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좌들은 방송 중입니다

3화 [방송 사고]
푸른 빛이 꺼지자 발밑의 감각이 먼저 돌아왔다.
대리석이었다. 피와 내장이 널브러진 100층 바닥이 아니라 누군가 닦고 또 닦은 광장의 바닥.
신유진은 귀환 게이트 한가운데에 섰다. 서울 중앙 각성자 광장을 둘러싼 계단에는 헌터와 기자, 협회 직원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었다. 수백 개의 취재 드론이 하늘에서 빛을 깜빡였고 거대한 전광판에는 그의 얼굴이 비쳤다.
“신유진 헌터가 돌아왔다!”
환호가 터졌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두 손을 모아 하늘을 향해 기도했다. 계단 맨 앞의 협회 간부들은 흰 예복 같은 제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유진은 그 옷의 금실 문양을 알아봤다. 성좌의 축복을 형상화했다며 공략대가 출정할 때마다 걸어 두던 표식이었다.
그 사이에서 단발의 여자가 앞으로 나왔다.
“유진 씨.”
이아린이었다.
그녀는 눈가가 붉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유진의 갑옷과 멀쩡해진 옆구리를 번갈아 훑고서야 짧게 숨을 뱉었다.
“정말 돌아왔네요.”
“기다렸나?”
“돌아오라고 한 사람은 당신이었잖아요.”
그 대답에 유진은 잠시 말을 잃었다. 탑에 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들은 목소리도 이아린의 것이었다. 꼭 살아서 내려오라는 말. 당시에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었다.
아린의 시선이 유진의 뒤쪽으로 향했다. 귀환 게이트는 더 이상 아무도 내보내지 않았다.
선우와 민재의 이름을 묻지 않은 건 아린도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진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미안하다.”
아린의 입술이 굳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때 광장 중앙 연단에서 한 남자가 양팔을 벌렸다.
“인류의 영웅이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헌터 협회 부회장 강태성의 목소리가 확성 마법을 타고 광장 전체에 퍼졌다. 그는 유진보다 먼저 전광판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고 미소를 다듬었다.
“위대한 성좌들께서 우리에게 마지막 희망을 보내 주셨습니다. 신유진 헌터는 이제 인류를 대표해 성은에 감사를 올릴 것입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하늘 위의 드론들이 동시에 유진 쪽으로 기울었다. 그와 함께 탑에서 따라온 검은 카메라 구체도 어깨 높이까지 내려왔다.
드론의 렌즈마다 희미한 은빛 선이 이어졌다. 전광판의 송출 표시와 카메라 구체의 붉은 불빛이 같은 박자로 깜빡였다.
지구의 영접식조차 저쪽 방송의 다음 장면이었다.
[환영합니다. 지구 채널 특별 귀환 방송을 송출합니다.]
[권장 대사: ‘성좌의 은혜로 귀환했습니다. 인류는 더욱 굳게 믿겠습니다.’]
유진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전광판에는 눈물 어린 영웅의 얼굴을 만들기 위해 부드러운 빛이 덧입혀지고 있었다. 죽은 사람들의 피 위에 얹는 장례용 조명 같았다.
[현재 시청자: 5,885,203명]
[구르는 은하: 오, 지구 쪽 세트도 꽤 돈 썼네. 이제 감동 멘트 나오나?]
[빛나는 훈수왕: 빨리 무릎 꿇고 감사 인사 해라. 이게 엔딩이지.]
유진은 카메라를 보고 다시 광장을 봤다. 계단 위의 사람들은 성좌가 진짜로 자신들을 지켜 본다고 믿고 있었다. 이아린 역시 그 믿음 속에서 동료를 잃었다.
여기서 성좌가 관객이고 탑이 세트장이라고 외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협회는 미친 사람 취급을 하며 그를 가둘 테고 사람들은 더 깊이 고개를 숙일 뿐이다.
진실을 한꺼번에 던지는 대신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는 보여 줄 수 있었다.
“부회장.”
강태성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시죠. 모든 인류가 듣고 있습니다.”
“성좌의 은혜를 말하기 전에 하나 물어봅시다.”
유진의 목소리가 광장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선우가 죽을 때도 그 은혜가 있었습니까?”
강태성의 미소가 딱 굳었다.
“그분의 숭고한 희생은 성좌께서 가장 가까이 거두신 증거입니다.”
“민재는?”
“그 또한 인류의 미래를 위한... 위대한 선택이었소.”
“이름도 기억 못 하는 놈들이 무슨 감사를 받지.”
광장이 술렁였다.
강태성은 얼른 손을 들었다. 그의 눈짓에 협회 직원 둘이 전광판 제어석으로 달려갔다.
“신유진 헌터는 긴 전투로 심신이 지쳐 있습니다. 모두 너그럽게 이해해 주십시오. 귀환 후유증은 치료하면...”
유진은 그 말을 듣고 강태성의 표정을 읽었다. 동료들의 죽음을 변명으로 덮는 표정이 아니었다. 협회가 쌓아 온 성좌의 권위를 지키려는 표정이었다.
그 권위가 무너지면 협회의 자리도 함께 흔들릴 테니까.
[제작진 안내: 출연자 감정선 이탈. 권장 대사로 복귀하십시오.]
[구르는 은하: 오? 이건 대본에 없던 건데.]
유진의 입가가 천천히 올라갔다.
아린이 그의 팔을 아주 약하게 붙잡았다.
“유진 씨. 지금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저쪽 경비도 움직이고 있어요.”
그녀의 눈은 연단 뒤에서 마력을 끌어올리는 협회 경비들을 먼저 보고 있었다. 감정에 휩쓸려 말리는 게 아니었다. 싸움이 벌어지면 시민들이 다칠 위치부터 재고 있었다.
