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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의 상태창이 너무 많음2화

대마법사의 상태창이 너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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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실금이 가리킨 문

검은 장벽이 사라진 뒤에도 연구실에는 벽 하나가 남아 있는 듯했다.

무너진 천장석과 뒤틀린 은선 사이에 정적이 고여 있었다. 이안 베르크는 그 정적을 밟듯 파편 앞으로 다가갔다.

표면에 드러난 실금은 봉인실 밖을 향했다. 희미한 빛이 떨릴 때마다 소매 속 손목이 뜨거워졌다.

―그 선을 따라가지 마라.

“따라갈 생각은 없다.”

―네 말은 믿지 않는다.

“나도 네 말을 믿지 않는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안은 잿빛 가루 위에 좌표를 옮겨 적었다. 실금의 방향과 빛이 약해지는 간격도 기록했다.

복도 쪽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들렸다.

“전부 손을 떼십시오.”

붕괴한 출입문 너머로 회색 망토를 걸친 남자가 들어왔다. 마흔을 넘긴 얼굴에 금속 테 안경을 썼고 허리에는 봉인못 여섯 개가 꽂혀 있었다.

토른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봉인감독관 베른입니다. 제가 현장을 인계하겠습니다.”

베른은 인사를 받지 않고 파편을 살폈다. 손가락을 튕기자 바닥에 붉은 선이 퍼졌다. 연구실 전체를 둘러싼 임시 격리식이었다.

“경보 기록을 말해 보십시오.”

토른이 지팡이를 세웠다.

“지하 봉인 연구실에서 비정상 공명 발생. 야간 경보 후 출입문 개방. 내부에는 이안 베르크와 조수 레미가 있었고 천장 일부가 붕괴했습니다. 원인으로 보이는 파편은 현재 반응을 멈췄습니다.”

“검은 장벽은?”

베른의 시선이 이안에게 옮겨 왔다.

“제가 사용한 응급 방어 술식입니다.”

“등록된 계통입니까?”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확인하지 못한 술식을 사용했다는 뜻이군요.”

“사람이 깔리기 직전이었습니다.”

“그 답은 술식의 출처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베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연구실의 돌벽보다 단단했다. 레미가 입을 열려 하자 이안이 손을 들어 막았다.

“허가받은 공명식에 제가 임의의 계산을 추가했습니다. 사고의 직접 원인은 그 계산입니다.”

베른은 바닥에 떨어진 계산판을 집어 들었다. 긁힌 숫자와 번진 먹물이 가득했다.

“이 계산은 허가 범위를 두 층 넘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도 진행했습니까?”

“기록이 남아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기록을 읽기 전에 연구실을 무너뜨릴 수도 있었겠죠.”

파편에서 뻗은 검은 실이 레미의 발끝을 스쳤던 순간이 떠올랐다. 계산판을 놓았다면 모두가 비상 봉인 안에 갇혔을 것이다.

베른은 계산판을 봉인 주머니에 넣었다.

“파편도 가져갑니다.”

“안 됩니다.”

베른의 눈썹이 움직였다.

“이유는?”

“아직 잔류 공명이 남아 있습니다. 이동시키면 반응 방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압니까?”

이안은 파편의 표면을 보았다. 지워진 왕관 문장 아래에서 실금이 가느다랗게 뛰었다.

“현장을 만든 사람이라서 압니다.”

“그 말은 설득력이 없군요.”

“그래도 사실입니다.”

“감독관님. 경보 직전 지하 감지판에 잡히지 않은 반응이 있었습니다.”

“지하 감지판에 잡히지 않았다고요?”

“경보 기록에는 없습니다. 지상 감지판의 보조 바늘이 한 번 흔들렸습니다.”

“하르트를 부르겠습니다. 기록실 대조가 끝날 때까지 파편 이동을 보류합니다.”

그는 봉인못 하나를 뽑아 파편 주위에 세웠다. 못 끝에서 얇은 빛이 솟아올라 검은 조각을 감쌌다.

이안은 소매 속 손목을 움켜쥐었다. 검은 선이 맥박에 맞춰 조여 왔다.

기록 보조관 하르트가 낡은 장부와 유리판을 들고 들어왔다. 하르트는 베른의 지시에 따라 지상 감지판의 기록을 띄웠다.

