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싶은데 고백받았습니다

9화: 청원서의 이름들
아침의 중앙 문서고 앞에는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다.
로잘린은 의무실에서 문서고로 이어지는 복도 모퉁이에 멈춰 섰다. 어젯밤 야간 근무 승인서를 받아 갔던 문관들이 다시 모여 있었다. 손에는 각자 접힌 종이가 들려 있었다. 누구도 먼저 문을 두드리지 못했다.
에드먼드는 문서고 탁자 앞에서 그들을 바라보다가 로잘린을 발견하고 급히 일어났다.
"단장님. 이분들이 어제 서식에 대해 문의가 있다고 합니다."
문의라기에는 종이가 너무 많았다.
젊은 문관 하나가 떨리는 손으로 첫 장을 내밀었다.
"저희 부처에도 수면 보장 조항을 적용할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보좌관님께서 받으신 조항 말입니다."
로잘린은 종이를 펼쳤다. 글씨는 여러 사람의 손으로 적혀 있었다.
야간 근무 다음 날 최소 네 시간 회복 시간 보장.
구두 지시 기록 시 문관 개인 징계 금지.
긴급 사유 없는 반복 야근 중지.
마지막 줄에는 이름 대신 부처명이 적혀 있었다. 재무부 문서고와 군무부 보급국, 법무부 기록실, 궁내부 회계과.
로잘린은 한숨을 삼켰다. 쉬고 싶다는 말이 이렇게 조심스럽게 적혀야 하는 나라였다.
"이름을 비운 이유가 있습니까?"
문관들의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에드먼드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밤에 작성한 분들 중 몇 명이 국장실에서 불려 갔다고 합니다. 누가 서식을 냈는지 물었다고……"
그때 뒤쪽에서 다른 문관이 급히 말을 이었다.
"불복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저희도 쓰러지기 전에 집에 가고 싶어서요."
복도에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로잘린은 탁자 위 빈 서식을 끌어왔다.
"투서로 받지 않겠습니다."
문관들의 얼굴이 굳었다.
"익명으로 던진 종이는 보호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이름과 요구 조항을 분리해서 보관하겠습니다. 감찰단 보관 번호를 붙이고 열람권자는 저와 이안 부단장으로 제한합니다."
에드먼드가 재빨리 새 종이를 꺼냈다.
로잘린은 제목을 적었다.
야간 근무 휴식 보장 청원 접수표.
그 아래에 세 칸을 만들었다.
청원 번호.
요구 조항.
실명 명부 별도 봉인.
"접수표와 명부는 분리합니다. 접수표는 공개할 수 있지만 명부는 봉인합니다."
"본인의 이름을 쓰기 어렵다면 지시자 미기재 청원으로 제출할 수 있습니다. 다만 부처와 업무 종류는 적어야 합니다. 감찰단이 다음 날 기록으로 확인하겠습니다."
문관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면 국장님들께 이름이 넘어가지 않습니까?"
"넘어가지 않습니다. 대신 허위 청원도 보호하지 않습니다. 실제 야간 근무 기록과 맞지 않으면 반려됩니다."
에드먼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식을 받아 적었다. 그의 손은 떨리지 않았다.
"청원 번호는 제가 붙이겠습니다. 원본 명부는 봉투에 넣어 단장님과 부단장님 서명으로 봉인하겠습니다."
로잘린은 에드먼드를 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저를 성녀처럼 부르는 말이 문서에 들어가면 전부 반려합니다."
뒤쪽에서 누군가 작게 숨을 삼켰다.
"퇴근의 성녀라고 적은 줄은 지우겠습니다."
로잘린은 눈을 감았다 떴다.
"권리는 별명으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조항으로 지켜집니다."
그 말에 문관들이 처음으로 아주 작게 웃었다.
하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복도 끝에서 귀족 관료들의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베인 백작과 케일 후작이 수행 문관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밤새 준비한 분노가 정돈되어 있었다.
"감찰단장."
베인 백작이 접힌 청원서를 내려다봤다.
"하급 문관들을 선동해 각 부처의 권한을 흔들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보고가 빠르군요."
로잘린은 청원서를 덮었다.
"아직 접수 번호도 붙이지 않았는데요."
케일 후작이 헛기침을 했다.
"야간 근무는 부처 사정에 따라 필요한 일입니다. 현장을 모르는 감찰단이 몇 장 서식만으로 통제하면 보급과 결재가 마비됩니다. 특히 내 보급국은 북부 전선과 연결되어 있어 밤에도 확인이 필요합니다."
"빈 인장함 확인도 그 필요에 포함됩니까?"
케일 후작의 눈매가 굳었다.
"정상 점검입니다."
