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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마수, 말로 합시다!6화

어이 마수, 말로 합시다!

어이 마수, 말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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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백 개의 깃털

절벽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서늘하다 못해 살갗을 베어 낼 듯 매서웠다.

어미 그리폰이 거대한 날개를 반쯤 접고 진우의 앞에 등을 낮췄다. 검은 갈기와 은빛 깃털이 섞인 등줄기는 성인 남성 두 명이 족히 누울 만큼 넓었다.

"끼루룩."

[빨리 타. 둥지에 낯선 냄새가 남아 있어.]

진우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고소공포증까지는 없었지만 안전벨트도 없는 B급 맹수의 등에 올라타는 일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떨어지면 낙하산 없으니까 살살 날아 주세요."

진우가 갈기를 꽉 붙잡으며 올라타자 어미 그리폰이 콧김을 훅 뿜었다.

[떨어지면 내 새끼 아프게 한 대가로 치지 뭐.]

"농담도 참 살벌하게 하시네요."

콰아아앙!

어미 그리폰이 땅을 박차는 순간 엄청난 중력가속도가 온몸을 짓눌렀다. 마른 하천 바닥에 서 있던 한태욱 일행의 모습이 순식간에 손톱만 한 점으로 줄어들었다.

바람이 귓가를 찢을 듯 울렸지만 진우의 눈에 비치는 푸른 번역 인터페이스는 흔들리지 않았다. 거대한 날개가 두어 번 펄럭이자 깎아지른 붉은 암벽 정상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휘이이익.

어미 그리폰이 가볍게 착지한 곳은 절벽 틈새를 깎아 만든 넓은 천연 동굴이었다. 바닥에는 마른 나뭇가지와 부드러운 이끼가 수북하게 깔려 있었다.

하지만 보금자리는 엉망으로 짓밟혀 있었다.

"크르르르……!"

어미 그리폰이 둥지 한가운데를 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목덜미의 깃털이 곤두서며 날카로운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감히 내 보금자리에 흉측한 쇠붙이를 박아 놨어! 둥지의 심장도 뜯어갔어!]

진우는 조심스럽게 등에서 내려와 바닥을 살폈다.

둥지 구석 바위 틈새에 은색 강철 와이어가 팽팽하게 얽혀 있었다. 끝부분에는 날카로운 미늘 갈고리와 마력 격발기가 장치되어 있었다.

헌터 관리국에서 규정한 불법 마력 포획 덫이었다.

"이게 왜 여기 박혀 있어……."

진우는 와이어 덫의 바닥면을 확인했다. 마찰을 줄이기 위해 특수 코팅된 마력 격발기 표면에 작은 일련번호가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BY-HW-04]

백야 길드(BY) 한태욱(HW)의 팀 장비 관리 번호였다.

그리고 덫 바로 옆에는 본래 무언가 둥글고 커다란 것이 박혀 있었던 듯한 깊은 웅덩이가 파여 있었다. 웅덩이 주변에는 서늘하고 맑은 바람의 잔류 마력이 희미하게 아지랑이치고 있었다.

"끼익!"

새끼 그리폰이 둥지 구석을 가리키며 부리를 딱딱 부딪쳤다.

[내가 저 반짝이는 쇠 줄을 밟아서 튕겨 나갔어!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졌단 말이야!]

새끼는 둥지에서 저절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인간들이 어미가 사냥을 나간 틈을 타 둥지에 몰래 침입해 불법 덫을 설치했고 둥지의 온도와 마력을 조절해 주던 천연 바람 마석을 강제로 뜯어간 것이었다.

새끼는 갑자기 침입한 인간들과 덫의 반동에 놀라 절벽 아래로 추락했던 것이다.

진우의 눈매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단순한 현장 포획 실패가 아니었다. 명백한 불법 밀렵이자 절도 행위였다.

"어미 님. 이 덫, 제가 떼어 내도 되겠습니까?"

어미 그리폰이 노란 눈동자로 진우를 응시했다.

[그 더러운 쇠붙이를 만지겠다고?]

"이게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아래 있는 놈들이 발뺌하지 못하게 멱살을 잡으려면 필요해요."

진우는 주머니에서 만능 공구를 꺼내 둥지에 박힌 강철 앵커를 조심스럽게 분리했다. 마력 격발기까지 완벽하게 해체하여 품에 넣자 어미 그리폰이 낮게 숨을 몰아쉬었다.

[내 심장석을 가져간 놈의 숨통을 끊어 놔도 되지?]

"아뇨. 숨통을 끊으면 물건도 못 돌려받고 다른 인간들이 떼로 몰려와서 사냥을 시작할 겁니다. 제가 합법적으로 탈탈 털어 드릴 테니 제 신호가 있을 때까지는 발톱을 아껴 두세요."

