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싶은데 고백받았습니다

8화: 감시가 아니라 단속
해가 기울 무렵 의무실 창문에 긴 그림자가 드리웠다.
로잘린은 침상 옆 탁자에 쌓인 감찰 서류를 세 묶음으로 나누고 있었다. 북부 보급 장부 대조본은 이안에게 넘겼고 야간 인장 사용 기록은 에드먼드가 옮겨 적는 중이었다. 마지막 묶음에는 각 부처에서 올라온 조사 협조 회신이 놓여 있었다.
대부분은 협조하겠다는 문장보다 변명에 가까웠다.
로잘린이 세 번째 회신서를 펼쳤을 때 문이 열렸다. 마르셀이 은쟁반 대신 검은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뒤에는 칼릭스가 서 있었다.
"폐하께서 직접 오실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네가 아직 일을 하고 있잖아."
칼릭스의 시선이 탁자 위 문서에 닿았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그의 붉은 눈동자에는 피곤한 기색보다 날카로운 경계가 먼저 떠올라 있었다.
마르셀이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손바닥만 한 은빛 기록패가 들어 있었다. 표면에는 황실 문장이 새겨져 있었고 가장자리에는 마력석이 박혀 있었다.
"오늘부터 이 패를 몸에 지녀라."
로잘린의 손이 멈췄다.
"용도는요?"
"네가 업무를 시작하고 끝낸 시각을 기록한다. 정각마다 현재 위치와 처리 중인 안건도 전송된다. 의무실을 벗어나면 내게 알림이 온다."
마르셀이 조용히 시선을 내렸다. 이안의 펜 끝도 멈췄다.
로잘린은 기록패를 집지 않았다.
"제 근무 시간을 확인하시려는 겁니까?"
"확인하는 것뿐이다."
"제가 어디에 있는지도요?"
"네가 또 혼자 밤을 새우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 말은 걱정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로잘린은 칼릭스가 쥔 검은 장갑의 손이 지나치게 단단히 굳은 것을 보았다. 그는 그녀가 또 쓰러질까 두려운 동시에 감찰단의 다른 사람들과 자신 없는 자리를 준비할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로잘린은 상자 안의 기록패를 바라봤다.
"매시 위치와 안건을 보낸다는 조항에는 기준이 없습니다."
칼릭스의 눈썹이 움직였다.
"무슨 기준 말이지?"
"누가 이 정보를 열람하는지 기록을 얼마나 보관하는지 전송이 늦었을 때 무엇을 위반으로 보는지요. 폐하께서 주무시는 시간에도 제가 보고를 보내야 합니까? 마력이 불안정해서 전송이 끊기면 제 과실입니까?"
차분한 질문이 이어질수록 마르셀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황제의 명령을 받자마자 조항을 검토하는 사람은 로잘린뿐이었다.
칼릭스는 한 걸음 다가왔다.
"그 정도까지 따질 일은 아니다. 나는 네가 무사한지만 알면 된다."
"그럼 이건 감시가 아니라 안전 확인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저 한 사람만 기록합니까?"
로잘린은 회신서 한 장을 들어 보였다.
"오늘도 군무부 보급국에서 야간 결재를 긴급으로 올렸습니다. 긴급 사유도 없고 대리 결재 가능자도 적히지 않았어요. 이런 서류는 밤마다 누군가를 붙들어 두고 기록도 남기지 않습니다. 제 위치를 확인하는 것보다 먼저 단속할 일이 있습니다."
칼릭스의 시선이 문서로 옮겨 갔다.
이안이 조심스럽게 말을 보탰다.
"북부 보급 야간 결재 세 건도 같습니다. 사전 승인도 없고 담당자가 부재일 때 누가 판단했는지도 없습니다. 이런 빈칸이 있어야 누군가가 밤에 고친 기록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기록패로 단장님만 확인해도 그 결재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칼릭스는 잠시 말이 없었다.
