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좌들은 방송 중입니다

2화 [슈퍼챗이 쏟아진다]
[후원 조건이 수락되었습니다.]
[시청자 ‘구르는 은하’가 후원 코인 1,000개를 추가 송금했습니다.]
알현의 방 공기 속으로 경쾌하고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띵-’
투명하고 거룩하게 귓가를 감싸는 울림이었다. 신유진은 그 소리를 들으며 검자루를 잡은 손에 멍하게 힘을 풀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음색이었다.
탑을 오르는 십 년 동안 성좌의 가호를 받을 때마다 이 소리가 머릿속을 스쳤다. 50층 통곡의 벽을 넘었을 때도, 93층에서 마수의 파도에 갇혀 죽어가던 동료들이 성좌의 묵시록을 하사받을 때도 이 소리가 마법처럼 온 신경을 두드렸었다.
그때마다 공략대장 선우는 무릎을 꿇었다. 다른 대원들도 피로 물든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신의 은혜에 경배를 올렸다. 미개한 피조물을 불쌍히 여겨 계시를 내리는 창조주의 신성한 기적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선우는 그 계시의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더 듣기 위해 매번 가장 먼저 방패를 들고 몬스터의 턱밑으로 뛰어들었었다.
그러나 지금 정면의 거대한 모니터 구석에서는 작은 팝업 메시지가 투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결제 알림음: 기본 시스템 사운드 A형]
유진의 입술 사이로 허탈한 바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처음에는 낮고 희미하던 소리가 곧이어 참지 못한 실소로 바뀌었다.
“...신성한 계시?”
거룩한 구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외계 행성 통신망에서 후원금이 입금될 때 터지는 흔한 결제 알림음에 불과했다.
그동안 인류가 무릎 꿇고 바쳤던 경배와 피 눈물이 한낱 가상 통화 결제음 하나에 맞춰 춤춘 꼴이었다.
유진은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핏자국을 쓱 문질러 닦아 냈다. 입안 가득 짙은 강철 맛이 번졌지만 허탈함은 금세 차가운 기치로 바뀌었다.
피눈물을 흘리며 분노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적의 정체를 알았다면 싸우는 법을 바꾸면 그만이었다.
그는 화면 한쪽에 떠 있는 스트리머 모드의 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보유 후원 코인: 3,000]
[시스템 스토어 환전 비율 1:1 적용 중]
유진이 손가락으로 공중에 떠 있는 작은 톱니바퀴 아이콘을 누르자 눈부신 세부 상점 목록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외계산 고농축 마력 정화수 - 1,000 코인]
[상급 지체 재생 포션 - 1,000 코인]
[시스템 연출 개입권(일반) - 500 코인]
[신성한 은혜의 마나 스크롤 - 2,000 코인]
[차원 관조자의 강화 주문서 - 5,000 코인]
목록을 훑어내려가는 유진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단순한 시스템 보상 창이 아니었다. 인류가 탑을 오르며 획득하던 그 수많은 희귀 포션과 전설적인 스크롤들은 성좌가 자비를 베푼 것이 아니었다. 시청자들이 쏜 후원 코인을 재료 삼아 인게임 상점에서 클릭 몇 번으로 던져 준 사은품에 불과했다.
“돈을 쏘면 스킬이 나오고 코인을 모으면 목숨을 산다.”
유진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천장에 떠 있는 검은 카메라 구체를 타고 그대로 송출되었다.
모니터 벽을 채우고 있던 채팅창의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현재 시청자: 3,412,090명]
[은하권 실시간 라이브 12위 등극!]
[시청자 ‘빛나는 훈수왕’: 어이 출연자! 알현의 방에서 감히 귀환을 거부하고 상점 창이나 띄우다니 무슨 버릇이냐!]
[시청자 ‘별빛 소믈리에’: ㅋㅋㅋ 대사 치는 폼 봐라. 저 녀석 100층 클리어하자마자 방송 시스템 구조 눈치챈 거 같은데?]
[시청자 ‘구르는 은하’: 훈수충들은 신경 끄고 상점이나 골라라. 내 코인 3,000개로 부상이나 고쳐 봐.]
[시청자 ‘노바 엔터 러버’: 제작진 뭐 함? 저놈 방송 정지 안 시킴?]
새로운 외계 시청자들이 밀물처럼 밀려들면서 채팅창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성좌라는 자들은 고결한 지혜자가 아니었다. 방구석 소파에 누워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오만한 관객들이었다.
유진은 스트리머 권한 메뉴 중 하나를 더 터치했다.
[채팅창 관리 설정]
슬로우 모드 활성화 (5초)
최소 후원금 채팅 제한 (100 코인 미만 채팅 금지)
설정을 누르자마자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도배성 댓글이 딱 멈춰 섰다.
어안이 벙벙해진 채팅창 위에 유진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훈수를 두고 싶으면 입장료를 내라.”
그는 검을 바닥에 꽂은 채 카메라 구체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공짜 입으로는 내 방송에 한 줄도 못 보탠다.”
방 안을 채우던 기계음마저 침묵할 정도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곧이어 채팅창이 폭발했다.
[‘빛나는 훈수왕’이 후원 코인 500개를 보냈습니다!]
[빛나는 훈수왕: 미친놈인가 진짜? 500 코인 낸다! 오만한 피조물 녀석, 100층 클리어 보상도 안 받고 어떻게 밑으로 내려가겠다는 거냐!]