진우가 단호하게 말하자 어미 그리폰은 기가 차다는 듯 부리를 쩝 다시더니 다시 등을 내밀었다.

[말만 번지르르하면 네 엉덩이부터 쪼아 먹을 거다.]

"협상 끝나면 엉덩이 말고 시원한 소고기나 드시죠."


하천 바닥으로 돌아온 어미 그리폰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다.

포획장에 남아 있던 백야 팀원들은 거대한 풍압에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팀장 한태욱은 여전히 허리춤의 칼자루를 만지작거리며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유진우 씨. 위에서 뭘 확인했길래 이 마수를 데리고 내려온 겁니까?"

한태욱이 짐짓 태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우는 대답 대신 품에서 묵직한 강철 와이어 덫과 마력 격발기를 꺼내 바닥에 툭 던졌다.

챙강!

금속음이 마른 자갈밭에 울려 퍼졌다.

한태욱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이게 뭡니까?"

"백야 팀 소속 장비 번호 BY-HW-04. 관리국 미승인 특수 마력 와이어 트랩입니다."

진우는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팩트를 짚어나갔다.

"어미가 없는 틈을 타 둥지에 무단 침입하셨더군요. 이 덫을 밟은 새끼가 절벽 밑으로 추락했고 당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아래서 그물로 낚아챘습니다. 이게 어딜 봐서 '우연히 실족한 새끼의 긴급 구조'입니까?"

"무슨 헛소리를……!"

"그뿐만이 아니죠. 둥지의 중심에 박혀 있던 최상급 바람 마석, '풍령석'은 어디로 빼돌리셨습니까?"

진우의 서슬 퍼런 추궁에 뒤편에 서 있던 부팀장 민서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팀장님…… 그냥 사실대로 말씀드려요. 저 마수가 다 알고 있는 눈치잖아요!"

"입 다물어, 민서윤!"

한태욱이 버럭 소리를 질렀으나 이미 늦었다.

어미 그리폰이 거대한 앞발을 들어 바닥을 내리찍었다. 콰앙! 자갈이 사방으로 튀며 깊은 구덩이가 파였다.

"크아아아아!"

[내 돌 내놔! 도둑놈들아!]

어미 그리폰의 노호성에 실린 살기에 백야 팀원 둘이 주저앉아 덜덜 떨기 시작했다.

한태욱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유, 유진우 씨…… 이건 우리 길드 내부 문제입니다. 당신이 참견할 권한은 없어요!"

"권한이 왜 없습니까? 저는 이 의뢰의 정식 중재 통역사입니다."

진우가 한 걸음 다가서며 서늘하게 쏘아붙였다.

"헌터 관리법 제42조, 게이트 내 미등록 불법 덫 설치 및 지정 보호 마수 둥지 훼손. 제58조, 희귀 광물 불법 채굴 및 은닉. 이거 관리국 특수수사대에 바로 보고서 넘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죠?"

"……."

"팀장님 헌터 면허 영구 박탈은 기본이고 백야 길드 전체가 최소 3년 영업정지에 수억 원대 과징금 폭탄 맞습니다. 징역형도 피하기 힘들 텐데요."

한태욱의 턱이 덜덜 떨렸다.

진우는 전직 헌터 관리국 행정관이었다. 어떤 서류를 어디에 찔러 넣어야 헌터 하나를 사회적으로 완벽하게 매장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마침내 한태욱의 입에서 항복 선언이 흘러나왔다.

진우는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 둔 통역 중재 합의서를 꺼내 펼쳤다.

"첫째, 트렁크에 숨겨둔 풍령석을 지금 당장 어미 그리폰에게 온전하게 반환할 것."

한태욱이 비틀거리며 승합차로 달려가 트렁크 안쪽 특수 보관함에서 푸른빛이 영롱하게 감도는 주먹만 한 마석을 꺼내왔다. 마석이 바닥에 놓이자 어미 그리폰의 거친 숨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둘째, 이번 포획 의뢰는 헌터 측의 명백한 과실과 불법 행위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고 포획 권리를 전면 포기할 것."

"포, 포기하겠습니다……."

"셋째, 둥지 훼손에 대한 사죄금 및 위험 중재 수수료 명목으로 제게 지불했던 선불금 외에 추가 위약금 2천만 원을 즉시 입금할 것. 그리고 어미 그리폰에게 무릎 꿇고 정식으로 사과하십시오."

"마수한테 무릎을 꿇으라고요?!"

한태욱이 기겁하자 진우가 턱짓으로 어미 그리폰을 가리켰다.

