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마수, 말로 합시다!

7화: 칼보다 먼저 듣는 사람
은평구 사무소의 아침은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로 시작됐다.
유진우는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 화면과 통장 잔액을 번갈아 바라봤다. 첫 의뢰를 해결하고 깃털 열 개까지 처분했지만 보증금과 장비값으로 빠져나간 돈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사십삼백오십만 원이면 당장 굶어 죽지는 않겠네."
그는 캔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사무소 안내문을 다시 읽었다.
[마수와의 소통을 통해 현장 피해를 줄입니다.]
[상담 및 출장 중재는 선불을 원칙으로 합니다.]
[통역 중 마수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위는 계약 위반입니다.]
마지막 문장 아래에는 진우가 어젯밤 새로 적어 넣은 조항이 있었다.
[통역사가 위험하다고 판단할 경우 의뢰인은 즉시 후퇴 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문을 잠근 채 혼자 일하는 사무실이라 누군가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래서 노크 소리가 세 번 울렸을 때 진우는 배달 음식부터 떠올렸다.
"문 열려 있습니다."
철문이 열리고 붉은 단발머리의 여자가 들어왔다. 검은 가죽 슈트는 군더더기 하나 없이 몸에 붙어 있었고 허리에는 푸른 검집이 매달려 있었다.
여자는 사무실을 한 바퀴 훑었다. 중고 소파와 삐걱거리는 책상 그리고 특수 확성기를 살피는 눈이 지나치게 정확했다.
"유진우 씨입니까?"
"맞습니다. 예약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상담료부터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예약 없이 오신 분은 긴급 방문 할증이 붙습니다."
여자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
"제가 누군지는 확인하지 않습니까?"
"의뢰인이 누군지는 계약서에 적으면 됩니다. 무료로 겁주러 온 분이라면 커피도 유료입니다."
여자는 품 안에서 검은 카드를 꺼내 책상 위에 놓았다.
[헌터 관리국 특무실 / 신아린]
대한민국 최연소 S급 헌터라는 이름이 카드 뒷면에 선명했다.
"검을 뽑으러 오신 건 아니죠?"
"시험하러 왔습니다."
신아린은 의자에 앉지도 않고 작은 금속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낡은 마력 녹음기가 들어 있었다. 표면은 불에 그을렸고 한쪽 모서리는 녹아 있었다.
"이 소리를 듣고 무엇인지 말해 보세요. 당신의 통역이 거짓이라면 바로 나가겠습니다."
"제가 틀리면요?"
"당신의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겠습니다."
"그건 무료로 해 드릴 수 있는 판정이 아닙니다."
진우는 녹음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원본의 마력 파동이 남아 있다면 들어 보죠. 단순 녹음 파일이면 일반적인 울음소리 이상은 못 알아냅니다."
"현장 마력 파동 보존형 녹음기입니다. 원본의 일부만 남았지만 의도도 함께 보존됐을 겁니다."
신아린이 버튼을 눌렀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사무실 창문이 덜컹거렸다. 녹음기에서 흘러나온 포효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열기와 압력이 한꺼번에 귀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푸른 글자가 시야 한쪽에 번쩍였다.
[끄아아악! 벽이 울려! 귀가 찢어진다!]
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녹음된 파동은 군데군데 끊겨 있었지만 감정은 선명했다.
신아린의 시선이 그의 입술에 고정됐다.
"뭐라고 했습니까?"
"사람을 죽이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방음실 벽이 계속 울려서 귀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신아린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대신 녹음기의 음량을 두 칸 올렸다.
크르르르르르!
[이빨 사이에 박힌 돌을 빼! 불을 꺼!]
진우가 손을 뻗어 녹음기를 껐다. 머리 안쪽에서 묵직한 통증이 올라왔다. 기록된 파동을 억지로 듣는 것만으로도 관자놀이가 쿡쿡 찔렸다.
"그만하시죠. 이 정도면 시험은 충분합니다."
신아린은 상자를 닫지 않았다.
"이 녹음은 사흘 전 특무실에서 확보한 겁니다. 대상은 S급 화염 늑대입니다."
"S급을 녹음기로 시험하는 분은 처음 봅니다."
"실물을 데려오면 사무실이 없어질 테니까요."
