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배송은 새벽 세 시에

2화 [푸른 운송장]
도윤은 화면을 끄지 못한 채 스쿠터 위에 앉아 있었다.
새벽배송망 탭은 빗물 묻은 보호 필름 아래에서 푸르게 빛났다. 일반 주문을 보던 화면으로 돌아가도 그 탭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픽업: 서린역 지하상가 B2 폐쇄구역]
도윤은 주소를 길게 눌렀다. 지도는 서린역 앞 도로까지만 안내했다. 그 아래부터는 회색 격자가 깔렸고 목적지 표시는 보이지 않았다.
“장난도 대충 해야지.”
취소 버튼을 눌렀다. 버튼은 눌리지 않았다. 대신 화면 하단의 위약금 숫자만 한 번 밝아졌다.
사만 팔천 원.
그 돈이면 오늘 넣지 못한 리스료의 절반은 넘겼다. 누군가의 악성 주문이라면 앱 고객센터가 처리해야 할 일이다. 도윤은 바로 전화를 걸었다.
자동 안내음이 몇 번 이어진 뒤 상담 연결음 대신 낯선 목소리가 흘렀다.
“운송장 확인 전에는 취소할 수 없습니다.”
여자도 남자도 아닌 낮은 목소리였다.
“누구세요?”
“마감은 03:00입니다.”
통화가 끊겼다.
도윤은 휴대폰을 귀에서 뗀 채 화면을 봤다. 퀵잇 고객센터의 대기 화면은 아니었다. 통화 기록에도 방금 번호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비가 줄었다고 해서 길이 안전해진 것은 아니었다. 서린역까지 왕복하면 연료는 빠듯하다. 폐쇄 구역에 들어갔다가 단속이라도 걸리면 오토바이를 세워 둘 곳도 없다.
그래도 지하상가 입구까지만 가 보는 건 가능했다. 문이 잠겨 있으면 앱 오류로 신고할 근거가 생긴다. 화면에 뜬 위약금도 그때 따져 볼 수 있었다.
도윤은 시동을 걸었다.
서린역 쪽 도로는 자정이 넘어서도 젖은 차들이 천천히 기어갔다. 침수된 사거리의 물은 빠졌지만 맨홀 주변에는 흙탕물이 남아 있었다. 도윤은 바퀴를 물 가장자리에서 떼고 역 뒤편으로 돌았다.
주유등이 계기판 한쪽에서 붉게 깜빡였다. 집까지 바로 가면 남는 양이다. 역을 찍고 돌아오면 계기판 숫자만 믿어야 했다.
그는 속도를 올리지 않았다. 연료보다 위험한 건 미끄러져 수리비가 생기는 일이었다.
정문 앞에는 노란 차단띠가 처져 있었다. 유리문에는 ‘시설 점검 중’이라는 종이가 비에 젖어 붙어 있었다. 안쪽 조명은 전부 꺼져 있었다.
그런데 B2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끝에서 푸른빛이 올라왔다.
도윤은 스쿠터를 길 건너편 공영 주차선에 세웠다. 헬멧을 벗지 않은 채 입구로 다가가자 우비 차림의 경비원이 손전등을 들었다.
“거기 들어가면 안 됩니다.”
“배송 픽업이 잡혀서요. 시스템 오류 같은데 확인만 하려고요.”
경비원은 도윤의 조끼와 휴대폰을 번갈아 봤다.
“여기는 작년부터 비었어요. 오늘은 물도 들어와서 더 안 돼요.”
“B2에 뭐 남은 건 없습니까?”
“사람이 안 남았지. 물건이야 창고에 몇 개 있겠지만. 침수 확인 끝날 때까지 손대면 안 됩니다.”
경비원은 손전등을 아래로 비췄다. 푸른빛은 그 순간 사라졌다. 대신 빗물이 계단을 타고 검은 바닥으로 흘렀다.
도윤은 더 캐묻지 않았다. 경비원이 거짓말을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 말은 적어도 주문의 상자가 완전히 허황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는 입구 옆으로 비켜서 휴대폰을 확인했다.
