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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배송은 새벽 세 시에1화

게이트 배송은 새벽 세 시에

게이트 배송은 새벽 세 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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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지도 밖의 마지막 콜]

빗물이 헬멧 턱끈을 타고 목으로 흘렀다.

서도윤은 신호등 아래에서 스쿠터 브레이크를 두 번 나눠 잡았다. 낮에 패드를 갈아 둔 덕분에 앞바퀴는 물막을 밟고도 크게 밀리지 않았다. 대신 뒤 상자 안의 반찬통이 덜컹거렸다.

그는 오른손으로 거치대를 가리고 왼손으로 비상등을 켰다. 도로 가장자리는 얕은 개울처럼 변해 있었다. 앞차가 지나갈 때마다 탁한 물이 종아리 높이까지 튀었다.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리스료 자동이체가 처리되지 않았습니다.]

도윤은 화면을 한 번 보고 알림을 닫았다.

오늘 정산이 들어와도 부족했다. 보험료와 기름값을 빼면 손에 남는 돈은 더 줄어든다. 다음 주 윤서가 내야 한다는 응급구조 실습비까지 떠올리자 목구멍이 마른 듯했다.

윤서는 돈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괜찮다며 웃었을 것이다. 그래서 도윤은 더 묻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콜 하나를 더 잡는 것뿐이었다.

거치대에는 마지막 주문의 주소가 떠 있었다. 서린구 백화길 18길. 시장에서 세 블록 떨어진 오래된 다세대주택이었다.

‘열한 시 오십이 분까지.’

현재 시간은 열한 시 사십칠 분이었다.

도윤은 배달료 아래의 작은 글씨를 확인했다. 기본료 이천오백 원, 폭우 할증 천사백 원. 플랫폼은 비가 심할수록 할증을 붙였지만 기사에게 남는 몫은 장갑 한 켤레보다 빨리 젖었다. 지금 취소하면 이천오백 원은 사라지고 가게에는 취소 수수료가 붙는다.

미선은 그런 비용을 기사에게 물리지는 않았다. 대신 다음 주문을 부탁할 때마다 미안한 얼굴을 숨기려고 더 크게 소리쳤다. 도윤은 그걸 알아서 더 쉽게 거절하지 못했다.

계기판의 연료 게이지는 마지막 칸에서 깜빡였다. 집까지 곧장 가면 충분하다. 한 블록만 더 돌아도 장담할 수 없다. 그는 주소와 남은 거리를 번갈아 보다가 스쿠터의 핸들을 골목으로 꺾었다.

차도를 계속 타면 침수된 사거리에서 묶인다. 버스 한 대가 비상등을 켠 채 물웅덩이 앞에 서 있었고 그 뒤로 승용차들이 길게 늘어섰다. 도윤은 골목 입구에 스쿠터를 붙였다.

골목은 더 어두웠다. 간판 불빛도 폭우에 번져 물감처럼 흘렀다.

도윤은 뒷상자를 열어 보냉가방을 꺼냈다. 안에는 미선찬에서 나온 반찬 세 통과 국 한 팩이 들어 있었다. 비닐은 세 겹이었다. 가장 안쪽 봉투의 매듭까지 확인한 뒤 그는 가방을 등에 멨다.

“국물 샌 거 있으면 네 돈에서 뺀다.”

저녁에 강미선 사장이 뚜껑을 닫으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비 오니까 비닐 세 겹 했어요.”

“세 겹이 아니라 안 새게 해. 그 집 아가씨가 밤샘 간병한대.”

“알았습니다.”

짧은 대답 뒤에 미선은 반찬통 하나를 더 밀어 넣었다. 멸치볶음이었다.

“이건 서비스야. 주문서에는 넣지 마.”

도윤은 그때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오래 거래한 가게 주인들의 서비스에는 대개 묻지 않는 편이 나았다. 묻는 순간 누군가의 사정이 되고 그 사정은 계산서에 적히지 않았다.