그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신아린의 손가락 끝이 금속 상자 가장자리를 누르고 있었다. 차가운 얼굴과 달리 손등에는 얕은 화상 자국이 여러 줄 남아 있었다.
진우는 상자에 남은 열기를 바라봤다.
"이 포효가 나올 때마다 누군가 다쳤습니까?"
"첫날 네 명이 화상을 입었습니다. 이후에는 방음실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안에 가둬 놓고 더 크게 울게 만든 거군요."
신아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잡아 두지 않으면 시내로 내려갑니다."
"그건 압니다. 하지만 가둔 뒤에 왜 우는지는 아직 아무도 안 들었잖습니까."
잠깐의 침묵이 사무실을 채웠다.
진우는 책상 아래에서 계약서 한 장을 꺼냈다.
"정식 의뢰라면 사건 자료를 먼저 주세요. 화염 늑대의 출현 위치와 공격 대상 그리고 먹이 기록까지 전부요."
"보안 등급이 높습니다."
"그럼 보안 등급에 맞는 통역사를 찾으셔야죠. 제 혀만 빌리고 정보는 감추겠다는 건 미끼를 구하는 방식입니다."
신아린은 그를 똑바로 내려다봤다. 방금까지 칼을 뽑기 직전의 사람처럼 날카롭던 얼굴에 아주 희미한 피로가 떠올랐다.
"사흘 동안 같은 시간에 폭주했습니다. 오후 네 시 십 분 전후입니다. 물과 먹이를 넣어도 건드리지 않았고 진정제를 섞으면 불길이 더 커졌습니다."
"먹이는 뭡니까?"
"고등급 마수용 압축 마력식입니다. 관리국 표준 제품입니다."
진우는 계약서에 메모했다.
"표준이라고 안전한 건 아닙니다. 누가 언제 바꿨는지와 보관 상태도 확인해야 합니다."
"당신은 아직 의뢰를 받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받고 있는 겁니다."
신아린은 처음으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영상 파일 하나를 진우의 노트북으로 전송했다.
화면 속 방음실은 검은 금속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중앙에는 불꽃에 휩싸인 거대한 늑대가 웅크리고 있었다. 갈기와 꼬리 끝에서 불길이 튀었고 네 발 아래의 바닥은 녹아 있었다.
화염 늑대는 앞에 놓인 쇠그릇을 한 번 핥았다. 곧바로 고개를 젖히며 턱을 바닥에 세게 부딪쳤다.
쿵!
영상 속 직원들이 뒤로 물러났다. 누군가 진정제 발사기를 들었고 화면 구석의 신아린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늑대의 불길이 천장까지 치솟았다.
"이때 제가 들어갔습니다."
신아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검을 뽑지는 않았습니다. 검집으로 턱을 밀어 바닥에 눌렀고 부하들이 결박 장치를 걸었습니다. 그 뒤부터 폭주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턱을 다쳤습니까?"
"외상은 없다고 했습니다."
"외상이 없다는 말과 안 아프다는 말은 다릅니다."
진우는 영상을 되감았다. 늑대가 쇠그릇을 핥은 직후 고개를 젖히는 동작이 반복됐다. 한 번은 입을 벌리는 순간 검은 이빨 사이에 아주 가느다란 흰빛이 스쳤다.
"이 장면을 확대해 주세요."
신아린이 화면을 키웠다. 화질이 깨지면서 흰빛은 사라졌지만 늑대의 턱 근육이 떨리는 것은 보였다.
"뭔가를 씹다가 아파한 것처럼 보입니다."
"먹이를 씹지 않았습니다. 핥고 바로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어요."
"그럼 더 확인해야 합니다. 저는 추측으로 S급 마수 앞에 서지 않습니다."
진우는 계약서 아래쪽에 조건을 적기 시작했다.
[현장 진입 전 마수의 상태 기록 열람]
[통역 중 무기 및 강제 진정 장치 사용 중지]
[통역 실패가 아닌 의뢰인의 정보 은폐로 발생한 피해는 의뢰인 책임]
[긴급 위험 수당 선불 오백만 원]
신아린이 마지막 줄에서 시선을 멈췄다.
"오백만 원입니까?"
"S급 마수의 방음실에 들어가는 값치고는 싸게 부른 겁니다."
"돈이 목적이라고 들었습니다."