[도착 반경 밖입니다. 적재함을 찾으십시오.]
화면 아래에 작은 화살표가 생겼다. 화살표는 정문이 아니라 건물 옆 골목을 가리켰다.
골목 끝에는 지하상가 화물 반입구가 있었다. 셔터는 절반쯤 내려와 있었지만 왼쪽 아래가 손바닥 너비만큼 떠 있었다. 그 앞에는 배수 펌프와 검은 호스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경비원이 무전기를 들고 정문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도윤은 호스가 놓인 방향과 셔터 아래 틈을 살폈다. 사람이 기어들어갈 만큼 넓지는 않았다.
하지만 셔터 옆 철문은 잠기지 않았다. 빗물에 불어난 고무 패킹이 문을 완전히 물지 못하고 있었다.
도윤은 문고리를 잡았다가 손을 멈췄다. 들어가면 명백한 무단 출입이었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철문과 차단띠를 찍었다. 시간 표시가 나오도록 주문 화면도 함께 찍었다. 이상한 상자 하나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어디까지 확인했는지 남겨 둬야 했다.
손전등으로 비춘 틈 사이에는 바닥까지 이어진 젖은 발자국이 있었다. 경비원이 점검하러 드나든 흔적이었다. 물이 찬 구역만 피하면 건물 자체가 무너질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도윤은 화면을 다시 봤다. 마감까지 두 시간 오십 분 남았다. 상자의 무게와 목적지를 확인하지 않고 돌아가면 위약금도 진짜인지 끝내 알 수 없다.
그 뒤에야 문을 밀었다.
지하로 이어진 경사로에는 물비린내가 고여 있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멀리서 누군가 발을 끄는 소리처럼 울렸다. 도윤은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벽을 따라 내려갔다.
B2 표지판 아래로 내려가자 공기가 달라졌다.
습한 냄새 사이에 차가운 금속 냄새가 섞였다. 빛은 없는데 바닥의 물웅덩이가 아주 옅게 파랬다. 빛이 위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물 아래에서 올라오는 것 같았다.
상가 안내도는 벽에 반쯤 떨어져 있었다. 약국과 의류점 자리에는 검은 얼룩이 번져 있었다. 그런데 맨 아래의 비상 적재 구역만 푸른 글씨로 또렷했다.
[13번 적재함]
도윤은 안내도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원래 이런 표시는 없었다. 지하상가를 오가던 시절에도 적재함 번호까지 본 적은 없었다.
화살표는 복도 안쪽을 향했다.
폐점한 가게 셔터들이 양쪽에 늘어섰다. 셔터 아래에는 빗물이 조금씩 흘렀지만 복도 중앙은 이상할 정도로 말라 있었다. 도윤은 물기 없는 바닥 위에 놓인 종이를 발견했다.
운송장이었다.
종이는 푸른 종이도 잉크도 아니었다. 얇은 필름처럼 빛을 머금고 있었다. 주변 바닥은 젖어 있는데 그 한 장만 마른 채 바닥에 붙어 있었다.
[경계 라벨 부착 상자]
[수령 전 개봉 금지]
[마감 03:00]
도윤은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운송장 아래에는 더 작은 글씨가 있었다.
[운송자는 지정된 출입구로 귀환할 것. 중간 하차와 대리 전달은 봉인 위반으로 간주함.]
봉인 위반.
물건 하나 옮기는 데 쓸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 문구가 경찰이나 경비보다 먼저 그의 발목을 잡을 규정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누군가 물건을 맡기면서 최소한의 취급 조건을 붙인 것뿐이라고 그는 애써 생각했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운송장 스캔 대기]
화면에는 물류센터에서나 쓸 법한 사각 프레임이 떠 있었다.
도윤은 운송장 위에 휴대폰을 가져갔다. 프레임 안에서 푸른 선이 흔들렸다. 스캔만 하면 주문을 수락한 것으로 처리될지 모른다.
그는 프레임을 내렸다.
