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배송은 새벽 세 시에

3화 [새벽시장 13번 골목]
벽 틈으로 스며 나온 바람은 서린역 지하의 냄새가 아니었다.
도윤은 벌어진 철문 틈에 장갑 낀 손을 얹은 채 굳어 있었다. 지하상가 바닥을 적시던 썩은 하수구 냄새와 축축한 곰팡이 냄새 대신 서늘하고 마른 흙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늦가을 새벽 깊은 산자락이나 오래 묵은 통나무 창고에서나 풍길 법한 메마른 향이었다.
문틈 너머는 어두웠지만 칠흑 같은 암흑은 아니었다. 바닥을 따라 은은한 푸른빛이 옅은 안개처럼 깔려 있었고 아득히 먼 곳에서 무거운 바퀴 구르는 소리와 둔탁한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도윤은 배달 가방의 어깨끈을 바짝 당겨 가슴 버클을 단단히 채웠다.
등 뒤에 밀착된 7.4킬로그램짜리 검은 상자는 완충재로 감싸 놓았지만 여전히 일정한 간격으로 미세한 진동을 뿜어냈다. 손목에 찬 시계는 새벽 00시 52분을 가리켰다. 마감 시각인 03시까지는 두 시간 남짓 남았다.
‘지정된 출입구로 귀환할 것.’
운송장에 적혀 있던 경고가 머릿속을 스쳤다.
배달 일을 하며 수없이 겪은 교훈 중 하나는 낯선 건물에 들어갈 때 반드시 나가는 문부터 확인하는 것이었다. 복잡한 오피스텔이나 지하 주차장에서 출구를 잃어버리면 아까운 몇십 분이 순식간에 날아간다. 하물며 지도에도 없는 폐쇄 구역 너머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도윤은 문짝의 경첩과 바닥의 걸쇠를 손전등으로 꼼꼼히 비췄다. 문은 저절로 닫혀 잠기는 스프링 구조가 아니었다. 문틀 주위로 푸른 실선이 형광 테이프처럼 둘러쳐져 있었고 안쪽 벽면에도 같은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적어도 안쪽에서 문을 다시 밀고 나올 수 있는 손잡이는 확실히 달려 있었다.
도윤은 바지 주머니에서 비상용 노란 초크를 꺼냈다. 문틀 바깥쪽 타일에 바깥을 향하는 작은 화살표를 굵게 그었다.
“돌아올 길은 확보했고.”
그는 가슴을 채운 공기를 천천히 내뱉은 뒤 벌어진 틈 사이로 한 발을 내밀었다.
철문을 넘어서는 순간 귓가를 때리던 빗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지하 배수 펌프가 털털거리며 돌던 모터 소리도 천장에서 똑똑 떨어지던 낙수 소리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두꺼운 방음벽을 친 스튜디오 안으로 쑥 걸어 들어온 듯 주변이 기이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귀 안쪽의 기압이 덜컥 내려앉으며 고막이 먹먹해졌다. 도윤은 턱을 움직여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그는 즉시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지나온 철문 너머로 서린역 B2의 축축한 형광등 불빛과 물웅덩이가 액자 속 정지 화면처럼 멈춰 서 있었다. 문틀을 감싼 푸른빛만이 물결치듯 일렁이며 이곳과 저곳의 경계를 뚜렷하게 가르고 있었다.
도윤은 문손잡이를 손등으로 밀어 보았다. 차가운 쇠 느낌 그대로였다. 문은 닫히지 않고 반 뼘 정도 열린 상태를 묵직하게 유지했다.
안도감이 들자마자 허리춤의 휴대폰이 짧고 강하게 진동했다.
도윤은 화면을 켰다. 통신사 안테나는 완전히 꺼져 있었지만 퀵잇 앱 화면은 꺼지지 않았다. 상단에는 ‘네트워크 오프라인’ 대신 전혀 다른 시스템 표시가 떠올랐다.