로잘린은 그 침묵을 놓치지 않았다.
"제가 제안하겠습니다. 감시가 필요하다면 한 사람에게만 적용하지 마세요. 야간 근무가 필요한 모든 부처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십시오. 그러면 폐하께서는 제가 무사한지 알 수 있고 저는 누군가의 불안을 위해 제 일상을 보고하지 않아도 됩니다."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잖아."
낮은 목소리가 의무실 안을 눌렀다.
로잘린은 숨을 고른 뒤 대답했다.
"업무 종료 시각은 기록하겠습니다. 다만 제 위치가 아니라 제 퇴근을요."
칼릭스의 붉은 눈이 흔들렸다.
"그 차이가 뭐지?"
"한쪽은 사람을 붙잡습니다. 다른 한쪽은 사람을 집에 보내 줍니다."
잠시 뒤 로잘린은 새 서식 한 장을 꺼냈다.
야간 근무 승인 및 종료 기록.
그 아래에는 다섯 칸이 있었다. 사전 승인자, 긴급 사유, 대리 가능자, 종료 예정 시각, 다음 날 휴식 보장.
"모든 야간 근무에 이걸 쓰라고?"
"시범으로 사흘만 하겠습니다. 승인 없는 야간 근무는 다음 날 업무 지연 사유로 기록하고 휴식 보장 없이 반복되면 감찰단이 조사합니다."
"그렇게 하면 밤에 처리할 일이 밀린다."
"그럼 낮에 사람을 더 배치해야 합니다. 누군가의 잠을 빼앗는 것은 결재 절차가 아닙니다."
이안이 표를 살핀 뒤 고개를 끄덕였다.
"대리 가능자를 적게 하면 담당자가 부재일 때도 업무가 멈추지 않습니다. 현재 북부 보급국은 이 칸을 비워 둔 채 야간 결재만 반복했습니다."
칼릭스는 기록패를 집어 들었다. 은빛 표면에 비친 그의 얼굴은 생각보다 지쳐 보였다.
"내가 네게 이걸 주려 했던 이유를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제 자유를 줄일 권리는 아닙니다."
그는 반박하지 못했다.
한참 뒤 칼릭스는 기록패를 상자에 도로 넣었다.
"좋다. 사흘간 시범 시행한다. 대신 오늘 밤 직접 확인하겠다."
로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은 기록으로 하십시오. 사람들을 겁주지 마시고요."
밤의 문서고 복도에는 희미한 마력등만 켜져 있었다.
이안은 입구 탁자에 새 서식을 쌓아 두었다. 에드먼드는 출입 대장 옆에 앉아 들어오는 문관들에게 한 장씩 내밀었다. 종이를 받아 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당황한 얼굴이었다.
"야간 근무 승인서라고요?"
재무부의 젊은 문관이 물었다.
"지금까지는 국장님이 남으라고 하시면 남는 것이었는데요."
"오늘부터는 누가 남으라고 했는지 적으시면 됩니다."
에드먼드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분명했다.
"긴급 사유가 없으면 다음 날 처리로 넘길 수 있습니다. 혼자 판단하기 어렵다면 이안 부단장님께 확인을 요청하세요."
문관은 빈칸을 보며 굳었다.
"국장님 성함을 적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로잘린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성함을 적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남으라고 한 이유가 먼저 문제입니다."
그녀는 서식의 맨 아래를 가리켰다.
구두 지시의 경우 지시자 미기재로 제출 가능. 감찰단이 다음 날 확인.
"지금 당장 이름을 쓰라고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기록이 없어서 당신만 책임지는 일도 없게 하겠습니다."
그때 복도 끝에서 낮은 비명이 들렸다. 검은 제복의 칼릭스가 수행원 없이 걸어오고 있었다. 문관들의 손에서 서식이 바스락거렸다.
칼릭스는 탁자 앞에 멈춰 섰다.
"왜 아직 작성하지 않았지?"
