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싶은데 고백받았습니다

10화: 미끼 보고서의 봉인
아침 종이 세 번 울리기 전부터 특별 행정 감찰단 임시 사무실의 문이 열려 있었다.
로잘린은 봉인된 청원 명부를 확인한 뒤 야간 근무 통계표 더미를 넘겼다. 재무부의 보고서는 다른 부처보다 먼저 도착했고 빈칸도 하나 없었다.
사전 승인자. 긴급 사유. 대리 가능자. 종료 예정 시각. 다음 날 회복 시간.
모든 칸에 정갈한 글씨가 들어가 있었다.
"너무 완벽하네요."
에드먼드가 통계표를 내려다보았다.
"재무부가 드디어 지침을 이해한 걸까요?"
"이해했다면 첫 장만 새벽에 쓰고 뒤쪽을 아침에 몰아서 채우지는 않았겠죠."
로잘린은 두 번째 장과 세 번째 장을 맞대었다. 제출 시각은 같았지만 잉크의 번짐이 달랐다. 뒤쪽 장은 누군가 통계표를 먼저 본 뒤 빈칸을 채운 흔적에 가까웠다.
이안이 인장 사용 일지를 펼쳤다.
"재무부 통계표의 봉인 번호는 214번입니다. 그런데 봉투에 찍힌 밀랍 무늬는 214번 보관함의 것과 다릅니다. 재봉인 사유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로잘린은 통계표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눌렀다. 재무부는 협조하는 척하면서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누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리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때 마르셀이 문을 열었다.
"재무부의 이사벨 드 몬테르 국장이 방문했습니다. 감찰단의 자료 정리를 돕겠다고 합니다."
마르셀의 뒤에서 여자가 들어왔다. 짙은 녹색 제복 위에 은실로 수놓은 몬테르 가문의 문장이 달려 있었다. 이사벨은 사무실을 한 바퀴 둘러보고 로잘린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사벨 드 몬테르입니다. 재무부 예산 조정국을 맡고 있지요."
"로잘린 폰 벨리아입니다. 이미 제 이름은 알고 오신 듯한데요."
"새 감찰단장께서 재무부와 군무부의 삼 년 치 장부를 열람할 권한을 얻으셨는데 모를 수 있겠습니까."
이사벨의 시선이 청원 접수표와 봉인 봉투를 지나 원본 장부 보관 목록에 닿았다.
"재무부는 협조할 생각입니다. 다만 원본 장부가 잘못 해석되면 예산 집행 전체가 중단될 수 있습니다. 제가 대조를 돕는 편이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원본은 감찰단이 보관합니다. 의견이 필요하면 정식 질의서를 보내 주세요."
"그렇게 딱딱하게 하실 필요까지야. 재무부 내부 분류 번호 M-17의 자료가 누락됐습니다."
로잘린의 시선이 멈췄다. M-17은 감찰단 내부 임시 번호였다. 아침에 이안과 에드먼드에게만 전달했다.
"그 번호를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재무부로 넘어온 협조 요청서에 적혀 있었습니다."
이안이 요청서 묶음을 펼쳤다. M-17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사벨은 잠시 침묵하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잘못 기억했나 보군요. 감찰단이 워낙 많은 번호를 쓰니 혼동했습니다."
로잘린은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빈 대조표 한 장을 꺼냈다.
"재무부에서 확인할 항목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아직 가설 단계입니다."
"어떤 항목입니까?"
"북부 보급 예산 일부가 서부 창고 비상 구호 약품비로 재분류되었다는 기록입니다. 원본에서 확인되지 않았고 임시 코드 F-19만 붙어 있습니다. 오늘 저녁까지 조정표와 대조할 예정입니다."
이사벨의 손가락이 탁자 가장자리에서 멈췄다.
"금액은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로잘린은 더 말하지 않았다. 이사벨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면 저도 재무부 쪽에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사벨이 나간 뒤 에드먼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F-19는 실제 코드가 아닙니까?"
"아니요. 금액도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알려 주신 이유가 있습니까?"
로잘린은 이안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자료를 빼내려 한다면 자기가 필요한 정보부터 확인할 겁니다. 그 사람이 움직이는 길을 기록하죠."
