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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마트 사장은 갑질이 하고 싶다6화

[아포칼립스 마트 사장은 갑질이 하고 싶다]

아포칼립스 마트 사장은 갑질이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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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가격표를 읽는 사람]

카운터 앞의 병목

마트 안의 사람 수는 열두 명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도 통로는 벌써 막혀 있었다. 생수를 고른 손님이 계산대 앞에서 멈추면 뒤에서 컵라면을 든 사람이 부딪쳤다. 가격표를 못 읽은 사람들은 카운터로 몰려와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이 물은 몇 포인트예요?”

“죽도 오늘 살 수 있습니까?”

“한 사람당 두 병이면 아이 몫은 따로 아닌가요?”

도진은 한 명씩 대답했다.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손님이 앞으로 밀려왔다. 카운터와 생수 진열대 사이의 짧은 거리가 모든 행동을 한곳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강두철이 입구에서 손을 들었다.

“사장. 안쪽이 꽉 찼다. 더 들이면 서로 밟겠는데?”

“두 명은 더 들어올 수 있어.”

“들어올 수 있는 것과 움직일 수 있는 건 다르지.”

그때 한 남자가 생수 두 병과 컵라면 두 개를 품에 안고 몸을 틀었다.

“가족이 셋이야. 이것도 같이 계산하면 되잖아.”

“즉석식은 한 개입니다. 하나 내려놓으세요.”

남자가 컵라면을 더 끌어안자 뒤의 사람들이 서로 밀렸다. 두철이 한 발 안으로 들어왔다.

“내려놓으라잖아.”

그의 손이 허리 옆으로 내려가자 도진이 고개를 저었다.

“손대지 마. 말로 돌려보내.”

두철이 이를 악물었다. 그때 생수 진열대 옆에서 낡은 판지 한 장이 바닥으로 미끄러져 나왔다.

[계산 전 상품은 카운터로 가져오지 마십시오.]

한 여자가 빈 상자 두 개를 세워 놓고 있었다. 비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붙어 있었지만 손에 든 연필은 멈추지 않았다.

“물을 고르는 줄과 계산하는 줄을 나누세요. 지금은 사람들이 물을 고르자마자 카운터로 오니까 부딪히는 겁니다.”

도진이 여자를 바라봤다.

“손님이 매장 배치를 지적하는 건 처음 보는데.”

“지적이 아니라 임시 조치입니다.”

여자는 판지로 물 진열대 앞을 가리켰다.

“여기는 물을 고르는 곳. 저쪽은 즉석식. 카운터 앞은 결제만 하는 곳으로 만들면 됩니다.”

두철이 여자를 내려다봤다.

“네가 뭔데 줄을 나눠?”

“지금 사장님이 혼자 다 하느라 못 하고 있잖아요.”

여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당신은 입구를 지키고 저는 사람들이 어디서 멈추는지 봤습니다. 둘 다 그냥 서 있는 것보다는 낫죠.”

도진은 상자와 카운터를 번갈아 봤다. 임시 안내판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이 멈출 위치가 생겼다.

“두철. 물 고르는 사람은 상자 뒤에 세워. 계산할 사람은 오른쪽으로 보내.”

“저 여자는?”

“그대로 하게 둬.”

도진은 남자가 안고 있는 컵라면을 가리켰다.

“하나만 계산하세요. 나머지는 제자리에 놓고 다시 줄을 서면 됩니다.”

남자는 결국 컵라면 하나를 매대에 돌려놓았다. 사람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자는 카운터 옆의 작은 가격표를 떼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볼 방향으로 돌려 놓았다.

“가격이 여기 있으면 안 됩니다.”

도진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가격표를 건드려도 된다고 한 적은 없는데.”

“바꾼 게 아니라 보이게 한 겁니다. 입구에서 생수 가격을 확인할 수 없으니 안쪽까지 들어와서 묻는 거예요.”

그 말이 맞았다. 문제는 손님 수만이 아니었다. 손님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몰랐다.

“이름.”

“윤설희입니다.”

“여기서 뭘 했지?”

“아직은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그래서 돈도 없고 물도 못 샀고요.”

설희는 판지에 숫자를 적었다.