[여명권 임시 접속 승인]
[현재 위치: 서린 관문 접속 통로]
[목적지: 새벽시장 13번 골목 (직선거리 320m)]
[남은 시간: 02:06:14]
화면 중앙에는 평소 보던 서울 도로망 지도 대신 흑백 등고선과 푸른 화살표로 이루어진 간이 나침반이 표시되었다.
거리 320미터. 도보로 오 분이면 주파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길은 평범한 300미터가 아니었다. 통로는 지하상가의 복도치고는 기이하게 천장이 높았고 양옆 벽면은 콘크리트가 아니라 거친 회색 암반을 정으로 깎아 만든 것처럼 울퉁불퉁했다. 바닥에는 오랜 세월 무거운 짐수레가 지나다닌 듯 얕은 바퀴 자국 두 줄이 깊게 패어 있었다.
도윤은 보폭을 줄이고 발바닥 전체로 바닥을 딛으며 걸음을 옮겼다.
배달을 하며 몸으로 익힌 가장 중요한 안전 수칙은 낯선 노면에서 절대 뛰지 않는 것이었다. 비에 젖은 맨홀 뚜껑이나 결빙 구간에서 급하게 서두르다 미끄러지면 화물이 깨지고 기사 몸이 부서진다. 지금처럼 바닥의 경사와 마찰력을 가늠하기 어려운 곳에서는 천천히 가더라도 균형을 잃지 않는 편이 훨씬 빨랐다.
벽면을 따라 듬성듬성 설치된 낡은 철제 등잔에서 희미한 기름 냄새가 났다. 불꽃은 주황색이 아니라 옅은 청록색을 띠고 있었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불꽃은 일정한 박자로 가늘게 흔들렸다.
통로를 100미터쯤 걸어 들어갔을 때 등 뒤 가방 속 상자가 덜컥하고 반응했다.
도윤은 벽에 등을 기대고 멈춰 섰다. 배낭 옆 지퍼를 열어 완충재 상태를 살폈다. 접어 넣은 우비가 상자 모서리를 단단히 물고 있었고 은색 테이프는 뜯기지 않았다. 다만 상자 가운데 붙은 푸른 경계 라벨이 통로 안쪽의 등잔 불빛과 똑같은 주기로 깜빡이고 있었다.
‘화물 포장 이상 없음.’
그는 속으로 점검을 마치고 지퍼를 다시 올렸다.
통로 끝자락에 다다르자 서서히 소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빗소리가 아니었다. 왁자지껄한 인파의 웅성거림, 거친 숨소리, 무거운 나무 궤짝을 바닥에 내려놓는 쿵 소리, 쇠바퀴가 돌바닥을 긁으며 굴러가는 소리가 뒤섞여 울렸다.
도윤은 통로 출구의 아치형 석조 문턱 앞에 섰다.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눈을 가늘게 뜨고 문턱을 넘어서자 서린구의 밤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하늘이었다. 비구름은 흔적도 없었다. 먹물을 풀어놓은 듯 짙푸른 밤하늘 한가운데에 거대한 은빛 안개 띠가 은하수처럼 길게 흐르고 있었다. 도심의 네온사인이나 가로등 불빛 대신 수백 개의 푸른 가스등과 주황색 초롱이 골목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공기는 차가웠다. 초가을 새벽처럼 서늘하고 맑은 공기가 폐부 깊숙이 밀려들었다.
“비가 안 오잖아…….”
도윤은 헬멧 실드를 올리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의 눈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시장 통로가 뻗어 있었다. 바닥은 네모나게 다듬은 단단한 돌판으로 촘촘히 포장되어 있었고 양옆으로는 2층, 3층짜리 낡은 목조 건물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건물 처마 밑마다 붉고 푸른 천막이 쳐져 있었고 온갖 형태의 짐을 실은 수레와 지게가 쉴 새 없이 오갔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낯설었다. 두꺼운 가죽 앞치마를 두른 거한들이 사람 몸채만 한 나무 궤짝을 번쩍 들어 올리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챙이 넓은 모자와 낡은 털외투를 덮어쓰고 물건 목록이 적힌 양장 노트를 넘기고 있었다.
익숙한 프랜차이즈 간판도, 번쩍이는 전광판도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 감도는 분위기는 도윤에게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새벽 시장 특유의 팽팽한 활기.