상자 무게도 모르고 움직일 수는 없었다. 13번 적재함까지 가서 상자를 본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 운송장을 스캔하지 않았으니 책임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복도 끝에는 화물용 승강기 문이 있었다. 전원은 꺼져 있었지만 문 옆의 13이라는 숫자만 푸르게 켜져 있었다. 도윤이 가까이 가자 철문이 낮은 소리를 내며 벌어졌다.
안쪽은 엘리베이터가 아니었다.
벽 세 면을 따라 작은 보관함이 늘어서 있었다. 번호가 붙은 문들 사이에서 13번만 희미하게 숨 쉬듯 밝았다. 도윤은 바닥의 물자국을 확인했다. 자기 발자국 외에는 아무 흔적도 없었다.
보관함 앞 바닥에는 얇은 물길이 놓여 있었다. 물은 13번 앞에서 멈췄다. 도윤이 한 발을 들이자 바닥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는 바로 물러섰다. 천장 배관이 터지기 직전이면 그 아래로는 들어가지 않는 게 맞다. 플래시를 낮춰 비추자 바닥 타일 사이에 금이 나 있었고 그 틈에서 푸른 선이 실처럼 뻗어 나왔다.
도윤은 벽 옆의 접이식 안내판을 찾아 끌어왔다. 녹슨 철판 위에 체중을 나눠 싣고 한쪽 발만 보관함 앞으로 옮겼다. 타일은 더는 꺼지지 않았다.
13번 보관함 앞에는 손잡이 하나와 무게 표시창이 있었다.
[7.4kg]
도윤은 숫자를 보고 계산했다. 상자 크기가 배달 상자에 들어가면 운반은 가능하다. 지금 남은 연료로 돌아오는 길까지 보장받을 수는 없다. 목적지가 지도에 없으니 총거리도 계산할 수 없었다.
다만 일곱 킬로 남짓이면 스쿠터 균형을 망칠 무게는 아니다. 비가 잦아든 지금 움직이면 폭우가 다시 시작하기 전에는 역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위험을 안고 갈지 말지는 그 다음에 정할 수 있었다.
손해만 생각하면 여기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주문을 만든 쪽은 그가 물건을 보기 전에 취소하지 못하게 해 두었다. 누군가 정말로 이 상자를 기다린다면 지금부터 남은 두 시간은 단순한 장난의 시간이 아니었다.
도윤은 운송장을 다시 들었다.
“수락하면 책임지는 거지.”
그는 휴대폰을 운송장 위로 가져갔다.
푸른 선이 한 번 번쩍였다.
[임시 등록 운송자: 서도윤]
[화물 수령 권한이 활성화되었습니다.]
13번 보관함의 손잡이가 스스로 내려갔다.
안에는 손바닥 두 개를 붙인 것만 한 검은 상자가 들어 있었다. 모서리는 은색 테이프로 빈틈없이 감겨 있었고 가운데에는 물결처럼 흔들리는 푸른 라벨이 붙어 있었다.
도윤은 장갑을 낀 손으로 상자 양옆을 잡았다. 표시된 무게보다 가벼웠다. 대신 속에서 아주 미세한 진동이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그는 상자를 바로 배달 가방에 넣지 않았다. 가방 바닥에 남아 있던 마른 비닐을 꺼내 상자의 모서리를 한 겹 감쌌다. 라벨이 눌리지 않도록 빈 공간에는 접은 우비를 밀어 넣었다.
“개봉 금지면 흔들리지도 말라는 거겠지.”
가방 끈을 조이자 진동이 한 번 더 울렸다. 이번에는 가방 바닥이 아니라 그의 손목뼈 가까이에서 느껴졌다.
보관함 뒤쪽 벽에서 금속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도윤이 고개를 들자 복도 끝의 막힌 벽에 세로선 하나가 나타났다. 선은 천천히 푸르게 밝아졌다.
휴대폰이 새 알림을 띄웠다.
[다음 안내: 새벽시장 13번 골목]
벽의 세로선이 문틈처럼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