“하지만 매장 동선은 조금 압니다.”

가격표보다 먼저

손님이 빠진 뒤 도진은 설희를 카운터 앞에 세웠다. 출입증이 없는 사람을 안쪽 관리 구역에 들이지 않기 위해 바닥에 투명한 선도 그었다.

“여기 안으로는 들어오지 마. 설명만 해.”

“좋습니다. 대신 입구에서 보이는 안내판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상품이야.”

“알고 있습니다.”

“코어는?”

설희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없습니다.”

“그럼 손님으로는 살 수 없어.”

도진은 카운터 아래의 물을 꺼내지 않았다. 설희의 입술은 말라 있었고 손목에는 낡은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러나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가격표를 바꿀 수는 없었다.

“사장님은 정말 안 깎아 주시네요.”

“가격표를 만든 사람이 가격표를 어기면 손님들이 뭘 믿지?”

“그러니까 가격표를 지키는 일을 하겠다는 겁니다.”

설희가 접힌 종이를 펼쳤다. 물통 수와 식사 수량 그리고 시간대별 대기 인원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대멸망 전에는 대형 유통업체 본사 기획팀에서 일했습니다. 이후에는 대피소에서 배급표를 썼고요. 물이 열여섯 병뿐인 곳에서 서른두 명의 순서를 정하는 일도 해 봤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뭘 원하지?”

“물을 달라고 온 게 아닙니다. 일할 수 있는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설희는 매장 안을 훑었다. 즉석식 가격은 매대 아래에 붙어 있었고 계산을 끝낸 손님은 물건을 어디서 받아야 하는지 몰라 카운터 앞에 다시 멈췄다.

“손님이 사장님에게 묻는 건 세 가지예요. 얼마인지. 몇 개까지인지. 계산한 뒤 어디로 가는지.”

“그걸 세서 뭐 하려고?”

“표지판을 세 개 만들려고요.”

“내가 만들면 돼.”

“사장님은 가격을 정하고 결제를 해야 합니다. 그걸 놓으면 사람이 다시 엉킵니다.”

카운터 화면에 작은 글자가 떠올랐다.

[운영 지원자 감지.]

[등록 가능한 노동: 진열 관리, 수요 기록, 구매 동선 정리.]

[노동 보상은 근무 기록과 공개 운영 항목에 따라 환산됩니다.]

도진은 화면을 설희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계약을 하면 수습 일곱 날이다. 하루 근무를 마치면 생수 두 병과 즉석식 하나. 정상적인 운영 기록을 남기면 포인트도 하루 한 점 준다.”

설희의 눈이 가격표를 훑었다.

“현물만 일곱 포인트군요. 조건은 나쁘지 않습니다.”

“마음에 안 들면 거절해.”

“마음에 듭니다. 단 조건을 하나 추가하고 싶습니다.”

설희가 대기열을 보았다.

“근무 중에 손님에게 임의로 약속하지 않을 것. 사장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외를 만들면 제가 표지판으로 수습할 수 없습니다.”

도진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자신의 권한에 제동을 거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불쾌하지 않았다. 가격과 규칙을 지킬 사람이 필요했다.

“좋아. 계약서에 넣지.”

수습 매장관리 직원

계약서가 카운터 위에 떠올랐다.

[윤설희 / 수습 매장관리 직원]

[근무 구역: 기본 구역 진열대, 안내판, 고객 동선.]

[권한: 진열 위치 변경, 공개 가격·구매 제한 안내, 수요 기록.]

[제한: 가격 변경 및 포인트 임의 조정 불가.]

[보상: 근무 완료 후 생수 2병, 즉석식 1개, 운영 포인트 1점.]

설희는 한 줄씩 읽었다. 두철이 입구에서 힐끗 돌아봤다.

“저 여자도 문 앞에 세우는 겁니까?”

“아니. 안쪽을 맡길 거야.”

“안쪽이 더 중요한데.”

“그래서 입구와 안쪽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설희가 두철을 바라봤다.

“손님이 안에서 멈추면 문 앞 줄도 멈춥니다.”

두철은 잠시 생각하다가 코를 울렸다.

“말은 잘하네.”

