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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열두 시 십이 분)1화

12:12

12:12

누구나 인생에서 단 한 번쯤은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한다.
말실수를 했던 찰나의 순간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던 그 비극적인 오후로.
하지만 그 대가를 안다면, 당신은 여전히 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정오 12시 12분.
세상의 이음새가 벌어지는 단 12분 동안, 우리는 신의 권능을 훔친다.
그러나 기억하라.
과거를 덧칠하는 잉크는 당신의 현재를 갉아먹으며 흐른다는 것을.
손등에 새겨지는 검은 선이 심장에 닿을 때, 당신은 더 이상 '오늘'을 살 수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은 후회로 연명하는 자들의 기록이자,
사라져가는 현재를 붙잡으려 발버둥 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1화: 12시 12분의 균열

강윤재의 인생은 늘 1분 차이로 어긋나곤 했다.

어린 시절, 형의 손을 놓쳤던 그 찰나의 순간도 그랬다. 하지만 오늘의 어긋남은 그보다 훨씬 하찮고, 그래서 더 비참했다.

“……미친.”

침대 밑으로 떨어진 휴대폰 액정에는 11:43이라는 숫자가 비정하게 박혀 있었다.

알람은 세 개나 맞춰져 있었다. 7시 30분, 8시, 그리고 ‘진짜 마지막’이라 이름 붙인 8시 20분까지. 그러나 잠결의 윤재는 그 모든 경고를 무의식 너머로 밀어내 버렸다. 밤새워 정리하던 ‘현대사회와 윤리’ 요약 노트가 노트북 화면 위에서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오늘 정오. 1교시도 아닌 그 황금 같은 시간에 시작되는 기말고사가 그의 학사 경고와 정상적인 졸업 사이의 마지막 밧줄이었다.

“제발, 제발……!”

윤재는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모자를 눌러썼다. 책상 위에 굴러다니던 전공 서적과 필통을 가방에 쑤셔 넣는 손이 덜덜 떨렸다. 신발 뒤축을 구겨 신으며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을 때, 폐부로 스며드는 정오의 뜨거운 공기가 그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버스 정류장 전광판의 숫자는 절망적이었다. 721번 버스, 도착까지 9분.

학교까지 뛰면 25분. 택시 앱은 ‘주변 차량 없음’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윤재는 미친 사람처럼 언덕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요동쳤다.

그때,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했다. 한서연이었다.

“너 어디야?”

전화를 받자마자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가고 있어, 다 왔어!”

“윤재야, 교수님 방금 들어오셨어. 문 잠그면 끝인 거 알지? 너 이번에 F 나오면 진짜 끝이야.”

“알아, 안다고!”

하지만 다리는 무거웠고, 학교 정문은 아직도 아득했다. 12시 05분, 08분, 10분……. 시계 바늘은 윤재의 영혼을 갉아먹으며 전진했다.

마침내 강의실이 있는 인문관 3층 복도에 도착했을 때, 윤재의 눈앞에 보인 것은 굳게 닫힌 철문이었다. 문 너머로는 기분 나쁠 정도의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지각자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박 교수의 철칙이 복도를 지배하고 있었다.

윤재는 문고리를 잡으려다 멈췄다. 지금 이 문을 열어봤자 돌아오는 건 차가운 퇴장 명령뿐일 것이다. 그는 문앞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서연아…… 나 진짜 어제로 돌아가고 싶다. 아니, 단 1시간만이라도.”

절망 섞인 혼잣말이 복도의 정적 속으로 흩어졌다.

그 순간, 손목시계의 초침이 12시 12분 00초를 가리켰다.

세상이 한 박자 엇박자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복도의 형광등이 기괴하게 깜빡이고, 멀리서 들려오던 자동차 경적 소리가 물속에서 들리는 것처럼 둔탁하게 변했다.

치익, 치이익.

누군가 머릿속에서 생가죽을 찢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시야가 하얗게 번지더니, 공중에 붉은 잉크가 번지듯 선명한 글자가 떠올랐다.

[ 12 : 12 ]

그것은 명령이자, 거부할 수 없는 초대였다. 윤재의 의식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현실의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코끝을 스치는 익숙한 컵라면 냄새였다.

윤재는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숨이 차서 찢어질 것 같던 폐의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땀에 젖어 살갗에 달라붙던 후드티 대신, 편안한 반팔 티셔츠 차림이었다.

방 안은 고요했다. 창밖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고, 책상 위 스탠드만이 노란 불빛을 뿜으며 전공 서적을 비추고 있었다.

“……꿈인가?”

윤재는 떨리는 손으로 책상 위 탁상시계를 확인했다.