“경보 시각은 새벽 두 시 열일곱 분. 보조 바늘의 흔들림은 두 시 열여섯 분 오십삼 초입니다.”

토른이 지팡이 끝으로 기록을 가리켰다.

“경보보다 먼저 반응했군요.”

“흔들림의 크기는 미미합니다. 오작동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오작동이라면 지하 공명과 시간이 맞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안은 바닥에 남은 은선을 살폈다. 공명식의 선은 파편을 중심으로 꺾였지만 실금에서 나온 잔향은 그 틈을 무시하고 북쪽 벽을 향했다.

“보수 도면이 있습니까?”

하르트가 장부를 펼쳤다.

“현재 봉인실 기준 도면은 이게 전부입니다.”

“이전 도면을 보죠.”

“마도탑 지하층은 세 번 개축됐습니다. 이전 도면은 폐기 목록에—”

“폐기됐다는 기록이라도 있습니까?”

하르트는 잠시 머뭇거리다 장부 뒤쪽에서 얇은 종이를 꺼냈다. 종이에는 지하층 번호와 함께 검은 먹줄이 그어져 있었다.

“이 구간은 180년 전 봉인층 사고 이후 삭제됐습니다. 구조물이 남아 있는지는 모릅니다.”

이안은 종이를 파편 옆의 공명 기록과 겹쳤다.

실금이 가리킨 방향과 삭제된 봉인층의 기준선이 정확히 포개졌다. 그러나 기준선은 하나의 장소를 가리키지 않았다. 오래된 지도에서 몇 개의 방과 통로를 한꺼번에 지운 선이었다.

“좌표가 장소가 아니군요.”

레미가 옆으로 다가왔다.

“그럼 뭘 가리키는 거예요?”

“봉인층의 기준점. 아니면 기준점이 바뀌기 전의 원래 좌표.”

이안은 유리판에 새 눈금을 그렸다. 파편의 빛이 약해졌다가 다시 살아났다.

한 번.

두 번.

세 번.

빛이 꺼진 뒤 네 박자 동안 정적이 흘렀다. 지상 감지판의 보조 바늘이 다시 흔들렸다.

토른이 숨을 삼켰다.

“같은 간격입니다.”

“어디서 오는 응답입니까?”

“아직 모릅니다.”

“모르면서 응답이라고 단정합니까?”

“같은 간격으로 돌아오는 신호를 우연이라고 부를 만큼 여유가 없습니다.”

이안은 실금의 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파편과 먼 곳 사이에 끊기지 않은 선이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손목이 다시 뜨거워졌다.

레미가 그의 소매를 보았다.

“선배. 손 다쳤어요?”

“검은 술식의 잔열이다.”

“아까부터 계속 숨기고 있잖아요.”

“확인 중이다.”

이안은 손목을 등 뒤로 감췄다.

“손목을 보여 주십시오.”

“거부하겠습니다.”

“사고 조사에 필요한 신체 반응입니다.”

“검은 장벽의 잔열이라면 기록할 수 있습니다. 원인을 모르는 표식을 넘길 생각은 없습니다.”

“당신은 지금 원인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넘길 수 없습니다.”

베른의 봉인못이 낮게 울렸다. 바닥의 붉은 격리식이 이안의 발끝까지 다가왔다.

“이안 베르크. 당신은 임시 격리 대상입니다. 파편과 접촉한 사람은 모두 조사받아야 합니다. 레미, 계산판에 접근한 경위서를 작성하십시오.”

레미의 얼굴이 굳었다.

“제가 고정못 교체를 미룬 건—”

“사실대로 쓰면 됩니다.”

“제 계산판은 선배가—”

“사본을 만들어.”

이안이 잘랐다.

레미가 그를 보았다.

“왜요?”

“원본은 이미 압수됐어. 네가 본 수식까지 사라지면 같은 실수가 반복된다.”

“그럼 제가 보관할게요.”

레미는 떨리는 손으로 유리판을 꺼냈다. 베른이 막으려 했지만 토른이 먼저 말했다.

“사본 작성은 기록 보존 절차에 들어갑니다. 원인 확인 전 원본과 사본을 없애는 건 규정 위반입니다.”

베른이 토른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경비 담당입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본 것을 기록합니다.”

이안은 토른의 표정에서 호의를 읽지 않았다. 그는 단지 자신이 본 것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게 지금은 충분했다.