“기록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설희는 계약서 아래에 손가락을 올렸다.

“직원도 규칙을 어기면 계약이 끝납니다. 가격 조작이나 손님 물품 탈취가 발생하면 즉시 기록합니다. 이 조건이면 서명하겠습니다.”

“겁 안 나?”

도진이 물었다.

“겁납니다.”

설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조건이 분명한 곳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그녀가 손가락을 눌렀다.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직원 출입증이 발급됩니다.]

회색 카드가 카운터 위에 나타났다. 설희가 카드를 목에 걸자 이름과 수습 매장관리 직원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첫 업무.”

도진이 말했다.

“가격표를 입구에서 보이게 만들어. 생수와 즉석식 그리고 계산 위치를 나눠. 구매 제한도 한 번에 읽혀야 한다.”

“계산 완료 상품을 받는 위치도 필요합니다. 카운터 오른쪽에 자리를 만들죠.”

“두철. 매대 옮겨.”

“내가 왜?”

“경비 업무에 매장 안전도 포함되어 있잖아.”

두철은 투덜거리면서도 생수 진열대를 옮겼다. 설희는 그 틈에 판지 안내판을 세웠다.

가게가 된 공간

입구에는 큰 글씨가 붙었다.

[입장 전 가격과 구매 제한을 확인하십시오.]

[무장 해제 후 입장. 선불 결제. 상품은 계산 뒤 수령.]

생수 매대에는 생수 한 병 2포인트와 1인 2병이 적혔다. 즉석식 매대에는 핫컵라면과 부드러운 쌀죽의 가격이 나란히 붙었다. 계산을 끝낸 손님은 오른쪽에서 물건을 받아 곧장 나갈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이 달라졌다. 먼저 가격을 읽고 필요한 것만 골랐다. 카운터에서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목소리도 줄었다.

[공개 운영 항목의 가독성이 개선되었습니다.]

[연속 정상 거래 보정이 적용됩니다.]

[기본 구역 운영 안정도가 상승합니다.]

설희는 작은 수첩에 시간과 상품 수량을 적었다.

“오늘은 라면이 죽보다 두 배 빨리 빠집니다.”

“그래서?”

“다음에 상품을 해금하거나 가격을 정할 때 근거가 생깁니다. 장사는 물건을 꺼내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계속 돌아올 이유를 만드는 일이니까요.”

도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한히 채워지는 진열대만 있으면 장사가 끝나는 줄 알았다. 손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면 매대가 풍족해도 매장은 엉망이었다.

설희의 시선이 유리문 밖으로 향했다.

옥상 난간 위의 무장자 둘은 줄을 보지 않았다. 한 명은 입구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켜지는 불빛을 보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은 생수 진열대가 비워진 뒤 다시 채워지는 시간을 세는 듯했다.

“저 사람들은 물을 사러 온 게 아닙니다.”

설희가 낮게 말했다.

“두철 씨는 위험한 사람인지 봤고 저는 저들의 시선을 봤습니다. 저 사람들은 마트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계산하고 있어요.”

“유통업체에서 배운 건가?”

“물류를 빼앗으려는 사람들은 창고보다 문이 열리는 시간과 물건이 빠지는 속도를 먼저 셉니다.”

설희는 외벽 아래를 가리켰다. 젖은 벽돌 사이에 붉은 분필 자국 하나가 남아 있었다. 아까는 없던 표시였다.

두철이 자동문으로 다가갔다.

“나가서 지울까?”

“아직은 안 돼.”

도진은 외벽과 옥상을 번갈아 봤다. 마트 안에서는 무엇이든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저 표시를 남긴 손은 바깥에 있었다.

“사장님.”

설희가 수첩을 내밀었다.

“판매량 기록을 두 부로 만들죠. 하나는 매장 운영용. 다른 하나는 외부 감시 기록용으로요.”

도진은 수첩을 받아 들었다.

“붉은 표식이 어디에 더 생기는지도 확인해.”

“네.”

설희는 직원 출입증을 한 번 만졌다. 이제 그녀는 물을 얻으러 온 손님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일하고 이곳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었다.

마트는 조금 더 가게다워졌다.

그만큼 누군가가 노릴 이유도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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