로잘린은 재무부·군무부 예산 재분류 가설 대조표를 만들었다. 보고서에는 존재하지 않는 코드 F-19와 1,847은화가 적혔다. 북부 보급 장부와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원본 어디에도 없는 값이었다.
이안은 진짜 장부를 별도 봉인함으로 옮겼다. 봉인 번호와 보관 시각을 기록하고 보관함 열쇠를 자신과 로잘린이 나누어 가졌다. 에드먼드는 미끼 보고서에 열람 기록표를 붙였다.
"반출 금지와 열람 시간만 적었습니다. 미끼라는 표시는 하지 않았습니다."
"좋아요. 누가 가져가면 그 사람이 절차를 어겼다는 기록이 남겠네요."
로잘린은 미끼 보고서를 중앙 문서고 제3 보관함에 넣었다. 새 밀랍 안쪽에는 작은 검인 표시를 남겼다. 감찰단 보관대장에 적힌 열람 가능자는 로잘린과 이안 그리고 에드먼드뿐이었다.
그날 오후 이사벨이 보낸 협의 요청서에는 F-19와 1,847은화가 정확히 적혀 있었다.
이안이 문서를 읽다가 고개를 들었다.
"방금 만든 숫자가 재무부 문서에 들어왔습니다."
"이제 확인할 것은 누가 그 숫자를 장부에 옮기는지예요."
해가 진 뒤 문서고의 출입등이 하나씩 꺼졌다. 에드먼드는 기록실 안쪽에서 출입 시각을 적었고 이안은 봉인함 앞에서 대기했다. 로잘린은 복도 끝 기둥 뒤에 섰다.
밤 열한 시가 조금 지나 문서고 문이 열렸다.
이사벨이 혼자 들어왔다. 손에는 정식 협의 요청서가 있었고 허리에는 재무부 인장이 달린 작은 열쇠가 매달려 있었다.
문서고 관리 문관이 당황한 얼굴로 다가갔다.
"국장님. 열람 신청은 내일 오전으로 되어 있습니다."
"재무부 장부의 숫자가 틀리면 내일 결재가 모두 멈춥니다.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이사벨은 재무부 장부 열람 허가서를 내밀었다. 허가서에는 감찰단 자료의 반출이나 수정 권한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문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제3 보관함으로 걸어갔다.
"그 보관함은 감찰단 전용입니다."
"F-19 항목이 여기 있다면 재무부 장부와 맞춰 봐야 합니다."
"감찰단장님의 별도 승인이 필요합니다."
이사벨은 재무부 인장을 꺼냈다.
"말단 문관에게 절차를 가르칠 생각은 없습니다. 비키세요."
"그 말은 기록으로 남기죠."
로잘린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이사벨의 손이 멈췄다.
"이 시간에 여기 계셨군요."
"저는 보관함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국장님은 허가받지 않은 자료를 열려고 하셨고요."
이사벨은 대답 대신 보관함의 밀랍을 잘랐다. 이안이 즉시 출입 기록표를 들었다.
"열람 시작 시각은 밤 열한 시 십칠 분입니다. 봉인 해제자는 이사벨 드 몬테르 국장. 감찰단 승인 번호는 없습니다."
이사벨은 미끼 보고서를 꺼내 빠르게 넘겼다. F-19와 1,847은화라는 숫자를 확인한 순간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보고서를 소매 안에 밀어 넣고 다른 장부 사이에 얇은 종이 한 장을 끼웠다.
로잘린이 그 손목을 붙잡았다.
"그 종이는 무엇입니까?"
이안이 종이를 받아 들였다. 표지에는 F-19. 1,847은화. 북부 보급비에서 서부 약품비로 재분류라고 적혀 있었다.
에드먼드가 기록표에 적었다.
"정정표 발견 시각 밤 열한 시 십칠 분. 작성자 서명 없음. 사용 인장 없음."
로잘린은 이사벨의 소매에서 미끼 보고서를 꺼냈다.
"F-19는 오늘 제가 처음 말한 코드입니다. 금액도 아무에게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이사벨은 보고서를 탁자 위에 놓았다.