[ AM 11:58 ]

기말고사 전날 밤이었다. 불과 몇 초 전까지 자신은 인문관 복도에서 절망하며 주저앉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12시간 전의 제 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때, 시야 오른쪽 아래에 희미한 숫자가 나타났다. 마치 유령처럼 반투명하게 떠오른 숫자는 초 단위로 줄어들고 있었다.

[ 11:59 ]
[ 11:58 ]

주어진 시간은 단 12분.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본능이 그에게 외치고 있었다. 멍하니 있을 시간이 없다고. 이것이 환각이든 기적이든, 지금 이 시간을 놓치면 다시 그 끔찍한 ‘늦잠의 현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알람, 알람부터……!”

윤재는 미친 듯이 휴대폰을 낚아챘다. 오전 7시부터 10분 간격으로 알람을 도배했다. 벨소리는 가장 혐오스럽고 시끄러운 것으로 바꿨고, 볼륨은 최대치로 키웠다. 혹시라도 잠결에 끌 것을 대비해 휴대폰을 침대에서 가장 먼 책상 구석, 그것도 빈 금속 깡통 위에 올려두었다.

그다음은 가방이었다. 아까 허둥대며 챙기느라 빠뜨렸던 필통과 요약 노트를 확인하고, 노트북에 꽂혀 있던 USB 메모리를 뽑아 가방 깊숙이 넣었다.

[ 06:42 ]

남은 시간 6분.

윤재는 책상 앞에 앉아 전공 서적을 펼쳤다. 아까 시험을 못 봐서 머릿속이 하얘졌던 기억이 선명했다. 그는 박 교수가 강조했던 ‘사회 계약론’ 부분을 미친 듯이 눈에 담았다. 평소라면 한 시간은 걸렸을 분량이, 기묘하게도 사진을 찍듯 뇌리에 박혔다.

[ 01:15 ]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 00:05 ]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둠 속에서 다시 한번 그 기괴한 종이 찢는 소리가 들려왔다.

[ 00:00 ]

세상이 다시 한번 거세게 뒤집혔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윤재의 손등을 때린 것은 서늘한 에어컨 바람과 딱딱한 강의실 책상의 감촉이었다.

“……!”

윤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현대사회와 윤리 기말고사’라고 적힌 시험지가 놓여 있었고, 강의실 안은 연필 굴러가는 소리만이 가득한 기묘한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시계를 확인했다. 12시 24분.

그는 인문관 복도에 주저앉아 있지 않았다. 그는 강의실 안, 자신의 지정석에 앉아 답안지를 채워나가고 있었다. 12시간 전의 자신이 맞춘 다섯 개의 알람이 그를 제시간에 깨웠고, 미리 챙겨둔 필통과 요약 노트 덕분에 아무런 차질 없이 시험장에 도착한 ‘수정된 현재’였다.

손이 떨렸다. 하지만 머릿속에 박힌 요약 노트의 내용들은 마치 방금 본 것처럼 선명했다. 윤재는 홀린 듯 펜을 움직였다.

그때였다. 굳게 닫힌 강의실 문 너머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쾅, 쾅쾅!

“교수님! 제발요, 한 번만……! 버스가 사고가 나서 늦었습니다!”

절박한 외침이었다. 윤재는 펜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문 너머의 목소리는 같은 과 후배, 민도식이었다. 평소 성실하기로 소문난 그가 왜 지각을 했을까.

박 교수는 서류봉투를 정리하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시험 시작 후 30분이 지났습니다. 규정대로 하세요.”

“교수님, 정말입니다! 721번 버스가 갑자기 앞차를 들이받는 바람에……!”

윤재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721번 버스. 그것은 아까 ‘원래의 현재’에서 윤재가 타려고 기다렸던 바로 그 버스였다.

원래대로라면 자신이 겪었어야 할 불운, 혹은 자신이 늦었어야 할 그 자리에 대신 민도식이 서 있었다. 자신이 과거를 비틀어 만들어낸 12분의 행운이, 누군가에게는 고스란히 불행으로 전이된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시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학생들이 하나둘 답안지를 제출하고 나가는 와중에도 윤재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때였다. 시계가 다시 12시 12분을 가리키는 찰나, 귓가를 파고드는 서늘한 환청이 들렸다.

― 처음은 공짜다.

“……!”

윤재는 급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잉크가 번진 듯 검은 선 하나가 손등 위를 스치듯 지나갔다 사라졌다.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지만, 그 서늘한 감촉만큼은 뼛속까지 새겨진 듯했다.

강의실을 나서는 윤재의 등 뒤로, 복도에 주저앉은 도식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윤재는 깨달았다. 자신이 열어젖힌 것이 단순한 기회의 문이 아니었음을. 그것은 누군가의 현재를 훔쳐 자신의 미래를 덧칠하는, 잔혹한 거래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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