"그럼 사전 승인자와 점검 사유를 제출하시면 됩니다."
"그런 식으로 모든 명령을 종이에 적으면 업무가 늦어집니다."
로잘린은 이안을 돌아보았다. 이안은 이미 어젯밤의 야간 근무 기록 열세 장을 들고 있었다.
"이안 부단장. 첫날 기록 중 종료 예정 시각이 적힌 서식은 몇 장입니까?"
"열세 장 중 세 장입니다."
"다음 날 휴식 보장 칸이 채워진 것은요?"
"한 장도 없습니다."
복도에 있던 하급 문관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로잘린은 베인 백작과 케일 후작을 향해 말했다.
"업무가 늦어지는 원인은 서식이 아닙니다. 종료 시각도 없이 사람을 붙잡아 두는 방식입니다."
베인 백작이 차갑게 웃었다.
"그러면 청원자 명부를 내놓으십시오. 실제 업무를 맡은 상급자가 누가 어떤 사유로 불만을 냈는지 알아야 조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순간 차가운 마력이 복도 벽을 타고 번졌다.
칼릭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문관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베인 백작과 케일 후작도 허리를 굽혔다.
"명부를 달라고 했나."
칼릭스의 목소리는 낮았다.
베인 백작의 입술이 마른 듯 움직였다.
"폐하. 부처 기강을 위해 필요한 확인입니다."
칼릭스의 붉은 눈이 청원서 더미에 닿았다.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자 문관들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로잘린은 곧바로 그의 앞을 막았다.
"폐하. 청원자 색출은 하지 않습니다."
"색출이라는 말이 맞나?"
"명부를 상급자에게 넘기는 순간 맞습니다."
칼릭스의 시선이 그녀에게 내려왔다. 분노는 관료들에게 향해 있었지만 그 무게는 문관들을 먼저 눌렀다.
로잘린은 목소리를 낮췄다.
"폐하께서 벌하실 사람을 찾고 싶으신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쉬고 싶다고 말했는지가 아니라 누가 쉬지 못하게 했는지입니다."
칼릭스는 침묵했다.
로잘린은 빈 서식 위에 새 문장을 적었다.
부처별 야간 근무 지시 통계 제출 명령.
"각 부처는 사흘간 야간 근무 지시자, 긴급 사유, 대리 가능자, 종료 예정 시각, 다음 날 휴식 보장 여부를 감찰단에 제출합니다. 청원 명부는 봉인합니다. 이름이 아니라 구조를 보겠습니다."
케일 후작이 즉시 반발했다.
"그건 부처 내부 명령 체계를 감찰단에 넘기라는 뜻입니다!"
"예."
로잘린은 정중하게 답했다.
"지금 감찰단이 그 일을 하라고 만들어졌으니까요."
칼릭스의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웃음은 아니었다. 다만 칼 대신 문장을 들고 싸우는 사람을 보는 표정이었다.
"마르셀."
"예, 폐하."
"명령서를 준비해라."
베인 백작이 급히 고개를 들었다.
"폐하! 이런 청원을 받아들이면 하급자들이 상관의 정당한 지시를 모두 의심하게 됩니다."
칼릭스의 눈이 그에게 꽂혔다.
"정당한 지시면 적어도 된다."
짧은 한마디에 백작의 입이 닫혔다.
로잘린은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칼릭스가 더 말하기 전에 덧붙였다.
"청원자를 벌하지 않는다는 조항도 필요합니다."
칼릭스는 그녀를 보았다.
"네가 그걸 원하나."
"제가 원하는 게 아니라 제도가 필요로 합니다."
"그 말투는 늘 사람을 물러서게 만드는군."
"물러서실 겁니까?"
복도에 있던 마르셀이 아주 작게 기침했다. 칼릭스는 그녀를 오래 보다가 말했다.
"넣어라."
마르셀이 명령서 첫 줄을 적었다.
야간 근무 휴식 보장 청원자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을 금한다.
로잘린은 그 문장을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 소회의실에는 어젯밤 서식과 아침 청원서가 나란히 놓였다.
이안은 표를 만들었다. 부처명, 야간 근무 사유, 지시자 기재 여부, 휴식 보장 여부, 청원 요구 조항. 칸은 단순했지만 비어 있는 곳이 많을수록 문제가 선명해졌다.
에드먼드는 봉인 봉투에 청원 명부를 넣고 붉은 실을 묶었다. 봉투 표면에는 보관 번호가 붙었다.
"단장님. 보급국 청원 세 건은 모두 빈 인장함 확인과 연결됩니다."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 명은 어젯밤에 직접 확인 지시를 받았고 다른 두 명은 같은 시각 다른 장부의 야간 결재 대기자로 남아 있었습니다. 날짜는 북부 병영 보급 산정 전날과 겹칩니다."