“알아.”
유진은 손목을 빼지 않았다. 그녀가 잡은 손이 떨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뒤 카메라 구체를 향해 몸을 돌렸다.
붉은 렌즈가 그의 얼굴을 크게 당겼다.
[클로즈업 연출을 개시합니다.]
좋아. 저들이 원하는 장면을 줄 생각은 없었다.
유진은 피 묻은 장갑을 벗었다. 그리고 검은 구체 바로 앞에서 가운데손가락을 천천히 세웠다.
광장이 얼어붙었다.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내 감사다.”
손가락 하나가 전광판을 가득 메웠다.
[송출 사고 경고!]
[부적절한 출연자 제스처가 감지되었습니다. 화면을 전환합니다.]
전광판 가장자리가 검게 물들었다. 제어석의 직원들이 다급하게 룬판을 두드렸다.
유진은 스트리머 모드를 열어 화면 우측에 떠오른 버튼을 눌렀다.
[클로즈업 유지 - 300 코인]
“싼 편이군.”
[300 코인이 소모되었습니다.]
전광판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유진의 차가운 표정과 손가락이 광장 위로 더 크게 확대됐다.
채팅창이 폭발했다.
[뭐야 이 미친 출연자?]
[제작진이 화면 못 끊는 거 실화냐 ㅋㅋㅋ]
[구르는 은하: 하하하하! 이게 방송 사고지!]
[‘구르는 은하’가 후원 코인 3,000개를 보냈습니다!]
[현재 시청자: 8,922,114명]
[은하권 실시간 라이브 1위]
[도파민 게이지: 100% 달성!]
유진은 손가락을 내렸다. 화낸 척하는 것만으로는 오래 못 간다. 지금 필요한 건 분노를 소비하는 구경거리가 아니라 그들이 돈을 내고 다음 장면을 기다리게 하는 판이었다.
강태성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협회 경비들을 불렀다.
“저자를 연단에서 내려오게 하십시오! 방송을 종료하고 정신 감정을...”
경비들이 유진을 향해 다가왔다. 그중 한 명이 마력으로 된 구속구를 꺼내자 이아린이 먼저 그들 앞을 막았다.
“건드리지 마세요.”
“이아린 헌터! 지금 협회 명령에...”
“100층을 혼자 살아서 내려온 사람에게 구속구부터 채우겠다고요? 시민들 앞에서요?”
아린은 광장 계단을 한번 훑었다. 겁먹은 시민들과 흥분한 헌터들이 서로 밀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여기서 충돌 나면 다칩니다. 그 책임을 부회장님이 지실 겁니까?”
경비의 걸음이 멈췄다. 강태성은 입술을 깨물었지만 공개된 화면 앞에서 명령을 밀어붙이지 못했다.
유진은 아린의 등 뒤를 보며 짧게 숨을 내쉬었다. 저런 선택을 할 사람이라면 적어도 말 몇 마디는 건넬 수 있다.
그는 방송 제목 변경 창을 열었다.
[채널명: 탑의 생존자들]
유진은 글자를 지웠다.
‘신에게 감사하지 않는 영웅.’
[채널명이 변경되었습니다.]
항의가 다시 밀려왔다.
[빛나는 훈수왕: 채널 정지시켜라!]
[노바 엔터 러버: 저건 계약 위반이다.]
[우주 개구리: 아니 근데 제목까지 바꾸네 ㅋㅋㅋ]
유진은 최소 후원 채팅 설정을 1,000 코인으로 올렸다.
“불만 있으면 돈 내고 말해.”
[최소 후원 채팅 제한이 1,000 코인으로 설정되었습니다.]
고함치던 채팅창이 순간적으로 비었다.
곧 닉네임 하나가 금빛 테두리와 함께 떠올랐다.
[‘구르는 은하’가 후원 코인 1,000개를 보냈습니다!]
[구르는 은하: 네가 감사할 마음이 없다는 건 알겠다. 그래서 다음엔 뭘 할 건데?]
유진은 그 문장을 광장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창으로 읽었다. 그래도 카메라 앞에서 답했다.
“산 사람들한테 할 일을 한다.”
강태성이 헛웃음을 흘렸다.
“성좌의 뜻을 거스르면 지구 전체가 어떤 벌을 받을지 모르오.”
그 말에 유진은 웃었다. 벌을 주는 쪽은 거대한 신이 아니라 재미가 끊길까 불안해하는 시청자들이었다.
“그럼 부회장님은 계속 무릎 꿇고 빌어요.”
유진은 이아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린은 여전히 경비와 시민들의 동선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유진과 눈이 마주치자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대체 뭘 본 거예요?”
유진은 대답 대신 아직도 자신을 쫓는 카메라 구체를 올려다봤다.
“아린아. 오늘부터 누구에게도 무릎 꿇지 마.”
“그게 무슨...”
“특히 하늘을 향해서.”
아린의 눈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광장 가장자리의 통제선을 가리켰다.
“저쪽 보조 통로가 비었어요. 빠져나갈 길은 만들 수 있어요.”
유진은 처음으로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시스템 창이 연달아 떠올랐다.
[특수 이벤트 조건 일부 충족.]
[고급 스트리머 기능의 잠금이 흔들립니다.]
[다음 콘텐츠를 준비합니다.]
유진은 화면을 닫지 않았다.
광장 위에서 울리는 항의와 환호, 카메라 너머에서 터지는 후원음이 한데 섞였다. 혼란은 저들이 설계한 감동적인 귀환식보다 훨씬 많은 시선을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시선은 이제 돈이 된다.
“그래.”
유진은 이아린에게 손짓했다.
“다음 방송은 내려가서 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