"돈이 목적이면 더 비싸게 부릅니다. 지금은 제가 살아 돌아와야 다음 의뢰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신아린은 잠시 계약서를 내려다봤다. 곧 휴대폰을 꺼내 이체 화면을 열었다.
"조건을 하나 추가하죠. 제가 현장에서 당신의 경호를 맡겠습니다."
"S급 헌터가 통역사 뒤를 지키는 장면은 꽤 보기 좋겠네요."
"장난이 아닙니다."
"저도 장난으로 칼 든 사람에게 서류를 내미는 성격은 아닙니다."
신아린은 오백만 원을 이체하고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녀의 글씨는 칼날처럼 반듯했다.
그 순간 관리국 긴급 통신망의 호출음이 사무실 안에 울렸다.
삐이익!
신아린의 얼굴에서 피로가 사라졌다.
"특무실입니다."
통신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팀장님! 화염 늑대가 다시 움직입니다. 예정 시간보다 삼 분 빠릅니다!"
곧이어 벽을 때리는 듯한 포효가 흘러나왔다.
크아아아아아!
이번에는 녹음기가 아니었다. 통신망을 타고 넘어온 생생한 마력 파동이 책상 위의 컵을 흔들었다. 진우의 눈앞에 푸른 글자가 빠르게 겹쳐졌다.
[불 꺼! 귀가 아파!]
[이빨 사이가 찢어져!]
[그 딱딱한 것을 또 가져오면 네 손부터 태워 버린다!]
진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먹이를 넣었습니까?"
통신기 너머의 직원이 당황했다.
"아직 넣지 않았습니다. 방금 교대하면서 그릇만 교체했습니다."
"그릇 안에 뭐가 있었는지 확인하세요. 그리고 방음실 조명을 낮추고 환기 장치를 잠시 끄세요."
"민간인의 지시를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S급 마수의 입 안에 불을 더 지르겠다는 뜻으로 알아듣겠습니다."
직원이 말을 잃었다. 통신기 너머에서 금속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신아린이 곧바로 말했다.
"전부 실행하세요. 제가 지시합니다."
"팀장님, 승인 절차가……"
"지금 이 순간부터 제가 책임집니다."
신아린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눌렀다. 잠시 뒤 조명이 낮아지고 환기 장치가 멈췄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화염 늑대의 포효가 조금 낮아졌다. 하지만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크르르르르……!
[작은 인간. 네가 들리면 대답해. 내 이빨에 박힌 걸 빼.]
진우의 관자놀이가 쿡 찔렸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통신망을 건너온 마력에는 살기가 아니라 고통이 엉겨 있었다.
진우는 특수 확성기를 가방에 넣었다.
"직접 가야겠습니다."
신아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음실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문 앞이면 충분합니다. 상태를 보고 말해야 정확한 통역이 됩니다."
사무실 문을 나서려던 순간 통신기 너머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터졌다.
"팀장님! 관리 기록을 확인했는데 이상합니다. 화염 늑대의 먹이 그릇이 오늘 새벽에 교체됐고 교체 담당자 서명이 비어 있습니다!"
신아린의 발이 멈췄다.
진우는 그녀를 바라봤다.
"먹이도 방도 표준이라면서요."
"……그랬습니다."
"그럼 누군가 표준이라는 말 뒤에 숨어서 뭔가를 바꾼 겁니다."
신아린은 대답 대신 검집의 끈을 단단히 조였다. 진우가 손을 들었다.
"검은 뽑지 마세요."
"알고 있습니다."
"정말 알고 계십니까?"
신아린은 진우의 눈을 똑바로 마주 봤다.
"이번에는 당신이 먼저 듣게 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골목에 세워진 검은 관리국 차량의 문이 열려 있었다.
차량이 강남으로 출발하자 진우는 무릎 위의 계약서를 다시 확인했다. 오백만 원의 숫자는 분명히 입금되어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돈보다 마지막 포효가 더 크게 남았다.
내 이빨에 박힌 걸 빼.
그 말이 단순한 통증 호소인지 누군가 일부러 만들어 낸 폭주의 신호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특무실 방음실 문이 열리는 순간 자신이 가장 먼저 들어야 할 말은 분명했다.
화염 늑대는 왜 그 딱딱한 것을 삼키지 못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