젊은 문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로잘린이 곧바로 칼릭스의 앞을 막았다.
"폐하. 확인은 내일입니다. 오늘은 작성 여부를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망설이는 이유를 알면 빨라진다."
"두려워서 쓰는 기록은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칼릭스의 마력이 복도 벽을 스치며 낮게 울렸다. 그러나 로잘린은 물러나지 않았다.
"지금 폐하께서 여기 계시면 이들은 야근을 시킨 상사가 아니라 황제의 눈치를 보며 종이를 쓰게 됩니다. 그건 제가 원한 제도가 아닙니다."
칼릭스는 문관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알겠다. 나는 복도 끝에 있겠다."
그가 정말로 거리를 두자 문서고의 공기가 아주 조금 풀렸다.
젊은 문관은 떨리는 손으로 첫 줄을 적었다. 사전 승인자 칸은 비어 있었다. 긴급 사유에는 국장 지시. 사유 들음 없음.이라고 썼다. 다음 날 휴식 보장 칸에는 한참 망설이다가 없음.이라고 적었다.
그 문장을 본 에드먼드가 조용히 말했다.
"그대로 두셔도 됩니다."
다음 문관은 군무부 보급국 소속이었다. 그는 주변을 살피다가 에드먼드에게 몸을 기울였다.
"제가 적어도 됩니까? 오늘도 보급국에서 빈 인장함을 확인하라고 했습니다. 장부가 맞는지 보라는 말뿐이었어요."
이안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누가 지시했습니까?"
문관은 입술을 깨물었다.
"전달한 사람만 압니다. 국장실에서 내려온 말이라고 했습니다."
로잘린은 서식을 그에게 밀어 주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나눠 적으세요. 전달자 이름, 들은 시각, 확인한 인장함 번호. 추측은 빼고요."
문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펜을 움직이는 동안 복도 끝에 선 칼릭스는 단 한 번도 재촉하지 않았다.
자정이 가까워졌을 때 서식은 열두 장이 되었다. 열세 번째는 늦게 도착한 법무부 문관의 것이었다. 중앙 부처 열세 곳에서 이유 없이 밤을 지키는 사람이 있었다.
로잘린은 마지막 장을 넘겨 이안에게 건넸다.
"이건 내일 오전에 분류하세요. 지금은 종료 시각부터 기록하고 모두 귀가시키죠."
"단장님도요."
이안의 말에 로잘린은 짧게 웃었다.
그녀는 칼릭스를 향해 돌아섰다.
"폐하께서 원하신 확인입니다. 저는 지금 업무를 종료합니다."
칼릭스는 문서고의 마력등과 서식 더미를 번갈아 보았다.
"네 위치는 알 수 없군."
"제 퇴근은 아실 수 있죠."
그는 한참 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걸로 됐다."
칼릭스는 마르셀이 가져온 시범 지침서에 인장을 찍었다.
야간 근무는 사유와 종료 시각을 기록한다.
대리 가능자가 있는 업무는 야간 호출을 우선 금지한다.
다음 날 휴식이 보장되지 않은 반복 근무는 감찰단에 자동 통보한다.
인장이 종이 위에서 붉게 빛났다.
로잘린은 의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창밖을 보았다. 아직 밤은 길었다. 북부 보급 장부의 빈 인장함도, 그 뒤에 있는 사람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밤만큼은 열세 명의 문관이 이유도 모른 채 책상 앞에 남아 있지 않아도 됐다.
복도 끝에서 에드먼드가 서식 한 장을 품에 안고 말했다.
"단장님. 내일 이 기록을 본 사람들이 자기 부처에도 같은 조항을 달라고 하면요?"
로잘린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럼 청원을 받으면 됩니다. 권리는 한 사람에게만 붙여 두면 오래가지 않으니까요."
그녀의 뒤에서 문서고 문이 닫혔다. 그 소리는 감시의 문이 아니라 밤을 끝내는 종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