아침이 오기 전에 물건을 싣고 날라야 하는 자들의 다급한 발걸음과 거친 숨소리가 골목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서린시장 청과물 골목에서 매일 새벽 세 시마다 보던 그 치열한 생계의 현장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지나가던 한 짐꾼이 도윤의 형광 배달 조끼와 커다란 사각 배달 가방을 흘끔 쳐다보았다. 낯선 복장이었지만 짐꾼은 길을 막지 않고 어깨로 수레 손잡이를 밀며 옆으로 비켜 지나갔다.
“운송자 양반, 거기 멍하니 서 있으면 짐차에 발 밟혀! 안쪽으로 붙어!”
지나가던 중년의 인부가 굵직한 목소리로 툭 던지고는 수레를 밀며 성큼성큼 사라졌다.
도윤은 반사적으로 “죄송합니다” 하고 벽 쪽으로 몸을 물렸다.
‘운송자.’
그 단어가 귓가에 맴돌았다. 저들은 도윤의 기이한 헬멧과 옷차림을 보고 놀라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등에 진 가방과 가슴의 결착 벨트를 보고 그를 짐을 나르는 동종 업계 기사로 자연스럽게 대하고 있었다.
도윤은 휴대폰을 확인했다.
화살표는 중앙 대로가 아니라 왼쪽으로 꺾어지는 좁은 골목길을 가리켰다. 벽면에 붙은 낡은 놋쇠 번호판들을 차례로 훑었다.
[새벽시장 9번 골목]
[새벽시장 11번 골목]
그리고 그 옆, 푸른 이끼가 붉은 벽돌 담장을 타고 올라간 좁은 어귀에 숫자가 적혀 있었다.
[새벽시장 13번 골목]
골목 안은 중앙 대로보다 훨씬 어둡고 눅눅했다. 처마 사이로 옅은 증기가 새어 나왔고 쌉싸름한 풀뿌리 냄새와 약초 달이는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골목 바닥은 물기가 차 있어 미끄러웠지만 이끼가 덜 낀 중앙 돌판을 밟자 발이 밀리지 않았다.
도윤은 가방 끈을 다시 고쳐 메고 13번 골목 안쪽으로 깊숙이 발을 디뎠다.
골목 양쪽에는 말린 나뭇잎과 기이한 뿌리혹을 담은 바구니들이 처마 밑에 층층이 쌓여 있었다. 선반에 놓인 유리병 속 푸른 액체들이 등불을 받아 반짝였다. 몇몇 가게 앞에는 숯불을 피운 둥근 무쇠 화로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서 주전자가 흰 김을 쉬지 않고 뿜어냈다.
휴대폰 화면이 짧게 진동하며 새로운 메시지를 띄웠다.
[목적지 반경 10m 이내 도달]
[수령처: 고목 약초전]
[배송 방식: 상호 교환 및 봉인 확인]
도윤은 걸음을 멈추었다.
골목 끝자락, 거대한 고목 나무 기둥을 벽체 삼아 지어진 낡은 단층 목조 가옥이 서 있었다. 처마 밑에는 세월에 닳고 닳은 나무 간판이 걸려 있었고 그 위에는 낯선 문양과 함께 투박한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고목 약초전.’
가게 앞에는 푸른빛을 내뿜는 이끼 상자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그 안쪽의 낡은 삼베 발 너머로 누군가 약초를 절구에 빻는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쿵.
도윤의 등 뒤 가방 속 상자가 그 절구 소리에 박자를 맞추듯 묵직하게 진동했다.
도윤은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가게 처마 밑으로 다가섰다. 그의 젖은 신발이 삐걱거리는 나무 문턱을 밟는 순간 안쪽의 절구질 소리가 딱 멎었다.
삼베 발 너머에서 낮고 건조한 노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시에 맞춰 왔군. 비 냄새를 묻히고 온 걸 보니 관문은 아직 안 닫혔나 보지?”
도윤의 손끝이 가방 결착 버클에 닿았다. 첫 번째 배송의 종착점이 그의 눈앞에서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