한기와 그림자를 겹치지 않았다. 서로의 경계에 맞닿게만 두고 중앙에 남은 푸른 선을 곧게 세웠다.

백랑의 한기가 왼쪽 홈을 따라 흘러 균열의 가장자리를 붙들었다. 흑영의 그림자는 오른쪽 홈으로 파고들어 구멍 아래에 감춘 검은 부적들을 끊어 냈다. 민우는 두 힘이 서로를 누르려는 순간마다 목패의 박자에 맞춰 푸른 선을 한 번씩 당겼다.

돌방의 균열이 멈췄다.

흰 안개와 검은 안개가 바닥으로 흘러내리며 하나의 좁은 길을 드러냈다. 하린은 손을 놓지 않은 채 민우를 일으켰다.

"이 결계는 침입자를 막으려는 게 아니었어. 조율이 무너질 사람을 걸러 내는 거였네."

"그렇다면 안쪽에서 기다리는 것도 시험일 수 있어."

민우가 대답하며 길 끝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옥빛 문패처럼 생긴 돌판이 서 있었다. 돌판 양옆의 균열에서는 희고 검은 기운이 서로 닿지 않은 채 가늘게 맴돌고 있었다.

돌판 위의 글자가 푸른 빛으로 떠올랐다.

둘째 고리를 지키는 보조 결계. 호출표를 지닌 계약자여, 두 번째 문을 열어라.

민우는 목패를 움켜쥔 채 돌판을 바라보았다.

목패는 열쇠가 아니었다. 누군가 오래전부터 조율선을 다시 세울 계약자를 기다리며 남긴 호출표였다.

[주인님, 저 문 너머에는 제 기운과 닮지 않은 그림자가 있습니다.]

흑영의 목소리가 드물게 흔들렸다.

백랑도 으르렁거림을 삼켰다.

[그리고 내 한기보다 훨씬 오래된 차가움도 있다.]

돌판 뒤 어둠 속에서 두 번째 종소리가 울렸다.

민우의 목패가 그 소리에 맞춰 다시 한번 뜨겁게 맥박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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