그는 가방 끈을 당겼다. 물이 찬 인도를 피해 담장 쪽으로 붙어 달렸다.

빗물은 발목까지 차올랐다. 앞서 지나간 오토바이가 남긴 물결이 골목 안쪽으로 밀려들었다. 도윤은 보냉가방을 가슴 쪽으로 끌어안고 잠깐 멈췄다. 비닐을 더 감싼다고 물속에 빠진 국물이 멀쩡해지는 건 아니다.

그는 건물 처마 아래를 따라 우회했다. 세탁소 앞 플라스틱 상자가 길을 막고 있었지만 무리하게 밀지 않았다. 상자 뒤에 드러난 배수구가 빈틈 없이 물을 빨아들이는 것을 보고서야 한 걸음 옮겼다.

첫 번째 골목은 막혔다. 하수구 뚜껑이 들떠 있어 주민 둘이 빗자루로 물길을 막고 있었다. 도윤은 인사만 하고 돌아섰다. 두 번째 골목은 계단으로 이어졌다. 지도상으로는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위층 복도를 건너면 목적지 건물의 뒤편으로 연결된다.

신발 안으로 차가운 물이 들어왔다. 계단 난간은 미끄러웠다.

그는 한 계단씩 밟았다. 두 칸을 건너뛰면 빠르지만 보냉가방이 벽에 부딪힐 수 있었다. 지금 가장 비싼 건 시간이고 그다음은 반찬이었다. 자기 무릎은 그 아래였다.

3층 복도 끝에서 다시 휴대폰을 확인했다.

열한 시 오십 분.

도윤은 수령인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도착 예정입니다. 비가 많이 와서 현관 앞 전달 괜찮으실까요?]

답장은 바로 오지 않았다. 복도에는 오래된 형광등이 한 번씩 깜빡였고 맞은편 집에서는 텔레비전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는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문 앞에 섰다.

잠시 뒤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이가 잠들었어요. 조용히 부탁드려요.]

도윤은 젖은 장갑을 벗어 주머니에 넣고 손등으로 초인종을 살짝 눌렀다. 소리가 나지 않게 누르는 건 불가능했지만 짧게 끊기는 소리 정도는 줄일 수 있었다.

문은 손바닥 너비만큼 열렸다.

“죄송해요. 원래는 제가 시장에 가려고 했는데.”

젊은 여자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깨에는 병원 담요가 걸려 있었고 손목에는 이름표 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 문틈 너머에는 어린아이의 얕은 숨소리가 들렸다.

“괜찮습니다. 국물은 아직 뜨겁습니다.”

도윤은 보냉가방을 열지 않은 채 봉투를 내밀었다. 여자가 받기 편하도록 바닥 쪽을 잡았다.

“이 비에 고생하셨죠.”

“골목이 조금 잠겼습니다. 다음에 비 많이 오면 배달 메모에 뒤편 계단 쪽으로 써 주세요. 그쪽이 덜 막힙니다.”

여자는 잠깐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고맙습니다.”

봉투가 손을 떠나는 순간 도윤은 습관처럼 무게를 가늠했다. 국물 팩이 기울지 않았고 반찬통 뚜껑도 멀쩡했다. 그는 문이 닫힌 뒤에야 배달 완료 버튼을 눌렀다.

[정산 예정 금액: 3,900원]

삼천구백 원.

도윤은 화면을 보며 헛웃음을 삼켰다. 타이어에 붙은 진흙도 닦지 못할 돈이었다.

그래도 취소 수수료는 피했다. 미선찬 반찬도 식기 전에 도착했다. 오늘은 그 둘로 됐다고 그는 생각했다.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발목이 욱신거렸다. 마지막 두 층은 난간을 붙잡고 천천히 내려왔다. 빗물과 땀이 섞인 티셔츠가 등에 달라붙었다.

골목 입구에는 스쿠터가 그대로 있었다. 도윤은 시동을 걸기 전에 뒷상자를 열어 빈 보냉가방을 넣었다. 안쪽에는 아버지가 쓰던 낡은 배달 수첩이 끼워져 있었다.