“감독관님.” 이안이 말했다. “외부 계통 반응이 확인되면 마도탑 단독 판단으로 파편을 폐기할 수 없습니다.”

“외부 계통이라는 근거는?”

“지하와 지상의 기록이 같은 간격으로 움직였습니다. 현재 봉인식에 없는 기준선도 확인했습니다.”

“그러면 성당을 부르자는 겁니까?”

“정화 권한이 있는 쪽의 판독이 필요합니다.”

마도탑과 성당이 봉인 유물을 두고 부딪힌다는 건 이안도 알고 있었다.

“공동 조사 요청서를 올리겠습니다. 그때까지 파편은 이곳에 둡니다. 당신은 이 지하층을 벗어나지 마십시오.”

“동의하겠습니다.”

베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순순히 따르는군요.”

“조사를 피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마지막 측정 하나가 필요합니다.”

“안 됩니다.”

“파편을 완전히 차단하면 외부 응답이 끊깁니다. 반복 신호인지 확인하려면 한 번 더 봐야 합니다.”

“당신은 이미 한 번 무너뜨렸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 마력을 최소량만 쓰겠습니다. 접촉하지 않고 잔향만 측정하죠.”

베른은 봉인못을 하나 더 꽂았다.

“세 번의 박동만 허용합니다. 이상 반응이 생기면 즉시 중단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이안은 파편에서 두 걸음 물러났다. 흑벽의 잔향을 다시 부를 생각은 없었다. 상태창을 띄우는 순간 손목의 선이 먼저 반응할 것 같았다.

그는 대마법사의 감지식을 펼쳤다. 힘을 밀어 넣지 않고 이미 남은 흔적의 가장자리만 건드렸다.

파편이 떨렸다.

첫 번째 박동.

검은 선이 손목에서 팔꿈치 쪽으로 번졌다.

두 번째 박동.

벽 너머 어딘가에서 낮은 울림이 돌아왔다. 연구실 안의 누구도 듣지 못한 듯했지만 이안의 뼈에는 분명히 닿았다.

세 번째 박동.

파편 표면의 지워진 왕관 문장 아래에 짧은 문양이 나타났다. 세로로 그어진 선 하나와 그 아래 꺾인 고리. 이안이 뜻을 읽기도 전에 문양은 재처럼 흩어졌다.

―끊어라.

바르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이안은 감지식을 거두었다. 그러나 외부의 응답은 멈추지 않았다.

네 번째 박동.

이번에는 파편이 아니라 이안의 손목에서 검은 빛이 새어 나왔다. 붉은 격리식이 일그러지고 레미가 뒤로 물러났다.

“선배!”

이안은 손목을 움켜쥐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뜨거운 선 아래에서 무언가가 안쪽으로 문을 두드렸다.

―열지 마라.

“무엇을?”

―네가 대답할 문을.

“저 문양을 알고 있나?”

―알고 싶지 않은 이름이다.

바르칸은 더 말하지 않았다.

이안은 이를 악물고 마지막 응답의 간격을 기록했다. 처음 세 번은 파편에서 시작했고 마지막 한 번은 자신의 몸에서 돌아왔다.

그는 감지식을 완전히 끊었다. 검은 빛이 꺼지고 붉은 격리식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측정 종료입니다.”

“네.”

“방금 손목에서 일어난 현상도 보고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이안은 일어섰다. 소매 아래 봉인선은 다시 가늘어졌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하르트가 새 문서의 마지막 줄을 읽었다.

“외부 계통 봉인 반응 의심. 마도탑 단독 판정 불가. 성당 공동 조사 요청.”

베른은 문서에 봉인 인장을 찍었다.

“새벽 첫 종이 울리면 요청서를 보냅니다. 그 전까지 누구도 파편에 접근하지 마십시오.”

연구실 밖에서 희미한 종소리가 들렸다. 어둠이 물러갈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안은 봉인된 파편과 자신의 손목을 번갈아 보았다. 실금이 가리키는 곳은 아직 지도 위에 없었다. 바르칸이 두려워하는 문양의 뜻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대답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 선을 따라가지 않는다. 먼저 지워진 봉인층의 기록을 찾고 자신의 몸에 생긴 문이 무엇인지 확인한다.

이안은 격리실로 이어지는 붉은 선 안에 발을 들였다.

손목 안쪽에서 검은 봉인선이 아주 작게 뛰었다.

마치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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