[‘우주 개구리’가 후원 코인 200개를 보냈습니다!]
[우주 개구리: ㅋㅋㅋㅋ 어그로 폼 미쳤다! 지구 채널에 이런 또라이가 있었나!]
[‘구르는 은하’가 후원 코인 1,000개를 보냈습니다!]
[구르는 은하: ㅋㅋㅋㅋ 훈수충 주머니 털리는 소리 좋다! 그래 계속 그렇게 나와라!]
알현의 방 가득 맑은 결제 알림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띵- 띵- 띵-’
과거에는 신의 성은이라며 눈물짓던 소리가 이제는 유진의 호주머니에 들어오는 현금 소리로 들렸다.
[현재 보유 후원 코인: 4,700]
[도파민 게이지: 68% 달성]
[보상 등급 보정치: +2]
유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었다.
성좌들의 자존심은 긁을수록 비싸졌고 도파민에 목마른 관객들은 돈을 아끼지 않았다. 저들은 신이 아니라 돈을 지불하고 자극을 사는 소비자에 불과했다.
그때 알현의 방 천장에서 거대하고 장엄한 금빛 웅변이 울려 나왔다.
[100층 최상층 공략 완수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지구 차원의 위대한 영웅 신유진을 위한 ‘신성한 귀환 커튼콜’을 개시합니다.]
웅장한 오케스트라 찬가 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천장에서 금빛 가루가 눈처럼 내리기 시작했고 모니터 화면에는 유진이 피를 흘리며 싸워온 1층부터 99층까지의 기록이 신파조 자막과 함께 편집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인류의 절망을 짊어진 마지막 신의 기사, 마침내 구원의 빛을 얻다.’
방송 제작진이 미리 준비해 둔 진부하고 신성한 클리어 연출이었다.
유진은 모니터 한쪽에 떠 있는 시스템 문구를 노려보았다.
[연출 스킵 버튼: 500 코인 소모]
그는 망설임 없이 스킵 버튼을 눌렀다.
‘콰지직!’
귓가를 울리던 웅장한 오케스트라 찬가가 LP판이 깨지는 듯한 기괴한 마찰음과 함께 뚝 잘려 나갔다. 흩날리던 금빛 가루는 환영처럼 사라지고 어두운 백색광만 덩그러니 남았다.
[‘신성한 귀환 커튼콜’ 연출이 중단되었습니다.]
[시스템 예외 발생: 연출 강제 종료.]
채팅창이 경악과 폭소로 뒤덮였다.
[ㅋㅋㅋㅋ 음악 끊긴 거 실화냐?]
[감동 파괴 미쳤네 ㅋㅋㅋ]
[제작진 엔딩 연출 공들여 만든 거 같은데 바로 날려 버림 ㅋㅋㅋ]
[구르는 은하: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 신파극 따위 필요 없다!]
유진은 코인 창을 열고 상점 품목 두 개를 동시에 구매했다.
[상급 지체 재생 포션 구매 완료 (-1,000 코인)]
[외계산 고농축 마력 정화수 구매 완료 (-1,000 코인)]
공중에 뜬 빛의 입자가 투명한 유리병 형상으로 굳어지며 유진의 손안으로 떨어졌다.
유진은 뚜껑을 따고 마력 정화수와 포션을 망설임 없이 삼켰다. 차가운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마자 온몸의 끊어진 마력 회로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크윽...!”
옆구리를 꿰뚫었던 촉수의 상처에서 붉은 마력이 피어올랐다. 부러져 어긋나 있던 어깨 뼈가 뚝 소리를 내며 제자리를 찾았다. 헐벗은 피부 위로 새살이 돋아나고 비틀거리던 다리에 압도적인 근력이 다시 찼다.
심연의 왕과의 사투로 엉망이 되었던 육체가 수초 만에 완벽한 전성기 상태로 복원되었다.
유진은 어깨를 가볍게 돌렸다. 관절이 부드럽게 돌아갔다.
“효과는 확실하군.”
시청자들이 쏘아 올린 현질 아이템은 기존 지구의 B급, A급 포션 따위와는 궤를 달리하는 우주급 성능이었다. 성좌들의 은혜라는 포장지를 벗겨 내자 압도적인 실용성만 남았다.
유진은 자신의 검을 고쳐 쥐었다. 부러지지 않은 단단한 검날이 백색광을 받아 날카롭게 빛났다.
[지구행 귀환 게이트가 개방됩니다.]
[도착 지점: 지구 서울 중앙 각성자 광장]
[현재 지구 헌터 협회 및 전 세계 미디어가 귀환자를 대기 중입니다.]
알현의 방 중앙 바닥이 갈라지며 푸른빛의 거대한 포털이 올라왔다.
지구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그곳에는 성좌를 진짜 신으로 섬기며 목숨을 바치고 있는 각성자들과 그들의 고혈을 짜내는 썩어 빠진 협회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유진은 포털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등 뒤의 카메라 구체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붉은 카메라 불빛이 그의 눈동자에 똑똑히 비쳤다.
“잘 봐 둬라.”
유진의 목소리는 나지막하지만 명확했다.
“너희가 만든 무대 위에서 누가 누구 목을 비틀지.”
[도파민 게이지: 85% 달성!]
[후원 코인 2,000개가 추가 송금되었습니다!]
유진은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결제 알림음을 뒤로한 채 푸른 포털 속으로 당당히 발을 내딛었다.
빛이 그를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