비에 젖을까 봐 평소에는 가방 깊숙이 넣어 둔다. 오늘도 수첩 귀퉁이만 보였다.

도윤은 그것을 다시 눌러 넣었다. 펼쳐 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낡은 동네 이름과 알아보기 힘든 약속 시간들. 아버지가 왜 그걸 끝까지 버리지 않았는지만 모를 뿐이었다.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강미선이었다.

“끝났냐?”

“방금 완료했습니다.”

“국물 안 샜고?”

“안 샜습니다.”

“그럼 됐어. 비가 더 온다는데 집에 들어가. 내일 아침에 멸치 다듬을 사람 없으면 전화하고.”

“제가 멸치를 다듬으면 사장님 가게가 문 닫습니다.”

“그 입은 비 안 새냐.”

통화는 짧게 끊겼다.

도윤은 웃을 힘도 아껴 헬멧을 썼다. 시장 쪽 네온사인이 비에 번져 흐릿했다. 마지막 콜은 끝났다. 자정이 넘으면 수수료는 더 낮아지고 콜도 뜸해진다. 연료 게이지도 한 칸 아래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집에 가야 했다.

그런데 스쿠터 시동이 한 번에 걸리지 않았다.

“이럴 때만 꼭 그러지.”

도윤은 키를 뺐다가 다시 돌렸다. 엔진이 두 번째 시도에서 낮게 떨었다. 그는 잠깐 엔진 열이 오르기를 기다렸다.

그 사이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졌다.

거치대의 시계가 00:00으로 바뀌었다.

화면 아래에 없던 탭 하나가 생겼다.

[새벽배송망]

도윤의 손이 멈췄다.

처음에는 업데이트 알림이라고 생각했다. 퀵잇은 가끔 기사들이 자는 시간에 화면 구성을 바꿨다. 하지만 아이콘은 낯설었다. 회색 도로 모양 아래에 푸른 선 하나가 그어져 있었다.

그가 탭을 누르자 화면이 잠깐 새하얘졌다.

빗물이 보호 필름 위를 흘렀다. 화면은 다시 검게 꺼졌다가 글자를 하나씩 띄웠다.

[신규 배송 요청]

[픽업: 서린역 지하상가 B2 폐쇄구역]
[도착: 새벽시장 13번 골목]
[화물: 경계 라벨 부착 상자]
[마감: 03:00]

도윤은 눈을 가늘게 떴다.

서린역 지하상가는 작년 침수 사고 뒤로 닫혔다. B2 출입문에는 합판이 박혀 있었고 야간 순찰도 돈다. 새벽시장 13번 골목은 더 이상했다. 지도 검색창에 넣어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 기사 계정으로 장난을 치는 모양이었다.

그는 뒤로 가기 버튼을 눌렀다. 주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화면 맨 아래에 익숙한 형식의 문장이 떠올랐다.

[취소 위약금: 48,000원]

도윤의 손가락이 굳었다.

사만 팔천 원. 지금 통장에 남은 돈보다 큰 액수였다. 이상한 주문을 거절하는 데 왜 돈을 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아래에 한 줄이 더 나타났다.

[수락 보너스: 신뢰 잔량 1]

신뢰 잔량.

도윤은 그 말을 소리 내 읽어 봤다. 배달 앱에서 쓰는 포인트도 아니고 등급도 아니었다. 검색을 눌렀지만 화면에는 주문 정보만 남았다.

빗소리가 멀어진 듯했다.

도윤은 서린역 쪽을 바라봤다. 휑한 도로 끝에 폐쇄 지하상가가 있는 방향이었다.

그쪽 하늘 아래에서 푸른빛이 한 번 깜빡였다.

번개는 아니었다.

꺼진 줄 알았던 지하상가 입구의 불빛이, 누군가 안에서 문을 두드린 것처럼 아주 잠깐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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