"그렇다면 저를 함정에 빠뜨리신 겁니다."
"국장님이 허가 없이 들어와 자료를 빼내고 정정표를 끼우기 전까지는 함정이 아니었습니다."
"재무부의 예산을 지키려 했을 뿐입니다."
"예산을 지키는 사람은 원본 봉인을 자르지 않습니다. 오류를 고치는 사람은 서명 없는 정정표를 장부 사이에 숨기지도 않고요."
이사벨은 처음으로 로잘린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당신은 제가 이 숫자를 장부에 넣을 거라고 예상했군요."
"아니요. 누군가 이 숫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만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복도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들렸다. 칼릭스가 마르셀과 함께 문서고에 들어섰다. 그는 탁자 위의 미끼 보고서와 이사벨의 손에 묻은 새 밀랍을 보자 눈빛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무슨 일이냐."
로잘린이 먼저 대답했다.
"감찰단 자료 무단 반출 시도입니다. 이사벨 드 몬테르 국장은 원본 봉인을 해제하고 미끼 보고서를 가져가려 했습니다. 동시에 예산 재분류 정정표를 장부 사이에 끼웠습니다."
칼릭스의 시선이 이사벨에게 향했다.
"네가 했나."
"폐하. 저는 재무부의 혼란을 막으려 했습니다. 감찰단장이 가짜 숫자를 흘려 부처를 시험한 것이 먼저입니다."
칼릭스의 마력이 바닥을 눌렀다. 문서고의 마력등이 일제히 흔들렸다.
"감히 황실 감찰 자료를 훔치고도 변명하는군."
그의 손이 검자루로 향했다.
로잘린은 칼릭스와 이사벨 사이에 섰다.
"폐하. 지금 목을 치시면 안 됩니다."
"물러서라."
"이사벨은 죄를 지었지만 아직 장부가 말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F-19를 만들었는지 누구의 인장이 정정표를 승인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녀가 말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있다."
"고문이나 처형은 장부를 열지 못합니다. 오히려 입을 닫게 만들죠."
로잘린은 이안에게 손을 내밀었다.
"현장 봉인 목록을 작성하세요. 미끼 보고서와 정정표는 따로 봉인하고 이사벨의 허가서와 출입 시각도 함께 보관합니다."
"예."
"에드먼드는 재무부 인장의 밀랍 무늬를 사용 일지와 대조하세요."
이사벨의 눈썹이 흔들렸다.
칼릭스는 여전히 검자루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네가 원하는 것은 그녀를 살려 두는 것이냐."
"아닙니다. 장부를 위해 조사 시간을 요구하는 겁니다. 이사벨이 죄가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럼 어디에 둘 것이냐."
"감찰단의 정식 조사 대기실입니다. 외부 접촉과 자료 열람을 금지하고 내일 대질 조사를 준비하겠습니다. 질문과 답변은 모두 기록해야 합니다."
칼릭스는 이사벨을 노려보았다. 마력이 검은 안개처럼 일렁였다.
"내일 정오까지다. 그때까지 증거를 내놓아라."
"증거는 이미 있습니다. 배후와 연결선을 찾겠습니다."
"내일 내가 직접 심문한다."
"심문이 아니라 기록 대질로 진행하십시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칼릭스는 로잘린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이사벨을 향한 연민이 없었다. 자신이 세운 절차를 끝까지 지키려는 완고함만 있었다.
마침내 칼릭스가 검자루에서 손을 떼었다.
"좋다. 내일까지는 네 방식대로 해라. 단 한 번이라도 증거를 없애려는 움직임이 보이면 내가 직접 끝낸다."
로잘린은 봉인용 붉은 실을 매듭지었다.
"그때도 먼저 보고서를 읽으십시오."
칼릭스의 시선이 봉인된 정정표에 머물렀다.
"보고서가 네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로잘린은 이안과 에드먼드가 작성한 기록을 확인했다.
"제 목숨을 지키는 데 필요한 것이 보고서입니다."
문서고의 문이 닫혔다. 봉인함 안에는 가짜 숫자 하나와 서명 없는 정정표가 남았다.
하지만 이제 그 숫자를 누가 두려워하는지는 기록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