"저 발톱에 머리통이 쪼개지는 것보다는 무릎 꿇는 게 훨씬 싸게 먹힐 텐데요."

어미 그리폰이 마치 알아들은 것처럼 황금빛 안광을 번뜩이며 부리를 쩌억 벌렸다.

쿵.

한태욱은 더 망설이지 못하고 자갈밭 위에 무릎을 꿇었다. 다른 팀원들도 서둘러 옆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죄,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 산에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

진우는 [직역/의역 최적화] 스킬을 발동하며 확성기를 켰다.

"어미 님. 인간들이 자신의 비열한 잘못을 인정하고 훔쳐간 보물을 돌려놓았습니다. 또한 다시는 이 영역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법적 맹세를 남겼습니다."

진우의 정중하고 명확한 음성이 하천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어미 그리폰은 조심스럽게 부리로 풍령석을 집어 품 안으로 갈무리했다. 그리고 엎드려 있는 헌터들을 차갑게 내려다본 뒤 진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끼루루룩."

[작은 인간. 네 말이 맞았다. 피를 보지 않고도 내 집의 보물을 되찾았어.]

어미 그리폰은 날개를 펼쳐 제 품으로 파고드는 새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둥지 쪽을 향해 나지막하게 울부짖었다.

잠시 후 거대한 돌풍이 절벽 위에서 휘몰아치더니 은빛과 잿빛이 섞인 거대한 깃털 뭉치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려왔다.

파스스스.

진우의 발치에 쌓인 깃털들은 하나하나가 성인 팔뚝만 한 크기였으며 표면에서 은은한 바람의 마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건……?"

[성체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빠진 내 날개 깃털들이다. 백 개는 될 거다. 인간들이 칼을 들고 빼앗으려 안달하던 물건이지.]

어미 그리폰이 진우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정직하게 내 말을 전해 준 네 몫이다. 가져가라.]

진우의 눈이 번쩍 뜨였다.

성체 B급 그리폰의 자연 탈락 깃털 백 개.

마법 저항력과 경량화 성능이 워낙 뛰어나 S급 및 A급 헌터들의 특수 방어구 제작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초고가 희귀 소재였다.

시세로 따지면 개당 수십만 원, 백 개면 족히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보물이었다.

"감사합니다. 소중하게 잘 쓰겠습니다."

진우가 고개 숙여 인사하자 아기 그리폰이 진우의 바짓가랑이를 부리로 툭툭 건드렸다.

[말 많은 아저씨, 고마워! 다음에 또 놀러 와!]

"너는 덫 밟지 말고 엄마 말 잘 듣고 있어라."

쿠우우웅!

어미 그리폰이 새끼를 등 뒤에 태우고 힘차게 날개를 퍼덕였다. 거대한 은빛 날갯짓과 함께 두 마리의 그리폰은 가평의 푸른 하늘 속으로 유유히 사라져 갔다.


서울 은평구의 작은 상가 2층.

'유진우 마수 전문 통역 사무소'의 유리창 너머로 붉은 노을이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진우는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인 그리폰 깃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모바일 뱅킹 앱을 새로고침했다.

[잔액: 43,500,000원]

선불 출장비와 위험 수당, 한태욱에게 받아낸 위약금에 깃털 10개만 긴급 처분해 정산한 금액이 찍혀 있었다. 아직 팔지 않은 깃털 90개는 방 한구석 특수 보관함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크으…… 역시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 해."

진우가 캔커피를 들이켜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관리국에서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서류에 치이던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보람과 수익이었다.

그 시각, 서울 강남의 헌터 관리국 본부 특무실.

검붉은 단발머리를 한 여성이 서류철 하나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최연소 S급 헌터이자 전(前) 레이드 기사단장, 신아린이었다.

그녀의 차가운 눈동자가 서류 상단의 보고서 제목에 멈췄다.

[가평 제3 게이트 외곽: B급 비행 마수 그리폰과의 언어 중재 및 무혈 평화 협상 종결 건]

[담당 중재관: 유진우 (前 관리국 F급 행정관 / 現 통역 사무소 대표)]

신아린의 붉은 입술이 작게 호선을 그렸다.

"칼 한 자루 안 쓰고 B급 그리폰을 돌려보내고 깃털 백 개를 뜯어냈다고?"

그녀의 뒤편, 특수 방음실 안에서 거대한 불꽃을 뿜으며 괴로워하는 S급 마수 '화염 늑대'의 포효가 벽을 뒤흔들고 있었다.

어떤 힐러와 테이머를 붙여도 날뛰기만 하던 골칫덩어리였다.

신아린은 서류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허리춤에서 푸른빛을 머금은 검집이 가볍게 찰랑였다.

"유진우…… 어디 한번 보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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