로잘린은 표를 내려다봤다.
"아직 도용이라고 쓰지는 마세요."
"예. 같은 시각 같은 업무 계열의 야간 지시 반복으로 적겠습니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현이면 충분합니다. 오늘 제출 명령이 나가면 보급국은 정상 점검이었다는 근거를 내야 합니다. 못 내면 다음 단계는 인장 보관 절차 감찰입니다."
로잘린은 펜을 내려놓았다.
청원서 한 장의 모서리에 작은 글씨가 남아 있었다.
저희도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고 싶습니다.
장난처럼 적은 문장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피로가 종이 끝에 눌려 있었다.
로잘린은 그 문장을 오래 보았다.
자신은 살기 위해 수면권을 얻었다. 그때는 그것이 오직 자신의 방어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어선이 한 사람에게만 그어지면 성벽이 아니라 울타리가 된다.
"단장님?"
에드먼드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로잘린은 고개를 들었다.
"이 청원은 정식 접수합니다. 다만 명칭은 바꿉니다."
그녀는 새 제목을 적었다.
중앙 부처 야간 근무 회복권 청원.
"수면이라는 말은 개인의 사정처럼 보입니다. 회복은 업무 지속 조건입니다."
이안이 표 제목을 같은 이름으로 고쳤다.
문이 열리고 칼릭스가 들어왔다. 수행원은 없었다. 그는 탁자 위 서류를 한 번 훑고 봉인 봉투 앞에서 멈췄다.
"명부인가."
"예. 봉인했습니다."
"열지 않겠다."
그 말에 에드먼드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칼릭스는 그 시선을 보고도 봉투에 손대지 않았다.
"대신 각 부처의 지시 통계를 내일 정오까지 올리게 해라. 제출하지 않는 부처는 감찰 회피로 기록한다."
로잘린은 바로 적었다.
"그리고 휴식 보장 없는 반복 야간 근무는?"
"감찰단이 조사한다."
"청원자 불이익 금지 조항은요?"
"명령서 첫 줄에 넣었다."
그의 답은 짧았다. 하지만 로잘린은 그 짧은 문장이 어제의 기록패보다 훨씬 덜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칼릭스가 문득 물었다.
"너는 이런 청원이 늘어나는 걸 원하나?"
"원하는 것은 청원이 필요 없는 구조입니다."
"그 구조가 생기면 너는 더 쉽게 떠나겠지."
소회의실의 공기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로잘린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칼릭스의 손끝이 검은 장갑 위에서 멈췄다.
"그래도 해야 하나."
"폐하께서 원하시는 답이 제 퇴사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라면 아닙니다. 제국이 굴러가는 답이라면 해야 합니다."
한참 뒤 칼릭스가 고개를 돌렸다.
"마르셀에게 명령서를 배포하라고 하겠다."
그는 그 말만 남기고 나갔다. 문이 닫히기 전 그의 목소리가 낮게 들렸다.
"그리고 오늘 네 휴식 시각도 기록해라."
로잘린은 서류 위 시계를 보았다. 아직 할 일은 남아 있었다. 보급국의 시각 대조표도 끝나지 않았고 재무부에서 올라올 자료 목록도 정리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펜을 내려놓았다.
"이안 부단장. 남은 표는 내일 오전에 검토하겠습니다."
이안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하겠습니다. 단장님 업무 종료."
에드먼드는 놀라다가 곧 웃음을 참는 얼굴이 되었다.
"청원 접수 첫날에 단장님께서 먼저 쉬셔야 설득력이 있겠네요."
"그 말은 업무 기록에 쓰지 마세요."
"예. 쓰지 않겠습니다."
로잘린은 봉인된 명부와 접수표를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도에는 아직 문관 몇 명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그녀를 보자 급히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가 속삭였다.
"퇴근의……"
로잘린의 시선이 돌아가자 속삭임이 끊겼다.
"청원 번호를 확인하러 온 것입니다."
문관이 황급히 말을 바꿨다.
로잘린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번호는 내일 공지됩니다. 오늘은 집에 가세요."
그 말에 복도 끝에서 작은 웃음이 번졌다.
로잘린은 의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창밖을 보았다. 황궁의 밤은 여전히 길었다. 누군가는 아직 빈 인장함의 이유를 숨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부터 그들은 감찰단의 청원 명부와 통계표를 먼저 보고 싶어 할 터였다.
그래도 오늘 접수된 청원에는 이름들이 있었다.
숨기 위해 지운 이름이 아니라 언젠가 불러도 안전해져야 할 이름들이었다.
로잘린은 속으로 다음 표의 첫 줄을 정했다.
권리는 예외가 아니라 기준으로 관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